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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2022년 9월 3일 (토)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의 신자들에게, 모든 것을 주님에게서 받았으면서도 자신의 것인 양 자랑하는 모습을 반성하라고 훈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고 비난하는 바리사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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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하느님, 하느님 백성을 자비로이 돌보시며 사랑으로 다스리시니 복된 그레고리오 교황의 전구를 들으시고 교회의 목자들에게 지혜의 성령을 내리시어 그들이 백성을 올바로 가르치고 거룩해지도록 이끌며 자라나는 그 양들을 보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루카 6장 1-5절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최영진 그레고리오 신부 강론
루카 6장 1-5절
2022년 9월 3일 (토)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최영진 그레고리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강론
루카 6장 1-5절
2022년 9월 3일 (토)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조인기 암브로시오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황금빛 밀밭을 자유로이 따라 걷는 삶
가난한 이가 남의 밭에서 아직 추수하지 않은 곡식을 얼마간 잘라 먹는 것은 율법상 허용된 일입니다(신명 23,26 참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바리사이들은 그것이 ‘안식일에 행한 노동’이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와 관련한 명백한 규정이 오경의 율법에는 없으며, 바리사이 자신들이 지키던 구전 율법을 근거로 내세운 것이었습니다.
구전 율법을 집대성한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금지된 서른아홉 가지 노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안식일에 꽃이나 열매를 잘라서는 안 된다거나 알곡 한 톨도 까부를 수 없다는 세부 규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확과 탈곡에 관한 이런 규정들은 본래 노동을 금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소에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거룩한 빵을 합당한 절차를 통하여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과거에 이 거룩한 빵을 속인인 다윗과 그의 일행이 허기져 먹은 일이 있었는데(1사무 21,1-7 참조), 바리사이들이 이를 두고는 아무 비난도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윗의 주님’이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당신께 사람이 만든 안식일 규정들을 덧씌우고 속박하려 들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아집과 완고함을 짚어 깨우쳐 주신 것이었습니다.
경직된 사고와 잣대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옥죄고 단죄하는 마음으로는 주님의 길에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슬기로운 사람이 되는 길’(제1독서 참조)은, 비록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뜯어 먹을지언정,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가까이에서 황금빛 밀밭을 자유로이 따라 걷는 그 삶 속에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으로도 우쭐대지않듯
“여러분은 나와 아폴로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그대가 가진 것 가운데에서 받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 받은 것이라면 왜 받지 않은 것인 양 자랑합니까?”
지금은 그래도 덜 부끄럽지만, 옛날의 저를 생각하면 특히 저의 교만에 대해서 돌아보면 너무 부끄럽습니다.
저는 존경할 줄 몰랐고 힘 있고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대우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힘 있고 부자라며 거들먹거리면 상대치 않거나 무시해버리곤 했습니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을 더 잘 대해드리려고 했는데 돌아서 보면 여기에도 교만이 스며들어있었습니다. 마치 위에서 베푸는 사람인 양 하였던 것인데 이러면서도 저는 제가 잘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돈이 있건 없건, 권력이 있건 없건 저는 그들의 고통만 봤던 것이고, 차별은 물론 구별 없는 사랑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더 큰 잘못은 구별 없는 사랑을 하지 못한 것뿐 아닙니다. 인간적인 사랑에 머물고 하느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받지 않은 것이 없는데 어찌 받지 않은 양 우쭐대느냐고 나무라는데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단언코 말하건데, 자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고, 사람 사이에서 위에 있기도 하고 밑에 있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서는 결코 그리고 아무도 자랑할 수 없음은 물론 사랑을 할지라도 하느님께 받아서 하지 자기 사랑으로 하지 않으며 그래서 돈뿐 아니라 사랑으로도 우쭐대지 않음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의 사랑만을 바라보기
몇 년 동안 사람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바로 마스크 때문입니다. 얼굴의 거의 절반을 가리다 보니 누구인지 알아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읍내에 있는 빵집에 갔다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식빵을 사기 위해 이 집을 가끔 들리는데 사장님께서 “신부님이시죠?”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사제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로만칼라를 하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반바지에 흰색 면티를 입고 있어서 겉모습만 보면 그냥 동네 아저씨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신부인지를 아셨는지, 혹시 성당에 다니시냐고 여쭈었습니다.
신자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지난번에 한번 로만칼라를 하고서 빵집에 왔던 것을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스크도 쓰고 있었을 텐데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신부님 눈이 많이 처져 있어서 기억났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눈 하나만으로 저를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특징적인 것을 잘 관찰하고 기억한다고 합니다. 이 사장님께서 그런 분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주님의 전부를 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특징인 사랑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주님을 알려고 합니다.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바리사이와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한 충돌이 일어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율법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때를 가리어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즉, 율법 자체가 절대적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이 있다면 관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 손을 비벼 먹은 것이 문제가 됩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밀 두 이삭 이상을 따면 그것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추수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또 손으로 이삭을 비비는 것은 곡식을 타작하는 것으로 봤습니다.
하긴 안식일에 떨어진 과일을 먹어서는 안 되었고, 과일이 떨어질 수 있으니 안식일에 나무에 올라가서도 안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난 계란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으니, 제자들의 행동에 대한 고발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잊어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법으로 사람을 잘 살게 하려는 것이지, 사람을 율법으로 얽어매서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알려면, 주님의 사랑만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을 보고서 주님을 알려고 한다면 잘못된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예수님을 반대했던 종교 지도자들처럼 말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하늘은 아무런 행운도 없는 자를 태어나게 하지는 아니하며, 땅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를 길러내지는 않는 것이다.
- 명심보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루카 6, 5)
안식일의 본질은 사람의 참된 길이다. 사람의 길은 마음의 길이다. 우리 마음이 올바르면 안식일도 올바르다. 마음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우리모두 사랑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사랑의 길은 안식일 율법에 사로잡혀 있지않다.
먼저 자기자신을 보는 깨어있는 사람으로 우리가 돌아서는 것이다. 깨어있는 사람은 깨어있는 사랑과 깨어있는 지혜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악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도 사랑을 실천하신다. 안식일의 탈을 쓰고 세속의 방식을 따르는 모순된 우리들 신앙이다.
참된 신앙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다. 사랑의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이다. 다시 안식일의 주인에게서 사랑을 배운다. 안식일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랑의 일이다.
사랑을 위한 안식일이다. 아름다운 사랑의 안식일이다. 여기 안식일의 사람이 있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 받아야 할 사람이며 사랑을 실천해야 할 사랑의 사람들이다. 사람을 위한 안식일은 활짝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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