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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8월 27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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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녀 모니카 기념일

 

 

2022년 8월 27일 (토) 성녀 모니카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가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며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8월 27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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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시는 하느님, 아우구스티노의 회심을 위하여 애태우며 눈물 흘린 복된 모니카를 자비로이 굽어보셨으니 이 어머니와 아들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가 죄를 뉘우쳐 용서의 은총을 받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25장 14-30절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성녀 모니카 기념일
김종호 프란치스코 신부 강론

 

 

2022년 8월 27일 (토)
김종호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성녀 모니카 기념일

 

 

2022년 8월 27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탈렌트는 선물이고 유산이기도 하지만 책무이자 과제이다.

 

오늘 복음은 유명한 탈렌트의 비유입니다. 과거에는 탈렌트의 의미를 지나치게 왜곡하거나 축소하기도 하면서, 흔히 타고난 재능, 자연 본성으로 지닌 능력, 지성, 아름다움이나 건강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복음의 탈렌트가 말하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좀 더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교회에 주신 것은 이보다 더 본질적이고 영적인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을 받았고, 믿음을 받았고 은총을 받았으며 그분의 나라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탈렌트는 그분께서 주신 유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을 통하여 남겨 주신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요한 13,34 참조). 또한 당신의 영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에게 선물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 배고픔이 없는 세상, 용서하는 세상, 형제애가 실현되는 세상, 다른 이를 구해 주려고 애쓰는 세상을 위하여 남겨 주신 유산입니다. 

첫째 종과 둘째 종과 달리 셋째 종은 주인에 대하여, 곧 그의 하느님에 대하여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이 무섭고 모질다고 생각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가 주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두려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모험도 위험도 희생도 감수하지 않은 채 자기 자리만 지키려고 한 사람입니다. 혼인하여 자식을 세상에 내놓고 자녀를 신앙으로 기르며 행복을 위하여 애쓰는 모든 일도 모험이고 위험한 일입니다. 

믿고 기도하며 증언하고 사랑하며 용서하는 일들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탈렌트는 선물이고 유산이기도 하지만 책무이자 과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신자들에게 세례는 마치 땅에 묻은 탈렌트와 같을 수 있습니다. 귀한 선물을 받았는데 그것을 뜯어보지 않고 방치하여 쓸모없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사는데 주님은 무엇을 더 내게 바라시는가?’ 하고 말하지 맙시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십니다. 사랑의 의무를 실행하며 아파하고 상처받더라도 끊임없이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열심히 활용하기를 애타게 바라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속된 기준과 천상 기준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은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독서는 세속적 기준으로 지혜롭고, 유력하고,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 당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도록 어리석고, 힘없고, 비천한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택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속된 기준으로 유력한 사람들이 하느님 앞에 나오기나 하겠습니까?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처럼 모든 능력과 지혜는 다 하느님께서 주신 건데 하느님 앞에서 자기의 능력과 지혜와 출신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세속의 기준에서 지혜롭고, 유력하고, 고귀한 사람은 프란치스코가 유언에서 “나는 그 후 세속을 떠났습니다.”라고 할 때처럼 세속을 떠난 사람이 아니라 세속 가운데 있는 사람인데 세속이란 말 자체가 하느님이 아니 계신 세상을 말하고 그런 사람은 세속 한가운데 있지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세속과 세상은 같은 듯 다릅니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기에 하느님 보시기에 선하고 하느님께서도 그 안에 계시지만 세속은 하느님이 아니 계신 세상이고 더 정확히 얘기하면 하느님이 안 계신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입니다. 

아무튼, 세속적인 사람은 하느님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여 그에게는 하느님께서 죽었거나 안 계십니다. 

우선 세속적인 사람은 자기를 자랑하고 하느님은 무시합니다. 무시(無視)라는 말은 한자어로는 없다고 보는 것이고 우리말로는 업신여기는 겁니다. 

저는 우리말에 자주 감탄하는데 업신여긴다는 말은 거의 틀림없이 ‘없이 여긴다.’는 말의 변형입니다. 엄연히 있는데도 없이 여긴다는 뜻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있는 자, 없는 자를 얘기하지만, 우리말에서도 있는 자, 없는 자를  얘기하고, 단지 돈이 없을 뿐인데 그런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을 세속에서는 없는 자로 취급하고, 아예 없는 존재인양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속적인 사람은 사람뿐 아니라 하느님도 무시합니다. 그러면 이런 세속적인 사람을 하느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오냐오냐하고 내버려 두실까요? 가난하고 미천한 사람에게는 또 어떻게 하실까요? 

성모 찬가에 잘 나와 있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셨도다.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고 부요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세속적인 사람의 또 다른 본보기가 오늘 복음에서 한 탈렌트 받은 사람입니다. 앞서 본 세속적인 사람이 하느님을 무시하는 사람이라면 복음에서 한 탈렌트 받은 사람은 하느님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거부하는 것의 뿌리에 ‘하느님 오해’와 ‘하느님 모독’이 있습니다. 선하신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은총의 하느님을 모질고 악한 분으로 아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을 하느님께서는 또 어떻게 하실까요? 하느님께서는 그를 게으르고 쓸모없는 종이라고 하실 뿐 아니라 악한 종이라고 하시며 그를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리라고 하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가르침은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세상에서 지혜롭고, 유력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내치시고, 세상에서 어리석고, 미천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뇌의 습성을 알려면 ‘멍게’를 보면 된다.

 

1.4kg의 회백질 덩어리인 뇌의 습성을 알려면 ‘멍게’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멍게는 유충일 때는 뇌가 있어서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한군데 자리를 잡고 살게 되면 아주 특이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글쎄 자기 뇌를 먹어버린다고 하네요. 이제 움직일 일이 없으므로 뇌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뇌의 에너지 소비율은 아주 높거든요. 따라서 에너지 소비율을 줄이기 위해 자기 뇌를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뇌는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덕분에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몸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도록 뇌가 진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힘도 없고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또 날지도 또 물속에서 헤엄도 못 치는 너무 약한 몸을 가지고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뇌가 성장했습니다.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키우도록 합니다. 
 
이런 생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입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능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이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인이 돈을 맡기고 떠나간 다음 능력에 따라 돈을 맡은 부하들의 활약상을 소개합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자기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여 또 다른 다섯 탈렌트로 늘렸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두 탈렌트를 받았고 역시 두 탈렌트를 늘렸습니다.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는 주님의 일을 맡은 사람의 능력의 차이이며, 주님이 일을 맡길 때도 그 능력에 따라 은총을 내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능력의 차이는 본인의 잘잘못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대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 됩니다.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로 늘린 사람에 대한 주인의 평가를 보십시오.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그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땅에 묻어둡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주인이 무서워서 한 행동이 아니라, 일하기가 싫어서 게으름을 부리는 직무 유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능력 차이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으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작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 자는 큰 것에도 감사하지 않는다.

- 에스토니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마태 25, 26)

 

우리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느냐가 중요하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악하고 게으른 우리들 모습이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에서 너무 멀어져 있는 우리들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우리의 아집으로 우리의 뜻만을 고집하는 우리들 삶이 되었다. 착하고 성실한 삶은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삶이다. 순명하는 삶안에 진리도 있고 질서도 있고 충만함도 있다. 

순명은 주고 받는 충만한 사랑의 관계이다. 적극적인 삶의 모습이 참으로 중요하다. 게으름 속에 파묻혀 있는 신앙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실천하는 신앙이다. 크고 귀하고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절절한 가슴앓이다. 절절한 사랑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선택할 권리가 없는 사랑이다. 

주어진 관계에 참으로 성실했던 모니카 성녀의 삶이다. 사무치는 고맙고 소중한 부모님의 사랑으로 자라나는 우리들이다. 참된 사랑은 게으르지 않다. 작은 것에 성실하다. 이와같은 사랑은 두려워서 꼭꼭 숨겨두는 사랑이 아니라 활용하고 확장하는 용기있는 사랑이다. 우리를 믿고 사랑을 맡기셨다. 사랑을 더 가지려 노력하는 실천이 중요하다. 사랑을 셈하는 것은 하느님 사랑뿐이다. 하느님 사랑을 받아 이미 넉넉해진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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