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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8월 25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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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

 

 

2022년 8월 25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와 소스테네스는 코린토 교회에 인사하며, 하느님께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베푸신 은총을 두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라며,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성실히 일하고 있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8월 25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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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신자들을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하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갈망하며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세상에서도 참기쁨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24장 42-51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2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45 
주인이 종에게 자기 집안 식솔들을 맡겨 그들에게 제때에 양식을 내주게 하였으면,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46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8 
그러나 만일 그가 못된 종이어서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어지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49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또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50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51
그를 처단하여 위선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유상혁 세례자 요한 신부 강론

 

 

2022년 8월 25일 (목)
유상혁 세례자 요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강론

 

 

2022년 8월 25일 (목)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용진 요셉 신부

 

내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

 

죽음은 우리에게 불현듯 닥쳐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시간입니다. 우리가 죽음의 시간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에서 비롯하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신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생명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누릴 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인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자신을 마치 집주인처럼 여기는 종은 예상치 못한 날에 주인의 처단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 생명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마침내 그것을 잃을 것입니다. 생명은 선물로 받은 것이기에 그것을 선물로 내줄 줄 아는 사람만이 생명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인 것처럼 살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으로 가득한 주인의 태도를 가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생명을 놓고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은 이미 그 생명을 잃은 사람입니다. 

창세기의 ‘첫 사람’은 하느님과 같아져서 하느님처럼 생명의 주인 행세를 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창세 3,5 참조). 사실 그의 생명은 그의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생명을 형제들과 선물로 나누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형제가 아니고 그분의 자녀도 아닙니다. 

내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늘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내놓고 사는 것이 깨어 있는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시편 24[23],1).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풍요로워진 우리는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이 여러모로 풍요로워졌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과 그렇지 않은 종의 비유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연결하여 이런 성찰을 해봤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저도 주님 안에서 여러모로 풍요로워졌는데 이렇게 풍요로워진 제가 슬기롭고 충실한 종인가? 

그런데 오눌 복음을 보면 주인에게 충실한 슬기로운 종은 주인에게 충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식솔에게도 잘해야 합니다. 

곧 주인에게만 딸랑딸랑 알랑방귀 뀌고 그 식솔들에게는 잘못하면 안 되고 주인이 올 때 깨어 기다리다가 맞이할 뿐 아니라 주인이 없는 동안 그 식솔까지 잘 돌보는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라면 주님에게서는 사랑을 받고 이웃에게는 사랑을 하고, 주님 안에서 풍요로워지고 이웃에게 그것을 나누고, 주님 말씀을 듣고 이웃에게 그 영적 양식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느님은 전능하시면서 왜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는가?

 

‘금쪽같은 내 새끼’에 아이들이 엄마를 극도로 미워하고 반항하고 때리고 심지어는 발에 오줌까지 싸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48화에 보면 10살 아이가 10개월째 등교 거부하며 어머니 속을 썩이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혼자 있을 때 공부를 집에서 합니다. 공부하기는 하는 데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 싫은 것입니다. 

전에 나왔던 이지현 씨의 아이도 그랬습니다. 둘 다 공통점은 이혼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어서 엄마는 아빠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잔소리를 많이 합니다. 아이는 잔소리 듣고 무언가를 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하고 싶은데 하고 나면 다 엄마가 하래서 한 것이 됩니다. 그러니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엄마처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깨어있으라고 하십니다. 주인이 하인들에게 제때 양식을 주라는 소명을 주고 떠났다면 주인이 돌아왔을 때 양식을 주고 있는 이들은 깨어있는 종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종들입니다. 종은 명령받고 파견받습니다. 우리도 명령받았습니다. 파견받았다면 소명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일어나서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명령을 되새기지 않는다면 나를 주님의 종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분명 이웃에게 양식을 주라고 파견받았습니다. 양식은 은총과 진리를 말합니다. 은총은 살과 피를 내어주는 희생이고 진리는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이 두 일을 할 기회를 분명 주실 것이고 우리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이 소명을 수행해야 언제 죽더라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깨어있는 사람이 됩니다. 

문제는 왜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니까 당신이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왜 우리에게 일을 시키시고 시험하시는 것일까요? 그래야 우리가 하느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봉사하면서 자녀임을 완전히 믿게 됩니다. 그래서 자녀는 부모에게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지시하며 자신 때문에 자녀가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자녀는 자존감이 떨어집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봉사하게 해야 합니다. 

2010년 한 여성이 치명적인 자동차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당시 임신 4개월 때였습니다. 다행히 태아는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이후 그녀는 제왕절개 시술이 가능해질 때까지 5개월간 집에서 남편의 보살핌 속에 누워 있었고, 9개월이 되자 병원으로 옮겨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산모는 상태가 더 안 좋아졌습니다. 의사들은 산모는 회복하기 어려우니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를 지키던 가족들도 다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그녀를 지키는 이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머리맡에 앉아 시간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서툰 말투로 대화도 건네며 단 한 번도 칭얼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이도 제대로 나지 않은 아기가 엄마의 병원 음식을 씹어 자기 입으로 엄마의 입에 넣어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치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것처럼 행동하던 2013년 5월, 아기가 작은 소리로 엄마를 부를 때 엄마가 눈을 떴습니다. 중국 장롱샹 씨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기사화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에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야 3년의 세월이 지났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제 머리맡에서 미소 짓는 아기가 제 아들이라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됐고요.”

의사들은 의아해했습니다.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는 음식을 겨우 삼킬 수만 있었고 씹지 않은 것들은 소화를 시키지 못했습니다. 아기가 어떻게 이것을 알고 음식을 씹어 엄마의 입속에 넣어주었을까요?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본성적으로 부모를 넘어서려는 욕구를 느낍니다. 태어난 아기도 엄마를 돌보는 것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더 낮아져서 자녀가 자신에게 봉사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도 부모처럼 온전한 인간임을 믿고 성장하게 됩니다. 하느님도 우리를 당신 자녀로 만들기 위해 당신에게 봉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혜인 씨는 지적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아기가 생겼습니다. 부모도 반대했고 주위 시선도 나빴습니다. 그래도 이혜인 씨는 예쁜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딸아이가 복덩이입니다. 

엄마를 자신이 돌봅니다. 지켜줍니다. 아침 일어날 때부터 씻고 옷을 입고 출근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는 것까지 모두 자신이 관여합니다. 엄마가 학교에서 청소하는 일로 적은 돈을 벌어올 때까지, 연서는 집에서 혼자 밥 차려 먹고 설거지까지 다 해 놓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퇴근하는 오후 2시쯤 되면 밖에 나가 엄마를 기다립니다. 마치 오래 못 본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엄마에게 안깁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합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왜 자신이 그런 부모를 만나서 이런 아이답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하는지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서는 자기가 엄마를 돌보아 줄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뻐합니다. 자신이 인간으로서 충분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해 준 사람이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엄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 해 주는 게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약해지고 낮아져서 자녀가 부모를 위해 일하고 봉사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그렇게 진짜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당신 자녀가 되도록 하느님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선교를 위해 생명의 양식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이 소명을 통해 우리는 주님 자녀가 됩니다. 그러니 오늘도 주님께서 어떤 소명으로 우리를 파견하셨는지 묻고 우리가 하느님을 도울 수 있는 존재임에 크게 기뻐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세계 명지휘자 토스카니니에게 찾아온 기회

 

세계적인 명지휘자 토스카니니(1869∼1957)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아주 심한 근시여서 잘 보지 못했다고 하지요. 관현악단의 일원을 연주해야 하는데, 눈앞에 있는 악보도 보이지 않았으니 어떻게 연주할 수 있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악보를 완전히 외워서 연주회에 가야만 했습니다. 이 상황이 즐거웠을까요? 자기의 엄청난 근시에 대해 답답해하고 어느 정도의 불평불만도 간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연주회 바로 직전에 지휘자가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한 것입니다. 지휘자가 없으니 연주회 자체가 무산될 위기였지요. 그런데 그 많은 오케스트라의 단원 중에 곡을 전부 암기하여 외우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토스카니니였습니다. 바로 임시 지휘자로 발탁되어 지휘대 위에 서게 되었고,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불평불만의 일들은 늘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일만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들다면서 자기 신세 한탄만 해서도 안 됩니다. 또 자기가 가져야 할 것만을 떠올리며 욕심과 이기심을 채워서도 안 됩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충실한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준비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주인이 부재중일 때, 그 집의 하인들이 늘 깨어 있으면서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하나의 내용과 주인이 돌아왔을 때, 떠날 때 맡긴 직무에 대하여 충실하게 그리고 현명하게 일 처리를 했느냐에 대한 점검이 있을 것이라는 또 다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모두가 종말론적 비유를 말씀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구원과 연결되기에 종말의 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문제는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지금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늦어지는구나.’라는 잘못된 판단에서 불충실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는 생각은 자기 판단일 뿐입니다. 이렇게 자기 생각만을 내세우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불충실한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충실한 종이 과연 종말의 순간을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인이 원하는 모습을 지금 당장 실천하면서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과연 충실한 종일까요? 불충실한 종일까요? 종말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는 충실하고 성실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는 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된 순간에야 비로소 나는 다시 살기 시작하는구나.

- 알베르 카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마태 24, 44)

 

정말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다. 시간은 준비하는 이들의 것이다. 준비하는 삶은 옛것을 비워내는 삶이다. 하느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 새롭게 비워내는 것이다. 내것을 비워내야 하느님 중심으로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다.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다가오시는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깨어 있고 준비하는 삶으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 사랑에 보답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나무들도 곡식들도 깨어 있고 준비하는 마음으로 열매를 맺는다. 욕망을 비워내는 실천이 중요하다 현실을 벗어나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우리 사람의 현실과 삶의 실상을 하느님 안에서 똑바로 보는 것이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우리들 삶이다. 하느님께로 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삶이다. 준비하는 삶은 하느님을 찾는 삶이다. 떠나는 이들을 통하여 준비하고 깨어 있는 삶을 보고 배우게 된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깨어 있는 삶이 있다. 하느님을 맞이해야 할 우리들 삶이다.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시간이며 새로운 실천이 필요한 시간이다. 탄생과 아픔 늙음과 죽음 변화와 사랑 기도와 행복 이 모든 것을 열매 맺게 하시는 하느님께 봉헌하는 깨어 있음의 사랑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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