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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4일
명동성당
성목요일 저녁 미사
평화방송 생중계
- 성주간 목요일 -
2022년 4월 14일 (목) 명동성당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 집전, 주님 만찬 성목요일 평화방송 미사 생중계입니다. 명동성당에서 진행되는 성목요일 미사는 20시에 시작됩니다.
✠ 파스카 성삼일
교회는 주님 만찬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습니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 만찬을 미사로 재현합니다.
✠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주님을 위한 파스카 만찬에 관하여 말씀하시며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십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만찬 식탁에서 일어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평화방송 생중계
주님 만찬 성목요일
명동성당 저녁미사
2022년 4월 14일 (목) 20시
주님 만찬 성목요일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 집전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제1독서
탈출 12장 1-8절, 11-14절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그 무렵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화답송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네.
내게 베푸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구원의 잔 받들고 주님의 이름 부르리라.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네.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주님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네.
주님께 감사 제물 바치며 주님 이름 부르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 채우리라.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네.
제2독서
1코린 11장 23-26절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
요한 13장 1-15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그렇게 하라고 몸소 본을 보여 주셨는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사랑의 새 계명대로,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현세에서 성자의 만찬으로 힘을 얻고 영원한 잔치에서 은총을 가득히 받게 하소서.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 만찬 미사로 시작합니다. 전례력 가운데 가장 거룩하며 신앙의 핵심을 풍성히 체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미사 가운데 선포되는 성경 말씀들은 구약의 파스카 만찬, 신약의 최후의 만찬, 초대 교회의 성찬례 전통을 펼쳐 보여 줍니다.
제1독서에는 하느님께서 이집트 노예살이하던 당신 백성을 모세를 통하여 구원하시는 결정적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제2독서에서는 코린토 교회에서 행해지던 성찬례 전통에 관하여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라는 도입구로 시작하며 성찬례 규정의 출처를 밝힙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찬례, 곧 미사는 최후 만찬이라는 과거 사건을 재현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파스카 사건을 현재화합니다.
한편 요한 복음은 공관 복음과 달리 파스카 만찬도, 성찬례 제정도 명확히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는 발 씻김 예식 장면을 삽입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발 씻김 예식과 그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끝까지 사랑하는
오늘 성 만찬 미사의 복음은 이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의 첫 번째 뜻은 당신의 생이 끝날 때까지 사랑하셨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이 말을 묵상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며 사랑의 동력이 점점 떨어져 그저 자기 사는 것에 급급한 우리 보통 인간을 생각할 때 그리고 저를 성찰할 때 '내 생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사랑은 없고 고통과 고독만 있을까 봐 걱정이 됐습니다.
그렇지요. 고통만 있다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것이고, 고독만 있다는 것은 주님도 없고 이웃도 없다는 것인데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였다는 것의 진짜 뜻은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 뿐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뜻이며, 제자들이 당신을 배반하고 도망칠 것을 아셨음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리고 다 도망간 뒤 홀로 십자가에 계실 때도 사랑하셨다는 뜻일 겁니다.
배반.
이것은 당신 사랑을 거부한 것인데 그런데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 겁니다.
제자들의 배반은 당신 사랑이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님께서는 당신 사랑이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으시고 그래서 포기하지 않으신 것인데 이것이 우리와 다른 것입니다.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실패한 게 아니라 사랑을 포기할 때 실패한 것이고, 아무리 내 사랑이 거부돼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랑은 실패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질 때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랑만 사랑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시작부터 실패입니다. 그런 사랑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거래한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한 것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에게 당신 살과 피를 주신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의 발 씻음은 더러운 발인 죄를 씻음입니다. 제자들의 죄는 배반의 죄요 주님을 버리고 떠난 죄인데 제자들은 그 발로 주님을 버리고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의 그 발을 씻어주심은 도망쳤을지라도 다시 그 발로 돌아오라는 초대요 관계 회복의 용서입니다.
나를 버리고 도망간 그 더러운 발로는 내게 다시 돌아올 생각 말라고 하지 않고 탕자의 비유의 그 아버지처럼 집 떠나 떠도느라 얼마나 힘들었느냐며 오히려 그 발을 뜨거운 물로 찜질해주시고 씻어주시는 용서의 퍼포먼스입니다.
인간의 그 수많은 연극이나 행위 중에 이보다 더 감동적인 퍼포먼스는 없습니다. 무릇 모든 감동은 사랑이 없으면 감동도 없고, 사랑 중에서도 배반을 넘어서는 사랑보다 감동적인 사랑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발 씻음으로 관계를 회복시키신 주님께서는 이제 돌아온 작은 아들에게 새옷을 입히고 양을 잡아 잔치를 베푼 아비처럼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의 식탁을 차린 뒤 그것을 나눠주십니다.
그런데 죄인인 자기를 받아들이고 식탁을 차려주는 것만도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나는데 그 빵과 포도주가 바로 당신의 살과 피라고 하시며 앞으로 이 빵과 포도주를 같이 나눠먹되 먹을 때마다 당신 사랑을 기억하라 하시니 눈물이 앞을 가려 먹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발을 씻어주시면서도 서로 그렇게 하라고 제자들에게 과제를 남겨주신 주님은 이제 제자들인 우리에게 또다른 과제를 남겨주십니다.
빵과 포도주의 이 성찬례를 같이 거행해야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과제인데 비유의 큰 아들처럼 동생을 용서한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지도 닮지도 못한 우리라면 이 성찬례를 결코 같이 거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혼밥과 혼술 시대에 주님의 만찬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도전입니다. 이 도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피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입니다.
성금요일과 성토요일 강론은 쉬겠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성삼일 거룩하게 보내시고 기쁘고 즐거운 부활 맞이하시기 바라고 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면 당신의 머리를 그 사람 발 밑에 놓으십시오.
오늘은 예수님께서 성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날입니다. 베드로는 강력히 반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시는 것은 단지 몸의 더러운 부분을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때를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정결하게 하여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요한 13,11)라고 하십니다. 이스카리옷 유다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는 왜 깨끗해질 수 없었을까요? 자신 발밑에 들어온 예수님의 머리를 밟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밑에 들어오실 만큼 낮아지셨기에 어떤 제자들은 자신의 발을 더는 쓰지 못하게 되었지만, 유다는 자기 발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예수님을 밟은 것입니다. 발은 자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요한 13,18)
신랑은 신부를 정결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방법은 자기 머리를 아내의 발밑에 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모든 가진 것을 아내에게 주어 아내가 집을 나가라면 거지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아내는 정결해집니다. 이것이 누군가를 깨끗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물론 유다와 같은 아내는 그런 남편을 내쫓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남편의 의무는 이것입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택배회사를 지원했을 때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유통업에 종사하는 정우철(30) 씨는 1년 중에 한 4개월은 너무 바빠서 5시간 이상 잘 수 없는 처지입니다. 항상 새벽에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고 아내는 육아에 너무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몰래카메라로 아내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먼저 아내를 카페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서 몸이 안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9년 동안 열심히 해 왔고 그래서 묻습니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어떻게 할 거 같아?”
“자기 건강 때문에 그런 거니까…. 같이 있는 시간도 많겠네.”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모아둔 돈 있으니까 괜찮아. 일 바로 하지 말고 쉬고 생각해.”
자신을 배려하는 아내에게 오히려 미안해집니다. 아내도 남편이 건강검진 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온 것도 몰랐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남편이 잠깐 자리를 뜨고 택배회사에서 취직이 결정되었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다시 자리에 돌아온 남편이 코로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아내는 남편 혼자 짐을 짊어지게 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합니다. 아내는 울면서 말합니다.
“자기가 나한테 말하기까지가 힘든 거지. 수아 좀 더 크면 같이 일하자.”
“애 키우며 어떻게 일까지 해.”
“다 그렇게 해. 우리가 안 그랬을 뿐이야.”
남편은 자기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합니다. 편하게 해주겠다고 결혼했으니까. 아내는 지금도 아주 편하니까 쉬운 일 함께 나눠서 하자고 합니다. 사실 그동안 아내는 육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우울증은 무언가에 대한 불만입니다. 그런데 이제 남편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남편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고 자신이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혼자서 다 감당하려고 하지 마.”
남편도 아내의 진심에 눈물이 터집니다. 아내의 산후우울증으로 아내가 자신을 조금은 원망하는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나를 내려놓고 누군가의 처신에 자신을 맡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몰래카메라인 것을 알고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한테 신경을 못 써서 많이 미안했어요. 건강검진 가는 것도 몰랐는데 그냥 다 미안했어요. 남편이 이렇게 우는 걸 처음 봐서. 진짜 힘들었구나!”
[출처: ‘갑자기 일을 그만둔 남편, 그리고 아내의 한마디’, 유튜브 채널, 엔스크린]
죽을 고생 하고 아내에게 다 내어주어 자신의 처신을 아내에게 맡겨야 아내가 변화합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 남편도 변합니다. 요한복음은 이것을 ‘파스카’라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가는 방법이 이것입니다.
물론 요즘에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한 아내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혼했으면 남자는 아내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의무입니다. 저는 남편이 아내를 돈으로 복종시키려는 것을 보면 옳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버는 것도 다 가져다주고 재산 명의도 다 아내에게 돌려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가 생각합니다. 내가 남편을 밟을 수 있을 때 밟지 않게 되면 그것이 아내가 깨끗해지는 길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인간의 발을 씻어주는 것만도 대단한데 이스카리옷 유다의 발에 짓밟히기까지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이렇게 우리를 정결하게 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발꿈치 밑에 당신 머리를 놓으시고 우리 처신에 당신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신비를 깨달으면 말로만 상대를 바꾸려 하는 일은 멈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로 유명하였습니다. 남편이 다른 이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아내는 소리쳤고 심지어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물을 머리에 부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천둥이 치면 비가 오는 법이지!”라고 하며 자신의 처지를 아내에게 맡겼습니다. 아내가 변하고 안 변하고는 아내의 몫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라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을 썼습니다. 악법도 법이라며 나라의 처신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충분히 도망쳐서 다른 나라에서 잘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라의 처신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변하고 안 변하고는 나라에 달려있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건너가는 방법으로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내가 깨끗해졌다는 말은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배우 정은표 씨 아내는 가정이 힘들 때 혼자 아르바이트하였습니다. 한 달 30만 원 월급으로 1년 이상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러면 무능한 남편 탓을 할 수도 있고 이렇게까지 된 것이 자신의 노력이라 여길 수도 있을 텐데 항상 남편에게 순종합니다. 아이들이 아빠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려 한다면 자신이 나서서 아이들을 순종하게 합니다. 남편 먼저 챙기고 남편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나가 안아줍니다.
이렇게 한 것에는 물론 정은표 씨가 자신의 모든 것을 가족을 위해 바친 덕도 있습니다. 분명 그렇게 깨끗해졌을 것입니다. 요즘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하면 큰일 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생명을 바치고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그 신비 안에서 알려주신 관계의 진리입니다. 그러면 자녀는 저절로 잘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은 삼위일체 하느님, 곧 아버지의 희생, 그리고 아드님의 순종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나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
군입대 후 신병교육대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부식으로 건빵을 주었는데, 정해진 시간에 다 먹지 않으면 수거해가는 것입니다. 너무 배가 고팠기 때문에 남은 건빵이 아까워서 몰래 숨겼습니다. 그러나 떳떳하게 건빵을 꺼내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조교가 알게 되면 저 때문에 전체 얼차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에 화장실에 가서 건빵을 몰래 먹었습니다.
이 화장실이 지금처럼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라, 냄새가 아래에서 풀풀 올라오는 재래식 화장실입니다. 배고프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아마 대부분 인상을 찌푸리면서 “더러워. 그렇게라도 먹고 싶을까?”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현재, 화장실에서 당연히 무엇을 먹지 않습니다. 더럽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화장실보다 더 더러운 곳에서 음식을 먹고, 또 그 더러운 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먹기도 합니다. 화장실 변기 옆에서 그리고 변기를 바라보며 음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이라고 하지요. 스마트폰에 붙어 있는 세균은 화장실보다 18배 많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은 우리 삶에 매우 유용하지만, 세균 덩어리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 유해성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도 그렇지 않을까요? 하느님 나라에 가는 데 커다란 걸림돌인데도 이 죄의 유혹을 끊지 못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성격은 사랑과 봉사의 나라이지 권력과 통치력으로 아랫사람들을 부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겸손과 사랑의 일치를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십니다. 바로 제자들의 발을 직접 닦아 주시지요.
이들은 아직도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살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말싸움하기도 하고, 실제로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은전 30냥에 팔아넘겼습니다. 그 모든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지만, 끝까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세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은 권력 지향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솔선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예수님의 이 모범을 따르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쫓는 삶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것을 쫓아야 합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패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 벤자민 플랭클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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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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