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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2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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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2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사무 16,1-13
    사무엘이 형들 한가운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 복음
    마르 2,23-28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사무 16,1-13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사무엘이 형들 한가운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제가 어떻게 갑니까? 사울이 그 소식을 들으면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여라.

3 그러면서 이사이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다음에 네가 할 일을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 주는 이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은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원로들이 떨면서 그를 맞았다. 그들은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나는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러 함께 갑시다.” 사무엘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사이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9 이사이가 다시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10 이렇게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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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2,23-28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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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0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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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규칙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적인 것은 영적 성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을 갖추려는 노력까지 필요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들은 흔히 형식을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고는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의 형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성사나 기도의 형식이 없다면 어떨까요? 오직 마음만으로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는 형식을 갖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입니다. 진심을 담지 않은 형식은 껍데기만 남은 허울이 되어 버립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이라는 거룩한 형식을 철저히 지켰지만,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참뜻은 잊었습니다. 안식일에 배고픈 제자들이 이삭을 뜯어 먹는 행동을 두고 그들은 ‘형식’을 어겼다며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의 눈길은 형식에만 머물렀기에, 그 형식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형식 그 자체는 목적지가 아닌, 목적지로 이끄는 표지판과 같습니다. 표지판 앞에만 머무른다면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신앙의 모든 형식은 우리의 영혼이 충만해지고, 하느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줍니다. 형식 안에 담긴 의미를 알고 진심으로 따르면서 구원의 목적지인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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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 오늘 저는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를 오늘 나눔의 주제로 잡아봤습니다. 인간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를 천지 차이라고 묵상했습니다.

차이가 클 때 그것을 우리가 천지 차이라고 흔히 얘기하듯이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차이는 실로 천지 차이입니다. 사무엘기에서 사무엘을 선견자(先見者)라고 곧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그도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뽑으실 사람을 몰라보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마음을 보시는데 인간은 허우대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허우대 좋기로는 사울이 최고였지요. 지난 토요일 독서에서 사무엘기는 사울의 허우대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사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더 컸다.”

그런 그였지만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하느님께서 그를 내치시고, 이제 다른 사람 곧 다윗을 당신의 기름부음받은이로 뽑으시려는 것 아닙니까? 사무엘도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마음을 보지 못하고 허우대만 볼 것이고, 욕심으로 보면 욕심내는 것만 보지 그 밖의 것은 하나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차이는 보는 것의 차이뿐이 아닙니다. 인간의 약함과 악함을 대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악함과 약함에 대해 슬퍼하고 비관적입니다. 사무엘도 사울이 악한 짓을 하고 하느님 눈에 벗어나자 슬퍼하고, 그래서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만 하고 있을 것이냐?”고 꾸지람을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한 인간의 죄악과 약함 때문에 세상을 다 비관적으로 보고, 미래까지 다 비관적인 마음으로 보기에 희망이 없고 마음은 어둡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선견자인 사무엘조차 그러하니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보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인간만 보면, 그리고 인간을 보더라도 인간의 악함과 약함만 보면 이렇게 비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섭리 안에서는 악도 선입니다. 인간의 선은 악에 걸려 넘어지는 선이요 악을 초월커나 극복하지 못하는 선이지만 시편 138편 말씀처럼 하느님께는 어둠은 그것마저 어둡지 않고 악마저도 선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틀레헴 성읍의 원로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뽑기 위해 오는 사무엘에게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사울보다 더 좋은 다윗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과 함께하는 우리에게도 사울만 있지 않고 다윗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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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안식일은 왜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트집을 잡습니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마르 2,24)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안식일에 해야 할 일의 본질과 우선순위를 깨닫게 됩니다. 곧 ‘해야 할 일’(생명을 살리고 축복하고 하느님을 주인 되게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생명을 저해하고 자신이 주인 되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자신의 유익과 유쾌함 따르는 일)의 순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일을 우선하는 사람인가를 보게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안식일을 왜 세우신 것일까?

야훼 하느님께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장면에서, 안식일을 주신 이유를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게 하기 위함”(탈출 16,12)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안식일을 계약의 표로 삼으시는 장면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나 주님이 너희를 성별하는 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운 표징이다.”(탈출 31,13)

이처럼, 안식일을 새운 이유를 ‘하느님께서 주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혀줍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이 또한 안식일의 주인”(마르 2,28)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무엇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본 적이 없느냐?”(마르 2,25) 하고 물으시고, 그들이 제사 빵을 먹었던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곧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런 일들을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알았지만 다윗이 그렇게 하였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는 일’이 안식일 계명의 근본정신임을 밝히십니다. 곧 안식일의 본질이 율법의 규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음을 밝히십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탈출기>의 ‘계약의 책’에서는 안식일이 누구를 위한 날인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레째 되는 날에는 쉬어라.~그래야 계집종의 자식과 몸 붙여 사는 사람도 숨을 돌릴 것이 아니냐?”(탈출 23,12)

이는 안식일이 인간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율법이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듯, 쉼도 하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마르 2,27).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2,28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
이 날은 저희를 위하여
마련하신 날
저희에게 새 마음
새 살이 돋게 하소서.

거룩함을 입었으니
거룩한 일을 행하게 하소서.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푸는 이가 되게 하소서.

당신을 입히시니
당신이 주 하느님임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책 읽는 것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은 빠르게 정보를 취득할 수 없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 취득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긴 영상 보는 것도 낭비라면서 짧은 쇼츠 영상만을 보려 합니다.  

책은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어서 느리지만, 영상을 휙휙 지나가기에 빠릅니다. 그렇다면 기억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책 읽는 것은 느리기에 생각하게 되고 이로써 자기 주관이 생겨납니다. 또 책을 읽지 않으면 문해력이 떨어져서 정보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무슨 말이야?” 할 정도로, 정보 취득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핀란드는 15세 이상의 독서율이 83.4%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15세 이상의 독서율이 8.4%에 그칩니다. 머리가 좋아서 청소년기 문해력은 세계 상위권이지만, 책을 읽지 않는 25세 이상이 되면 곤두박질쳐서 55세 이상은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저는 40세에 노안이 왔습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컴퓨터 모니터보다 책에 집중했습니다. 지금 눈이 더 나빠졌을까요? 얼마 전에 안과에 갔더니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노안이 와서 책을 못 읽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도 스마트폰 보는 것에는 집중하십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스마트폰을 보니 눈이 더 나빠집니다.  

삶 안에서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즉, 밀 이삭을 뜯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문제일까요?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뜯은 행위 자체는 도덕적으로나 율법적으로 도둑질이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23장 26절에 따르면 이웃의 밭에서 손으로 이삭을 자르는 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배려로 허용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안식일을 지적합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뜯는 것은 ‘추수(일)’에 해당하고, 손으로 비비는 것은 ‘탈곡(일)’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문자적 준수를 생명처럼 여겼고, 예수님은 율법이 지향하는 생명과 자비를 중심에 두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하느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이유는 인간을 옥죄거나 감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노동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쉼을 주며, 생명을 축복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의 뜻을 새기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기쁘게 지금을 살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 안에 머물면서 참된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십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을 잘 알면 알수록 자신을 더 많이 용서할 수 있다(공자).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밀밭을 지나던 어느 안식일, 예수님께서는 규칙보다 먼저 사람의 배고픔을 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결코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안식일은 단순한 휴식일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잇는 시간입니다. 그날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규범과 삶 중 무엇이 우선하는가.

규범이 삶을 억압하는 순간, 그 규범은 이미 목적을 잃습니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규칙은 아무리 합리적으로 보여도 그 이유를 상실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은 밀 이삭을 뜯는 그 순간, 죄책이 아니라 자유를 얻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현실을 먼저 보는 눈입니다.

안식일은 날짜가 아니라, 마음이 바르게 작동하는 상태입니다. 안식은 은총을 잊지 않는 삶의 태도이며, 법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법이 존재함을 기억하는 지혜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랑이 기준입니다.

안식일은 인간의 한계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배려로 품으시는 하느님의 손길입니다. 그 가치는 사람이 다시 사람답게 살아나도록 돕는 데 있습니다. 일과 성과 이전에, 우리는 이미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존엄을 다시 되새기는 안식일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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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 상권 16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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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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