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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2/21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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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하여라. 

주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 주소서. 아멘.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2월 21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2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대림 제4주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7,10-14)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제 2독서
    (로마 1,1-7)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18-24)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이사 7,10-14
오늘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로마 1,1-7
오늘 제2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18-24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2월 21일
조성동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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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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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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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구원은 기다림이 아니라 응답이다.

성탄이 가까워지는 이 시기의 독서는 하느님께서 구세주의 오심을 얼마나 꼼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시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구약 시대부터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고된 구세주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나이가 많은 부부에게서 태어난 세례자 요한과, 고유한 역할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마리아와 요셉을 통하여 직접 준비됩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의 표징을 선포하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가난과 겸손과 단순함으로 당신을 믿는 작은 이들에게 주신 표징입니다. 이들은 특정한 민족이나 특권 계층이 아닌 믿음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모든 민족들”(로마 1,5)을 위한 메시아로 오십니다. 

그런데 구원은 오로지 하느님의 주도권에만 달려 있고 인간은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는 인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말씀의 중심에는 바로 그 구원 계획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요셉 성인이 있습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하느님의 계획을 알립니다. 요셉은 순종과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 식별을 통하여 하느님 아드님의 지상 아버지로서 자신의 사명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요셉도 마리아처럼 대림의 길을 걸으며 거룩한 자기 아들에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요셉을 통하여, 일상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계획에 협력하는 순종을, 또한 우리와 함께 머무시고자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관상하는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과 씨름하고 주님을 잉태하는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성탄을 코앞에 둔 대림 마지막 주일입니다.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존재로서 세례자 요한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성탄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그래서 대림 제4주일은 요셉과 마리아 얘기를 읽게 되는데 올해는 문득 이런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싸움에서 요셉은 공세적이고 마리아는 수세적이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일방적으로 마리아가 당하는 싸움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보면 이것은 묵상이 아니라 쓰잘 데 없는 상상일지도 모르지만 왜 이런 묵상을 했냐 하면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기 전에는 혹 부부싸움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후엔 그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들었을 때 두 분은 서로 싸우지 않고 둘 다 각기 야곱처럼 천사와 씨름하고, 하느님과 씨름했을 겁니다. 내 앞에 나타난 자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맞을까? 천사가 맞고 그래서 그가 한 말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 뜻은 무엇일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왜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도 종종 이렇게 하느님께 여쭈며 하느님과 씨름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씨름하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하느님과 씨름하는 대신 옆 사람과 싸운다고요? 그렇다면 하느님을 보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실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씨름할 것을 가지고 인간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하느님과 씨름하여 야곱처럼 그 씨름에서 이긴 다음엔 인간과 싸울 이유가 없어졌고 혹 싸우더라도 이길 수도 져줄 수도 있게 됐으며, 싸움 대상이 아니라 같이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 뜻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같이 한 곳을 바라보는 그림입니다. 프란치스코와 클라라는 서로도 사랑했지만 그러나 두 분은 같이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서로를 보기보다는 같이 하느님을 관상했으며, 그런 관상의 결과로 같이 하느님 뜻을 실천했습니다.

우리 가정도 올해는 이런 가정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올해는 이런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과 공동체에도 아기 예수가 태어나면 좋겠고, 아기 예수를 공동 육아하는 가정과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구원의 협조자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가까이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채비를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준비만으로는 부족한 일입니다. 준비를 넘어서, 이제는 우리의 결정적인 ‘협조’를 필요로 할 때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탄생이 우리의 협조를 통해서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기 예수의 탄생도 요셉과 마리아의 응답과 협조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이를 잘 보여주는데, 먼저 <제1독서>에서는 임마누엘의 탄생이 예고되고, 곧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라고 예고됩니다.

<제2독서>에서는 예고된 이 일이 이루어진 다음, 그 은총으로 이루어진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곧 바오로는 자신의 사도직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로마 1,1-7).

오늘 <복음>에서는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과 예언이 ‘요셉의 협조’를 통해 이루어짐을 밝혀줍니다. 이를 먼저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마태 1,18)

이 소식에 요셉은 무척 당혹했을 것입니다. 약혼자의 임신사실에 온갖 의혹과 치욕스런 배신감으로 분노와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서운함과 불신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궁색하고 구차한 변명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약혼녀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사실을 드러내어 재판을 걸게 되면 그녀를 죽음에 몰아넣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그냥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마리아를 집 안에 받아들이는 일도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적인 고소를 통해 마리아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마태 1,19)

참으로, 그는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었습니다. 

그럴 즈음에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서 벌어진 일을 밝혀줍니다.  

“그 몸에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20)

참으로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자연계의 모든 법칙을 뛰어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이 터무니없는 일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그렇지만, 그는 ‘의심’이라는 악을 떨치고, ‘신비’라는 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 일이 ‘거룩한 분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일’임을 믿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 안에 자신을 가두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지혜로 가히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 은총의 법을 따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은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아직 뜨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빛으로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약혼녀 마리아의 성령잉태 사실뿐만 아니라, 요셉에게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 ‘사명’을 부여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마태 1,21)

이처럼, 주님의 천사는 그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곧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붙이는 영예를 받았습니다. 비록 아기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지만, 그를 보살필 아버지로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마침내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 뜻에 협조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아내를 맞아들였습니다.”(마태 1,24).

참으로, 그는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안락과 평안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결국, 그는 결혼하기도 전에 아내를 포기해야만 했고, 아들을 얻기도 전에 아들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구원받는 모든 이들의 양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인류를 향한 하느님 ‘구원계획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누리에 구원을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우리의 협조’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구원의 협조자’가 된다는 것은 구원을 이루시고자 하는 “그분의 뜻” 안에 머물고, “그분의 뜻”에 따라 협조하여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요셉은 오늘 <복음>에서뿐만 아니라, 복음서 전체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침묵으로 하느님의 음성에 마음의 귀를 열고, “아버지의 뜻”에 순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분이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요셉 성인과 함께 ‘구원의 협조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활동과 거룩한 분의 힘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의심하기보다 신비를 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20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주님!
의심을 떨치고 신비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당신의 개입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기이하고 황당하게 보여도 
‘당신의 뜻’에 가두어지게 하소서.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게 보여도 
‘당신의 뜻’을 품고 살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오로지 
‘당신의 뜻’을 세우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당신은 지금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찬미 예수님.
사람의 마음은 결국 딱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살려는 마음'과 '남을 살리려는 마음'입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이 우리가 영원히 머물 집을 짓습니다.  먼저 '내가 살려는 마음'이 어떤 집을 짓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예가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입니다. 총기 회사의 상속녀 사라 윈체스터가 지은 이 기괴한 저택은 160개의 방과 열리지 않는 문, 막다른 계단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입니다.

그녀가 죽은 후, 사람들은 도대체 이 여인이 집 가장 깊은 곳, 겹겹의 자물쇠로 잠긴 금고 속에 무엇을 숨겨두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엄청난 보석을 예상하며 금고를 열었지만, 그 안에는 단 두 가지 물건뿐이었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의 머리카락 한 줌과 남편의 부고 기사.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자기 생명의 연장선'이었습니다. 그녀가 그토록 철통같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이미 사라져 버린 과거의 기억과 원혼들로부터 지켜내야 할 '자신의 목숨'뿐이었습니다. 내 목숨, 내 가족, 내 것만을 지키려는 그 마음에는 두려움이 깃들었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빼앗을까 봐 공포에 떨며 지은 집은 결국 누구도 안식할 수 없는 '유령의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복음의 성 요셉은 위 예와는 정반대의 집을 지었습니다. 탈출기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하십니다. 성막은 화려한 금은보화를 보관하는 금고가 아니었습니다. 성막의 가장 깊은 지성소, 그 계약의 궤 안에 들어있는 것은 오직 하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적힌 십계명 돌판이었습니다. 즉, 성막은 나를 봉헌하여 내 욕심을 비우고, 그 안에 오직 '사랑의 뜻'만을 남기는 거룩한 집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 성막이었습니다. 약혼녀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 요셉은 자신의 명예나 생명을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대로라면 돌을 던져야 했지만, 그는 자신이 파렴치한으로 매장당할 것을 각오하고 '남모르게 파혼'하려 했습니다.

"내 생명을 버려서라도 저 여인을 살리겠다."

이것이 요셉의 마음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요셉의 처지는 초라하고 냄새나는 '마굿간'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자기를 보호할 벽 하나 없는 허술한 인생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에게는 오직 '사람을 살리는 마음'밖에 없었기에, 그 초라한 마굿간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보호하는 가장 안전한 '성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계약의 궤 위에 하느님의 영광이 구름처럼 내렸듯이, 요셉의 그 착한 뜻 위에 아기 예수님께서 내려오신 것입니다. 내가 살려고 지은 윈체스터의 집은 유령의 소굴이 되었지만, 남을 살리려 지은 요셉의 마굿간은 구세주의 성막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런 성막을 지은 분들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리투아니아의 일본 영사 대리였던 스기하라 지우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독실한 러시아 정교회 신자였으며, 세례명은 '바오로(Pavel)'였습니다. 1940년 7월, 나치의 박해를 피해 유다인 수천 명이 영사관으로 몰려왔을 때, 본국에서는 비자 발급을 거부했습니다.

스기하라 바오로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본국의 명령을 따르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파라오의 길, 아니면 자신의 경력과 목숨을 걸고 타인을 살리는 이스라엘의 길. 그는 밤새 고뇌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리스도교적 양심이 그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정부의 명령을 어겼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약 비자를 발급하지 않았다면, 나는 하느님을 거역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해고당할 것을 각오하고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밤낮없이 비자를 써내려가 6,000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그는 외교관직을 박탈당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형광등을 팔러 다니며 평생을 가난과 침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은 집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지은 거대한 '생명의 방주'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분이 계시지요. 1985년 남중국해에서 표류하던 보트 피플 96명을 구한 전재용 선장입니다. 당시 회사의 지침은 "엮이면 골치 아프니 무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선장은 나쁜 지향(무시) 대신 양심(착한 지향)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난민들을 모두 구조했습니다.

그 대가로 그는 해고당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훗날 자신이 구한 생명들과 재회하며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1985년 남중국해에서 보트 피플 96명을 구한 전재용 선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의 지침을 어기고 난민을 구했다가 해고당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지은 집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96명의 생명이 숨 쉬는 사랑의 성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모두 주님의 성막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거룩한 집은 하루아침에 뚝딱 지어지지 않습니다.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1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어지고 있듯이, 우리의 마음 성전도 매일의 선택을 통해 아주 오랫동안 지어지는 것입니다.

체로키 인디언의 지혜처럼,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습니다. '나만 살려는 이기심의 늑대'와 '남을 살리려는 사랑의 늑대'입니다. 매일 아침, 매 순간의 선택 앞에서 내가 어느 늑대에게 먹이(지향)를 주느냐에 따라 내 집의 모양이 결정됩니다. 내가 살려는 먹이를 주면 유령의 집이 완성될 것이고, 남을 살리려는 먹이를 주면 주님이 거처하시는 성막이 완성될 것입니다.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나의 욕심을 채우는 금고입니까, 아니면 이웃을 품는 빈방입니까? 사라 윈체스터의 두려움을 버리고, 요셉의 마굿간을 선택하십시오. 나를 버려 너를 살리는 그 착한 뜻 안에,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찾아오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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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어떻게 태어났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입니다. 하느님의 뜻 앞에 우리의 계산과 교만을 내려놓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기다림의 끝에서 드러나는 구원의 이름이며 우리의 구원입니다.

대림 제4주일은 마음을 정돈하여 구원이 드러날 자리를 만드는 시간입니다.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질서와 다시 조화를 이루는 우리의 응답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실존과 분리되지 않은 채 탄생, 성장, 고통, 죽음을 통과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은 관계 안에서 다시 살아가게 하는 구원의 힘입니다. 우리 삶 전체로 만나는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연히 이루어지는 선물입니다. 받은 은총을 아는 사람은 판단보다 감사로, 요구보다 봉사로 살아갑니다. 우리를 죄와 단절에서 되돌려 놓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생명의 길에는 예수님의 탄생이 있습니다. 구원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찾아오는 구원의 기쁨입니다. 우리를 붙잡아주시는 구원자의 탄생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깊은 예수님의 길입니다. 그 길을 만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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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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