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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2/20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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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 차리니,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존엄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성전이 되셨으니 저희도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아멘.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2월 20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2월 2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2월 20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7,10-14)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6-38)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사 7,10-14
오늘 제1독서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할 것입니다.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26-38
오늘 복음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2월 20일
안주환 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6:1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하느님은 오늘도 일상으로 오신다.

오늘 복음은 임신한 지 여섯 달째인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을 전합니다. 사제인 즈카르야에게는 성전에서 천사가 나타났는데 마리아에게는 그의 집에서 나타납니다. 천사는 수도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변방의 나자렛에서, 성전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집에서, 사제가 아니라 평범한 시골 처녀에게 말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마리아가 기뻐할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주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은 우리가 기뻐할 이유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1,30)라는 말에 이어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들을 통하여 다윗에게 약속된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리라는 위대한 약속을 합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받게 될 중요한 사명을 깨닫지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기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단순하게 궁금하여 묻습니다. 불신이 아니라 믿기 위한 마리아의 물음에 천사는 성령께서 오실 것임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곧 겸손하게 받아들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찾아오십니다. 특히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때로는 평범한 일상에서 사소한 일들과 친근한 사람들 안에서 찾아오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잘 알아뵙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찾아오시는 하느님께 우리도 이렇게 말씀드리면 좋겠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영적인 식단 조절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힘이 너를 덮칠 것이라는 표현이 눈에 특히 들어왔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심과 함께 하느님의 힘이 마리아를 덮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리아는 이렇게 하느님의 힘으로 덮이었는데 나를 덮고 있는 힘은 무엇이고 나는 무엇으로 덮이었나 자연스레 묵상해봤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성령께서는 저를 피해 내려오시거나 하느님의 힘이 저만 빼놓고 마리아나 다른 이들만 덮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제게도 내려오시고 하느님의 힘이 저도 덮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묵상을 해봤습니다. 이불처럼 덮지 않고 걷어차는 경우 말입니다.

성령의 이불은 걷어차고 다른 이불을 덮는 경우 말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이불이 아닌 다른 이불이라면 악령의 이불일 텐데 그렇다면 어찌 성령의 이불이 아니라 악령의 이불을 끌어다 덮을까요? 반대로 마리아처럼 성령의 이불을 끌어다 덮는 것은 어째서 그럴까요?

옛날에 제가 간경화로 먼저 하느님께 간 저의 친구 치유를 위해 자연 건강법 전문가-자신은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치유법이라고 함-를 만나서 그분의 건강 이론을 같이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에 의하면 건강한 사람은 당기는 대로 먹어도 되고, 건강한 사람이 당기는 것은 몸이 필요로 하는 거랍니다.

반대로 몸이 망가지고 병이 있는 사람은 당기는 대로 먹으면 안 되고, 자연 건강법에 따라 끊을 것은 끊고 먹어야 할 것을 먹어야 한답니다. 예를 들어 당뇨 환자는 먹지 말아야 할 단 것이 당기겠지만 그래서는 안 되지요.

영적으로 병이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따르면 우리의 영적 상태에 따라 우리는 성령의 이불을 끌어다 덮을 수도 있고 악령의 이불을 끌어다 덮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지니고 있으면 성령의 이불을 끌어다 덮지만, 육의 정신을 우리가 지니고 있으면 악령의 이불을 끌어다 덮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의 정신 상태일 때는 바른 정신, 곧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코앞에 두고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영적인 당뇨병 환자라면 세속의 달콤함이 당기더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고 영적인 식단조정도 해야 합니다.

세속적으로 달콤한 것들은 끊어야겠다는 정신을 차리고, 세속적으로 달콤한 것들을 식단에서 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세속적으로 달콤한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기도 덕분에 어제 이주민 자녀 장학금 마련을 위한 음악회가 잘 끝났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의 장학금 지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듭 감사드리며 저는 여러분이 남은 대림절을 잘 보내셔서 정말로 기쁘고 즐거운 성탄 맞이하시도록 기도로 보답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를 희망하는 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예고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이사야의 예고대로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잉태하게 된 경위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경위와는 확연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첫째는 ‘성소’에서 전해진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와는 달리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던 “이방인의 갈릴래아"(마태 4,15)에 있는 작은 동네 나자렛의 시골 처녀의 ‘집’에서 전해집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처를 성전 안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 두시게 됩니다.

둘째는 즈카르야는 ‘의심’하여 자신의 목소리까지 잃어버리고 벙어리가 되었지만, 마리아는 ‘믿음’으로 응답하여 구원의 말씀을 품으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인사말에서 마리아에게 이미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였음을 말합니다. 곧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기 전에, 믿음으로 충만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마리아는 몸으로 우리 주님을 잉태하시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잉태하셨다." 

셋째는 그 사명에서 다릅니다. 즈카르야에게는 아기가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루카 1,17)이라는 ‘사명’이 예고되지만, 마리아에게는 아기가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외아드님”(루카 1,35)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는 ‘신원’이 예고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루카 1,35)으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드러납니다. “말씀대로 제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마릴ㅇ의 이 응답은 ‘마리아의 희망’을 드러냅니다. 곧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 그것을 저도 바랍니다.’라고 응답하고 있는 것입 뜻입니다, 곧 ‘그분의 희망을 희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리아의 희망과 하느님의 희망이 같아진 것입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품고 자신의 희망이 아니라 그분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요, 당신의 사랑을 이루시도록 자신을 그분께 허용하고 수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하느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고, 그분의 은총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분이 하시는 일에 함께 일하는 협조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삼으십니다. 저희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고, 저희 안에서 사십니다. 바로 이것이 저희가 마리아와 함께 진정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희망이 있다’는 이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를 희망하는 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이 사실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기쁨인지요! 내가 바로 하느님의 집이요 놀이터요 일터라니! 오늘 우리는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바야흐로 성탄의 기쁨이 몰려옵니다. 희망이 이미 수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주님의 희망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의 희망이 진정,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28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주님!
참으로 큰 놀라운 일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기쁘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묻고 있습니까?

찬미 예수님. 제임스 애그리라는 분이 쓴 아주 흥미로운 우화 하나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제목은 『독수리와 닭장』입니다.

어느 날 농부가 산에서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다가 자기 집 닭장에 슬쩍 넣어두었습니다. 얼마 후 알에서 새끼 독수리가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태어나자마자 주변에 보이는 게 닭들뿐이니, 자기가 닭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흙을 파헤쳐 지렁이를 잡아먹고, 닭처럼 "꼬꼬댁"거리는 시늉을 하며 살았지요.

어느 날, 이 독수리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창공을 멋지게 활공하는 거대한 새가 보였습니다. 독수리는 넋을 잃고 말했습니다.

"와, 저 새는 정말 멋지다. 나도 저렇게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자 옆에 있던 늙은 닭이 핀잔을 줍니다.

"꿈 깨라. 넌 닭이야. 닭은 저렇게 못 날아."

결국 그 독수리는 평생 자기가 닭인 줄 알고 닭장 안에서 모이만 쪼다가 늙어 죽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만약 그 독수리가 한 번이라도 자신에게 물어봤다면 어땠을까요?

"나는 닭이라는데 왜 날개 길이가 2미터나 될까? 나의 발톱은 왜 이렇게 날카로울까?"

그때 누군가는 답했을 것입니다. 

"너는 땅을 파라고 만든 게 아니라, 하늘을 날라고 만들어졌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지 않으면, 세상이라는 닭장이 규정한 대로 닭장 안에서만 살다가 죽게 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누구에게 묻고 계십니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질문을 던지는 그 대상이 곧 내가 믿는 '창조자'이거나 그로부터 파견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 자신에게 묻고, 내 마음대로 산다면, 그것은 내가 나의 창조자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인간은 없습니다. 창조자가 아닌 존재가 스스로 목적을 정하면, 결국 생존만을 위해 사는 짐승이 되거나, 쾌락을 좇다 당나귀가 되어버린 피노키오 꼴이 나고 맙니다.

동화나 영화로 유명한 '피노키오'를 보십시오.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피노키오를 만들었지만, 피노키오는 처음에는 제멋대로 움직이며 사고만 칩니다. 그가 나무 인형의 껍질을 벗고 '진짜 소년'이 된 것은 언제입니까? 바로 창조주(제페토)가 보낸 푸른 요정에게 길을 물었을 때입니다.

"어떻게 해야 진짜 소년이 되나요?"

"용감하고 정직하고 남을 위하라."

피노키오는 그것을 원했던 것이 제페토 아버지임을 깨닫고는 그를 찾아나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막연히 "하느님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만남이 아닙니다. 나를 만드신 분께 "저를 무슨 용도로 만드셨습니까? 제가 오늘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묻는 것, 그 질문이 바로 접속 코드입니다. 

인간 세상에서도 '설계'의 힘은 놀랍습니다. 헝가리의 교육학자 라슬로 폴가의 사례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신념을 가지고, 세 딸을 낳기 전부터 '체스 챔피언'으로 키우겠다고 설계했습니다. 딸들은 아버지의 설계와 믿음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세 딸 모두 세계적인 체스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인간을 완벽하게 설계할 수는 없기에 인권 침해의 논란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 아버지의 설계도 자녀의 인생을 이토록 바꾸는데, 하느님의 설계는 얼마나 완벽하겠습니까? 형제끼리 뭘 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부모가 옆에 있는데.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바로 이 '질문의 영성'을 보여주십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덮어놓고 "네, 알겠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성과 현실을 바탕으로 설계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불신이 아닙니다. "당신의 설계가 제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합니까? 매뉴얼을 알려주십시오"라는 적극적인 요청입니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라는 구체적인 답변을 들었을 때, 비로소 마리아는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며 자신의 인생 운전대를 창조주께 넘겨드렸습니다.

반면, 묻지 않고 자기 생각(Ego)대로 살았던 존재들의 슬픔을 보여주는 우화도 있습니다. 영미권 전래 동화인 『세 그루 나무의 꿈』 이야기입니다.

세 그루의 나무는 각자 꿈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보석 상자가, 둘째는 왕을 태우는 거대한 배가, 셋째는 산 꼭대기에 서 있는 높은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목수들은 그들을 베어다가 첫째는 여물통으로, 둘째는 비린내 나는 낚싯배로, 셋째는 사형틀로 만들었습니다. 나무들은 꿈이 좌절되었다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설계자의 뜻은 달랐습니다. 여물통에는 세상 가장 귀한 보석인 아기 예수님이 뉘였고, 낚싯배에는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이 타셔서 설교하셨으며, 사형틀은 온 인류의 구원을 가리키는 십자가가 되었습니다. 내 꿈보다 설계자의 뜻이 훨씬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도 처음에는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라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예레미야 1,5) 

예레미야가 창조자를 만난 순간은, 자신의 부족한 현실을 보았을 때가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그려진 하느님의 설계도를 확인했을 때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창조자가 아닌 존재가, 창조자에게 묻지도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고장 난 내비게이션을 들고 길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부로 묻지 마십시오. 이 질문은 창조자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입니다. 하느님에게 물을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그 계획을 세우신 창조주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반드시 그것을 알려줄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거울을 보며 나에게 묻지 말고, 하늘을 보며 그분께 물어보십시오.

"주님, 오늘 저를 어디에 쓰시려고 깨우셨습니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의도한 '진짜 나'가 됩니까?"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동남아 일대에 큰 태풍이 일어 엄청난 피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망, 실종이 자그마치 7,000명 이상이었고, 2백만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경제적 피해는 28조 원에 달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열심히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함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찾아온 봉사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땀을 흘리며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어떤 서양인들이 이곳을 찾아 물놀이하는 것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저 사람들은 인간도 아냐.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놀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현지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폐허가 된 이곳까지 와서 돈을 쓰는 관광객이 오히려 고맙습니다. 입으로만 동정하는 사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비판을 통해서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겠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에 대해서도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나의 작은 머리로 하는 판단이 하느님의 일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 탄생 예고’의 내용입니다. 구세주가 세상에 오시는 결정적인 순간이자, 인류 구원의 여명이 밝아오는 장면입니다. 먼저 천사가 성모님을 찾아온 사건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태어날 아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선포하지요. 그 이름을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인 ‘예수’라고 알려주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1,34)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 겸손을 드러냅니다. 이에 천사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라고 대답합니다. 성모님의 대답은 아주 명확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자신을 온전히 낮추어 하느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자유 의지를 하느님 뜻에 완전히 일치시키는 순종을 보여주십니다. 성모님의 이 모범을 우리 역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하느님의 일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일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신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에픽테토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먼저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잉태란 없음에서 있음으로 건너가는 첫 순간입니다. 잉태는 사랑을 배우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기다림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기다림 자체가 우리 삶의 거룩한 시간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시간이 사실은 구원의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당신을 우리들에게 맡기십니다. 믿음은 서두르지 않고, 사랑을 신뢰합니다. 잉태는 서두름을 거부합니다. 잉태를 존중한다는 것은, 성숙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잉태되도록 허락하는 우리의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연약한 희망이 우리를 구원하는 참된 희망입니다. 잉태와 성탄은 하나의 구원 사건을 이루는 시작과 완성입니다.

성탄은 잉태 없이는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다. 잉태와 성탄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잉태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만나는 참된 기쁨입니다. 기다림과 인내로 빚어지는 참된 기쁨입니다.

 

 

 

루카복음 1장 38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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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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