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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2/22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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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하느님, 죽음에 떨어진 인간을 굽어살피시고 저희를 구원하시려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저희가 구세주의 강생을 경축하며 마침내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2월 22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2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2월 22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사무 1,24-28)
    한나가 사무엘의 탄생을 감사드리다.

  • 오늘 복음
    (루카 1,46-56)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1사무 1,24-28
오늘 제1독서

한나가 사무엘의 탄생을 감사드리다.

그 무렵 사무엘이 

24 젖을 떼자 한나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삼 년 된 황소 한 마리에 밀가루 한 에파와 포도주를 채운 가죽 부대 하나를 싣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렸다.

25 사람들은 황소를 잡은 뒤 아이를 엘리에게 데리고 갔다. 

26 한나가 엘리에게 말하였다. “나리! 나리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제가 여기 나리 앞에 서서 주님께 기도하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27 제가 기도한 것은 이 아이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드린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를 주님께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아이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서 주님께 예배를 드렸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46-56
오늘 복음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2월 22일
정호철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6:4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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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운명을 바꾸시는 하느님

한나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아들 사무엘을 봉헌하고자 사제에게 가는 내용인 오늘 독서와, 한나의 찬가로 이루어진 화답송은 복음에서 듣는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의 예표입니다. 한나가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사람들의 운명을 뒤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을 죽이시기도 살리시기도 하시며, 낮추시기도 높이시기도 하십니다(1사무 2,6-7 참조). 한나는 그런 주님의 은총을 체험합니다.

교회가 날마다 시간 전례의 저녁 기도에서 부르는 마리아의 노래에서 마리아는 주님 안에서 인간적 가치들이 뒤바뀜을 선포합니다. 주님께서는 권력과 부유함을 내세우는 교만한 이들을 내치시고 겸손과 비천함과 가난을 고백하는 이들을 선택하십니다. 마리아의 공로는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깨달은 데에 있습니다.

이 노래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이야기의 뒷부분으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예고 부분과 예수님 탄생 이야기 사이에 자리하기에 기대와 성취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이 노래에서는 주님께서 하신 약속이 이미 이루어졌음이 선포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구세주이시자 전능하신 분 그리고 거룩하신 분이라는 그분의 속성을 한 낱말로 표현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비’입니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이야기는 특별한 방식으로 잉태한 두 여자가 만나 단순히 서로 격려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리아가 신약의 구원자를 엘리사벳이 속한 구약으로 모셔 가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구원자를 모셔 갈 때, 마리아처럼 복된 이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가장 낮은 자에게 가장 풍성한 은총

저는 성사의 은총을 믿고 실제로 성사를 주면서 제가 은총을 받는 경험도 아주 많습니다. 고백성사를 줄 때도 그런 경험이 많은데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백성사를 통해서 그분도 은총을 받으셨지만 저도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특출함이 없는 분이고 그래서 자신을 아주 비천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뭘 해도 자신이 없었고 하고 나서도 남의 평가나 눈치를 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가 싫다고 했고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그분이야말로 성탄의 은총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번에 성탄의 은총을 받게 될 거라는 격려를 해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분을 통해서 아기 예수로 오실 주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보았습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인간에게 칭찬을 많이 받아 의기양양한 사람은 아기 예수로 비천하게 오시는 주님을 절대로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런 주님이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인간에게 칭찬을 많이 받는 사람이 하느님을 칭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내가 칭찬받는데 어떻게 하느님을 칭송하겠습니까? 자기가 받는 칭찬에 만족하고 거기에 머물 것이기에 하느님께 인정받고 구원받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며, 오늘 마리아처럼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봐달라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는 이렇게 하느님을 칭송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지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물이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듯 가장 좋은 하느님의 은총도 가장 낮은 자에게 흘러 가장 풍성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충만함에서 오는 기쁨

오늘 우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은 자식에 대한 감사의 예배노래요, <화답송>은 그때 드린 한나의 기도요, <복음>은 “마리아의 노래”는 자비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자비를 크게 드러내는 노래요,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는 노래입니다. 곧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찬미의 노래요,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혁명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서, 마리아는 당신 영혼이 주님 앞에서 용약하며 기뻐하는 이유를 참으로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7-48)

이는 마리아의 관상을 잘 드러내줍니다. 곧 마리아가 관상한 하느님은 작고 보잘 것 없고 비천하신 하느님입니다. 곧 작고 비천한 자리에 들어오시기 위해, 더욱 더 작아지고 보잘 것 없고 비천해지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비천한 자신보다 더 작고 비천한 주님’을 만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작고 보잘것없는 자기 안에 들어오시기 위해, 자기보다 더 작아지신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 앞에서 기뻐 용약합니다. 이는 마리아가 자신의 작고 비천함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인하기는커녕, 오히려 바로 그 작고 비천함이야말로 하느님을 만나게 준 복된 자리임을 알게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바로 이것이 마리아의 기쁨의 진원지였습니다.

이는 세상의 낮고 어둡고 보잘것없는 자리, 곧 ‘변방(邊方)’이야말로 하느님과 그분 영광의 자리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반대로, 세상의 빛나고 높고 큰 자리, 곧 ‘중심(中心)’은 하느님의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이처럼, 이 노래는 “변방”의 하느님의 현존을 우리 앞에 열어줍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신 하느님의 현존, 곧 당신 자신의 ‘크심’을 아낌없이 내려놓으시고, 아주 작고 보잘것없고 허약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나보다 더 작은 모습으로 계신 하느님이요. 뿐만 아니라 있는지도 없는지도 그 존재를 잘 알아차릴 수도 없을 만큼, 마치 아무것도 아닌 모습으로 계시는 분으로서의 현존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느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어도 되는 충만한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그것은 뭔가가 되거나 뭔가를 이루어 내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있는 그대로의 사랑의 충만함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진정, ‘자신보다 작아진 주님’을 만나는 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주님!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당신을 찬미합니다. 

제 안에 베푸신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당신의 자비를 찬미합니다.

오, 주님!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여 
찬미하는 일이 
제 삶의 전부가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자비의 노래 외엔 
아무 것도 아니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신앙인이 항상 기쁠 수 있는 이유

찬미 예수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나이팅게일』에는 아주 흥미로운 대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중국 황제에게 일본 천황이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황금 나이팅게일'을 선물합니다. 태엽만 감으면 언제나 똑같은 박자로 완벽한 노래를 부르는 기계 새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화려함에 감탄했고, 숲에 살던 진짜 나이팅게일은 초라해 보여 숲으로 쫓겨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떻게 되었을까요? 황금 새의 부품이 마모되어 소리가 나지 않게 되었고, 황제는 병이 들어 죽음의 문턱에 섰습니다. 그때 숲에서 진짜 나이팅게일이 날아와 노래합니다. 기계 새는 누군가 조작해야 노래하지만, 진짜 새는 생명으로 노래합니다. 황제는 그 생명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건강을 되찾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숲으로 쫓겨났던 진짜 새는 슬펐을까요? 아마 잠시는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자연 속에서 하느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계속 노래했을 테고, 결코 좌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받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가짜 새는 다릅니다. 상품성이 떨어지고 태엽이 풀리면, 더는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화려해도 내면은 늘 불안합니다. 언제 버려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기쁨을 세상에 팔리는 '상품성'에서 찾는 사람이 있고, 창조주에게서 오는 '은총'에서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는 '조화'의 인생이고, 후자는 '생화'의 인생입니다. 오늘 복음과 마태오 복음 6장을 연결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들판의 꽃 한 송이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솔로몬의 옷은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든 명품, 즉 상품이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자신의 위엄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걸친 것이었습니다. 입을수록 낡아지는 조화와 같습니다. 반면 나리꽃은 아침마다 하느님이 주시는 이슬과 햇살을 머금고 새로 피어납니다. 살아있는 생화는 언제나 물과 영양분을 공급받기에, 그리고 그 덕분에 누군가에게 생명력을 줄 수 있기에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의 기쁨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는 조화가 되기도 하고 생화가 되기도 합니다. 생화는 타인의 시선보다는 창조자에게서 오는 기쁨에 초점을 둡니다. 오늘 복음의 성모 마리아가 그러셨습니다. 그분은 비천한 여종이었지만, 성령으로 구원됨을 느끼며 '마니피캇'을 노래하셨습니다. 스스로 빛나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빛을 받으려 했기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여전히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 진열대에 올리려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에서 오는 보상과 인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 끝은 자신이 그저 하나의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좌절감뿐입니다. 세기의 아이콘 마릴린 먼로를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조화'였습니다. 그녀는 화려했지만,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할 정도로 늘 불안했습니다.

"나는 대중의 것입니다. 내 몸도, 내 웃음도."

그녀는 자신을 대중에게 팔려야 하는 상품으로 여겼기에, 인기가 떨어질까 봐 극도의 불안과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생명수)을 느끼지 못했기에, 약물과 알코올로 시든 꽃잎을 억지로 붙이고 있다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이클 잭슨, 어니스트 헤밍웨이,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최근의 지드래곤까지...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조화가 아닌 생화로 살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가 무엇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랑받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동화 『벨벳 토끼 인형』에 아주 감동적인 대화가 나옵니다. 장난감 방의 반짝이는 새것들 사이에서 낡은 토끼 인형이 지혜로운 말 인형에게 묻습니다.

"진짜가 된다는 건 태엽이 감겨서 움직이는 건가요?"

말 인형이 대답합니다.

"아니란다. '진짜'는 어떻게 만들어졌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너를 오랫동안 진심으로 사랑해 줄 때 일어나는 일이야. 털이 빠지고 눈이 떨어져 나가도, 사랑받는 존재는 낡아지는 게 아니라 '진짜'가 되는 거란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세상의 눈에 우리가 조금 낡아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는 순간 우리는 상품이 아니라 '진짜 생명'이 됩니다.

저 역시 사제로서 매일 강론을 씁니다. 하지만 저는 강론을 '잘' 해서 여러분께 박수받는 상품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강론을 쓰기 위해 묵상하는 그 과정에서, 주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성령의 깨달음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 진짜 목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강론을 들어주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제가 주님 앞에 앉아 사랑받음을 느끼고, 그렇게 저는 비로소 사제가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기억하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가지(생화)가 열매를 맺기 위해 스스로 끙끙대며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지의 유일한 의무는 나무(예수님)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조화는 붙어 있지 않기에 스스로 빛나야 하지만, 생화인 가지는 붙어 있기만 하면 뿌리에서 올라오는 수액, 곧 성령이 저절로 꽃을 피웁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진열대에서 내려와 주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나에게 붙어 있어라." 

이 말씀에 머무를 때, 우리는 비로소 향기 나는 생화가 되어 세상에 참된 기쁨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가톨릭 신부로 산 지 벌써 27년째입니다. 신부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과분한 존중을 받습니다.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존중해 줍니다. 갓 신부가 되었던 30살에서부터 “신부님” 하며 존경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저보다 훨씬 나이 많은 분도 함부로 하대하지 않고 존대해 주셨고, 어린 나이와 설익은 인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과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옛날이야 교육받은 사람이 적었기에 고학력이라 할 수 있는 신부가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 사제의 독신은 특별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유를 따져봅니다. 
 
딱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종종 착각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면 예수님처럼 겸손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나의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것처럼 착각했음을 인정합니다. 
 
신부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능력과 재주로 사는 것처럼 착각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은 성무일도 저녁 기도 때마다 바치는 그 아름다운 찬가, 그 유명한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의 인사에 대한 마리아의 응답으로, 사무엘기 상권 2장에 나오는 ‘한나의 노래’와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합니다. 불임이었던 한나가 사무엘을 낳고 바친 찬양을, 이제 구세주를 잉태한 마리아가 완성하여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성모님께서는 구세주를 잉태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녀의 기쁨은 ‘내가 무엇을 했다’라는 성취감이 아닌, ‘하느님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다.’(루카 1,49)라는 경이로움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보통 삶 안에서 자기가 한 일에 관한 성취감을 찾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주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바라보는 것에 더 집중하십니다. 
 
성모님의 진정한 겸손함입니다. 즉, 스스로 ‘비천함’을 인정하고 마음을 비우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겸손한 곳에 하느님께서 오십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누우실 가장 따뜻한 구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요? 자기 능력과 재주가 아닙니다. 그보다 주님을 드러낼 때, 진정으로 주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덕분에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일상의 성실함에서 성취되는 행복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진짜 행복입니다(정용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고백에는 어떠한 과장도 변명도 없습니다.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큰일은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큰일을 하신 분은 전능하신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주어진 은총에 우리가 진실하게 응답하는 것입니다. 참된 큰일은 우리가 애써 만든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큰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은총 위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알아보고, 그 은총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이 참된 은총입니다. 

하느님만이 전능하시고 위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조용히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삶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 자리를 내어드릴 때 구원의 역사는 가장 깊이 진행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내어드림과 내어주심이 만나는 큰일의 참된 신비입니다. 그 신비를 믿습니다. 

 

 

 

루카복음 1장 46-47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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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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