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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2/08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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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이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통하여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시고 성자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시어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으니 동정녀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도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2월 8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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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2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2월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창세 3,9-15.20)
    나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 제 2독서
    (에페 1,3-6.11-12)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6-38)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창세 3,9-15.20
오늘 제1독서

나는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라.

사람이 나무 열매를 먹은 뒤, 주 하느님께서 그를 

9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10 그가 대답하였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11 그분께서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12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13 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고 물으시자, 여자가 대답하였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14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 

15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20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에페 1,3-6.11-12
오늘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26-38
오늘 복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2월 8일
가경웅 제르마노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08

✚ 강론시작 16:2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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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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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세상을 구원하는 아름다움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기리는 교회는 전통적으로 “온전히 아름다우신 마리아”라는 제목의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릅니다. 성모 마리아 안에서 티 없는 깨끗함을 넘어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지요. 마리아께서 원죄를 면제받으셨다는 것은 개인의 특권이기 전에, 우리를 위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선물입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백치』에서 미시킨 공작의 입을 빌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과연 어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까요? 작가는 ‘세상을 구원하는 아름다움은 고통을 나누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아름다움은 바로 자신을 내주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는 정확히 성모님의 모습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성모님의 아름다움을 딸, 아내, 어머니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묵상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먼저 떠올립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려고 자기 자신을 버리는 아름다움, 자신을 잊으시고 가장 작고 연약한 이를 돌보시는 아름다움으로 나타나십니다’(2024년 12월 8일 강론 참조).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는 신화나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삶의 실제이시며, 은총 안에서 우리의 인간성이 완전히 실현된 본보기이십니다.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 우리 안에서도 그 아름다움이 시작됩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자기를 내주는 사랑으로 그 아름다움을 세상에 선물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마리아와 함께 “기뻐하여라.”(루카 1,28)라는 천사의 초대를 받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창조 안에 이미 구원이

잘 아시다시피 오늘 축일은 마리아가 주님을 원죄 없이 잉태하신 축일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원죄 없이 주님을 잉태하셨다는 것도 사실이고 기릴만한 것이지만 오늘 축일은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축일이고 그것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님 성탄이나 주님 잉태처럼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며 그러기에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지만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 마리아도 모르고, 부모라고 하는 요아킴과 안나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모를 뿐 아니라 마리아도 부모도 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런 공로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 공로가 없다니 은총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축일은 인간의 구원역사상 가장 엄청난 은총에 대한 기념입니다.

우리가 보통 체험하는 은총은 우리가 뭘 하려고 했지만 별로 한 것이 없는데도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체험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은총에는 나의 원의라도 있었거나 원의 실현을 위해 조금이라도 내가 한 것이 있지만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경우에는 잉태될 때 그럴 원의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경우는 태어나기 전 아예 존재조차 없을 때 받은 은총이며, 천지창조 이전부터 계획되고 정해진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창조계획 안에 이미 구원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계획이 그만큼 더 대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계획이 완전한 사랑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2세 출산을 계획할 때 그를 키울 계획까지 합니다. 무책임한 사랑의 경우 애를 낳고는 키울 수 없어 내버리기도 하지만 정상적인 사람이 사랑으로 애를 낳을 땐 애를 키울 계획까지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 사랑의 경우엔 창조 안에 구원이 더욱 완벽하게 있지 않았겠습니까?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이 구원에서 제외되도록 버려둘 리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계획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 후에야 계획된 것이 아니라 창조 때의 계획이자 창조 이전부터의 계획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창조와 구원도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생긴 계획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를 십자가 위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보다도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더 대단하고 소중합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 유한한 존재로 태어났지만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도록 창조하신 것이며 우리의 창조 안에 영원한 생명이라는 구원계획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 엄청난 하느님의 사랑과 창조와 구원을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축일에 기념하고 감사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오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한국교회의 수호자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엄청 기쁜 날입니다. 우리는 <입당송>에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화답송>에서도,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하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 환호송>에서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하고, 기쁨을 노래하였습니다.

오늘 전례의 의미는 <본기도>에서 잘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를 통하여, 성자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시고, ~동정 마리아를 어떤 죄에도 물들지 않게 하셨으니~"

한편, 19세기의 저명한 학자이며 교부전문가인 헨리 뉴먼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에 관한 가장 오래된 초기부터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그녀가 바로 두 번째 하와라는 것이다.”

또한, 초대교부들은 하와가 인류의 타락에 고유한 역할을 했듯이, 마리아도 인류의 구원에 고유한 역할을 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하와는 뱀의 말에 속아서 불순종과 죽음을 가져왔다. 그러나 동정 마리아는 믿음과 기쁨을 가져왔다.”(유스티누스).

“하와를 통해서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를 통해서 생명이 왔습니다.”(히에로니무스).

“사람을 속이기 위해 여인을 통해서 독약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은총 속에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여인으로부터 구원이 쏟아졌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사실 <창세기>에 따르면, 원죄를 짓기 전에는 ‘여인’으로 불렸고 범죄 후에 ‘하와’로 불리어집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가나안의 혼인잔치’와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에게 요한을 맡기실 때’ 마리아를 “여인이여”라고 부르심은 마리아를 죄 없으신 ‘두 번째(새) 하와’로 부르심을 말해줍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마리아가 “새로운 하와”임을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창세기> 3장 15절의 ‘원 복음’을 다루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 대목(창세 3,15)을 “새로운 아담”의 예고라고 본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필리 2,8) 아담의 불순종을 넘치게 보상한다. 한편, 많은 교부들과 교회학자들은 ‘원복음’에서 예고된 ‘여인’을 “새로운 하와”인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로 생각한다. 마리아는 최초로 그리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죄에 대한 승리의 은혜를 입은 분이다. 그분은 원죄에 전혀 물들지 않았고, 지상 생애 동안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그 어떤 죄도 범하지 않으셨다.”(411항)

이처럼, 예수님과 마리아를 ‘새 아담’과 ‘새 하와’로 여기는 것은 마리아가 죄 없이 잉태되셨고, 죄 없이 사셨다는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마리아의 부모님이 죄가 없었다는 것도 아니며, 아들에게 죄스런 본성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죄를 씻은 것’도 아니며, 오직, 예수님께서 죄를 이기신 승리에서 흘러나온 ‘특별한 은총’으로 죄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를, 곧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교종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 믿을 교리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

이처럼, “새 하와”인 마리아는 죄 없이 창조되어, 새 창조의 의로운 삶을 가리키는 ‘살아있는 표징’이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가정을 되돌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2코린 5,17)이 되게 하셨습니다. 곧 성모님으로 하여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 열리기 된 것입니다. 이 새로운 창조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여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단지 죄를 용서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본래의 죄 없는 에덴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죽음이 없는 상태로 건너감이며, 하느님과의 의로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로마 5,21)

그리고 <히브리서> 저자는 하늘에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히브12,23)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묵시록>에서는 말합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새로움으로 태어난 피조물로 축복을 입게 되었으니, 한없는 기쁨으로 “성모님의 노래”인 오늘 입당송을 다시 불러봅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입당송)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28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주님!
참으로 큰 놀라운 일입니다.

제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이 사실,
참으로 기쁘고 아찔한 감미로움입니다.

이제는 그 사랑에 승복하게 하소서.

그 사랑 안에 머무르게 하소서.

그 사랑을 퍼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모께서 원죄 없음을 믿지 않으셨으면, 예수님을 잉태하실 수 없으셨다.

[도입] 야수는 미녀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 (양심의 장벽) 

우리가 잘 아는 동화 『미녀와 야수』에는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흉측한 야수는 아름다운 벨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방에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단순히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벨 앞에 서면, 짐승 같은 자신의 추악함이 극명하게 비교되어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야수는 괴로워하며 어둠 속으로 숨습니다.

"당신은 너무 빛나고 나는 너무 더럽소. 야수는 미녀의 방에 들어갈 수 없소."

이것이 바로 '양심'의 작용입니다. 더러운 것은 본능적으로 깨끗한 것을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더럽다고 느끼는 한, 거룩한 분이 내게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고 싶어도 내 양심이 "너는 자격이 없어!"라고 소리치며 문을 걸어 잠그기 때문입니다.


[전개 1] 거룩함 앞에서 뒷걸음질 치는 인간

성경을 보십시오. 하느님의 거룩함을 체험한 인간의 첫 반응은 언제나 '뒷걸음질'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기적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저를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하느님의 영광을 보고 "큰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 순간, 거룩하신 하느님을 밀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이 하느님을 품는다는 것은 불에 타죽는 것과 같은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신학적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을 자신의 태중에 모시겠다고 '예'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만약 마리아가 자신의 영혼에 아주 작은 죄의 얼룩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다면, 혹은 자신을 그저 평범한 죄인이라고 여겼다면, 베드로처럼 이렇게 외쳤어야 마땅합니다.

"주님, 저를 떠나십시오! 감히 누추한 제 몸에 지극히 거룩하신 분을 모실 수 없습니다. 이는 신성모독입니다!"


[전개 2] 믿음은 "내가 누구인가?"에 답하는 것

하지만 마리아는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마리아가 교만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통해 자신의 '원죄 없음'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총이 가득한 이여(Kecharitomene)"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너는 죄가 하나도 없이 은총으로만 꽉 차 있다"라는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전합니다. 이 침묵의 시간 동안 마리아의 내면에서는 치열한 식별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나는 연약한 인간인데, 하느님께서 나를 완전한 은총 덩어리라고 부르시는구나. 죄가 없다고 하시는구나.' 

마리아는 자신의 감정이나 인간적인 판단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신뢰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깨끗하다고 하시면, 나는 깨끗한 것이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마리아는 양심의 가책이나 두려움 없이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며 거룩하신 분을 자신의 태중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은 하느님이 바라보시는 대로 '내가 누구인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신이 '원죄 없는 깨끗한 그릇'임을 믿으셨기에, 예수님을 담아내는 구원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자신이 깨끗함을 믿지 못하면, 결코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전개 3] 향심기도: 나를 규정하는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는 연습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성체성사를 통해 매일 예수님을 모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신을 '죄인', '부족한 사람', '상처받은 사람'이라고 규정하며 살아갑니다. 내 안의 죄의식(야수)이 하느님(미녀)을 온전히 모시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나의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를 선택하는 훈련, 바로 '향심기도(Centering Prayer)'입니다. 향심기도는 우리가 성모님처럼 "나는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다"라는 믿음을 연습하는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첫째, 하느님 안에서의 내 정체성을 담은 '거룩한 단어'를 하나 정하십시오. '예수', '사랑', '거룩함', '현존' 등입니다. 이 단어는 "나는 당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입니다"라는 내 믿음의 동의입니다.

둘째, 기도를 시작하면 온갖 잡념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너는 죄인이야.", "너는 이기적이야.", "네가 무슨 기도를 해." 이런 생각들이 뱀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때 그 생각들과 싸우거나 대화하지 마십시오. 내가 나를 판단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셋째, 그저 부드럽게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십시오. 생각을 끊고 거룩한 단어를 떠올리는 행위는 이런 고백과 같습니다.

"아니야, 내 느낌은 중요하지 않아.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했어. 하느님이 내 안에 사신다고 했어. 나는 주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야."

이것이 성모님이 천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신 과정과 같습니다. 수많은 인간적인 두려움을 뒤로하고, 천사가 전해준 '은총이 가득한 이'라는 정체성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결론] 내가 믿는 대로 주님을 모시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신을 더러운 그릇이라 믿는 사람은 평생 주님을 문밖에 세워둘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이 주님을 담기에 합당한(물론 은총으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주님을 잉태하고 낳게 됩니다.

우리가 향심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의 현존으로 돌아가는 노력은,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 당신께서 저를 깨끗하다고 하시니, 저는 깨끗합니다. 그러니 제 안에 오십시오."라고 고백하며 문을 여는 행위입니다.

오늘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헛된 겸손으로 뒷걸음질 치지 맙시다. 대신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존엄성을 믿고, 내 안의 가장 깊은 방을 활짝 열어젖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됩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여성들은 자기 얼굴이 아름답다고 생각할까? 2013년 어떤 비누 광고에서 화장기 없는 자기 얼굴을 촬영하려고 할 때 고개를 돌리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여성들의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의 모습을 어떤 모습을 어떤 모습이든 간에 개의치 않고 환한 미소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대비시키면서 이런 문구를 내보냈습니다. 
 
“언제부터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저 역시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제 머리카락은 워낙 억세서 조금만 길어도 붕 뜨면서 지저분해집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에 왁스를 발라서 지저분함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왁스를 바르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모자를 씁니다. 모자 없이 밖에 나가지 않고, 또 모자를 절대로 벗지 않습니다. 우연히 어렸을 때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다 붕 떠 있습니다. 지금보다도 더 뻣뻣한 머리였는데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남의 시선에 너무 신경 쓰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정작 하느님의 시선에는 무감각했던 것이 아닐까요? 죄를 범하면서도 합리화하며 하느님을 무시합니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것 절반만 하느님께 신경 쓰면 어떨까요? 
 
우리는 오늘 하느님의 시선에만 집중하고 있는 분의 대축일을 보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께서 머무실 거처를 거룩하게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준비를 받아들인 성모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철저하게 하느님 중심으로 사셨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예수님 잉태 소식도 “예”라고 응답하셨고, 이로써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고, 질문하고, 마침내 순종하십니다. 대천사의 말처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말씀을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십니다. 세상의 시선을 보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만 보고 계신 성모님의 굳은 믿음에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너무 쉽게 세상의 시선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면서 하느님의 시선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에서 가장 걷기 어려운 길은, 평범한 하루의 끝없는 반복이다. 그 반복에서 섬세한 차이가 시작하고, 가장 높은 곳으로 점프할 수 있는 지점을 만날 수 있다(김종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하느님의 구원은 마리아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보호된 첫 번째 사람이며,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첫 구성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죄보다 더 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먼저 움직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일하십니다. 먼저 우리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이미 우리 현실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인간의 구원은 하느님께서 먼저 사랑하신 결과입니다. 은총은 협력이 되고 자유의지는 존엄성이 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교리는 단순히 마리아를 높이는 교리가 아니라 인간을 회복시키는 교리입니다. 한국 교회의 탄생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온 역사였습니다. 

한국 교회는 은총에서 태어났으며 은총으로 살아갑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은 한국 교회의 정체성과 교회의 여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수호자가 된 것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먼저 시작하신 은총의 거룩한 첫 열매입니다. 그 첫 시작을 진실로 믿습니다.

 

 

 

에페소서 1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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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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