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 당신께 돌아오는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1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1월 28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다니 7,2ㄴ-14)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 오늘 복음
(루카 21,29-33)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다니 7,2ㄴ-14
오늘 제1독서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
나 다니엘이
2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바람이 큰 바다를 휘저었다.
3 그러자 서로 모양이 다른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4 첫 번째 것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것은 날개가 뽑히더니 땅에서 들어 올려져 사람처럼 두 발로 일으켜 세워진 다음, 그것에게 사람의 마음이 주어졌다.
5 그리고 다른 두 번째 짐승은 곰처럼 생겼다. 한쪽으로만 일으켜져 있던 이 짐승은 입속 이빨 사이에 갈비 세 개를 물고 있었는데, 그것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였다. “일어나 고기를 많이 먹어라.”
6 그 뒤에 내가 다시 보니 표범처럼 생긴 또 다른 짐승이 나왔다. 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가 네 개 달려 있고 머리도 네 개였는데, 그것에게 통치권이 주어졌다.
7 그 뒤에 내가 계속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었는데,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이 나왔다. 커다란 쇠 이빨을 가진 그 짐승은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았다. 그것은 또 앞의 모든 짐승과 다르게 생겼으며 뿔을 열 개나 달고 있었다.
8 내가 그 뿔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들 사이에서 또 다른 자그마한 뿔이 올라왔다. 그리고 먼저 나온 뿔 가운데에서 세 개가 그것 앞에서 뽑혀 나갔다. 그 자그마한 뿔은 사람의 눈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9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
10 불길이 강물처럼 뿜어 나왔다. 그분 앞에서 터져 나왔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법정이 열리고 책들이 펴졌다.
11 그 뒤에 그 뿔이 떠들어 대는 거만한 말소리 때문에 나는 그쪽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그 짐승이 살해되고 몸은 부서져 타는 불에 던져졌다.
12 그리고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빼앗겼으나 생명은 얼마 동안 연장되었다.
13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14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루카 21,29-33
오늘 복음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1월 28일
박결 마티아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9:3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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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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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다니엘서의 희망
이번 한 주간 우리가 독서로 듣고 있는 다니엘서는 묵시 문학에 속합니다. 묵시 문학은 절망적인 역사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 하느님께서는 그럼에도 역사의 변함없는 주인이시며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조차도 하느님의 통제 아래 있다는 믿음을 환시와 상징 등으로 표현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묵시 문학으로는 다니엘서가 대표적입니다.
다니엘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와 그의 아들 벨사차르, 이어서 바빌론을 장악한 메디아 왕조의 다리우스와 페르시아 왕조의 키루스까지 세 왕조에 걸쳐 네 명의 임금을 두루 섬긴 인물입니다.
다니엘서는 기원전 2세기에 유다인들이 안티오코스 4세의 박해를 받던 시기에 쓰였다고 추정됩니다. 자신을 스스로 ‘신의 현현’이라는 뜻의 ‘에피파네스’라고 불렀던 임금이 억압하던 시대에 다니엘서의 저자는 과거의 역사를 빌려 와 백성들에게 큰 위안을 준 것이지요.
다니엘서 1-6장에는 유다인 청년 다니엘에 관한 일화 여섯 개가 소개됩니다. 바빌론과 페르시아 임금들의 통치 아래에서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하느님에 대한 충실함을 잃지 않고 살아갑니다. 미래에 대한 묵시적 환시를 담고 있는 7-12장은 묵시 문학의 대표적 예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들, 특히 안티오코스 4세의 파멸에 초점을 둔 네 개의 상징적 환시가 나오는데,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오늘 독서로 읽는 7장입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네 마리의 짐승들’의 환시에 이어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다니 7,13)라는 환시가 나오는데, 참된 하느님의 왕권과 그에 따른 희망이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종말 관상에서 주님 관상으로(II)
어제 우리가 참 신앙인이라면 종말이 아니라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라는 나눔을 하면서 이 말을 종말 관상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까 봐 ‘종말 관상에서 주님 관상으로’라는 제목을 붙였었지요.
거듭 말하지만, 이 말은 종말 관상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종말 관상에 그치지 말고 주님 관상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종말 관상을 더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는 종말을 두려워하고 회피하기 때문이고, 직면하기보다는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외면하고 회피한다고 종말이 닥쳐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종말을 대비 없이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다시 얘기하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종말 관상이든 주님 관상이든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점이고, 그래야 두려움도 극복하고 생명과 주님도 맞이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불행을 피할 수 있게 되고 행복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제대로 하는 관상입니까? 첫째는 앞서 봤듯이 무엇이든 정면으로 직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엇의 일부만 보지 않고 전부를 끝까지 보는 것입니다. 셋째는 선택적 관상 곧 보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보는, 그런 관상이 아니라 보기 싫건 좋건 모든 것을 다 보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께서 만드시고 주시는 모든 것을 보면서 선도 보고 악도 보고, 죽음도 보고 생명도 보고, 그것들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도 보고 사라지는 것도 보고 사라지지 않는 것도 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잎이 돋는 무화과처럼,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
오늘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세상의 종말과 하느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곧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듯이(루카 21,30), 세상의 사건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야”(루카 21,31) 한다고 깨우쳐 주십니다.
시대의 징표를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비가 올지 혹은 안 올지, 추울지 혹은 더울지를 감지해내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징표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시대의 징표를 진정 깨닫는다면, 세상을 달리 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그것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세상 안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읽어내고, 그리하여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는 일입니다. 곧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모든 사건을 바라보고, 모든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당신의 나라를 펼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그러니, 하느님 나라는 먼 미래에나 혹은 이 세상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언젠가 먼 미래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오셨고, ‘지금 여기’에 와 계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미’ 오신 주님을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아니한 까닭일 것입니다. 우리가 완고한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이미 받았음을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대한 발견이 될 것입니다.
사실, 그 발견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그것이 우리를 발견하는 것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베풀어진 하느님의 선물”이 먼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온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청한다는 것은 그것을 주시도록 하느님을 설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주신 그분의 선물을 알아차리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당신의 사랑이 먼저 우리에게 베풀어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오늘,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으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십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1,33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
제 영혼이 당신의 자리이오니
말씀을 이루소서.
당신께 승복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활기차게 하소서.
저에게 뿌리신 말씀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이 저에게서
사라지지지 않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종말의 법칙 : 제단이 무너지면, 단두대가 선다
1793년 11월 10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혁명군들이 난입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 아닌 '제단을 박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서진 제대 위에 흙을 쌓아 인공적인 산을 만들고, 그 꼭대기에 그리스도 대신 오페라 여가수를 앉혀 '이성의 여신'이라 칭송했습니다. 그날 그들은 빵과 포도주가 하느님이 되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미신'이라 조롱하며, "이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신이 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꿈꾸던 낙원이 도래했을까요? 정반대였습니다. 하느님의 피가 사라진 파리 거리에는 인간의 피가 강물처럼 흘렀고, 제대가 무너진 바로 그 자리에 **'단두대'**가 섰습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먹지 않고 스스로 신이 되려 했을 때,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죽이는 짐승으로 전락했습니다. 제대가 무너진 곳에는 반드시 단두대가 섭니다. 이것이 역사의 법칙이자 종말의 법칙입니다.
제단이 무너지면 왜 세상은 지옥이 될까요? 가톨릭 교리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는 것"(CCC 460)이라고 가르칩니다. 제단은 인간이 자신의 부족함을 봉헌하고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신적인 존재로 변화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처럼 이 제단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이 되려 할 때, 인간은 탐욕과 지배욕의 노예가 되어 타인을 심판하고 죽이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제단이 무너지자 곧바로 카인이 아벨을 죽인 비극이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멸망을 경고하십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겉모습은 화려했으나, 인간이 하느님으로 변화되는 거룩함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참된 제단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라는 단두대로 내몰았을 때, 결국 예루살렘은 돌 하나 남지 않고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은 현대에도 반복됩니다. 미국의 수정 교회(Crystal Cathedral)는 전면이 유리로 된 화려한 건축물과 '긍정의 힘'이라는 설교로 수만 명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십자가와 죄, 고통을 설교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잎은 무성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영광, 성체성사의 깊이가 없는 긍정의 힘은 시련이 닥치자 모래성처럼 무너졌습니다. 영적 능력을 상실한 교회는 결국 파산했고 건물은 매각되었습니다. 제단을 포기하고 인간적인 위로만 찾는 종교의 끝은 공허한 멸망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은 더욱더 성체성사의 신비를 조롱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단 앞에 무릎 꿇는 대신, 돈과 권력이라는 단두대 위에서 서로를 죽이며 스스로 왕이 되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의 제단을 사수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져도, 우리가 이 제단을 지키고 그분의 살과 피 안에 머무르는 한, 세상의 어떤 단두대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너지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제단이 되어주십시오. 그것이 종말을 사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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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커다란 화물선이 있습니다. 이 화물선이 항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배를 움직이는 기관과 동력, 원료 그리고 이 배를 움직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으면 항구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화물’입니다. 그래서 화물을 싣지 않으면 필수적으로 바닥짐(밸러스트, ballast)에 물을 채워서 무게를 맞추어야 합니다. 무게를 맞추지 않으면 배가 쉽게 흔들려서 전복될 위험이 증가할 수 없으며, 또 앞으로 똑바로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어쩌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기에게 짐이 되는 사람이나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만 없다면, 이 일만 없다면 진짜 행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나의 짐들이 나를 똑바로 살 수 있게 하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힘도 주고 있었습니다.
이 짐들을 고통과 시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짐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일 수 있습니다. 순간만을 보지 말고, 시야를 넓혀서 봐야 합니다. 매 순간 주시는 작은 기쁨 안에서 충분히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제에 이어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루카 21,29)
우리는 흔히 종말을 두려움, 심판, 파괴의 이미지로 떠올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종말을 ‘여름’, 즉 생명이 무성해지고 열매를 맺는 희망의 계절로 묘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들을 ‘겨울의 혹한’이 아니라, 결실을 맺는 ‘여름이 오는 과정’으로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또 ‘저절로 알게 된다’라면서 특별한 계시나 복잡한 계산이 필요 없이, 주의 깊게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농부가 자연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알듯이, 신앙인은 역사와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며 하느님의 뜻을 읽어내야 합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두려움에 숨지 말고, 그 안에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고 있음을 식별하는 영적인 눈이 필요합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구약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하다“(이사 40,8)라는 표현은 오직 야훼 하느님께만 적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 즉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진리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하늘조차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사라질 세상의 가치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주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주님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은 어떤 고통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듣기 싫을 때 진정으로 충고해 주는 사람을 친구로 가진 사람은 복받은 사람이다(몽테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중심으로 삶을 세우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사라지는 세계는 현상이고, 사라지지 않는 말씀은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을 우리가 붙잡으면 사라지는 것에 결코 휘둘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절은 소리 없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뿐입니다. 말씀은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말씀의 힘입니다. 사라지지 않을 말씀이 우리 마음과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합니다. 말씀의 길이 구원의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져도, 말씀 안에 머무르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우리를 일으키시는 하느님을 진실로 믿습니다.
루카복음 21장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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