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백성, 당신께 충실한 이, 당신께 돌아오는 이에게 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
주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일깨우시어 저희가 거룩한 구원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며 주님의 자비로 더욱 큰 은총을 받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1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다니 6,12-28)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21,20-28)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다니 6,12-28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그 무렵
12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니엘이 그의 하느님께 기도와 간청을 올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13 그래서 그들은 임금에게 다가가서 금령과 관련하여 말하였다. “임금님, 앞으로 서른 날 동안 임금님 말고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진다는 금령에 서명하지 않으셨습니까?” 임금이 “그것은 철회할 수 없는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법에 따라 확실하오.” 하고 대답하자,
14 그들이 다시 임금에게 말하였다. “임금님, 유다에서 온 유배자들 가운데 하나인 다니엘이 임금님께 경의를 표하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서명하신 금령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은 채,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15 임금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괴로웠다. 그는 다니엘을 살려 내기로 결심하고 해가 질 때까지 그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16 그러자 그 사람들이 임금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이 세운 금령과 법령은 무엇이든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법임을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17 그리하여 임금이 분부를 내리자 사람들이 다니엘을 끌고 가서 사자 굴에 던졌다. 그때에 임금이 다니엘에게,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구해 내시기를 빈다.” 하고 말하였다.
18 사람들이 돌 하나를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아 놓자, 임금은 자기의 인장 반지와 대신들의 인장 반지로 그곳을 봉인한 다음, 다니엘에게 내린 어떠한 조치도 바꾸지 못하게 하였다.
19 그러고 나서 임금은 궁궐로 돌아가 단식하며 밤을 지냈다. 여자들도 자기 앞으로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20 새벽에 날이 밝자마자 임금은 일어나 서둘러 사자 굴로 갔다.
21 다니엘이 있는 굴에 가까이 이르러, 그는 슬픈 목소리로 다니엘에게 외쳤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사자들에게서 구해 내실 수 있었느냐?”
22 그러자 다니엘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23 저의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그분 앞에서 무죄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임금님, 저는 임금님께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24 임금은 몹시 기뻐하며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 올리라고 분부하니, 사람들이 그를 굴에서 끌어 올렸다. 다니엘에게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자기의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25 임금은 분부를 내려, 악의로 다니엘을 고발한 그 사람들을 끌어다가, 자식들과 아내들과 함께 사자 굴 속으로 던지게 하였다. 그들이 굴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달려들어 그들의 뼈를 모조리 부수어 버렸다.
26 그때에 다리우스 임금은 온 세상에 사는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렸다. “그대들이 큰 평화를 누리기 바란다.
27 나는 칙령을 내린다. 내 나라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곳에서는 누구나 다니엘의 하느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해야 한다. 그분은 살아 계신 하느님,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나라는 불멸의 나라, 그분의 통치는 끝까지 이어진다.
28 그분은 구해 내시고 구원하시는 분, 하늘과 땅에서 표징과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 다니엘을 사자들의 손에서 구해 내셨다.”
루카 21,20-28
오늘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1월 27일
김명겸 요한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9:1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다니엘이 보여준 참된 신뢰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사람들에게 고발당하여 임금 앞에 끌려갑니다. “서른 날 동안 임금님 말고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사자 굴에 던진다.”(다니 6,13)라는 다리우스 임금의 금령을 어기고 그가 하루에 세 번 하느님께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을 누구보다도 아꼈던 임금은 “네가 성실히 섬기는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구해 내시기를 빈다.”(6,17)라고 말하면서 하는 수 없이 그를 사자 굴로 보냅니다.
다음날 새벽, 단식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 임금이 사자 굴로 가 다니엘을 부르니 그가 응답합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사자들의 입을 막고 다니엘을 구하신 것이었지요. 임금은 기뻐하며 다니엘을 끌어 올리고, 악의로 다니엘을 고발한 이들을 그 가족들과 함께 사자 굴 속에 던져 버립니다. 그날 그렇게 운명이 서로 바뀝니다.
이십여 년 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여동생이 저를 위하여 보험을 들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동생은 보험이 왜 필요한지 열심히 이야기하였고, 오빠인 저는 신부로서 보험이 왜 필요 없는지를 한참 설명하였지요.
제게는 하느님과 교회가 보험이라고요. 저를 지금까지 키워 준 큰 자비와 은혜로움을 알기에 하느님과 교회에 저를 온전히 맡기고 하느님과 교회를 믿는다고요. 만약 교회가 어려워지면 그 교회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종말이 징벌의 날이면서 또한 믿음의 자녀인 저희에게는 속량의 날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굳게 의지하여 제 몸과 마음을 맡기고자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종말 관상이 주님 관상이 되는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권능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요즘은 세상 달력으로나 교회 달력으로나 좀 스산합니다. 추워지고 나무에 이파리들이 다 떨어져 버린 데다가 미사의 독서와 복음은 계속 종말에 관해 얘기하니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칫하면 우울한 감정에 머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우울한 감정에 머묾은 인간적인 것이고 그런 뜻에서 비신앙인 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신앙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종말과 함께 자신도 종말을 맞게 된다고 생각하기에 주님 말씀처럼 까무러치게 되겠지만 신앙인은 종말이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오시는 것이니 필리비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신앙인인지 아닌지는 종말 상황에서 잘 드러날 것입니다. 비신앙인이고 세속적인 사람은 공포에 휩싸이고 두려움 때문에 까무러치지만 신앙인은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라는 오늘 주님 말씀처럼 주님을 봅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라는 말씀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라는 말씀이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며 기도 중에서도 관상적인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지요.
이 참 신앙인의 모범으로 이번 주간 독서는 다니엘서를 읽는데 오늘 독서의 다니엘이 바로 사자 앞에서 주님을 본 사람이지요. 사자 앞에서 주님을 본 다니엘처럼 죽음 앞에서 주님을 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참 신앙인이라면 종말 관상이 주님 관상으로 이어지는 그런 기도를 해야 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비참함 한가운데로 오시는 주님
우리는 지금 <전례시기>의 막바지에 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마지막 날’에 벌어질 무시무시한 표징들을 듣습니다. 곧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고’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대한 표징들입니다.
이는 ‘종말’, 곧 ‘구원’은 올 것이라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그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그때에 그 어떤 시련을 당하더라도 절망하지 말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이는 ‘종말’ 그날이 우주의 파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새롭게 창조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곧 그날의 대재앙은 단순히 미래를 앗아가는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를 “속량”하실 것이라는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떼이야르 드 샤르뎅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의 종말은 집단적 죽음이나 멸망, 결별이 아니라 하나의 변형이 될 것입니다. 곧 인간의 종말은 분열과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탄생이 될 것입니다. 곧 대재앙이 아니라 정신적 역전이 될 것입니다. 정신은 역전하고 다른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며, 세계는 순간적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안에서의 희열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말론적인 표현들을 미래의 세상 종말에 대한 지식을 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종말론적인 표징들은 우주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신학적인 표현으로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먼 미래에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오셨고, 세상은 이미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성의 때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바로 지금 이곳’에서 그분을 맞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헨리 나웬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내년이 아니라 올해, 우리의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에가 아니라 그 비참함 한가운데로,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주님은 오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바로 지금의 우리의 삶 안에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때”에 결정적으로는 드러날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1,28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주님!
새롭게 하소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게 하소서.
변형되게 하소서.
당신의 속량을
입게 하소서.
바로 지금 당신을
맞이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으로 하여
역전되고
당신 승리의
기쁨이 되게 하소.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타겟 픽세이션(Target Fixation)의 법칙: 보는 곳으로 간다
1240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산 다미아노 수도원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잔혹하기로 소문난 이슬람의 사라센 군대가 수도원 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녀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원장 수녀의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당시 원장이었던 성녀 클라라는 병석에 누워 꼼짝도 못 할 만큼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클라라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부축을 받아 일어나 성체광(Monstrance)을 높이 쳐다들고 성벽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녀의 눈은 담을 넘으려는 칼과 창, 그리고 살기 등등한 적군을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성체광 안에 계신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적들을 보지 않고 주님을 보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당신을 섬기는 이 여종들을 지켜주소서."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체광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압도적인 빛과 영적인 기운에 눌린 사라센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습니다. 땅의 군대를 이긴 것은 칼이 아니라, 하늘을 응시하는 한 수녀의 시선이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저는 여러분께 '타겟 픽세이션(Target Fixation, 주시 이끌림 현상)'이라는 법칙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단순히 "보면 간다"는 속담이 아닙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에서 발견된 무서운 뇌과학적 현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지상의 적군 벙커를 폭격하기 위해 급강하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폭탄을 투하하고 기수를 올려야 할 시점에도, 수많은 베테랑 조종사들이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자신이 맞추려는 타겟(벙커)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계속 돌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격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타겟에 충돌해 폭사했습니다.
뇌가 위기 상황에서 두려움의 대상을 응시하는 순간, 생존 본능마저 마비되고 몸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타겟 픽세이션'의 기원입니다.
이 죽음의 법칙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은 F1 레이서들입니다. 시속 300km로 코너를 돌 때, 벽에 부딪힐 위험은 항상 존재합니다. 전설적인 레이서 아일톤 세나는 신입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벽을 보지 마라. 벽을 보는 순간 네 차는 벽에 박힌다. 트랙의 탈출구(Exit)를 보라."
사고가 나는 순간을 슬로모션으로 보면, 드라이버의 헬멧(시선)이 트랙이 아니라 충돌할 벽을 향해 고정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으면 안 돼, 박으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벽을 쳐다보지만, 뇌는 부정어를 인식하지 못하고 시선이 가는 대로 핸들을 꺾어버립니다. 벽(절망)이 아니라 길(탈출구)을 봐야 빠져나갑니다. 사람은 보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이 시선의 법칙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물 위를 걷는 베드로입니다. 칠흑 같은 밤, 베드로가 배 밖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그는 기적처럼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때 그의 눈은 오직 '탈출구'이신 예수님의 눈을 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물에 빠진 이유를 정확히 기록합니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겁에 질려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마태 14,30).
파도가 갑자기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중력의 법칙이 변한 것도 아닙니다. 베드로의 시선이 예수님에게서 '거센 바람(벽, 장애물)'으로 옮겨가 '타겟 픽세이션'이 일어난 순간, 그의 영혼과 육체는 그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위를 걷고, 바람을 보면 빠져 죽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의 징조를 예고하십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절할 것이다." 전쟁, 지진, 기근... 세상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재난(벽)을 쳐다봅니다. 뉴스를 보며 공포에 떨고, 무너지는 경제를 보며 한숨 쉽니다. 재난에 시선이 고정되어 영혼이 그쪽으로 추락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F1 레이서와 같은 처방을 내리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세상은 땅을 보며 "아이고 죽겠네" 하고 벽에 부딪히지만, 신앙인은 고개를 들어 구름 타고 오시는 사람의 아들, 곧 우리의 영원한 '탈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땅이 흔들릴수록 하늘을 봐야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 하권에는 이 시선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도탄 성을 겹겹이 포위했을 때, 엘리사의 사환은 '적군(벽)'만 보고 공포에 질려 소리칩니다.
"아이고, 주인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는 다 죽었습니다!"
그는 타겟 픽세이션에 걸려 죽음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평온하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 편이 그들보다 더 많다."
그리고 사환의 눈을 열어줍니다. 사환의 눈이 열리자, 그는 보았습니다. 적군보다 더 크고 웅장한 불마와 불수레가 온 산을 뒤덮고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는 것을.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땅을 본 자는 절망했고 하늘을 본 자는 승리했습니다.
자연 만물도 이 이치를 알고 있습니다. 해바라기를 보십시오. 해바라기의 뿌리는 어둡고 축축하고 지저분한 흙 속에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해바라기는 땅을 보며 "아이고 더러워라" 하지 않습니다. 해바라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태양의 궤적만을 쫓아 고개를 쳐듭니다. 진흙 속에 발을 담그고 있어도 머리는 태양을 향해 있기에, 해바라기는 썩지 않고 밝고 노란 꽃을 피워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이 불 뱀에 물려 죽어갈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땅에 있는 뱀만 쳐다보다가 독이 퍼져 죽어갔습니다. 그때 하느님은 뱀을 없애주는 대신,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 높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살 것이다."(민수 21,8).
이것은 '시선의 훈련'입니다. 독이 퍼지는 고통 속에서도 억지로 고개를 들어 높이 달린 것을 바라보는 행위, 그것이 믿음이고 그것이 구원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습니까? 경제적 위기, 질병, 실패라는 벽이 여러분을 향해 달려옵니까? 그 벽을 쳐다보지 마십시오. 전투기 조종사들처럼 그것만 보다가는 그곳에 추락합니다. 시선을 돌려, 그 너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탈출구를 뚫어지게 바라보십시오.
"사람은 보는 곳으로 간다."
이 법칙을 잊지 마십시오. 재난을 보면 재난 속으로 빠지지만, 주님을 보면 주님 품으로 가게 됩니다. 오늘,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여러분의 구원자를 바라보십시오. 그 시선이 여러분을 살릴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많은 분이 좋아하는 고급 생선인 참치에 대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생선에 비해 가격이 상당히 비싸지요. 그런데 19세기까지만 해도 참치는 먹지 않는 생선이었다고 합니다. 질 낮은 생선으로 취급되었고, 특히 참치 뱃살은 기름 냄새가 강하고 쉽게 상해서 고양이에게나 던져 주는 부위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선’으로 취급되던 이 참치가 20세기 초 냉장, 냉동 기술의 발달로 고급 식재료가 된 것입니다.
랍스터도 그렇습니다. 19세기 미국 해안가에 넘쳐나던 흔한 갑각류로, 감옥 수감자와 하층민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랍스터를 한 달에 두 번 이상 먹게 하면 학대’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김, 감자 등도 처음에는 가치가 낮게 평가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재평가되었습니다. 음식만 그럴까요? 컴퓨터도 1970년 초만 해도 ‘장난감, 취미용 기기’라는 평가였지만, 현재는 현대 문명의 중심에 있습니다. 한옥도 한때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집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문화유산, 고급 주거 형태로 재발견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으로 완전히 180도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관해 부정적인 말씀을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닫힌 마음으로 포기하고 좌절하는 삶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희망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고정관념에 싸여 있으면 이 시대에 맞게 활동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세상의 끝과 사람의 아들이 오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자칫 무섭게 느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정치 사회적으로 혼돈의 시대였던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에 걱정이 되고 절망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여기서 ‘속량’이라는 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속량은 노예 해방을 뜻하는 것입니다. 종말은 파멸이 아니라, 박해받던 신앙인에게는 ‘완전한 해방’의 날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재난과 전쟁을 보며 공포에 떨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종말은 심판이 아니라,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야 불안한 세상에서도 당당하게 신앙을 간직하면서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늙는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계를 돌리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질문은 이게 된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무얼 할 것인가?(골디 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본질을 바라보라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우리들 삶은 종종 예상치 못한 사건과 위기로 흔들립니다. 하나가 무너지면 하나가 일어납니다. 무너짐과 새로움은 언제나 하나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로 되돌아감이 우리 삶의 본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당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속량의 주체는 언제나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오히려 위기는 우리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시간입니다. 머리를 들듯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려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흐르는 우리들 본연의 삶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속량의 길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무너짐이 새로운 질서와 회복을 향한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생명의 빛과 희망을 다시 발견하는 무너짐과 새로움입니다. 거짓 자아의 무너짐이 가까워진 속량(贖良)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다니엘서 6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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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이 하루를 새롭게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며,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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