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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1/30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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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당신께 제 영혼 들어 올리나이다.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저를 맡기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원수들이 저를 보고 좋아라 날뛰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께 바라는 이는 아무도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며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하시고 마침내 하늘 나라에 들어가 그리스도 곁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1월 30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1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대림 제1주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1월 30일 대림 제1주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2,1-5)
    주님께서 영원한 평화의 하느님 나라로 모든 민족들을 모아들이신다.

  • 제 2독서
    (로마 13,11-14ㄱ)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 24,37-44)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이사 2,1-5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 영원한 평화의 하느님 나라로 모든 민족들을 모아들이신다.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로마 13,11-14ㄱ
오늘 제2독서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형제 여러분, 

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12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24,37-44
오늘 복음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7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38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39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40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42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43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4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1월 30일
안승태 요셉 신부

 

✚ 서울 창5동성당 소개 00:20

✚ 미사시작 01:27

✚ 강론시작 13:39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노아 때처럼 갑자기 올 것이니 “깨어 있어라.”(마태 24,42), “준비하고 있어라.”(24,44)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깨어, 무엇을 준비하라는 말씀일까요? 

절의 처마 밑을 보면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는 ‘풍경’이 있습니다. 이 풍경은 물고기 모양인데, 물고기가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곧 물고기는 잠들지 않고 늘 깨어 수행의 길로 나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자기 자신의 참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참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로써 이끄시는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을, 그 간절한 기다림과 평화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모두에게 품위 있게 살아가자며 흥청대는 술잔치와 방탕, 다툼과 시기와 같은 어둠의 행실을 벗고 “빛의 갑옷”(로마 13,12), 곧 “주 예수 그리스도”(13,14)를 입으라고 당부합니다.

우리는 지상의 삶을 살면서도 한 발짝 물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입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 그분의 눈길과 행동 방식을 익혀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대림 시기를 시작하며 예수님의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날마다 성경 읽기를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자, 이제

대림절이란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는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오심과 우리의 기다림이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가 기다리고 있지 않아서도 안 되고, 우리가 기다리는데 주님께서 오시지 않아도 안 되겠습니다. 그런데 맞아떨어지기 위해서는 주님이 오실 때를 우리가 모르니 우리가 깨어 있으면서 기다려야 한다고 오늘 주님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이 예측 불가능하게 변덕스럽게 오시는 겁니까? 요놈들 기다리나 안 기다리나 한번 봐야겠다! 아무 때나 가도 잘 기다리고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그리고 잘 기다리면 떡 주고 안 기다리면 콩고물도 없다! 주님께서 뭐 이러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주님 오심은 들쑥날쑥하거나 변덕스럽지 않고, 확실하다 못해 약속 시간에 먼저 나와 기다리시듯 우리를 오히려 기다리십니다. 그러니 실은 우리가 기다리는 때가 오시는 때이고, 우리가 가는 때가 주님을 만나는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 이사야서는 우리보고 가자고 합니다.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그리고 가자고 하면서 “자” 하고 말을 건넵니다. 그런데 “자”라는 말은 어떤 때 쓰는 말입니까? “자, 자, 자”라고 하는 것은 마구 떠들어대거나 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편으로는 그들이 하던 짓을 멈추게 하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이상을 정리하면 대림절의 실제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께서는 언제 오실 것이 아니라 이미 약속 장소에 와계십니다. 

둘째로 그러므로 늦든 빠르든 우리가 가면 언제고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셋째로 그런데 가야 하는데 우리가 잠자거나 딴짓하고 있기에 예언자가 곧 주님께서 보내신 자가 “자, 자, 자”하면 일단 하던 짓을 멈춰야 합니다. 

넷째로 하던 것에서 시선을 돌려 주님께로 향하는 시선 정렬이 이어져야 합니다. 

다섯째로 이제 비로소 갈 준비가 되었으니 이미 와 계신 주님께로 출발합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는 오늘 주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와 바오로 사도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이제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자, 이제 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다! 
자, 이제 정신을 차릴 때가 되었다! 
자, 이제 깨어 기도할 때가 되었다! 
자, 이제 주님의 산에 올라 기도하자!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깨어 있어라.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입니다. 

이 시기의 큰 주제는 ‘깨어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도 ‘깨어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37-41절)는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당혹스런 일로 여겨집니다.

대체, 끔찍하고 잔인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를 말씀하시면서, 그때 그 사람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심판을 받은 그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곧 마구 먹고 마시는 사람들, 장가들고 시집가는 사람들, 들에 있는 사람들, 맷돌질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노아의 홍수가 사람들의 타락 때문이라기보다 사람들의 안일한 삶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는 타성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으로 평범한 일상의 굴레에 젖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는 죄를 피한다할지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심판받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선과 정의로 진리 편에서 이를 행하고 투신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어둠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빛에로 나아가야 하고, 항상 빛 가운데 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그것이 ‘깨어있음’의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집주인과 언제 올지 모르는 도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 지 집 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마태 24,43) 

이는 어느 한 순간도 주의와 경계를 늦추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깨어 하느님을 기다려야 함을 말해줍니다. 곧 사람의 아들은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오실 것이니, 준비하고 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오늘 <말씀전례>에서 ‘깨어있음’의 의미는 세 가지로 말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마지막 날에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로서의 깨어있음’이요, <둘째>는 유혹에 대한 ‘경계로서의 깨어있음’이요, <셋째>는 ‘이미’ 와 ‘아직’ 사이에서, 주님과 동행하여 걷는 ‘기도로서의 깨어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

이 말씀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알아들어야 할 분명한 사실은 ‘주인이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분명 오십니다. 만약 오시지 않는다면 굳이 고대하고 기다릴 필요도, 깨어있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어있음’은 ‘그분이 오신다는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러기에 진정 믿는 자만이 진정 깨어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깨어있음’은 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요, 오시는 임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4)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이미’ 깨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깨어나라’고 하지 않으시고, ‘깨어 있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으로 이미 깨어난 까닭입니다. 그러니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잠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헛 군데에 눈 돌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깨어있음’은 ‘얼차려’ 입니다. 곧 ‘정신차려있는 것’ 입니다. 마음의 경계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깨어있음’의 <둘째> 의미인 유혹에 대한 ‘경계로서의 깨어있음’이 필요하게 됩니다. 곧 깨어있음은 한편으로는 빛을 향한 깨어있음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어둠에 대한 경계의 깨어있음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2-13)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고서야 비로소 깨어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미 오신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 사이에 살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 <셋째>의 의미인 주님과 동행하여 걷는 ‘기도로서의 깨어있음’이 요청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깨어, 빛 속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이미 대림초를 밝혔으니, 깨어 그 길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4,42
깨어 있어라.

 

주님!
깨어 있게 하소서.
깨어 기다리게 하소서.

고대하고 희망하게 하소서.
희망하고 준비하게 하소서.

더 이상은 잠들지 않게 하시고
졸지도 않게 하소서

헛 군데에 
눈 돌리지도 말게 하시고
언제나 임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빛의 갑옷을 입고 
빛 속을 걷게 하시고
동행하시는 당신께 
깨어 있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는 깨어있지 못한 핑계를 댈 수 없다.

영화 '아폴로 13호'를 보셨습니까? 달을 향해 가던 우주선의 산소통이 폭발하여, 우주비행사들은 차가운 우주 한복판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그들이 살아서 지구로 귀환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지식이나 경험, 혹은 "살고 싶다"는 의지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구에 있는 **'휴스턴 관제센터'**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뿐이었습니다. 관제센터가 "전원을 끄라"면 끄고, "켜라"면 켰습니다. 그들은 우주선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관제센터는 모든 데이터를 보고 생환 경로를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떤 비행사가 "내 생각은 다른데요? 내 방식대로 살아볼래요."라며 지시를 어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영원한 우주 미아가 되어 소멸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그곳에 보낸 이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것, 그것만이 나중에 살아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이것이 생존의 법칙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를 말씀하십니다. 홍수가 닥치기 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상에만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을까요? 누구나 자기 뜻을 따라 사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바로 '관제센터(창조주)'의 지시에 귀를 닫은 것입니다. 오직 노아만이 하느님의 뜻(방주 건설)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지시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은 이미 어둠이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분, 나를 다시 부르실 분의 뜻을 찾고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깨어있음'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의무를 잊고 "나는 몰랐다, 죄 없다"며 핑계를 댑니다. 

임언기 신부님이 만난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간암 말기로 임종을 앞둔 분이었는데, 30년 이상 냉담 중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고해성사를 주려고 십계명과 칠죄종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도와주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끝내 입을 다물고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부님이 포기하고 나가려는 순간, 등 뒤에서 천둥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 죄 없어!"

그는 정말 죄가 없었을까요? 그는 자신이 세상의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떳떳하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조주의 뜻(주일 미사, 기도, 사랑)을 30년이나 무시하고 산 것, 관제센터와의 교신을 끊고 제멋대로 산 것 자체가 가장 큰 죄임을 그는 몰랐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관계가 끊어진 것 자체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거룩해 보이는 성인들도 이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위대한 성서학자 성 예로니모는 꿈속에서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당당했습니다.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거짓말 마라!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키케로 추종자다. 너는 성경보다 로마 문학을 더 사랑하지 않느냐!"

그는 주님의 뜻보다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따르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닫고 전율했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도 수녀로 20년을 살았기에 구원은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환시를 통해 본 '자신이 갈 지옥의 자리' 앞에서 그녀는 경악했습니다. 봉쇄 구역에서 사람들과 잡담하며 세속적인 즐거움을 누렸던 그 미지근함이, 곧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길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을 만날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의 부끄러운 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 주님께서 신학교로 부르시는 것을 느꼈지만 저는 거부했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쾌락이라는 '제 뜻'을 따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건방지게 "확실한 표징을 주시면 믿겠다"며 버텼습니다. 

어느 날 새벽, 술기운에 성당에 올라갔는데 성모상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저를 뚫어지게 내려다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고꾸라져 벌벌 떨며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내가 그분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있는데 거룩한 분을 만난다면, 그것은 반가움이 아니라 공포구나."

진리는 속일 수 없습니다. 제 양심은 제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분 앞에서는 것이 죽을 만큼 두려웠던 것입니다. 제가 비로소 주님을 만날 용기를 낸 것은 신학교에 입학한 후였습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그분의 뜻에 제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성체를 영하는데 주님께서 제 영혼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는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나는 네게 다~ 주었다."

제가 제 고집을 꺾고 관제센터의 지시(부르심)를 따르려 했을 때, 비로소 다 주시는 주님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뜻을 듣고 따름만이 그분을 만날 유일한 준비요, 깨어있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결코 '갑자기' 오시지 않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완성했을 때 홍수가 났듯이, 우리가 그분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여 준비되었을 때 오십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거창한 영웅이 되고 싶었으나, 수녀원에 갇힌 처지를 핑계 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핀 하나를 줍더라도 사랑으로 줍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괴롭히는 수녀에게 가장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짜증 나는 소리를 참아내며 '작은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내 뜻을 꺾고 하느님의 뜻(사랑)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깨어있는 삶입니다. 아폴로 13호의 승무원들이 살기 위해 관제센터의 지시에 온 신경을 집중했듯이, 우리도 살기 위해 주님의 뜻에 귀를 기울입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 지시를 따를 때, 우리는 죽음 너머의 고향으로 무사히 귀환하여 주님을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영국 경제학자 메리디스 벨빈은 뛰어난 인재로만 조직된, 이른바 ‘아폴로 팀’을 만들었습니다. 뛰어난 인재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 아폴로 팀에서 최고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우수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뛰어난 인재들은 그 누구도 서로의 의견에 설득되지 않으면서, 다른 팀원의 주장에서 맹점만을 찾아냈습니다.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논쟁만 벌이다가 시간만을 허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뛰어난 인재들이 모인 집단의 성과가 오히려 낮은 현상을 ‘아폴로 신드롬’이라고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드림팀이라 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만 있어도 최고의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나갈 때 최고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를 보면서 우리 공동체를 생각하게 됩니다. 
 
종종 공동체에서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 사람에게 대단한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과연 최고의 결과가 나올까요? 아닙니다. 함께하려는 공동체만이 주님께서 원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부족한 사람들을 제자로 뽑았습니다. 심지어 당신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까지 제자로 뽑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사랑으로 함께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날과 그 시간의 불확실성과 깨어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것뿐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의 본질을 상기시킵니다. 먼저 노아의 때를 이야기하시지요. 그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했습니다. 이를 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일상적인 삶에 푹 빠져서 하느님의 뜻을 간직하며 살지 못한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예는 들에 있는 두 사람과, 맷돌질하던 두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당시 일상적인 노동 현장입니다. 바로 종말은 특별한 장소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터와 생활 한복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언제 오더라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이 준비가 바로 주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고, 그래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 전례력의 새해인 대림 시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분주한 연말 분위기에 빠져서 주님을 잊어 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해. 그래서 연필 뒤에 지우개가 있는 거라고(‘더 심슨’ 중에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대림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새해입니다. 대림은 단순히 기다리는 시기가 아니라 깨어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깨어 있음은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이기에 신앙인의 삶입니다.

대림은 성탄을 향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공간을 매일 조금씩 마련하라는 초대입니다. 기다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으로 가득한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결핍이 아닌 변화의 가능성입니다.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를 묻는 성찰의 시간이며 실천의 시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심은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선물합니다. 우리가 성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스스로 낮추시어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탄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언제 오시는 것보다 누가 오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기다림 안에 내적 성찰과 정화가 있습니다. 준비하는 대림은 하느님을 맞이하는 사랑의 여정입니다. 사랑의 여정은 탄생이며 나눔입니다. 성탄은 대림을 완성하며, 기다림은 사랑을 채워줍니다.

 

 

 

마태오복음 24장 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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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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