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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7/05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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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인은 하느님의 법을 위해 죽기까지 싸웠으며, 악인들의 말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그는 튼튼한 반석 위에 집을 지었네.

하느님, 올바른 신앙을 전파하다가 순교한 복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뜨거운 사랑으로 복음을 실천하여 교회 발전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7월 5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7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7월 5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역대 24,18-22)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 제 2독서
    (로마 5,1-5)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0,17-22)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2역대 24,18-22
오늘 제1독서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마태 23,35 참조).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로마 5,1-5
오늘 제2독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0,17-22
오늘 복음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7월 5일
김강룡 프란치스코 신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소개 00:06

✚ 미사시작 02:46

✚ 강론시작 17:3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보이지 않는 하느님 사랑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순교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를 보면 주님께서 사제가 된 그분의 삶을 왜 그리도 일찍 마치도록 하셨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거의 10년 만에 사제가 되셨는데 1년 만에 바로 순교하셨기 때문입니다. 좀 더 오래 사셨다면 그토록 한국인 사제를 갈망하던 교우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오늘 복음에서 찾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증언, 증거로 옮겨진 그리스 말 ‘마르튀리온’은 ‘순교자’라는 낱말의 어원입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였고, 그 사랑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음을 증언하였으며, 김대건 신부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이들의 증언은 어떤 이론이나 기능으로 하는 증언이 아닌 존재로 하는 증언입니다. 만일 증언이 어떤 교의에 대한 이론적인 변호라면 완벽한 방어를 위하여 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존재 자체로 하는 증언은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됩니다.

또한 사제직의 중심 기능이 말씀 선포와 성사의 집행이고, 성사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면, 순교야말로 이 기능을 최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죽음을 초월하는 모습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느님 사랑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순교이기 때문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의 삶은 짧았지만 참으로 뜨겁게 사셨던 분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환난이 인내가 되도록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축일에 전례는 독서로 로마서를 읽는데 김대건 신부님은 이 말씀대로 사신 분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낸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모두에게 그런가? 사실 인내가 생기기 전에 환난으로 무너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내력이 생기는 것은 환난이 닥쳤을 때 그 환난을 견디고 버텨야 하고, 견디고 버티는 그만큼 인내력이 생기는 것인데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없을 때 오래 견디거나 버티지 못하고 인내가 생기기 전에 금세 무너지곤 하지요.  

그런데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사랑 이외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실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은 환난이 닥칠 때 쉽게 무너지고 잘 일어나지 못합니다. 반대로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고통을 잘 견딥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 자존감이 높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닥친 환난이나 닥칠 환난에 굴하지 않고 자기를 지켜내고, 그러는 과정에서 인내심과 함께 인내력도 생겨나고, 단련을 통해서 사람이 단단해지며 어려움 중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어저께 저는 저의 고향 선배 신부님의 서품 금 경축에 다녀왔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로 모셨기에 축일을 기해 금 경축을 한 것인데 신부님은 교구 사제로서 일반적인 본당 사목도 하셨지만 거기에 안주하시지 않고 파푸아뉴기니로 선교도 다녀오셨습니다. 그 바람에 선교지에서 말라리아를 앓게 되어 청력을 잃게 되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본당 사목 중 사제관에 어르신을 모시고 살던 것이 계기가 되어 아홉 개의 노인 복지시설을 거느리는 재단을 세우셨지요.  

그러는 가운데 신부님이 겪은 고난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많았는데 이런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내게 한 열정과 희망이 다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랑은 Amor가 아니라 Passio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고 여러분도 잘 아시듯 Passio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Passio Christi(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잘 드러나는, 고통과 환난을 무릅쓰는 사랑이요 고통과 환난을 감수하고 감당하는 열정입니다.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축일을 지내는 김대건 신부님이 26년 짧은 생애 동안 이 Passio Christi를 충실히 산 분이시고, 저의 선배 신부님은 김대건 신부님의 모범을 충실히 따른 분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후예인 저도 저의 선배 신부님의 자극을 받아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살기로 다시 한번 도전하는 오늘이고, 저도 저의 선배 신부님처럼 후배들에게 자극이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희망도 하고 결심도 하는 오늘 저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감사하면서 기뻐하는 일

오늘 우리는 우리나라의 첫 사제요, 한국 사제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김 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십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내 이름 때문에”(마태 10,22) 발생합니다. 곧 성인께서는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성인께서는 하느님을 “임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임자’를, 오로지 한 분 주인님으로 섬기고, 사랑하셨습니다. 이 ‘임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모진 핍박과 수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으로 기뻐하고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그 사랑을 증거 하셨습니다.

이러한 그분의 사랑은 <옥중편지>에서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천주님이 이런 은공을 갚고자 당신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주기를 바랍니다.”

성인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고문을 달게 그리고 기쁘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고문하는 관장에게 감사를 드렸으며, 나아가 오히려 그를 더 높은 관직에 올려달라고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이 유쾌함, 이 놀라운 사랑!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오히려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듯이, 스테파노가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듯이, 성인께서는 매질하는 관장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지기를 희망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참으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이처럼, “순교”란 단지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 마침내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며 기뻐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그분의 죽음이 순교임을 드러내는 진정한 표시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일에도, 먼저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품은 “임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성인과 함께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2-3).

그것은 고통 중에도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며,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허용할 때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록 목숨 바쳐 순교할 기회는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 그것이 바로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순교”는 믿고 있는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을 증거 하는 일입니다. 곧 자신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살아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고린 4,11)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드러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0,22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 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 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모신심미사 : ‘살아있는 기다림’ 자체이신 성모 마리아

오늘은 성모님께서 오랜 기다림 끝에 아드님을 낳는 장면을 봅니다. 마태오는 긴 구약의 족보를 나열합니다. 그만큼 오래 기다려온 분이 성모 마리아에게서 나셨음을 강조합니다. “때가 차자” 아드님께서 태어나셨다고 하듯, 성모님은 분명 ‘기다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이 회복되기를,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가 응답받기를, 그리고 이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모든 기다림이 같은 무게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기다림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어떤 기다림은 우리를 원망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성모님과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기다림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마침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담을 그릇으로 준비시키는 ‘살아있는 기다림’입니다.

이 성모님을 닮은 ‘살아있는 기다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아름다운 예화가 바로 카시아의 성녀 리타의 삶에 있습니다. 성녀 리타는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여읜 뒤, 남은 생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은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을 살해한 가문과 수도원을 후원하는 가문이 서로 원수지간이었기에, 그녀의 입회가 더 큰 불화를 일으킬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타 성녀의 기다림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닫힌 문 앞에서 그저 슬퍼하거나 기적적으로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닫힌 문을 열기 위해, 자신을 가로막은 원수 가문들의 화해를 위해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두 가문이 극적으로 화해했을 때, 수도원의 문은 기적처럼 그녀를 향해 활짝 열렸습니다. 리타 성녀에게 ‘때가 찬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능동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평화의 조건이 채워지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은총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은총을 감당할 존재가 되기 위한 마음으로 일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대나무는 씨앗을 심고 4년 동안 아무리 물을 줘도 땅 위로 싹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성장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견고히 내리는 데 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최고의 장인이십니다. 최고의 포도주 장인이 완벽한 숙성을 위해 와인병을 어두운 지하 저장고에서 기다리게 하듯,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가장 좋은 ‘때’를 알고 계십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 영혼의 맛과 향이 깊어지는 숙성의 과정입니다. 이 기다림을 통해 우리의 조급함은 인내로, 교만은 겸손으로, 이기심은 사랑으로 정화되어 마침내 하느님의 은총을 담을 준비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살아있는 기다림’의 정점에 바로 성모 마리아께서 계십니다. 성모님은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구약의 기나긴 약속, 온 인류의 메시아를 향한 갈망을 한 몸에 품고 기다리신 분입니다. 그분의 기다림은 나자렛의 침묵 속에서 당신의 영혼을 티 없이 깨끗하게 준비하는 시간이었고,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는 순명의 시간이었습니다.

마침내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갈라 4,4) ‘때가 찼다’는 것은 단순히 달력의 시간이 흐른 것이 아니라, 성모님이라는 준비된 그릇이 마침내 은총을 받기에 합당할 만큼 가득 채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천사는 바로 그 준비된 영혼에게 찾아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하고 인사했던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기다림은 그리스도를 잉태하기에 합당한 자리를 만드시는 기다림이었습니다. 온 우주를 만드셔서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을 맞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얼마나 넓혀야겠습니까?

여기에서 구약의 ‘노아’의 기다림이 성모 마리아를 닮았습니다. 노아는 은총을 받기 위해 수백 년 간 바보 소리를 들어가며 배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에 좋고 나쁨 없이 모든 동물을 태웠습니다. 어쩌면 그가 마지막 때의 은총을 위해 기다리며 지은 것은 배가 아니라 ‘포용력’일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부정하다 여겨지는 동물들을 잡아먹으라 하셨습니다. 그가 그 동물들을 포용할 수 있을 때 이방인들에게 보내셨습니다.

신앙인의 삶은 때가 찼을 때 그 준비된 시간만큼 큰 은총을 준비하는 살아있는 기다림의 삶입니다. 오늘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시다. 저희의 기다림이 닫힌 문 앞에서 좌절하는 죽은 기다림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며 평화를 이루는 성녀 리타의 기다림처럼, 순명으로 방주를 짓는 노아의 기다림처럼,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찼을 때’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을 받아 안을 수 있는 ‘살아있는 기다림’이 되게 매일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넓은 포용력을 키우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박해에 대한 예언과 이에 대처하는 자세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가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은행 잔고는 단돈 15만 원 정도만 들어 있었습니다. 개 사료를 살 수도 없어서 키우던 개를 팔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나 힘든 상태, 암울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아침에 타고 다니던 오래된 자가용이 고장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영화 제작자가 와서 그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4억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사람의 상황이었다면, 이런 제안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또 친한 친구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조언하시겠습니까? 

너무 힘든 상황이니 당연히 4억 원에 시나리오를 팔 것이고, 또 친구도 그렇게 조언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 시나리오는 사흘 만에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팔고 경제적 여유를 가진 다음, 다른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연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팔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입니다. 그리고 그가 쓴 시나리오는 수조 원 규모의 프랜차이즈 영화가 된 ‘록키’였습니다.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기준을 굳이 내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 신앙인 역시 하느님 나라라는 꿈이 있습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먼저인데, 세상 기준이 먼저가 됩니다. 돈이 먼저라고, 세상의 지위가 먼저라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이 먼저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꿈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무엇이 먼저일까요?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며 하신 ‘박해 예고와 위로’의 말씀입니다. 선교의 실제 상황에서 마주하게 될 어려움, 특히 박해에 대한 예언과 이에 대처하는 자세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마태 10,19) 

이 구절은 많은 순교자들의 고백이 성령의 영감으로 나왔다는 믿음의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역시 이 말씀에 힘을 얻어 순교하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때 성령께 철저하게 의지하면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라는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언제나 초심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매 순간을 새롭고 신선하게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경지를 맛본다. 그처럼 피어오르는 존재의 큰 기쁨은 초심으로부터 온다. 편견 없는 마음으로부터 온다 (조셉 골드스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순교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목숨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르심에 충실했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만납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교우들을 돌보고 교회의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유혹과 타협하지 않고 복음의 진리를 따랐으며 조롱과 무관심 속에서도 신앙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삶을 통해 신앙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삶이 얼마나 값진 삶인지를 만나게 됩니다. 복음에 대한 진실함을 지키는 것이 순교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순교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 우리 삶 안에서도 깊이 울려퍼집니다. 순교의 가치는 죽음에 있지 않고 하느님을 위한 사랑의 절대성에 있습니다. 우리 삶의 나침반이 됩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다시 배우는 시간입니다.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오늘도 사랑으로 살아내는 우리 신앙의 가장 뜨겁고 가장 깊은 증언이며 고백입니다. 순교는 사랑으로 완성된 믿음입니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생활 속 순교를 사는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마태오복음 10장 22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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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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