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내 버팀목 되어 주셨네. 내가 그분 마음에 들었기에, 넓은 들로 이끄시어 나를 구하셨네.
주님, 이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이끌어 주시고 교회가 자유로이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소서.
2025년 3월 2일 연중 제8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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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8주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집회 27,4-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 제 2독서
(1코린 15,54-58)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 오늘 복음
(루카 6,39-45)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6,45)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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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27,4-7
오늘 제1독서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4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5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6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7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1코린 15,54-58
오늘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형제 여러분,
54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으면, 그때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
55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56
죽음의 독침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루카 6,39-45
오늘 복음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39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43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44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3월 2일
하성용 유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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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한창현 모세 신부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야,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제대로 빼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형제의 눈에 있는 티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데도 자신은 뚜렷이 보고 있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빼내 주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뚜렷이 보지 못하고 있음을 먼저 살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를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상황에 적용해 봅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으면 감정에 영향을 받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단죄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상처를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눈에 들보가 박히게 됩니다. 상처로 내 눈에 박힌 들보를 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고와 판단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감정을 돌보고 용서하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용서에는 의지적 용서와 영적 용서 사이에 감정적 용서의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과정이기에 인내와 용기 그리고 지혜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의 말씀이 이 긴 여정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나의 말들로 나의 마음속 생각들이 드러납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입으로 드러난 말들로 마음속 생각들을 살펴볼 때, 우리는 내 눈에 박힌 들보를 빼내고 용서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 마음의 곳간엔?
취중진담(醉中眞談)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평소에는 말 없는 사람이 술을 먹으면 말이 많아지고, 그리고 술에 취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은 바람에 술 깨고 후회하기도 하고 술 취해 한 말이라고 변명이나 발뺌도 합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얘기하면 술에 취해서 한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잘못 얘기하곤 내가 한 얘기가 아니라 술이 한 얘기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실은 속에 있는 얘기 곧 마음에 있는 얘기이고 누르거나 가두고 있던 얘기가 술기운에 봉인이 해제되어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오늘 독서가 말하는 그대로입니다.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오늘 복음도 같은 취지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마음 곳간에 무엇이 있느냐, 무엇을 쌓아놓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제일 많이 쌓는 것은 불만입니다. 요즘은 불만을 넘어 분노를 많이 쌓습니다.
분노는 불만과 미움이 같이 쌓인 것입니다. 불만이 거듭거듭 쌓이고 미움이 거듭거듭 쌓이면 분노가 쌓이고 분노는 에너지화하고 폭발 에너지로 바뀝니다.
그래서 분노 곧 화가 나기도 하고 화풀이하기도 하는데 곳간 이론에 의하면 화를 쌓지 않는 것이 우선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화가 나면 화를 억누르기보다는 화를 잘 푸는 것이 낫지만 화풀이를 잘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아예 화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화가 나더라도 그것을 마음 곳간에 쌓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화가 나더라도 화를 내지 않거나 화를 잘 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예 화가 나지 않도록 하거나 화가 나더라도 화를 쌓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마음 곳간에 무엇을 쌓지 않는 것, 특히 좋지 않은 것들을 쌓지 않는 것, 이것이 제가 보기에 비움이고 가난입니다. 욕심의 비움과 가난, 미움의 비움과 가난, 애착의 비움과 가난 등입니다.
이렇게 비움과 가난을 통해 악한 곳간에 쌓인 불만과 미움과 분노를 제거한 뒤에 우리는 그 곳간을 선한 곳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곳간을 선한 것들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우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하느님의 진리로 채우고, 하느님의 정의로 채우고, 하느님의 평화로 채웁니다. 그런 다음에는 입에 자물쇠를 채울 필요가 없고, 무슨 말을 할까 조심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뭘 말해도 자기 말과 악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니 말함에 있어서 자유로워도 될 것이고, 선한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 오히려 말을 많이 할 것이며,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기회가 좋든 나쁘든 복음 선포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고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의 곳간에는 무엇이 쌓여있는지 무엇을 비워내야 할 것인지 먼저 성찰하고 비워내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눈 속에 있는 ‘티’와 ‘들보’도 ‘마음의 곳간’에서 흘러나온다.
연중 8주일입니다. 3월의 첫 주일입니다. 기승을 부리던 겨울이 가고 봄이 옵니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사순시기를 준비하면서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곧 우리의 ‘혀’와 ‘눈’을 통해서 ‘마음’을 보게 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혀)에서 드러나고”(집회 27,4), “사람의 말(혀)은 마음 속 생각을 드러낸다.”(집회27,6)고 말하며, 이를 오늘 <복음>에서는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루카 6,45)라고 말합니다. 또한 <복음>은 눈 속에 있는 ‘티’와 ‘들보’도 ‘마음의 곳간’에서 흘러나옴을 말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루카 6,45)
그러니 이제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찬미하오며, 우리의 ‘혀’가 “아침에는 당신 자애를, 밤에는 당신 진실을 알리나이다.”(시 92,3) 하고 <화답송>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일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마음의 “선하신 뜻”(루카 10,21)을 품으신 아버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1코린 15,57).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고, 그 승리를 우리에게 주셨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14-15)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1코린 15,58)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며,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지극히 높으신 주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시 13,6) 하고 <영성체송>을 바쳐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사실, 예수님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가 6,36-37)는 말씀에 이어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들어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눈 먼 스승의 비유”, 곧 제 눈에 들보를 깨닫지 못하고 형제 눈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는 위선자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앞 장면과 연결해 볼 때, 결국, ‘판단하지 말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판단보다 앞서, 하느님의 “선의(호의, 자애)의 마음”(헤세드)으로 보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좋은 나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루카 6,43)
구약에서 ‘열매’는 주로 행동을 가리키고(이사 3,10;예레 17,10;21,14;호세 10,13), ‘나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 거짓 열매를 맺고, 참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 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가시나무가 무화과를 내지 못하고, 가시덤불이 포도를 내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매’는 ‘혀와 눈’, 곧 ‘말과 판단’을 통해 드러나는 행실로, ‘나무’는 ‘마음의 곳간’으로 표현됩니다. 곧 ‘열매’는 우리의 입으로 하는 ‘말’과, 눈으로 하는 ‘판단’으로 드러납니다. 곧 ‘마음의 곳간’에 선한 것이 담겨 있는지 악한 것이 담겨 있는지에 따라 말과 판단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은 말과 판단의 곳간이요, ‘말과 판단’은 마음의 열매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열매인 말과 판단을 보면, 나무인 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들이기에, ‘그리스도의 마음’, 곧 ‘호의의 마음’을 품고 있는 나무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일입니다. 곧 우리의 말과 판단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몸으로 하는 ‘실행’으로 드러나야 할 일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 하면서 “아버지의 선하신 뜻”(루카 10,21)을 실행하는 것을 당신의 ‘일’로 삼으셨고, 오늘 <복음>의 뒷 절에서는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루카 6,46)라고 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선하신 뜻”(루카 10,21)의 ‘실행’이야말로 진정한 향기일 것입니다. 비록 홍수가 들이닥쳐도 떠내려가지 않는 반석 위의 집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일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삶이 당신 말씀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때깔만 그럴싸한 열매가 아니라 행동하는 사랑으로 속이 꽉 찬, 좋은 열매되게 하소서!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6,42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주님!
눈을 뜨고도
자신을 보지 못하는
저는 눈먼 이입니다.
보지 못하면서
보는 척
하지 말게 하소서.
보지 못하면서
타인을 인도하지는
더더욱 말게 하소서.
제 눈에서
들보를 빼내소서.
보는 것을 안다고
여기는 것이
제게는 들보이니
제가 모른다는 것을
보게 하소서.
형제의 눈에서
티가 아닌
당신을 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눈먼 인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운명
어느 나라건, 어느 회사건 눈먼 인도자를 가진 시민이나 직원들의 운명은 그 인도자의 운명과 같게 됩니다.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잘못된 인도자를 뽑아 망하고 마는 나라의 예는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라고 하십니다.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도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눈먼 인도자를 알아보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우리가 인도자를 정할 때 그러면 말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는 것에 유념하면 될까요?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타인에게 돌리며 타인의 눈의 티에만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잘한 것 자기 덕, 못 한 건 다른 사람 탓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분명 좋은 인도자일 수 없습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이런 인물이 많지만, 오늘은 미국에서 아직도 잘못된 인도자였다고 비판받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소개합니다. 리처드 닉슨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정치적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버드에 합격하였지만, 집이 가난한 이유로 지방대 나온 열등감의 소유자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맞붙은 사람은 존 F. 케네디입니다. 케네디가는 미국에서도 재력과 정치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가문입니다. 1960년 미국 역사상 첫 TV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잘 준비된 케네디에 비해 닉슨은 마치 병 걸린 사람처럼 비쳤습니다.
이 TV 토론에서 케네디는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비방하기보다는, 닉슨의 정책을 비판하며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닉슨은 경험 부족을 비판하면서 케네디를 공격했지만, 그의 공격은 관객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입니다. 케네디는 오히려 자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며, 상대방을 직접적으로 비방하는 대신 정책의 차이를 부각시킨 점이 중요한 사항입니다.
몇 년 뒤 1968년 인기가 없는 민주당 허버트 험프리와 붙었음에도 간신히 극미한 차이로 승리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처음부터 재선을 준비하였습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많은 로비자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재선을 위해 민주당 선거캠프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큰 위기에 몰립니다. 이때 그는 자신을 도왔던 법률 고문 존 딘(John Dean)에게 이런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려 했습니다. 이에 배신감을 느낀 존 딘이 법정에서 닉슨의 모든 악한 면을 폭로함으로써 닉슨은 재선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닉슨은 끝까지 대통령이 하는 모든 행위는 위법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거짓말을 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며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함은 말을 들어보면 금방 드러납니다.
반대의 경우입니다. 무일푼에서 자수성가한 3조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 글렌 스턴스가 90일 동안 100불로 100만 달러를 버는 도전이 TV에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차를 사고팔고 집을 수리해서 팔며 1억이라는 종잣돈을 모아 그것으로 바비큐 대회에 나가 1위를 함으로써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90일 만에 75만 달러의 가치를 받았습니다. 도전은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도전에 너무 감사하며 특히 자신과 함께 이 도전을 한 이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했습니다. 실패한 것은 자기 탓이고 이만큼 한 것은 핑계 대지 않고 일해준 직원들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보며 상대의 눈의 티를 보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자기 자신의 죄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제가 될 자격도 없다고 여겨 부제품까지만 받았습니다. 자기가 수도회의 장상이 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얼마나 많은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이 있습니까? 그저 자기 들보만 보려고 해도 이렇게 훌륭한 리더가 됩니다. 하물며 우리가 장차 우리나라를 맡길 인도자를 뽑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고도 그들이 어떤 종류의 인도자가 될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우리 자신들이 눈먼 이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몇 년 전, 조금 특별한 곳에서 강의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에서의 부탁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입니다. 간곡한 부탁에 허락을 하기는 했지만, 강의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커졌습니다. 솔직히 구치소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고, 그래서 우락부락한 험상궂은 사람이 가득할 것만 같았습니다.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게 욕하며 소리치지는 않을까?, 전혀 관심이 없어서 ‘너는 말해라. 나는 잘련다.’며 잠만 자는 것이 아닐까? “그만합시다”라며 강압적으로 나를 통제하려 들지는 않을까?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생각들로 전날 밤을 꼬박 새우고 구치소에 갔습니다. 입구에 신분증을 맡기고 들어간 뒤, 몇 개의 문을 통과해 넓은 강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재소자들을 드디어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긴장하며 강의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어떤 곳에서 보였던 반응에 뒤처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대답해 주었고, 힘찬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가지고 있던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잘못된 생각을 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미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누구를 판단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죄 많은 사람입니다. 그 판단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그 결과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만이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41)
‘들보’는 조그마한 것이 아닙니다. 무거운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물 또는 구조 요소입니다. '보, 빔 beam'이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자기 안에 커다란 문제를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 남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죄를 안고 있을까요? 교만, 육욕, 재물에 대한 욕심의 죄 등등 적지 않은 죄로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남 탓만 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좋은 나무의 모습을 갖춘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남을 고쳐주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부터 깨끗하게 하고 고쳐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을 너머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라.
- 유재석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압니다. 나무는 열매 이외의 것들은 바라지 않습니다. 좋은 나무는 하느님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을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좋은 열매는 좋은 열매로 좋은 지향을 드러내며 좋은 길을 냅니다. 좋은 열매를 봉헌하며 그 열매마저 붙잡지 않는 나무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가장 좋은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꽃피고 열매 맺어야 할 가장 좋은 때를 압니다.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묻게 됩니다. 우리가 맺는 일상의 열매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됩니다. 마음에서 나와 언어가 되고 행위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가짐이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좋은 마음의 선택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좋지 않은 마음에 대한 진실된 회개를 합니다. 좋은 마음은 상황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고 과거를 바꿉니다.
좋은 나무는 먼저 자신에 대한 회개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좋은 열매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선한 주일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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