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025년 2월 27일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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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7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집회 5,1-8)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마라. - 오늘 복음
(마르 9,41-50)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 오늘 말씀 카드
(마르 9,50)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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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5,1-8
오늘 제1독서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마라.
1
재산을 믿지 말고 “넉넉하다.”고 말하지 마라.
2
너 자신과 네 힘을 붙좇지 말고 마음의 욕망을 따르지 마라.
3
“누가 나를 억누르리오?” 하고 말하지 마라. 주님께서 기필코 징벌하시리라.
4
“죄를 지었어도 내게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기 때문이다.
5
속죄를 과신하지 마라. 죄에 죄를 쌓을 뿐이다.
6
“그분의 인자함이 크시니 수많은 내 죄악이 속죄받으리라.”고 말하지 마라. 정녕 자비도 분노도 다 그분께 있고 그분의 진노가 죄인들 위에 머무르리라.
7
주님께 돌아가기를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늦추려 하지 마라. 정녕 주님의 분노가 갑자기 들이닥쳐 너는 징벌의 날에 완전히 망하리라.
8
부정한 재산을 믿지 마라. 정녕 재난의 날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
하느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마르 9,41-50
오늘 복음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4)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6)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2월 27일
성요섭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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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오늘 복음에서는 작은 이에 대한 예수님의 각별한 관심이 두드러집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큰 사랑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며 작은 이를 죄짓게 한 사람은 혹독한 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이 내용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였다가는 세상에 성한 육신을 가진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뜻은 그만큼 죄를 두려워하라는 것이고 육신의 지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죄를 부추기는 원인들, 곧 탐욕, 허영, 교만, 이기심 등을 잘라 내라는 뜻일 것입니다.
어떤 교부는 시각(視覺)의 마차에 올라탄 우리의 생각을 하느님 사랑을 향하여 몰고 가야 한다고, 육적인 시선을 마음의 판단에 복종시키라고 권고합니다.
다른 모든 감각보다도 특히 시각은 범죄 영상물까지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영상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각별히 절제해야 할 감각입니다. 절제의 덕은 우리에게 죄에 대한 식별력을 길러 줍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절제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시궁창과 그 얼룩을 잘 알지만 죄악에 빠진 사람은 자기 병세의 심각성조차 깨닫지 못하고 시궁창에서도 향유 냄새가 나는 것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오늘 독서인 집회서가 경고하듯 눈앞의 현실에 몰두하여 주님의 자비와 인내를 과신하거나 남용하지 말고 죄의 무서움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지켜 주는 절제 안에서 서로 평화롭게 지내려면 마음에 소금을 간직해야 하는데,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이 소금이 바로 하느님 말씀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가혹함에서 사랑을 읽는
오늘 주님께서는 눈이 죄짓게 하면 눈을 빼버리라고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그런데 우리 눈이 죄짓게 하면 주님께서 제 눈을 빼버리실까요? 우리는 주님께서 그러실 리 없다고 믿고 싶고 그래서 실제로 믿고 싶은 대로 믿고는 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노자가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말했듯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날 때 그때도 인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 집회서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죄를 지었어도 내게 아무 일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분노에 더디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인자함이 크시니 수많은 내 죄악이 속죄받으리라.’ 하고 말하지 마라. 정녕 자비도 분노도 다 그분께 있고 그분의 진노가 죄인 위에 머무르리라.”
이 말씀을 뜯어보면 하느님은 마냥 인자하신 분이 아니시고, 죄를 지어도 언제까지나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시고 다만 분노에 더디실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도 복음 다른 곳에서 비유를 드신 바 있지요. 어떤 사람이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나무를 심었는데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포도 재배인에게 그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하는데 포도 재배인은 주인에게 한 해 더 말미를 주면 공들여 키워보겠다고, 그랬는데도 열매 맺지 않으면 그때 가서 베어 버려도 되지 않겠냐고 하지요.
여기서 포도 재배인은 예수 그리스도시고 밭의 주인은 하느님 아버지이신데, 주님께서 그리 애쓰셔도 끝내 회개의 열매 맺지 않는 자는 하느님 아버지께 단죄받는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주님 말씀은 지엄하고 가혹하지만 사랑이고 그 사랑은 구원의 사랑이요 이 악물고 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사랑이요 이 악물고 하는 사랑이라니 뭔 뜻입니까? 그것은 눈을 빼고 다리를 자르는 것이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살리기 위해 의사가 이 악물고 다리를 자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렇게 가혹하게 하시기 전에 구원을 위해 스스로 가혹하게 자기 죄를 끊어버리라는 말씀이고 다리를 끊어버리기 전에 죄를 먼저 끊어버리라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어쨌거나 가혹함과 단호함에서 사랑을 읽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라.
오늘 <복음>은 앞 장면에서 보여주듯이,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서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가 하는 일을 막아 보려고 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 9,42)
우리가 자주 빠지는 일이기에 가슴이 섬찟합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을 죄짓게 하는 도구 세 가지, 곧 자신의 ‘손’과 ‘발’과 ‘눈’을 잘라버리고 빼버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옥구더기와 지옥 불과 지옥 불 소금을 피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손’과 ‘발’과 ‘눈’을 잘라내라는 말씀이 아니라, 죄를 짓게 하는 그 단초가 되는 ‘죄의 뿌리’, 곧 ‘죄를 불러들인 마음의 뿌리를 절단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 9,50)
곧 죄를 불러들이는 단초가 되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소금’으로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고 하십니다.
사실, 소금은 성경에서, 곡물(레위 2,13)이나 향료(탈출 30,35)에 뿌려져 성별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제물(민수 18,19)에 뿌려져 하느님과의 계약 관계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부패를 막고 거룩하게 하며, 거룩한 관계 안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산상설교에서 보여주듯이 ‘소금’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세상의 소금”(마태 5,13) 입니다. 곧 ‘소금’은 ‘다른 이 속으로’ 혹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녹아서 자신이 사라지면서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을 새겨 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하느님에게 참여하는 모든 것, 곧 세상 전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타인과 함께’, ‘타인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이루라고 하십니다. 당신이 주시는 평화 안에서 사랑의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을 되새겨봅니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언제나 소금으로 맛을 낸 것과 같아야 합니다.”(콜로 4,6).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9,50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주님!
제 마음을 사랑의 소금에 절이소서.
하여, 제 마음이 부패하지 말게 하소서.
제 마음이 깨끗해지고
당신 마음 되게 하소서.
사랑의 소금으로
형제들에게 녹여 들어가
당신의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당 다녀도 마음에 이것을 간직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육체로 살 수 있고, 마음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마음으로 사는 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육체로 살면 동물과 같습니다. 음란물을 보는 사람이라면 육체로 사는 사람입니다. 육체로 살면 구원될 수 없습니다. 타인을 죄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육체로 사는 이유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소금이 없어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마르 9,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변화시키고 싶은지에 따라 그 사람의 정체성과 심판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소금이 음식에 미치는 영향처럼,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결정짓습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코 9,50)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타인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를 우리는 고전 『비밀의 정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인 메리 램지는 처음에는 냉정하고 외롭고 방치된 소녀였습니다. 부모를 잃고 고모의 집으로 오게 되지만, 고모부는 그녀를 차갑게 대하고, 그녀의 마음은 그 사람들의 차가운 태도에 의해 더욱 닫히게 됩니다.
화원은 그 당시 고모의 것이었고, 그녀의 고모부가 그 화원을 잠그기까지 했습니다. 고모가 죽었고 그로 인해 고모부가 큰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메리는 그 화원을 가꾸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이 마음이 그녀의 진정한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화원을 가꾸는 모습은 겉으로는 냉정하고 삭막한 소녀였던 그녀의 마음이 결국 얼마나 따뜻하고 변화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그녀의 마음은 비밀의 화원처럼 변화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마음이었습니다.
메리의 변화된 마음은 곧 콜린이라는 고모부의 아들에게로 전달됩니다. 콜린은 병약하고, 몸이 쇠약해져서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꾸만 자신의 질병을 핑계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며, 그의 아버지마저도 그를 방치했습니다.
그러나 메리의 마음은 콜린에게 새롭게 변화된 환경을 제공했고, 그 마음에 합당한 변화를 끌어냈습니다. 콜린이 화원을 가꾸겠다는 마음으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메리는 콜린에게 새로운 마음을 심어주었고, 그 마음은 콜린의 아버지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모부는 처음에는 메리의 변화된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메리의 행동을 단순한 소녀의 취미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메리의 따뜻한 마음과 지속적인 노력은 결국 고모부의 마음도 변화시켰습니다. 아들을 방치한 것을 후회하고 콜린을 끌어안은 것입니다. 메리는 화원을 가꾸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가꾸고 변화시켰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점은 마음이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메리가 화원을 가꾸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은 단순히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을 넘어서, 콜린과 고모부의 마음을 변화시킨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마음이 나쁜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그 사람은 아무리 많은 물리적인 환경을 주어도 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메리의 마음엔 다른 사람의 마음에 없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금’입니다. ‘선한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 에덴동산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나 각자의 환경으로 다른 이들을 맞아드립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 변화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또한 소금의 본질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르코 9,50)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고 음식을 보존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설리반 선생님은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헬렌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의 사랑과 헌신은 헬렌을 변화시켰고, 헬렌은 사랑이 무엇이냐는 설리반 선생님의 질문에 “선생님이 처음 저를 보았을 때 저를 꼭 안아준 것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포옹이 곧 마음이고 그 마음 안에 상대를 초대하는 일입니다.
우리 에덴동산에 많은 이들을 품어 그들 또한 에덴동산을 마음으로 가진 구원하는 존재들이 되게 합시다. 이렇게 볼 때 에덴동산은 본래 소금을 간직하신 하느님의 마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마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이에게 에덴동산이 되어주어 나의 곁에 있는 이들을 좋게 변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참소금이 되는 비결
체중이 쥐의 10,000배 큰 코끼리는 쥐보다 몇 배 많은 먹이가 필요할까요? 당연히 10,000배, 아니면 그 이상의 먹이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000배 정도 많이 먹을 뿐이라고 합니다. 인간을 봐도 그렇습니다. 자기보다 훨씬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이 그 체중만큼 더 많이 먹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크기가 두 배가 되었을 때, 에너지 요구량은 100%가 아니라 75% 증가할 뿐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체중이 많이 나가면서 에너지 요구량이 그만큼 늘어나서 더 많이 먹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냥 적당량을 먹어야 했습니다.
만약 적당량을 넘어서는 양의 음식을 섭취한다면 어떨까요? 건강에 좋지 않게 됩니다. 체중이 늘어나 비만이 될 수 있으며, 이런 상태는 심장병, 당뇨병, 특정 유형의 암과 같은 만성 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먹는 것도 그렇지만, 소유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량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지금보다 더’를 외칩니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이 적당량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어떠할까요? 약간의 풍요하고 넉넉한 삶을 주기도 하지만, 욕심과 이기심으로 정신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더군다나 욕심을 멀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삶을 살기에, 주님과도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기 위해 힘든 희생도 주저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손이 죄짓게 하면 잘라 버리라고 하시고, 발이 죄짓게 하면 이 역시 잘라 버리라고 하십니다. 눈이 죄짓게 하면 빼 던져 버리라고 하시지요. 이만큼 강한 어조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과감히 결정해서 구원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모든 걸림돌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회개의 삶은 거창한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41)
물 한 잔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에서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많은 것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물 한 잔이라도 줄 수 있는 작은 사랑의 실천만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 삶은 소금이 짠맛을 잃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짠맛을 잃으면 소금으로서 가치가 없어지는 것처럼,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치가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야말로 참소금이 되는 비결입니다.
오늘의 명언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 앙드레 말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지키고 간직해야할 짠맛의 신앙입니다. 흩어지는 모래같은 신앙이 아니라 짠맛으로 정화하는 소금같은 신앙입니다
신앙의 길은 단맛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짠맛입니다. 짠맛으로 시련과 유혹을 이겨냅니다.
소금의 노래가 하느님께 드리는 오늘의 참된 노래입니다. 내어주는 짠맛이며 녹아내리는 우리 나날들의 짠맛입니다.
우리의 오늘은 어떠합니까. 빛과 소금이며 십자가와 짠맛으로 우리가 성장합니다. 거품이 아니라 녹아 스며드는 짠맛의 결단이며 서로를 구원으로 이끄는 소금의 실천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삶을 맛나게 하는 예수님이라는 소금이 있습니다. 신앙의 정체성은 예수님의 길을 가는 소금의 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생명의 길은 소금처럼 하나되는 짠맛의 길입니다. 짠맛을 되찾는 소중한 오늘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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