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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2/25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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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025년 2월 25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2월 25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2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집회 2,1-11)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 오늘 복음
    (마르 9,30-37)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 오늘 말씀 카드
    (집회 2,6)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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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2,1-11
오늘 제1독서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네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 재난이 닥칠 때 허둥대지 마라.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마라. 네가 마지막에 번창하리라.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을 믿어라, 그분께서 너를 도우시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의 자비를 기다려라. 빗나가지 마라. 넘어질까 두렵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좋은 것들과 영원한 즐거움과 자비를 바라라. 그분의 보상은 기쁨을 곁들인 영원한 선물이다. 

10 
지난 세대를 살펴보아라. 누가 주님을 믿고서 부끄러운 일을 당한 적이 있느냐? 누가 그분을 경외하면서 지내다가 버림받은 적이 있느냐? 누가 주님께 부르짖는데 소홀히 하신 적이 있느냐? 

11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나는 주님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지 않으리라.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게서는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에서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

 

 

마르 9,30-37
오늘 복음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30 
갈릴래아를 가로질러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께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셨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33 
그들은 카파르나움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하고 물으셨다. 

34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이다. 

35 
예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셔서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36 
그러고 나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그를 껴안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37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2월 25일
김영인 요한사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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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모든 이의 종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것이 벌써 두 번째인데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뿐 아니라 묻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수난과 죽음 부분에만 머물러 부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진실을 알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 아는 것에만 머물러 있고 싶은 유혹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현세에서 지금 누리시는 존경과 권위에만 머물러 그분께서 겪으셔야 할 수난과 죽음은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지금 그분을 따르면서 큰 사람이 되려 하고 작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나무가 높이 자라려면 먼저 뿌리를 땅속 깊이 내려야겠지요. 낮은 곳에서 시작하지 않고는 높이 오를 수 없습니다. 그처럼 제자 직분은 낮아지고 작아지면서 성장하는 신비입니다. 

일등이 되려고 모든 것을 거는 세상, 일등만 환호하는 세상에서 꼴찌가 되라는, 어린이와 같은 작은 이를 받아들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진정한 첫째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높고 훌륭한 사람의 종이 되라고 하면 거부감이 덜하겠지만 자신보다 작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죄인들의 종이 되라고 하면 선뜻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와 당신을 동일시하셨고(마태 25,40 참조) 죄인인 우리의 종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을 섬기시려고 스스로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그분처럼 “모든 이”(마르 9,35)의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섬김의 단계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두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누가 첫째가느냐를 놓고 다툼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신 뒤에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때 자기 아들들이 주님의 왼편과 오른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여 제자들이 불쾌해하며 자리다툼을 하지요.

그러니까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섬기려고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주님을 등에 업고 한 자리 차지하려고 주님을 따른 것이지요.

이런 제자들이 들으라는 듯 또 제자들과 마찬가지인 제가 들으라는 듯 오늘 집회서는 주님을 섬기러 나갈 때의 자세에 관해서 얘기합니다.

“얘야, 주님을 섬기러 나아갈 때 너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라.” 

그래서 저는 오늘 섬김의 단계에 관해서 묵상해봤는데 첫 단계는 시련에 대비하는 단계라고 집회서는 얘기합니다. 주님을 섬긴다면 제자들처럼 부귀영화를 기대하지 말고, 시련을 각오하고 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섬기는 기본자세이고 올바른 자세이지요. 

이런 자세가 아니라면 앞서 봤듯이 섬기는 자세가 아니라 주님을 등에 업고 자기 출세나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데 제자이고 종이면서 시련은 전혀 관심 없고 영광만 꿈꿔서는 안 되는 거지요.

둘째 단계는 실제로 시련 당하게 된 단계이고 이때 지녀야 할 자세는 인내와 단련의 자세입니다.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그렇습니다. 이때 지녀야 할 자세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시련을 단련의 기회로 삼는 자세이고, 다른 하나는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시련과 단련이 실은 같은 거지만 억지로 당하면 시련이고, 스스로 겪으면 단련이지요. 이렇게 단련의 자세가 되어 있을 때 시련을 묵묵히 참고 견딜 수 있겠지요.

섬김의 세 번째 단계는 믿음과 희망의 자세를 지니는 단계입니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 너의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 두어라.” 

두 번째 단계가 자기 내면에서 자기와 싸우는 단계라면 세 번째 단계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힘을 얻는 단계입니다.

오늘은 늦잠을 자서 여기서 미완성인 채로 나눔을 마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진정한 첫째가 되는 길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예고’와 그 길을 가는 예수님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제자들에게 행하신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에 대해 논쟁을 벌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이는 ‘첫째’가 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첫째’가 누구인가를 가르쳐줍니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첫째’가 되는 길도 가르쳐주십니다. 곧 그 길은 ‘꼴찌’가 되고 ‘종’이 되는 길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꼴찌가 된다는 것’과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꼴찌가 된다는 것’은 자신을 타인보다 ‘뒤에’ 두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자신을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두는 사람이요, ‘으뜸 자리’가 아니라 ‘미천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단지 ‘자신을 앞세우지 말라’고만 하지 않으십니다. 나아가서, 남 ‘밑에’ 두라고 하십니다. 곧 ‘모든 이의 종이 되라’ 하십니다. 나아가 ‘종’이 되되, 지체 높은 이들의 종이 아니라 ‘모든 이의 종’이 되라 하십니다. 곧 ‘미천한 이들의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타인보다 ‘아래에’ 두는 일입니다. 자신을 채우려 하지 않는 사람, 곧 자기실현을 내려놓은 이요, 오히려 타인의 실현 곧 ‘주인의 뜻을 실현하는 일’을 하는 일이요, 자신이 아니라 주인을 섬기는 일이요, 주인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37)

곧 어린이 같은 무력하고 미천한 이를 받아들여 섬기는 일이 바로 ‘당신을 받아들여 섬기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오늘 <복음>의 앞부분에서 예고하신 무력한 어린이처럼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게”(마르 9,31) 될 바로 당신을 받아들이는 것과 연관됩니다.

곧 그렇게 ‘무력한 당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당신을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일이 될 것’(마르 9,37 참조)이고, 바로 그렇게 하는 이가 ‘첫째’가 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높아지고 ‘갑’이 되어 지배 하고자 하는 이 시대에서, ‘을’이 되어 섬기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첫째’가 되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이는 세속정신이 다스리는 이 세상에 대한 일종의 반역이요 혁명입니다.

그러나 ‘섬김’이 다스리는 ‘섬김의 나라’에서는 ‘섬기는 이’가 첫째가 될 것입니다. 곧 ‘섬김’은 ‘사랑’이 다스리는 하느님 나라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9,35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주님!
자신을 앞세우지도 
위에 두지도 않게 하소서.

이기기보다 질 줄을 알며 
억누르기보다 뒤집어쓸 줄을 알고
업신여기기보다 존경하게 하소서.

자신을 낮추되 
작은이나 무능한 이에게나 
다 같이 낮추고 
타인을 섬기되 
낮은 이나 힘없는 이나
다 같이 섬기게 하소서. 

자신을 실현하기보다 
자신을 내려놓고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악마가 되는 법 : 마중물의 법칙을 어기면 됨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둔다”(갈라 6,7)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세상 모든 일에는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콩을 거두려면 손에 쥔 콩을 땅에 심어야 하고, 재물을 얻으려면 먼저 투자와 희생이 따르는 법이죠.

그러나 만약 아무것도 포기하거나 심지 않고, 단번에 열매만 얻으려 한다면 어떨까요? 오늘은 이를 무시하고 파멸에 빠진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하면 ‘악마가 될 수 있는지’”를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무한한 쾌락, 지식, 권력’을 얻고자 악마(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합니다. 그는 정당한 씨앗이나 희생 없이 손쉽게 열매를 따려 했습니다.

예컨대, 육체적 욕망을 버리지 않은 채 그레첸(마르가레테)의 마음을 얻으려 했고, 헬레나를 차지하고 아들까지 가지려 들었습니다. 게다가 재물마저도 악령의 힘으로 한 번에 얻으려는 욕심에 눈이 멀었죠. 그 결과 자기 방종과 탐욕에 빠져 주변인들을 파멸로 몰고, 스스로도 영혼을 악마에게 넘기는 처지에 이릅니다.

사실 파우스트에게는 ‘자신을 뿌리는’ 기회가 늘 있었습니다. 그레첸을 진정으로 책임지려 하거나, 헬레나를 갈망하기 전에 헛된 욕심을 비우고 청빈과 성실을 지켰다면, 탐욕 대신 다른 결실을 거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마중물을 붓지 않고, 단지 결과만 얻으려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듯, “아무도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다”는 하느님의 정의 시스템을 어긴 것이죠.

그것이 곧 ‘사탄이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악령과 결탁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가진 씨앗은 지키고, 남의 결실만 취하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닙니다.

오늘 복음(마르 9,30-37)에서도 제자들은 누가 첫째가 될지 다투지만, 정작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며 스스로 가장 낮은 길을 택하십니다.

첫째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내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제자들은 희생 없이 자리를 차지하려 했고, 예수님은 이를 가리켜 “가장 낮은 자가 되어 모든 이의 종이 되라”(마르 9,35 참조)며 다시금 일깨우십니다.

반면,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아슬란이 배신한 아이 에드먼드의 죄를 대신 떠안고 돌탁자에서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나니아 세계를 구원하고 “진정한 왕”이 됩니다. 자발적인 희생을 ‘마중물’로 써서, 더 큰 자유와 존경을 이끌어 낸 것이지요.

실제 역사에서도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에 맞서 27년간 감옥에 갇힘으로써 물리적 자유를 내놓았고, 그 덕에 백인·흑인 모두의 신뢰를 얻어 남아공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던 희생이, 오히려 더 큰 평화와 존중을 낳은 셈입니다.

결국, 콩을 심지 않고 콩을 얻으려 하면 그것이 곧 ‘악마가 되는 법’입니다. 그토록 원하던 성취를 악령과의 계약이나 부정한 방식으로 단숨에 얻으려 하면, 파우스트처럼 죄책감과 파멸만 손에 쥐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마중물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어 인류를 구하신 그분의 길이야말로, 하느님 나라의 정의 시스템을 제대로 지킨 사례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영광이나 열매를 바란다면 먼저 그에 합당한 ‘뿌림’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씨 뿌린 이에게 열매를 배로 더해 주신다”(마르 10,30 참조)는 약속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내 자유, 내 시간, 내 자리를 과감히 마중물로써 내놓는 사람이, 결국엔 더 큰 수확을 얻게 된다는 진리를 잊지 맙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어떤 회사도 잘될 때만 있지 않고 잘 안되어서 큰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물론 계속 잘되어서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지만, 그렇게 좋은 일만 계속되는 때는 없습니다. 분명히 나쁜 일도 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낙하가 너무 가파르지 않게 잘 조절하는 사람이 훌륭한 경영자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잘 안된다고 모든 책임을 물어 경영자를 퇴출하면, 회사는 더 큰 위기를 맞이하곤 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일만 생기지도 않지만 반대로 나쁜 일만 생기지도 않습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데, 그래도 인생의 그래프가 우상향하면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강의 시간에서 포기하고 절망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선택이 됩니다. ‘나같이 무능한 사람은 필요 없어!’라면서 스스로 퇴출해도 안 됩니다. 나의 인생은 ‘나’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늘 깨어 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잘될 때는 교만을 멀리하고 더 큰 겸손을 갖춰야 하고, 잘 안될 때는 되돌아보며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생각하면 주님의 ‘늘 깨어 있어라.’라는 말씀이 떠올려집니다. 삶과 주님 말씀은 절대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집중할 때, 보다 바른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특히 희망의 주님이시기에 절망과 포기의 순간에서도 커다란 힘을 주님에게서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 손에 죽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삶처럼 영광이라는 상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하강도 있음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예고를 알아듣지 못하고 또 이에 대해 묻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제자들이 길에 서로 논쟁합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뜻보다 세상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관점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야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9,35)
 
그리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관점이 아니라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기에 깨어 있어야 주님과 함께 주님의 뜻에 맞게 지금 커다란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오는 배려다.

- 메난드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섬기시는 예수님과 모든 이들의 꼴찌는 친분이 깊습니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꼴찌가 세상을 바꿉니다. 모든 이들의 꼴찌가 우리에게 오십니다.

십자가의 힘은 모든 이를 섬기는 꼴찌의 힘입니다. 꼴찌는 높은 데서 떨어지는 법 없이 하느님과 이웃을 섬깁니다.

꼴찌는 앞이 보이지 않아도 길을 찾아 나섭니다. 못 박히는 것은 언제나 꼴찌입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꼴찌가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꼴찌의 본명은 예수님이십니다. 꼴찌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복음입니다. 꼴찌의 행복이 모든 이들과 함께하는 섬김의 행복입니다.

하늘 나라의 문을 여는 꼴찌입니다. 꼴찌의 미덕과 함께 가득해지는 은총입니다. 서로를 섬기는 섬김의 오늘 되십시오. 은총은 섬김으로 더욱 충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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