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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1/13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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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흠숭하며 함께 노래하네. 보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주님,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2025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월 13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1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히브 1,1-6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4-20
오늘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13일
이철규 아우구스티노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6:43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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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잡는 것’과 ‘낚는 것’의 차이

오늘 독서는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 곧 충만한 계시의 시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결정적인 자기 계시’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말씀과 일거수일투족, 그 행동과 삶을 통하여 왜 그분께서 구세주 하느님이신지, 하느님의 생각과 마음, 하느님 눈에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그분의 제자요 아들딸인 우리는 진정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연중 시기는 바로 그러한 시기입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와 그 신비를 차례차례 배워 가며 그분을 만나고 친밀해지는 시간이지요.

오늘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하신 일은 바로 제자들을 부르신 일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다른 모든 공적 활동에 앞섭니다. 

공동체 형성이 하느님 나라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홀로’가 아닌 ‘더불어, 함께’하는 것, 이것이 하느님의 방식이며, 제자들은 그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합니다. 주도권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우리말 번역도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마르 1,17)가 되라고 하십니다. ‘사람 잡는 어부’라고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잡는 것’과 ‘낚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낚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낚는다는 것은 낚시로 한 마리 또는 몇 마리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며 잡을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더욱 친밀하고 인격적인 환대의 공동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이미’와 ‘즉시’와 ‘아직’ 사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오늘 주님께서는 때가 찼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제게 두 가지 질문을 하게 합니다. 어떤 때가 찼는가? 나한테도 때가 찼는가?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때는 물론 대박이 날 때가 아닙니다. 로또를 사고 주식을 하는 사람은 그 대박의 때를 기다리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때는 뒤에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는 것을 볼 때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올 때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심과 함께 하느님 나라는 왔는데, 그 도래를 기다리던 이에겐 성탄으로 그때가 찼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제 당신이 어른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심으로써 그때가 꽉 찼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제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니 하느님 나라가 아주 가까이 왔음을 알라는 말씀인데 그런데 아직 때가 차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왔건만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겁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우리 사이에는 ‘이미’와 ‘아직’의 간격과 긴장이 있고, 그래서 주님의 복음 선포가 필요하고, 주님을 이어 복음을 선포할 제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마르코 복음은 주님의 공생활 시작 얘기와 첫 제자가 부르심 받는 얘기를 동시에 전하는데 첫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곧바로’, ‘즉시’의 사람들입니다. ‘아직’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믿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믿고 ‘곧바로’ ‘즉시’ 따른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회개하라는 말씀을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 전에 하시는데 그런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을 복음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회개가 필요 없고 그것을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생각합니다. ‘이미’와 ‘즉시’와 ‘아직’ 사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에게는 그 ‘때’가 ‘이미’ 꽉 찼는가? ‘아직’ 덜 찼는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따르기 위해 버리기

오늘부터 연중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부터 복음은 <마르코복음>을, 독서는 <히브리서>를 듣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첫 발설’로 시작됩니다. 각 <복음>에서 예수님의 첫 발설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곧 그 복음서의 특색을 잘 나타내줍니다. 

예컨대,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님의 첫 발설은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인데, 이는 마태오복음이 하느님의 의로움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밝혀줍니다. 

<루카복음>에서의 첫 발설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인데, 이는 루카복음이 하느님을 찾는 순례여정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에서의 첫 발설은 “무엇을 찾느냐? 와서 보라”(요한 1,38-39)입니다. 이는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궁극적인 바람인 영원한 생명을 찾아야 하는 바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들은 <마르코복음>에서의 예수님의 첫 발설은 이것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는 네 개의 내용으로 된 문장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신 일이 아무 때나 우연히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이전의 모든 시간이 지금의 이 “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이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로 계획하신 준비해 온 결정적인 “때”(카이로스)임을 밝혀줍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는 “가까이”(원어의 뜻: 손 안에), 곁에 혹은 예수님과 함께 ‘온’ 나라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요 은총이라는 선포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는 결코 가는 나라, 곧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지금 ‘이미’ 온 나라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은 “복음”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요, “회개”는 이를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바로 지금이 “회개의 때요, 믿음의 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를 가져 온 예수님 자신이 곧 “복음”이요,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 이미 현존하는 나라임을 말해줍니다(루가 11,20 참조). 그래서 ‘회개’의 구체적인 모습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복음을 믿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도록 우리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심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마르 1,17)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놀랍게도 그 어떤 무엇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일입니다. 곧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제자들은 아버지도, 삯꾼도, 배도, 그물도, 모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결국, 버린다는 것은 자신의 실현을 위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버리는 것이요,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신의 가치관과 자기 자신마저도 버리고, 반면에, 새로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실, 잘못된 것, 좋지 않는 것은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이지만, 좋은 것으로 여기던 것마저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 더 값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아버지보다도, 생계수단인 배와 그물보다도, 더 값진 예수님을 발견한 까닭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버림”은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하나의 조건이요 방법일 뿐, 결코 목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을 버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찾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리기 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따르기 위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1,15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주님!
언제나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제 자신을 빠져나가 
당신께 나아가게 하소서.

어디에 어떤 처지에 있든지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당신을 따라 
당신의 나라에 들게 하소서.

오늘 제 안에 
당신의 나라를 이루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누가 내가 체험한 ‘복음’(기쁜 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오늘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

예수님은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들은 좀처럼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뜻이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복음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 대답할 수 있습니까? 각자가 설명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의 개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 말씀에 공통적인 해답이 이것일 것 같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예수님을 따르면 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이 ‘존재의 상승’이 곧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을 각자가 체험했어야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행복입니다.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어렸을 때 저의 꿈은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야 죽음이 두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처럼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예쁜 여자 친구가 있어야, 남들보다 잘나야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그런다고 해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슈퍼맨을 꿈꿨습니다. 슈퍼맨은 이 지상의 어떤 고통도 겪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 지상의 모든 고통을 초월하는 존재입니다. 다른 별에서 와서 하늘을 날고 다치지도 않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슈퍼맨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하늘 높이 날지를 못했습니다. 낮게 날다가 나무와 건물과 산에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나는 연습도 했습니다. 세 발짝 뛴 다음에 손을 쭉 폈습니다. 논에서 연습하다가 배가 다 까졌습니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구나!’

혼자서 슈퍼맨이 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더 돈과 여자와 명예에 집착하였습니다. 마치 그것이 복음인 것처럼. 

그러한 세상에서 복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애벌레는 애벌레들이 서로 경쟁하며 올라가는 높은 탑이 있었습니다. 그 탑의 꼭대기가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음이라 여기는 것이었고 저도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비’가 될 수 있다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나비는 꽃들에게 감히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됩니다. 그들이 꽃을 수정시켜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애벌레인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사제가 되라는 부르심에 응답하면 되었습니다. 사제는 애벌레로 사는 삶이 아니라 나비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김경일 교수는 이들이 분명히 착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그들의 일상을 찍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더 많은 친구에게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저의 교수님도 “구체적으로 모든 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알려주지 못하면 그건 네가 모르는 거다”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남에게 가르쳐주면서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디팩 쵸프라’도 자녀들을 그렇게 교육했습니다. 

“너희는 남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만 생각해라. 나머지는 아버지가 다 책임질게.”

슈퍼맨은 경쟁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을 낚는 높은 수준의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다 하이에나처럼 삽니다. 서로 경쟁하여 먹이를 먹으려 하거나 사자 앞에서는 꼬리를 감춥니다. 하이에나는 다치면 버려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이에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명에 응답하기만 하면 됩니다. 

저도 사제가 되어 그 사명에 응답하였고 그래서 모든 것을 쉽게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번도 이 길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점점 더 행복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에겐 복음이었고 이 복음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하느님 자녀로 만들 수 있는 사명으로 초대받았고, 그 초대가 우리를 슈퍼맨으로 만들어줍니다. 이 복음을 체험하고 그 기쁨을 전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고기잡던 어부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2년 정신과 입원 환자 중 22%가 1020세대라고 합니다. 1만 3,000여 명이었던 환자는 5년 만에 1만 7,000명으로 상승했고, 이는 전 연령대 중 가장 가파른 상승 폭이었습니다. 여기에 자살 시도 역시 5년 전에 비해 50% 증가했습니다.
 
이 기사의 말미에는 ‘경쟁’ 때문이라는 이유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소위 미친 경쟁이라고 하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보았던 아이가 생각납니다. 성당 카페에서 학습지를 푸는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성당에 와서 책도 보고 공부도 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기에, 아주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아이가 너무 어려 보이는 것입니다. 물어보니, 아이의 나이는 만 3살. 이렇게 어린데 덧셈과 뺄셈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물어보니, 다른 아이는 지금 구구단을 한다는 것입니다.
 
천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도 떼지 못했는데, 한글을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2~3년에 했던 구구단까지 만 3살의 나이에 하고 있다니 천재가 분명합니다. 이런 천재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3살에 뺄셈, 구구단을 못 한다고 해서 수학 공부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요? 앞서도 말했듯이, 늦게 한글을 익힌 저였지만,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제 또래보다 훨씬 앞서있다고 생각합니다. 책도 10권 출판했고, 현재 또 한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금도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 사회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경쟁보다 함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면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부르셨고,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던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도 부르십니다. 어부인 이 제자들의 능력이 그렇게 뛰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그들이 배운 것이라고는 고기 잡는 것뿐인데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면서 부르십니다.
 
복음 선포하는 일에 그물을 내려 고기 잡는 능력이 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부르셨을까요? 오히려 당시의 율법학자나 바리사이와 같이 하느님 말씀에 훨씬 가까운 사람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굳이 제자들을 선발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지요. 즉,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도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쟁 사회라는 틀에서 벗어나,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 뜻입니다.

 

오늘의 명언

어제 한 일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면, 오늘 당신은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 루 홀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전례력상 성탄 시기가 끝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되는 새로운 첫날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복음을 믿으며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사람을 올바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시몬과 안드레아는 점점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갑니다.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물을 버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숫자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만이라도 하느님의 소중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낚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물을 버리듯 버릴 수 있는 결단이 중요합니다. 회개의 삶은 결단의 시작입니다.

복음은 분명한 길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우리들 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사람 낚는 어부는 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사랑으로 기다리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은 사람들 안에서 더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안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설 용기와 확신입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축은 회개와 복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회개와 복음으로 성장합니다.

낚인 사람이 낚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하느님의 복음이 심장을 뛰게 합니다. 하느님의 복음으로 행복한 연중시기의 첫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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