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렸네.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분 위에 머무르시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그리스도께 성령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사랑하시는 아들로 선포하셨으니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난 저희도 언제나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2025년 1월 12일 주님 세례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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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세례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42,1-4.6-7)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 제 2독서
(사도 10,34-38)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3,15-16.21-22)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3,21)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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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42,1-4.6-7
오늘 제1독서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사도 10,34-38
오늘 제2독서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루카 3,15-16.21-22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그 무렵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35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36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곧 만민의 주님을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을
37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 일어난 일과,
38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ㅁ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12일
안수배 프란치스코하비에르 신부
✚ 주님 세례 축일 소개 00:06
✚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예수성심성당 소개 00:57
✚ 미사시작 01:35
✚ 강론시작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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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하느님께서 우리 곁으로 찾아오신 사건이라면,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께서 참하느님으로서, 죄로 말미암은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우리 마음 깊은 곳으로 더 다가오시어 내 편과 내 짝이 되어 주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에 앞서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하시며 서른 해 동안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고 평범한 우리 인간의 이웃으로 사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우리네 인간 삶의 곡절과 파란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죄인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그러한 처지에 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자비로써 주님께서는 우리들 틈에 끼시어 ‘죄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시기를 마다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참사람으로서, 인간이 겪는 죄의 상처와 분열의 근본 원인을 밝히시고 없애시려 합니다. 인간이 겪는 모든 아픔과 타락의 바탕에는 늘 자신을 드러내고, 형제들을 내리누르는 교묘한 형태의 폭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길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손가락질받는 죄인들 틈에 끼시어 자신을 낮추시고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당신을 파견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모든 주도권을 건네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겸손하게 걸어가는 길, 여기에 인류 구원의 핵심이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우리 인류에게 희망이 찾아옵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머리 위로 홀연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오며 하늘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이는 예수님의 태도에 대한 성부와 성령의 화답이요 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힘으로 당신의 남은 사명, 곧 공생활의 여정을 살아가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령의 세례
어제 복음은 세례자 요한과 주님께서 한 곳에서 세례를 베푸시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내용이고 오늘은 그 축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받으시고 베푸신 세례의 의미를 세례자 요한의 세례와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요한의 세례는 물의 세례이고 주님의 세례는 불의 세례 또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그리고 물의 세례는 죄를 씻는 세례이고, 불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는 태우는 세례이고, 성령으로 그리고 새로운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입니다.
우리는 질문합니다. 세례를 베푸실 분이고,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베푸실 분이 세례를 받으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느냐고. 맞습니다. 죄를 씻는 세례라면 주님께서 받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은 되레 세례의 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공적으로 선포되신 것이며 우리도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모범을 따르는 우리도 이제는 물의 세례에 머물지 말고, 성령의 세례를 받고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성령의 세례를 사는 것일까요? 성령의 세례를 받고 그 삶을 사는 것은 우선 죄에서 벗어나는 것에 그치는 삶이 아닙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많은 신자가 그리고 수도자까지도 죄를 벗어나는 것에 급급하기에 정작 살아야 할 성령과 사랑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 미움의 고통이 너무 커 미워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고백성사도 수도 없이 봅니다만 매번 실패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미운데 미워하지 않으려는 것은 뭘 하면서 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고, 그래서 이런 노력은 성공하기 힘들 뿐 아니라 성공한대도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죄짓지 않거나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수렁에서 벗어나려는 것과 같습니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 수렁에 빠지듯 죄 가운데 허우적거릴 뿐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수렁에 빠지면 구조대의 도움이 필요하듯 죄의 수렁에 빠졌을 땐 구원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주님께 내려와 성령의 세례를 받으셨듯이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해야 하고 우리도 주님처럼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로 주님께서 장엄하게 선포되셨듯이 우리도 주님의 영을 지닌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나야 합니다.
주님의 영을 지닌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나게 하는 것 이것이 성령의 세례이고, 이렇게 될 때 육의 영은 물론 악령도 우리 곁에 얼씬거리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주님처럼 악령과의 한판승부는 거쳐야 합니다. 주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 가시어 악령과 대적하십니다. 광야 그곳은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며 악령만이 있는 곳입니다.
주님께선 아무 도움도 없이 오직 성령과 함께 악령과 대적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셨기에 빵의 유혹을 악령으로부터 받으셨을 때 뱀의 유혹에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달리 빵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하느님께 직행하여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배를 채우십니다.
세상의 권세와 영예도 같은 방식으로 단숨에 초월하십니다. 그러자 악령은 두 손 들고 다음 기회를 노리고 떠나갑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받으시고 주신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새롭게 다시 태어나기
오늘은 예수님의 두 번째 탄생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서의 육적 탄생인 첫 번째 탄일이 그의 어머니께서 성령을 입은 날이라면, 이제 이 두 번째 탄일은 예수님께서 직접 성령을 입은 날입니다. 곧 오늘이 예수님의 신적 생명으로의 탄생일인 셈입니다.
우리의 탄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기로 태어났을 때는 부모에게 축복이 내린 것이지만,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축복이 부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탄생’이요, ‘신적 생명’으로의 탄생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첫 번째 주님의 종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여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내 마음에 드는 이,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을 공정하게 펴리라.”(이사 42,1)고 하십니다.
<제2독서>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주신 일을 선포합니다(사도 10,38).
그리고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들려줍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탄생일인 오늘, 우리도 예수님의 세례와 함께 새롭게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다시 탄생하는 이 두 번째 탄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세례현장에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 현장에서는 ‘두 가지’ 신비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셨습니다. <또 하나>는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루카 3,22)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첫 번째 탄생 때는 주님의 천사만 나타났을 뿐인데, 이제 두 번째 탄생 때는 ‘성령’이 나타나시고, 아버지께서 선포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창조의 장면과 같습니다. 창조 때 하느님의 ‘영’이 물위를 휘돌아 하느님의 전능을 드러내셨던 것과 같이, 이제 똑같은 ‘성령’께서 요르단 강물 위로 내리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비둘기 형상으로 내린 ‘성령’께서는 노아의 홍수 때 푸른 잎사귀를 물어온 것처럼, 새로운 생명을 물어오고 은총의 때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곧 죄 사함이 열리고 구원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탄생인 ‘세례’는 ‘새로운 창조’,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가리킵니다(로마 6,4). 그리고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2코린 5,17; 로마 8,9). 곧 ‘성령’ 안에서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써,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생명’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안에는 새로운 생명이 살고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 놀라운 일인가요!
이는 우리가 성령을 선물로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까닭입니다(1코린 12,13). 그리하여 우리도 그리스도의 힘과 성령의 개입으로 거룩하게 되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디도 3,4-5). 이로써 우리는 주님을 옷 입듯이 입고서(갈라 3,27),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되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사시게 되셨습니다.
참으로, 세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합일시키십니다. 그러니 세례 받은 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건’, 곧 ‘죽음과 부활’이 새롭게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콜로 2,12)
세례 현장에서 벌어진 <또 하나>의 신비로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선포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아버지로부터 선포된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 비추어 알아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2편에서 이스라엘 왕좌에 오르는 왕에게 적용한 말씀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이 선언은 예수님을 ‘왕’으로 축성하시는 장면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세우시는 당신 나라의 ‘왕’으로 선포된 것입니다. 이로써, 당신의 아드님이 다스리는 새로운 나라가 시작되었음이 선포된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우리를 위한 또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단지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온 세상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 스스로 이토록 아름다운 구절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고, 당신의 생명을 입었습니다. 성령의 선물로 거룩해지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신다고 스스로 설명하셨지만, 사실은 세례와 함께 우리 죄인과 같이 된 사건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어 죄인이 되신 사건입니다. 바로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서 말입니다.
마치 십자가에서처럼, 자신을 낮추시어 “반역자의 하나처럼,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이사 53,11-12) 죄인으로 세례를 받으심으로 저희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바로 우리가 새롭게 태어난 ‘생일’이요, ‘의롭게 된 날’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3,22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주님!
제가 당신 마음 안에서
탄생되었으니
당신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당신 사랑의 마음 안에서
당신의 향기 품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입었으니
사랑하게 하소서.
당신 마음을 입었으니
당신의 영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세례의 본질 : 아버지 때문에 두려움 없이 살겠다는 결단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주님은 모든 인간에게 세례의 필요성을 알려주시기 위해 당신 친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세례를 받은 사람일까요? 세례의 핵심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하시듯 ‘하늘 아버지의 인정’입니다.
아버지는 무엇 하는 분입니까? 자녀가 사회에서 굳건히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주시는 기둥과 같은 분입니다. 세례는 하늘에 그러한 분이 계심을 믿겠다는 결심이고 인정받는 시간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세례를 받은 사람일까요? 그는 성공회 주일학교는 다녔지만, 실제적인 신앙인은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육체적인 아버지와는 절연했지만, 그는 한 달에 30달러로 살아보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살면서 해야 할 사명을 깨닫고 그 길로만 나아갑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삶의 모습입니다.
세례받지 못하면 아버지가 없으니 실패가 두렵습니다. 히스 레저는 영화 ‘다크 나이트’(2008)의 조커로 미친 연기를 펼쳤습니다. 그는 이 연기를 위해 6주 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고 캐릭터 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연기를 하고는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28세란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우울증 등으로 복용한 약물 부작용 때문이었습니다.
히스 레저는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누구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습니다. 다만 본인만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실패가 두려웠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가장 연기를 잘해놓고도 두려움과 우울함을 견뎌낼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아직은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유튜브 파인딩 스타 채널에 ‘군인 아빠의 묘비를 껴안은 소년’이 나옵니다. 이 소년의 아버지는 군인이었지만,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마일스는 식당 주차장에서 20달러를 주워 게임팩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식당에 한 공군 중령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아버지도 군인인데 이 20달러를 군인을 위해 쓰고 싶다고 주었습니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무덤을 찾았고 묘비를 껴안고 있는 그의 사진은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늘에 ‘살아계십니다’. 그의 행동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인정해주고 응원해 주고 계십니다. 마일즈 눈에 아버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늘에 아버지가 살아계심을 믿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단이 그의 삶에 영향을 줍니다. 이것이 세례받은 사람의 자세입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는 오로지 ‘믿음’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리오넬 메시가 하늘에 할머니가 살아계신다는 믿음 때문에 이뤄낸 결과를 보십시오. 믿음이 그를 하이에나에서 사자로 만들었습니다. 월드컵 우승까지 시켜가며 나라에 큰 영광을 심어주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라이언은 사자로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를 위해 희생한 밀러 대위와 동료들이 죽지 않고 하늘에 살아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례의 효과입니다. 우리에겐 하늘에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사람은 하이에나로 살 수 있고 사자로도 살 수 있습니다. 하이에나는 먹고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열심히 살지만, 힘이 듭니다. 또 상처라도 입으면 다른 하이에나들은 그를 버립니다. 그러니 약해 보이면 안 됩니다. 하이에나는 하늘 아버지가 없는 세례 받지 못한 사람의 상징입니다.
안토니오 사지 신부의 『치유의 순간』이란 책에 이와 같은 예화가 나옵니다. 하이에나와 같은 삶을 살며 힘겹게 살던 한 사람이 현자를 찾아왔습니다. 현자는 이 하이에나 이야기해 줍니다. 그런데 어떤 사자가 심하게 다친 하이에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 겸손한 하이에나가 되라고 하는구나!’라고 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에 겸손해진 그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변한 게 없어졌습니다. 그는 다시 외로워졌고 사는 게 힘들어졌습니다. 현자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현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집에 가서 하이에나처럼 살지 말고 사자처럼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사자 아버지가 있음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잡초는 해로울까요? 해롭지 않을까요?
농사짓는 분들은 이 잡초 때문에 힘들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잡초를 뽑고 나면 분명 그 자리는 깨끗해지지만, 뒤돌아서면 전에 뽑았었던 자리에서 또 잡초가 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력이 대단합니다. 하지만 잡초는 생태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곡식과 농작물의 생산력 증대에는 해로워 보이지만, 땅을 보호하는 큰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 텍사스의 한 과수원에서는 잡초의 씨를 완전히 말려 버렸습니다(참고로 미국의 과수원은 우리나라 과수원과 크기가 남다르지요). 그러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극심한 토양 침식과 모래바람이 일어나 몇 년 치의 농사를 망쳐버린 것입니다. 잡초가 사라지자, 토양이 황폐화된 것입니다.
불필요해 보이는 잡초도 너무 소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나에게 해로워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세상 전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이도 해롭다면서 제거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창조는 결코 허투루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만을 위해 창조물을 만드신 것이 아니기에, 그 어떤 창조물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의 세례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인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범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세례이기에, 주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면서 우리 모두 세례를 받아야 함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사실 주님의 뜻과 정반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철저히 주님의 반대편에 서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의 일에 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서 제거해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러나 그들 역시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이 세례받으셨을 때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모든 이를 포용하시려는 주님의 모범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갈라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을 살면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남의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주일은 걸어 다녀 보아야 한다
- 인디언의 격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렸다.
구원의 기쁜 소식이 우리들에게 열렸습니다. 세례가 필요한 우리들 삶에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오십니다. 세례는 사랑이며 사랑은 기도의 구체적인 실행입니다. 순종은 구체적인 사랑의 회복입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이 우리들과 같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관계의 세례이며 변화의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사랑받는 우리들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통하여 사랑받는 하느님의 아들임을 공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세례의 길은 하느님의 길입니다. 그 길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말씀과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의 길은 선하게 사는 길입니다. 선하게 사는 길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느님께 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열려있는 사람은 역사와 민중 앞에 겸허하게 스스로를 낮춥니다.
세례는 현실의 모순과 교만을 치유하는 대평등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세례를 통하여 주님의 참모습을 만납니다.
모든 부정을 거부하고 모든 우상화의 유혹 앞에서도 끝까지 신앙인의 삶을 살게하는 것이 세례이며 세례의 참된 정신입니다. 하늘을 열게 하는 세례의 참된 삶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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