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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9/19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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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당신 예언자들이 옳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하느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니 저희를 굽어보시어 저희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섬기게 하소서.

2024년 9월 19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9월 19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9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코린 15,1-11)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7,36-50)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7,47)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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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린 15,1-11
오늘 제1독서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이미 전한 복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루카 7,36-50
오늘 복음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9월 19일
이승화 시몬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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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사랑의 출발점은 하느님이다.

어제 독서에서 보았던 것을 오늘 복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소란한 꽹과리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기도와 단식과 자선도 실천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 무엇을 받았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이 하느님께 드리는 것, 자신의 공로를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거나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실천한 율법과 기도와 단식과 자선은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반면 그의 집으로 예수님을 찾아와 발을 닦아 드린 여자는 선행도 공로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알았기에 많이 사랑하였고, 그 사랑은 천국에서까지 남아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의 죄가 사라지고 나면, 예수님께 보여 드린 그 사랑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루카 7,47)라는 말씀이 눈에 띕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가 큰 사랑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시지 않고,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에 큰 사랑을 드러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이 순전히 인간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면 그 사랑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업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출발점은 하느님이십니다. 먼저 사랑하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도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으로 지금의 자신이 되었고 복음을 선포하였으며 신자들이 자신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서 은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은총을 받았기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다른 은총은 없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오늘 복음에 주님 앞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자이고 하는 여자입니다. 하나는 죄 없다는 사람이고 하나는 죄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입니다. 바리사이 시몬도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우선 주님을 자기 집에 초대한 것이 훌륭하고,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른 것도 훌륭합니다. 사실 스승으로 여겼으니 주님을 초대했겠지요? 그런데 꽤 훌륭하긴 하지만 아직 의로움에 머물지 은총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보통 의로움을 중시하는 자가 은총으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그 대표적인 자입니다. 그리고 죄인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으로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 역시 의로움을 중시하는 보통의 바리사이들과 같습니다. 

이에 비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여인은 예수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것을 익히 들었을 것이고,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한 것 때문에 비난받으셨다는 것도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당시 여인들 가운데서는 매우 용기 있는 행위를 합니다. 내외가 심하던 그때 남자들이 모인 곳에 그리고 죄인을 불가촉천민 취급하는 바리사이 집에 감히 나타납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용기 내게 하였을까요? 용기가 그녀 안에 있었던 걸까요? 밖에 있었던 걸까요?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께서 용기를 주셨던 것입니다. 

사실 그녀는 바리사이 집에 남자들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 간 것이고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둘러싸 있어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간 것입니다. 흔히 용기를 얻어서 무엇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용기를 얻는 방식도 이런 것입니다. 

심리학적인 방법이니 최면술이니 이런 것들을 통해 용기를 얻으려 하지 말고 주파수를 오직 한 곳에 고정하듯 예수님께 집중할 때 그 예수님께서 용기를 주시고 주시는 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여러 부정적인 시선을 무릅쓰고 주님께만 시선을 집중하며 주님을 꼭 만나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는 용서받고 싶었고 그 용서를 통해 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고, 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곧 회개의 마음을 주신 것도 예수님입니다. 주님께서 용서해주실 거라는 믿음과 용서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이제는 죄의 세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화해하고 싶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 화해 요청을 상대가 받아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고 그래서 내 화해 요청에 그도 화답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가 화해를 청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은총을 받는 법입니다. 

수없이 말씀드렸듯이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지 않아 우리가 은총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지 않아 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기를 원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있다면 받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요. 

이미 은총을 살고 있기에? 다른 은총을 살고 있기에? 다른 은총을 받고 싶기에?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다른 은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총이 필요 없다면 모를까 은총을 원한다면 주실 수 있는 주님께 그리고 주시는 주님께 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10월 6일까지 국내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강론을 올릴 수 없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돌아와서 다시 뵙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 때 있었던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7-38)

이 자리에서, ‘죄 많은 여인’이 영광을 입습니다. 죄 많은 그녀는 감히 예수님의 앞쪽에 나서지도 못하고 뒤쪽 발치에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셨습니다. 자신의 머리 위에 간직한 가장 고귀한 머리카락으로 땅에 붙이고 있는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그 발에 당신 입을 맞추고 그 발에 자신의 전부를 쪼개어 부수고 깨뜨려 그 발에 붓고 발라드렸습니다. 하여, 그 옥함의 사랑의 향기는 온 집안, 온 고을로 퍼져나갔습니다.

교부들은 이 ‘죄 많은 여인’을 교회에 비유합니다. 성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교회 말고는 누구도 그런 향유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죄인의 모습을 취하셨으니, 교회가 창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루가복음 해설)


이러한 “창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아름다움은 뒤에 나오는 예수님의 선언으로 그 향기를 뿜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47)

그렇습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우리 집, 우리 공동체 안에는 ‘죄 많은 여인’(교회)이 부은 사랑의 향유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공동체에 파고 든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내게 사랑이 없어, 사랑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까닭이 아닐까요? 사실, 오늘도 내 형제들은 예수님을 섬기며 발을 닦아드리느라 여념이 없는데도, 그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것은 결코 닦아드릴 머리카락이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를 수구려 발까지 자신을 낮출 줄 모르는 까닭이 아닐까요? 아직도 향유를 나를 치장하기 위해 쓰고 있는 까닭이 아닐까요? 값비싼 것을 낭비할 수 없다면서, 오히려 물질에 애착하고 있는 까닭은 아닐까요? 

사실, 오늘도 ‘죄 많은 여인’인 교회는 옥함을 깨뜨려 향유를 쏟아 붓듯 내 발에 사랑이 쏟는데 아직 내가 그 사랑을 보지 못함은 아직도 구린내를 담고 있는 나를 깨부수지 못한 까닭이 아닐까요? 아직도 자신을 감추어 둔 채, 다 부수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요? 결국,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까닭이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온 집안, 온 공동체를 사랑의 향유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그러니 이제는 온 집안에 가득 퍼진 이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에 종일토록 취할 일입니다. 내내 토록 찬미할 일입니다. 그 향기 온 몸에 묻혀, 바다소라처럼 그 향 되어 날릴 일입니다. 오늘 하루 이 그리스도의 향기에 흠뻑 취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향기가 되어 세상에 뿜으시길 바랍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의 불순한 입이 당신의 발에 입 맞추고 거룩해지게 하소서! 저 자신을 깨뜨려 형제들의 발에 입 맞추는 사랑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7,47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주님!
제 영혼의 막힌 코를 뚫으소서.

옥함을 깨뜨려 향유를 쏟듯 
제 온몸에 쏟아지는 
숨 가쁜 당신 사랑의 
향기를 맡게 하소서. 

저를 부수어 
진한 향기의 피가 흐르게 하고 
부서질수록 향기 짙어가게 하소서. 

온 집안에 베인 
감미로운 사랑의 향기를 
내내 토록 찬미하게 하소서. 

많이 용서 받았기에, 
많이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많이 용서받아서 많이 사랑한다면, 많이 사랑받으려면?

오늘 복음에서 시몬이라고 하는 바리사이는 한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뿌리고 머리로 닦는 등의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덜 탕감받은 사람보다 탕감해준 사람을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법칙대로라면 죄를 많이 지어서 더 많은 죄를 탕감받아야만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면에서 특별한 죄를 짓지 않은 바리사이인 시몬은 억울합니다. 사실 모태 신앙인이어서 큰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기가 그리 어려운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사랑받으면 행복합니다. 그러면 반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많이 사랑받으려면 많이 용서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이 용서받지 못하면 많이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사랑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사회복지법인 들꽃마을 창설자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는데 헌신했던 최영배 신부(천주교 대구대교구 들꽃마을 후원회 전담)가 2024년 5월 20일 병환으로 선종하셨습니다. 최 신부는 생전 ‘부랑인의 대부’, ‘장애인의 벗’으로 불렸고 40년 가까이 소외된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리스도의 사명을 몸소 실천했던 ‘천사 같은 사제’였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과 장애인들과 범죄자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용서하는 마음이 커야 합니다.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을 참아낼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신부님께 어떤 자매님이 찾아왔습니다. 천사처럼 사는 분이라 성당에서도 천사란 별명을 지닌 분이신데, 요즘에 한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10년 전 자기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그것을 떼어먹고 미국으로 도망쳤던 사람을 10년 만에 길가에서 보고는 온몸이 마비되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죽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자신은 천사라 다 용서하였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치니 그런 나쁜 마음이 생겨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 신자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사람 모든 마음에 악성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마치 물에 가라앉아 있는 오물과 같아서 그 물병이 쓰러지기만 하면 병 안의 모든 물을 더럽힙니다. 자매님이 천사로 불렸던 것은 지금까지 그 오물이 가라앉아 있기만 했을 뿐입니다.”

또 어느 날 한 남자분이 외도하다가 들켜서 간통죄로 6개월을 복역하고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용서해주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밭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데 천사처럼 아름답게 꾸민 자매가 잠깐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고 내려오다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보고는 얼굴이 마귀처럼 변하여 욕을 마구 퍼부었습니다. 자기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서 손에 물 한 번 묻혀보지 않았는데 이런 창피한 고통을 준다고 빨리 이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자매는 교사였는데 어떻게 교사 입에서 그런 말과 표정이 나오는지 모르겠고, 남편은 기가 죽어서 계속 무릎을 꿇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눈에는 그 자매가 마귀처럼 보였고 형제가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사랑받아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내가 용서받지 못했다면 용서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부님이 신학생 때 직접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당신도 신학교에 늦게 들어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도 도와주는 천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기도 중 가슴 속에서 수많은 구더기가 돌아다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들이 당신 안에 잠재되어있던 죄들이었음을 알고는 5년 동안 밤마다 방에서 울었습니다. 5년이 지난 뒤에야 그것들이 말라비틀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온몸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가벼워졌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서품을 받고 첫 미사 때 바로 교도소로 달려가셨습니다. 남자 4백 명, 여자 2백 명이 넘는 복역자들에게 자신도 똑같은 죄인인데 자신은 들키지만 않았을 뿐, 그래서 천사처럼 제의를 입고 있지만 여러분들은 들켜서 더 많은 고통을 받는 차이밖에는 없는데, 이렇게 고생하고 계신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사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미사는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고 모든 분이 신부님과 함께 울었습니다. 

사실 우리 안에는 교만, 성욕, 욕심이라는 세 가지 죄를 누구나 다 지니고 있습니다. 누구는 그것을 억제하고 있을 뿐이고 누구는 터뜨릴 뿐이지, 같은 죄를 지닌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하기 위해 용서받읍시다. 나의 죄를 볼 수 있는 눈을 주님께 청합시다. 겉으로 드러나는 죄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저도 제가 바리사이였지만,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한 마디로 무너졌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한순간이라도 감사하지 않았다면 그것 자체가 엄청난 죄입니다. 자녀를 부모만큼 용서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부모처럼 사랑받기 위해 모든 이를 자녀처럼 용서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서울 신학교에 다닐 때, 사무처장 신부님께서 학교 운동장을 잔디 구장으로 만들 것이니 신학생들 모두 나와서 잔디를 심으라고 하셨습니다. 기뻤습니다. 지금까지 흙으로 된 운동장이라 미끄러져서 많이 다쳤고, 무엇보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잔디 운동장에서 축구할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며칠 동안 매일 저녁 식사 후 모든 신학생이 운동장에 나와 잔디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 심고 나서는 잔디 보호를 위해 한동안 운동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생이 제일 많이 하는 그리고 인기 있는 운동은 축구입니다. 그런데 공을 찰 수 있는 공간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불만이 많았겠습니까? 결국 그냥 축구하라는 허락과 함께, 꿈에 그리던 잔디 구장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신학생들은 다시 활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신학생을 위한 잔디 구장이지, 잔디 구장을 위한 신학생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서도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미래에 잘 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학업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정치인의 말을 종종 듣습니다. 그러나 깨끗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제발 뽑아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각종 비리로 매스컴에 오르내립니다. 성당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누구 때문에 성당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뜻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합니다. 분명히 사랑의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이 있는 곳에만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바른 죄인인 여자를 보고서는 사랑의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을 잃고 나니,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부어 바른 여자는 끝까지 주님께 대한 사랑을 놓지 않습니다. 주님께 큰 사랑을 드러낸 여자는 예수님께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고 말씀하시지요. 
 
주님을 향한 사랑은 믿음을 통해서 커질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그 사랑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줍니다.

 

오늘의 명언

매일 아침 일과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은, 극도로 바쁜 미로 같은 삶 속에서 그를 안내할 한 올의 실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계획이 서 있지 않고 단순히 우발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면, 곧 무질서가 삶을 지배할 것이다.

- 빅토르 위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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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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