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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9/17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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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계절의 변화를 섭리하시는 하느님, 해와 비와 바람을 다스리시어 저희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께 오롯한 감사를 드리고 조상을 공경하며 가족과 이웃과 화목하여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2024년 9월 17일 한가위 추석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9월 17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9월 17일
한가위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한가위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요엘 2,22-24.26ㄱㄴㄷ)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 제 2독서
    (묵시 14,13-16)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 오늘 복음
    (루카 12,15-21)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오늘 말씀 카드
    (요엘 2,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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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2,22-24.26ㄱㄴㄷ
오늘 제1독서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묵시 14,13-16
오늘 제2독서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루카 12,15-21
오늘 복음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9월 17일
조정래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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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수확’입니다.

씨앗 하나가 싹이 트고 나무에 과일이 열리는 것은 인간의 계획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는 시설 재배를 통해서 겨울에도 과일이나 채소가 나오지만 그래도 농사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추수를 할 때는 하느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됩니다. 요엘서에서 말하듯 추수를 하여 배불리 먹으면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나오는 부자는 많은 소출을 거두고도 하느님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곡식과 재물에만 관심이 있어 그것을 쌓아 두려 하고, 그 재산을 즐기려고만 합니다. 그가 거두었다는 그 많은 소출을 위해서 하느님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닿았을까요? 그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편 요한 묵시록에서는 마지막 때의 심판을, 주님께서 낫을 들고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것으로 나타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곡식이라면, 그들의 삶에는 또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손길이 닿았을까요? 

그러나 모든 이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요엘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어떤 이들은 복음의 부자처럼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즐길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한 묵시록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 일에 대하여 서로 다른 심판을 맞게 됩니다.

재산이 그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며(복음 참조), 주님 안에서 죽는 사람은 행복합니다(독서 참조).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거두어들이실 때를 생각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정의에 따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주었다.”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한가위 명절에 듣는 오늘 요엘서, 주님이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주셨다는 말씀은 그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할 말씀입니다. 정의에 따라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내려주신다니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개신교 번역은 적당히 주신다고 번역하고, 우리의 옛날 번역은 흠뻑 주신다고 번역했는데 어떤 뜻입니까? 우리의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주신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주신다는 뜻입니까?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하느님의 계절 정의에 우리가 따른다면 곧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면 그 정의에 따라 하느님께서 적절히 비를 주신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저의 이런 이해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요엘서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에 듣는 그 유명한 말씀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라는 말씀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 정의에 따라 비를 주신다는 말씀은 마음을 찢는 회개를 너희가 하면 그 보상으로 하느님께서 적당한 비를 주시고 풍성한 수확을 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한가위가 ‘가을 한가위’가 아니라 ‘여름 한가위’라고 합니다. 요즘 여러 곳 동유럽과 동남아시아에서 물난리가 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적절히 비를 주신 것이 아닌데 우리가 하느님의 계절 정의에 따르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두 번째 독서는 또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일이 우리를 따라온다는 말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우리가 되어주는 그 ‘되’로 받는다는 말이고 그 되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자연도 사람도 하느님도 우리가 한 대로 또 그 ‘되’로 되돌려줍니다. 누구를 탓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되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요엘서가 말하는 ‘정의에 따라서’입니다. 그러니 올해 한가위에 내가 풍요롭지 못하다면 내 탓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끝이 빈손이라면 그것도 하느님 앞에서 빈손이라면 그것 또한 내 탓입니다. 

그렇게 욕심을 부렸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빈손이라니! 마음을 욕으로 채우지 않고 사랑으로 채웠다면 풍요로울 텐데! 그래서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라는 오늘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한가위 명절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휘영청 밝고 아름다운, 축복 가득 찬 한가위 되셰요.

오늘 <말씀전례>는 하느님의 축복에 대한 찬양과 감사로 가득합니다. 

<입당송>에서는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라고 노래합니다.

<본기도>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섭리하시는 하느님, 해와 비와 바람을 다스리시어 저희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께 오롯한 감사를 드리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또 <제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요엘 2,26)고 노래하고, <제2독서>에서는 때가 될 때, 구름 위에 앉아계시는 분이 땅 위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들려주며, <복음 환호송>에서는 “뿌릴 씨 울며 들고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 12,15) 것, 곧 생명이 재물에 달려 있거나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깨우쳐줍니다.

사실, 인류역사는 베풂의 역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곧 하느님의 창조와 축복과 선사로 시작된 역사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베풀어졌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외아드님을 건네주심으로 구원을 베풀어졌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은총에 은총을 덧입은 이들입니다. 또한, 지금도 우리가 만난 모든 것들 안에서 저희와 동행하시며 승리로 이끄시는 당신의 사랑을 베푸십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러한 은혜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근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를 깨닫지 못하는 부자에게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비유 안의 이 “어리석은 자”(αφρων: 정신없는 자, 무분별한 자)인 부자는 ‘내일’이라는 시간이 마치 자기 손에 있는 것인 양 “여러 해”를 계획하지만, “오늘 밤”이라도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는 것을 통해, ‘탐욕과 집착’이 얼마나 허망하고 헛된 것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이는 ‘재물’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태도’가 잘못되었음을 말해줍니다. 곧 그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와 의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재물에 집착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자신만의 것인 양 여기고 이웃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마치 자신이 자기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인 양 착각하고 오만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 곧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루카 12,21)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하느님의 재물임을 깨닫고 되고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하늘의 곳간에 재물을 쌓는 사람”(루카 12,33) 입니다. 묘하게도,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유당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게 되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게 되어 ‘전부’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성모 마리아께서 주님의 소유가 되면서 주님을 소유하게 되었듯이 말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가지게 되면 ‘전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 그 누구에게도 소유당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으며, 그 누구의 전부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가지면 전부를 가진 것입니다.”(안토니오 더블유). 그러니 자신의 ‘재물’보다 ‘자신의 영혼’을 관리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재물을 보기에 앞서, ‘나는 누구의 재물인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누구의 소유이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기꺼이 소유당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꽉 찬 보름달처럼 주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꽉 차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내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놀라우신 일을 하신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루카 12,15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주님!
탐욕의 온상지인 
제 자신을 경계하게 하소서.

제 곳간이 아니라, 
당신 곳간에 희망을 두게 하소서.

제 곳간이 비워지고, 
당신 곳간이 채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비워지고, 
당신 뜻의 거룩함을 이루소서. 

주님, 당신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탐욕에서 벗어나는 법: “그래도 숙제니까!”

한가위는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그런데 왜 시스템적으로 매년 이렇게 하도록 모든 나라에서 명절을 지낼까요? 그 이유는 시스템적으로 감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탐욕에 시스템적으로 잠식되기 때문입니다. 

1997년 수원소재 전교 1등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갑자기 오른 성적 때문에 수군거리는 친구들의 태도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 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애들이 무서워요. 말투와 눈빛이, 행동들이….”

300명 중 100등 하던 아이가 한 학기 만에 전교 1등을 하니 그럴 수밖에요. 그렇다면 다음 시험으로 전교 1등을 할 실력임을 증명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시선보다는 다음 시험의 부담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이뤄낸 것들은 이렇게 잃을까 봐 불안합니다. 

1997년 같은 해 성남시에서도 1등을 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1등일 때 죽고 싶다.”라는 말을 많이 했고, “나는 최고인 이 순간 자유를 얻었다.”란 유서를 남기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습니다. 1등을 유지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내가 이뤄낸 것은 이렇듯 지푸라기처럼 잃어버릴까 봐 나를 두렵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탐욕이 많은 부자는 자기 재산을 잃을까 봐 곳간을 넓히려 합니다. 그러나 오늘이 그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부질없습니까? 내가 이뤄놓은 것이나 가진 것들이 부질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모든 죄는 탐욕에서 비롯되는데 탐욕은 가만 있으면 저절로 나를 잠식합니다. 건물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허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탐욕을 이기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없습니다. 

1946년 최초의 마취제 ‘에테르’가 발견되었습니다. 의대 2년생 모턴입니다. 그가 특허 신청 때 지도교수인 ‘웰치’와 실험실을 내어준 화학과 교수 ‘잭슨’이 자신이 특허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셋은 법정 싸움까지 갔습니다. 잭슨은 정신병에 걸렸고, 웰치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모턴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뇌출혈로 사망합니다.

나의 것이면 뭐 하겠습니까? 목숨을 잃게 된다면. 성경에는 ‘못된 소작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소작인은 추수철마다 소출 일부를 주인에게 봉헌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소출의 일부를 받으러 온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하였지만, 주인은 외아들을 보냈습니다. 이는 감사의 봉헌 시스템 안에 자신을 넣지 못하는 사람은 성체를 영해도 그 안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선악과와 뱀 앞에 서 있는 하와와 같습니다. 선악과를 바치지 못하면 뱀에게 자기를 바치는 것이 됩니다. 선악과는 매년 열매가 맺힐 때마다 바쳐야 합니다. 부모를 기억해야 하는 명절이 규칙적으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잡초가 나고 건물이 허물어지는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잡초를 뽑고 건물을 다시 재건하는 일도 규칙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시스템을 이기는 것은 시스템밖에 없습니다. 

유대교에서는 부모 공경 의무(키부드 아브 바-엠 Kibbud Av Va-Em)를 규율로 정해 실천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앉는 자리나 사용하는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부모가 있는 자리에서는 자녀가 함부로 발언하지 않는다. 자녀는 부모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즉시 이를 제공하며, 필요시 부모를 돌볼 책임을 진다.”와 같은 규정들입니다. 

법으로 정해져 있기에 유대인들의 부모 공경은 대단합니다. 그렇게 규율로 자신을 얽어매면서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아빠는 아이에게 과자를 사 주면 규칙적으로 하나만 아빠 달라고 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아이는 아빠에게 하나를 주기도 아까워할 것입니다. 

EBS ‘엄마가 울었다’는 어느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부모님을 30번 칭찬하고 그 내용을 적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30번을 다 채우니 자신이 자랑스럽고 집이 좋아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래도 숙제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강론 중에 종종 제 어렸을 때의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 시대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공감하십니다. 아마 그 시대에는 모두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합니다. 아이들과 라면 봉지를 모아 공을 만들어 야구했다고 하면, “왜요?”라고 묻습니다. 재래식 화장실 이야기를 하면, 자기는 절대로 그런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30년 전만 해도 모두 비슷하게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지 않고 또 경험도 하지 않았으면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세대 간 격차가 크다 보니 대화가 되지 않아 현대 사회는 더 외로운 사회가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혼자 사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30년 전에 10% 미만이었던 1인 가구가 현재는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섰고, 수년 내에 40%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외로운 사회 안에서 더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을 공유할 수도 없고, ‘함께’라는 것을 하나의 짐처럼 생각하기에 정서적인 고통이 커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분열만 보이게 됩니다. 생각의 차이를 서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삶을 사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다른 삶도 궁금해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다른 삶도 인정하고 지지해 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들도 함께해야 할 이웃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인데, 지금의 우리는 점점 혼자라는 틀에 자기를 가두고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도 그 틀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말하는 한가위입니다. 독서와 복음에서 말하는 수확의 풍요로움과 더불어 보름달처럼 밝고 훈훈한 사랑과 정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을 만나고 하느님과 조상님들과 함께하는 감사의 마음을 드러내는 날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좋은 날인데 가족의 붕괴로 혼자서 이날을 지내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가족과의 다툼으로 전화 통화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삶을 인정하지 않고, 지지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가족인데도 함께할 이웃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 마지막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 세상에 머물 것으로 생각하지만, 복음의 말씀처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가 다른 삶을 인정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 사랑의 삶만이 언제고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 “예.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힘차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 김종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들판은 더 한층 깊어지며 황금들녘으로 노랗게 물들어 갑니다. 다시 뜨거운 한가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계절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가위의 중심에는 은총으로 거두어들인 수확으로 차례를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은 언제나 가장 좋은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이와 같이 감사로 이어져 있습니다. 행복은 재산에 있지 않고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느님께 있습니다. 

은총 가득한 발걸음으로 가을들판이 아름답게 물들듯이 내맡기는 우리의 삶도 욕심없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생명 그 자체로 돌아가는 순리의 시간입니다. 마음을 숙여 하느님께 정성들여 기도드리는 한가위 명절입니다.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목숨이 하나이듯 하느님께서도 한 분이십니다. 탐욕이 아니라 목숨이며 목숨은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감사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지나가는 길마다 감사의 한가위가 되게하십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고마운 축복의 한가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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