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은 의로우시고 당신 법규는 바르옵니다. 당신 종에게 자애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희를 구원하시어 사랑하는 자녀로 삼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참된 자유와 영원한 유산을 주소서.
2024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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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코린 6,1-11)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 오늘 복음
(루카 6,12-19)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6,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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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코린 6,1-11
오늘 제1독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3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여러분은 교회에서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9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10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루카 6,12-19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9월 10일
최영진 그레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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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지옥은 존재하는가?
바오로 사도는 몇 가지 죄들을 열거하면서, 이러저러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한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폭력을 쓰시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어떤 것을 말씀하실 때는 인간이 거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교리에서 말할 때는, ‘지옥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로 표현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서 결정적인 것은 인간이 끝까지 하느님을 거부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그들 가운데에도 이런 죄를 짓던 이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코린토는 번화한 항구 도시였고, 도덕적으로 그렇게 훌륭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신자들도 전에는 다른 이들과 비슷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과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겼다는 것은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 번 세례의 은총으로 죄가 없어지고 깨끗하게 되었는데,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간다면 하늘 나라도 다시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어제 독서에서 묵은 누룩을 없애고 반죽을 깨끗이 하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다는 것을 핑계로 하느님께서 한 번 깨끗하게 하여 주신 것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지금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게 말하고 있다는 점도 살펴야 하겠습니다. ‘이교도들’과 구별되는 ‘성도들’은 바깥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 공동체를 하늘 나라에 합당하게 간직하여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힘을 듬뿍 얻으려면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제가 잘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루카 복음은 다른 복음에 비해 그 가운데서도 마태오 복음과 비교하여 평지를 강조하거나 산 위와 평지를 대조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오 복음에서는 그 유명한 행복 선언을 비롯하여 중요 가르침들을 주님께서 산 위에서 하시는 것으로 묘사하기에 그것을 특별히 일컬어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산상수훈과 병행하는 루카 복음이 오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기도와 제자들을 뽑으시는 것은 산 위에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치유해주시는 것은 평지에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하느님께서 산에만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평지에서도 만날 수 있어야지요.
그럴지라도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떠나고 오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그제 주님께서 귀먹은 이를 데리고 나가 따로 만나주셨듯이 하느님과 나만을 위한 배타적인 시간과 은밀한 만남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의외로 우리는 주님과의 이런 배타적이고 은밀한 시간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데 늘 누가 껴있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과 배타적이고 은밀한 시간을 가지는 이유는 밀애를 나누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방해 없이 안식을 취하고 힘을 듬뿍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주님처럼 평지에 와서 지치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프란치스코가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말라고 한 말을 묵상합니다.
이것을 조금 바꾸면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잃지 말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또 일하다 보면 정신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요즘 정신이 없어!’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또는 생각 없이 내뱉습니다.
정신없이 살면 안 되잖습니까? 정신 나간 사람이면 되겠습니까? 이럴 때 우리는 정신 차려야 하는데, 먼저 차려야 할 정신이 기도의 정신/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랑이 올 때 등불을 들고 마중 나가는 것 곧 깨어 있음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헌신의 정신도 차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의 정신으로 주님의 영/성령만 제대로 모시면 헌신의 정신은 따로 차리려고 들지 않아도 차리게 되고 힘을 얻게 됩니다. 기도의 정신으로 주님의 영만 모시게 되면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루카 복음이 묘사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지금 우리는 루카 복음 6장을 읽는데 4장 공생활 시작 부분을 이렇게 묘사하지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의 영으로 충만한 우리는 헌신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오늘 주님처럼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이웃에게 헌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쉬지 못해 지친다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고 잘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쉬는 것이 잘 쉬는 것입니까? 하느님 안에서 쉬어야 잘 쉬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서 쉬지 않아서 지친 것이고,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아 지치는 것임을 묵상하고 반성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름 없이 주님의 뜻을 위해 살다가 가는 사람들
오늘 <복음>에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신 장면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2-13)
이는 마치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를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곳, 시나이 산으로 불러올리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산으로 불러올리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습니다.
그분께서 ‘먼저’ 부르시고 뽑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르신 이, 뽑으신 이가 누구신가? 입니다. ‘누가’ 부르시고 뽑았는지가 그들의 정체성과 사명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곧 ‘부른 이’가 누구인가에 따라, 응답한 이의 삶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곧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이는 대통령이 부여한 일을 하며 대통령의 영광을 입은 것이고,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 이는 하느님의 일을 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에게 부르심 받았고 누구에게 뽑힌 이인지를 항상 기억하여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시기에 앞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셨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밤 새워 기도하여 뽑은 이들은 능력 있고 자질이 뛰어난 이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뽑힌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그런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뽑힐만한 충분한 자격이나 조건들을 갖춘 거룩한 이들이었기 때문에 뽑힌 것이 아니라, ‘뽑혔기에 거룩해지게 된 이들’인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뽑힌 사도들은 이름 없는 무명인들이었고, 뽑힌 후에도 그다지 특별한 내력을 전해주지도 않습니다.
마치, “사도”란 모름지기, 그렇게 ‘이름 없이 주님의 뜻을 위해 살다가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해주기나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러하리라 여기면 될 일일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사도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둥이 건물을 지탱해주고 있다면, 그 기둥을 받치고 있는 것이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초는 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그러기에, 대단히 겸손하지 않으면 튼튼한 기초가 될 수가 없고, 또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교회의 기초인 사도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 이들로 뽑혔나 봅니다. 마치 기초가 건물을 떠받들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듯이, 그들은 타인을 떠받들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뽑으신 다음,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들과 함께 세상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 나가십니다. 오늘 우리도 겸손한 자로, 예수님과 함께 세상 안에서 그분의 뜻을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6,13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주님!
당신이 불러 뽑으셨으니,
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저의 거처로 내어주시고,
저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하오니, 당신 뜻의 실행이
제 양식이 되게 하시고,
제 몸이 당신 사랑으로
녹아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뜻에 맞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미래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만 현재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뽑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 몸에 손만 대어도 병이 낫는 능력을 지니고 계셨지만, 제자들을 뽑으실 때는 매우 신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지만,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범이 되셔야만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뽑을 때는 자기 생각으로 뽑지 말고 기도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이를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도는 겸손한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교만합니다. 대부분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합니다. 모든 죄는 다 이 교만에서 비롯되고 모든 고통도 그것 때문에 생겨납니다. 겸손하여지려면 결정이나 계획을 내가 하지 말고 미래를 아시는 분께 물어보는 시간을 꼭 가져야만 합니다. 아이들은 그것을 할 줄 알지만, 어른이 되면 신이 되었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미래가 현재이신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마지노’ 방어선은 1930년대에 프랑스가 독일과의 동쪽 국경을 따라 건설한 거대한 요새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방어선은 당시 프랑스 국방 책임자였던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이 방어선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프랑스가 겪은 파괴, 특히 독일의 침략에 대한 대응책이었으며, 앞으로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노 방어선 건설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거의 10년에 걸쳐 진행된 기념비적인 작업이었습니다. 이 방어선은 콘크리트 벙커, 중포병 진지, 전차 장애물, 지하 막사, 다양한 요새를 연결하는 터널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정교한 군사 방어 시스템 중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그이 프로젝트는 국가 방위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마지노 방어선은 강력한 방어선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마지노 방어선은 제1차 세계 대전과 같은 정적이고 방어적인 전쟁을 위해 설계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빠르고 기동적인 전쟁 형태인 전격전이 부상했습니다.
독일군은 벨기에와 아르덴 숲을 통해 프랑스를 침공하여 방어선을 우회했습니다. 이 숲은 대규모 군대가 통과할 수 없는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 당신의 전차는 그 숲을 통과할 수 없었을지 몰라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전차는 그만큼 강력해졌던 것입니다. 마지노선은 그렇게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인간의 교만함은 이렇듯 자신들의 생각만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그렇게 지금까지도 수많은 실패와 아픔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둘 다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나는 내가 실제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보다는 적어도 바리 이 점에서 조금은 더 지혜로운 것 같다.”
영국이 19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강력한 하나는 항해술의 발달이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지능을 믿다가 큰 낭패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1707년 클라우즈리 쇼벨 제독이 영국 해안에서 실리 제도 근처의 함대 위치를 잘못 판단하여 4척의 배와 거의 2,000명의 병력을 잃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위도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는 있었지만, 경도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는 없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1714년 경도법을 통과시켜 바다에서 경도를 반도의 정확도로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최대 20,000파운드의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1714년 £20,000의 추정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4~£5백만이 되고 원화로 환산하면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70~80억 원이 됩니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독학으로 시계를 만든 영국의 존 해리슨이었습니다. 해리슨은 경도를 결정하는 열쇠가 바다에 있는 동안 알려진 기준점(예: 그리니치)에서 시간을 유지할 수 있는 정확한 시계를 갖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원들이 자신의 위치와 그리니치 사이의 시차를 알고 있다면 경도를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크로노미터를 사용해 영국은 장거리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나라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나아가 무역과 군사, 식민지 확장에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이와 같습니다. 나의 2만 파운드를 미래를 아는 지식을 위해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가 알지 못한다는 겸손의 지혜에서 비롯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끝까지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로 주님께서 알려주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영원한 생명은 물론 이 지상에서도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콩깍지가 씌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사랑하는 상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좋게만 본다는 의미입니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이렇게 콩깍지가 씌어서 결혼한 친구가 기억납니다. 자기 여자 친구라며 저와의 만남에 데리고 왔는데,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자 친구가 잠시 화장실에 갔을 때, 친구는 제게 물었습니다.
“정말 예쁘지 않니?”
솔직히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그래.”라고 말했다가는 이 친구에게 맞거나 의절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너한테 너무 과분한 사람인데?”라고 말했더니, 너무 좋아서 웃던 이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의 생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의 전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자기를 바꿔놓습니다. 사랑하는 상대가 원하는 모습, 좋아하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를 싫어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사랑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과 연관된 모든 것이 좋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변화됩니다. 여기에 자기 욕심이나 이기심이 자리 잡지 못합니다.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조건이 붙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니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합니다. 이는 진짜 사랑도 아니고, 자기를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과 진짜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콩깍지가 씌어야 나의 진정한 변화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뽑아서, 사도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그 사랑을 직접 보고 받아들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부족함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었지만, 주님의 사랑을 보고 또 마찬가지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렇게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변화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뽑은 제자들이지만, 그들 중에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깁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지도 또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를 사랑하지 못하니, 세속적인 이익만을 챙기게 됩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죽음’이었습니다. 주님을 통해 변화되지 못하면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 콩깍지가 씌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고, 그 사랑 안에서 우리 역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사는 것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라 해도, 이 세계 속에서 사랑과 욕망을 찾아 걸어가겠다.
- 알베르 카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하늘의 뜻은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기도로 힘을 주시는 기도는 기필코 이루어집니다. 절실한 기도로 탄생되는 열두 사도입니다. 이렇듯 열두 사도들은 기도로 살아갑니다. 기도로 부르시고 기도로 뽑으십니다.
기도는 마음을 속이지 않습니다. 부르시는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를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심 또한 기도입니다. 기도로 복음이 필요한 세상에 불을 지르십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우리가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길을 가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복음을 바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알려주십니다. 기도와 함께 예수님과 함께 부르심의 이 길을 걸어갑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로 묶여있는 우리들입니다. 부르심이 희미해간다는 것은 기도가 식어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길의 중심에는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의 새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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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1) | 2024.09.12 |
24/09/11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09.11 |
24/09/09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09.09 |
24/09/08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09.08 |
24/09/07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09.07 |
24/09/06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4.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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