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그레고리오는 베드로 좌에 올라, 언제나 주님의 얼굴을 찾고, 주님 사랑의 신비를 기리며 살았네.
하느님, 하느님 백성을 자비로이 돌보시며 사랑으로 다스리시니 복된 그레고리오 교황의 전구를 들으시고 교회의 목자들에게 지혜의 성령을 내리시어 그들이 백성을 올바로 가르치고 거룩해지도록 이끌며 자라나는 그 양들을 보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2024년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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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코린 2,10ㄴ-16)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4,31-37)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 오늘 말씀 카드
(시편 145,17)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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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1코린 2,10ㄴ-16
오늘 제1독서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10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11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13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14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15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루카 4,31-37
오늘 복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9월 3일
정연진 베드로 신부
✚ 성 대 그레고리오 소개 00:06
✚ 교황님 9월 기도지향 01:31
✚ 미사시작 01:44
✚ 강론시작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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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예수님과 나의 관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마귀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루카 4,34)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어떤 주장이 교리에 맞는지 그 여부를 따집니다. 물론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교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 교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들이 있고, 이를 식별하지 못한다면 이름뿐인 신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를 정확히 안다고 모두 좋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될까요?
오늘 복음에서 마귀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만 여기며 벼랑에서 떨어뜨리려 하였던 나자렛 사람들보다 나아 보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던 것을 마귀는 인정합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4,34).
아직 제자들도 그렇게 말할 수 없던 때입니다. 마귀는 그것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포합니다. 적절한 말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이 예수님보다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께 순종해서 떠나가기까지 합니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길, 진리, 생명이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자신을 멸망시키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방해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신 예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그 사실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현세적 인간과 영적인 인간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두 부류의 인간을 얘기합니다. 현세적 인간과 영적인 인간을. 현세적 인간과 영적인 인간은 보통 이렇게 구분합니다. 현세적인 인간은 말 그대로 현세를 지향하고, 영적인 인간은 현세를 초월하여 저 위를 지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현세를 삽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현세적 인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고, 마땅히 현세를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현세를 열심히 살지 않으면서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예를 들어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처자식 먹여 살리는 데 소홀히 하면서 온종일 기도하는 사람을 우리는 현실도피자나 건달이나 한량이라고 하고, 재산을 몽땅 교회에 갖다 바치고 가족을 팽개친 사람을 광신도라고 하지, 그런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집착과 추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실과 이상이 있는데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고 이상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상에 집착하는 사람은 이상에 매달려있으며 현실은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1층에 있는데 100층을 보며 자기는 100층에 있어야 한다고 이렇게 안달만 하고 있으면 이것은 집착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1층에 있음을 인정하고 차근차근 그러니까 한 계단 한 계단 100층을 향해 오르면 그것은 추구입니다.
반대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 집착하여 이상은 추구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현실을 열심히 살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정도 얘기하면 현세적 인간과 영적인 인간의 차이점이 나왔습니다.
영적인 인간은 현세를 열심히 살지만 현세에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고, 늘 하늘나라를 그리워하고 하늘나라를 향해 나아갑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듯 ‘땅에서 하늘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세적 인간은 하늘은 안 보고 땅만 보는 사람이겠습니다. 너무 열심히 살다가 보니 하늘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바오로 사도가 영적인 인간이라고 함은 성령을 지니고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현세적 인간은 그 반대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오늘 이런 면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하늘도 못 보고 사는 나는 아닌지. 아니, 의도적으로 하늘을 안 보고 사는 나, 그러니까 일부러 하늘을 외면하고 사는 나는 아닌지.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다가오심을 극구 거부합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지 자기의 주님이 아니고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그러니 주님의 오심은 자기에게 멸망일 뿐이니 당신이 아무리 하느님의 아들이어도 제발 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니, 주님께서 나를 멸망시키러 오셨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튼 더러운 영은 더럽게 현세를 집착하는 영입니다. 혹시 성령이 아니라 이 영이 내게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권위 있는 말씀의 힘
“희년선포”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이 전하는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어촌 ‘가파르나움에서의 하루’라 일컬어지는 시작부분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성전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었는데, 루가복음에 나오는 21개의 이적 중에 첫 번째의 이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르침’과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의 ‘치유’를 통해서 ‘메시아로서의 당신의 권위’를 드러내십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은 이미 앞에서 ‘예수님 탄생예고 장면’(1,32.35)과 ‘세례방면’(3,22)에서 선포되었는데, 여기서는 마귀들의 입을 통해 선포됩니다(4,34.41).
그런데 목격자들이 놀란 것은 구마치유가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곧 그분의 말씀의 권위였습니다. 권위 있는 한 마디 “말씀”, 곧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루카 4,35)라는 말씀에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 내동댕이쳤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습니다.”(루카 4,35).
사실, 인간은 악마의 혀에 속아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악의 지배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와를 속였던 악마의 그 혀 놀림을 중지시고, 그에게서 쫓아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인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치유’는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구원의 표징이 됩니다. 곧 희년선포와 마찬가지로 원죄 이전의 에덴으로의 복귀를 보여줍니다.
사실, 악마를 쫓아내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 구마자들도 그러한 일은 해 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워했던 것은 단지 악마를 쫓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몹시 놀랐던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 말씀이 이루어지는 권능과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합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이 나가지 않는가?”(루카 4,36)
“권위”(exusia)란 ‘힘’이란 뜻으로, 발설된 말씀이 말씀한대로 이루어지는 힘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느님의 힘’이 실려 있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게 됨을 말합니다. 그러니, “말씀”이 예수님의 신적 권능, 곧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른 구마자들과는 달리,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면서 당신 스스로의 “말씀”으로 명령하실 뿐, 다른 누구의 이름을 빌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바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교란시키고 분열시키는 온갖 거짓의 혀 놀림을 멈추고, 어둠을 몰아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다름 아닌, 우리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의 힘으로 말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4,34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주님!
진리를 받아들이고
믿는 자 되게 하소서.
진리를 따르며 받드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진리이신 당신으로 새로 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소서.
하여, 관계 맺는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이 빛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누가 가장 마귀 같은 사람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보자 마귀가 이렇게 소리 지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오늘은 마귀의 정체를 알아보려 합니다. 마귀는 일단 예수님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이 하느님의 능력에 휘둘리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들이 느끼는 기쁨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이기는 쾌감’입니다. 이는 모든 죄에 다 들어있고 모든 죄의 밑바탕입니다.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은 자연을 보고 일어나는 사건을 보고 양심을 보고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핑계로 믿지 않습니다. 벌써 여기에는 하느님을 이기는 즐거움이 스며있습니다.
그런데 더 마귀와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서도 이기려는 존재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가리옷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과 가르침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팔아넘겨 죽게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쾌감은 얼마나 클까요? 물론 그 쾌감이 자기를 마귀로 만든다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당신 자신과 동일시하셨습니다. 진짜 마귀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믿으면서 교회를 이기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정통 가르침인 지옥과 연옥 등을 부정합니다.
하느님이 자녀를 만들고 불지옥에 보낼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2,000년 동안 믿어오던 것보다 자기 혼자의 생각이 더 옳다고 여깁니다. 여기서 느끼는 승리의 쾌감은 매우 클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처럼 결국엔 교회 전체를 분열시키는 악마와 같은 사람입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이 계심을 알면서 하느님의 뜻에 자신이 변하기를 원하기보다는 자신이 하느님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마치 내 뜻이 하느님의 뜻보다 더 나를 위해 옳다고 믿는 것처럼.
춘천교구 겟세마니 피정의 집 원장이신 김학배 안젤로 신부가 PBC 강의에서 이런 일화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사제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임신한 자매가 기도해 달라고 오셨다고 합니다. 무슨 기도를 해 드려야 하느냐고 묻자 자기가 딸이 여섯인데 꼭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청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시댁 식구들이 안 믿는 사람들인데 이번에도 딸이면 자신까지 아예 성당에 못 나오게 될 판이라는 것입니다. 생명과 성별을 결정하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어쨌건 신부님은 기도해 주었는데 다행히 아들을 출산해서, 온 시댁 식구들도 아기의 세례식 때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약 20년이 지나 신부님이 피정의 집에 있을 때, 그 자매님이 순례자들과 함께 오셔서 너무 반가웠는데, 그 자매님은 슬픈 표정으로 면담을 요청하였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부님이 기도해서 낳은 아들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큰 사고들을 많이 쳐서 이제는 그 아이가 온 집안의 걱정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아무것도 청하지 말라는 말인가요? 청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결정은 부모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까지 바꾸려 해서는 안 됩니다.
악마가 아니라 천사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얼마 전 한 자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얼마 전부터 매일 미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 좋은 일만 계속 일어났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전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뚜껑이 열렸을 텐데 참아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하게 걱정해야 할 상황에서도 담담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내가 주님께서 뜻을 바꾸기를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힘에 내가 변화되기 위해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악마의 성향에서 천사의 성향으로 변화되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자궁에서는 그분 뜻에 의해 내가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이지 부모가 내 뜻대로 변하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아는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말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주의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말실수를 해서 상대에게 아픔을 줄 때가 많습니다. 나쁜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말실수는 너무나 자주 이루어집니다.
마트에서 우연히 아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오랫동안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청년이었는데 결혼했다고 신앙생활을 멈춘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당 나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이 청년도 알겠다면서 이제 열심히 다니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얼마 뒤, 이 청년의 친한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의 아이가 아파서 너무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수시로 병원 응급실을 갈 정도로 아프고 약해서 그렇게 좋아하는 성당도 제대로 못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성당에 나오라는 말만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싶었습니다. 이 청년을 위한 말이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저의 말실수였습니다. 곧바로 전화 걸어서 사과했지만 저를 만난 이후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말은 과연 어떤 말이 되어야 할까요? ‘말실수’에 해당하는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이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랑의 말이 되어야 할까요? 아픔과 상처를 주는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아픔과 상처를 남기는 죽이는 말이 아닙니다. 대신 구원으로 이끄는 살리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가장 유익한 말이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데 이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악을 없애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어떤 타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예수님의 말씀은 악을 멸망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악을 따르면 사람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죽이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우연은 항상 강력하다. 항상 낚싯바늘을 던져두라. 전혀 기대하지 않은 곳에 물고기가 있을 것이다.
- 오비디우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더러운 마귀의 영에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예수님의 구원이며 정화입니다. 더러움을 하나 하나 벗겨가는 정화의 여정입니다. 맑아질수록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빠짐없이 아시며 은총의 길을 내시며 치유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험하고 어려운 곳 어둡고 더러운 곳 괄시받고 버림받은 이를 찾아나섭니다.
은총을 입은 우리들 삶입니다. 더러운 영은 우리를 시끄러움으로 몰아넣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조용히 끌어안으시며 빛으로 조용히 이끄십니다.
아는 길도 매일의 생활 안에서 주님께 물어 가며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마귀 추방은 간절한 심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깨끗한 정화입니다. 우리를 향해 외치시는 간절한 기도이십니다. 예수님의 구원과 정화에 동참하는 맑은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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