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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1/05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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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로우시다.

주님, 주님을 믿는 저희를 인자로이 비추시고 주님 영광의 찬란한 빛으로 저희 마음을 밝히시어 저희가 구세주를 올바로 알아보고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2024년 1월 5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요한1서 3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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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3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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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요한1서 3,11-21)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복음 1,43-51)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월 5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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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네. 민족들아, 어서 와 주님을 경배하여라. 오늘 큰 빛이 땅 위에 내린다.

 

 

요한복음
1장 43-51절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그 무렵 

43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44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45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5일 05:00
김준호 하드리아노 신부

 

✚ 교황님 1월 기도지향 00:22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8:07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말씀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기도와 묵상을 하는 장소로 무화과나무 그늘을 주로 활용하였다고 합니다. 나타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하느님 말씀과 율법을 자주 묵상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음을 나타냅니다. 

또한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라고 말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나타나엘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매우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성경은 메시아를 위한 장소로 나자렛을 주목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에서는 메시아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타나엘에게 필립보는 “와서 보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첫 번째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가 전한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 그대로 ‘실천’합니다. 예수님께 ‘와서’ 그분을 ‘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이 고백은 나타나엘이 가진 성경 지식으로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고백이었습니다.

많은 신앙인은 말씀을 ‘공부’하고 ‘연구’하여야만 말씀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나타나엘을 통하여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려 줍니다. 

말씀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길은 ‘들음’과 ‘실천’입니다. ‘들음’과 ‘실천’이 빠져 있는 성경 공부와 연구는 성경 지식이 많아지게 할 수는 있지만, 말씀 안에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길로 우리를 반드시 안내하여 주지는 못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듣고, 들은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이 있나요?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와서 보시오.” 

나타나엘의 말대로 나자렛에서는 나올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에서는 좋은 것이 나올 수 있을까요? 예루사람에서도 나올 좋은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실 나자렛에서도 나올 좋은 것이 있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머드팩하기에 좋은 진흙이 나올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메시아는 거기에서 나오지는 않습니다. 메시아는 하늘에서만 오시는 것인데 하늘로부터 찾아오신 것을 성탄이요 육화라고 합니다. 

그러니 나타나엘의 말이 맞긴 맞습니다. 그래서 나타나엘이 거짓이 없는 사람인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나자렛 사람인 것도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메시아가 근본적으로는 하늘에서 오셨지만 경과적으로는 나자렛에서 온 것입니다. 

메시아는 본래 그런 분이십니다. 하늘에 딱 버티고 앉아 계실 분, 하늘을 지키고 계실 분이 아니라 이 땅을 찾아오실 분이시고, 이 땅에 오셔서도 나자렛 한 곳에 죽치고 앉아 계시지 않고 예루살렘이나 이곳 우리게까지 찾아오시기에 경과적이십니다. 

경과적이라고 할 때 經자도 過자도 다 지나감의 뜻이 있기에 메시아는 우리를 찾아오시기도 하지만 지나가시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주님을 자기 고장에 붙잡아두려고 하자 주님께서는 다른 곳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하시며 떠나시잖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찾아오실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찾아가야 하고 만나 뵈어야 하지요. 이번 주 요한복음을 보면 이것의 연속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안드레아에게 메시아를 가리키며 찾아뵙게 했고, 안드레아는 시몬 베드로에게 메시아를 가리키며 찾아뵙게 했고, 필립보에게 메시아가 나타나셔서 제자로 삼으시자 필립보는 오늘 나타나엘에게 주님을 가리키며 찾아뵙게 합니다. 

이때 중요한 행위가 두 가지입니다. 곧 ‘찾아가는 것’과 ‘뵙는 것’입니다. 

찾아가는 것은 열성 또는 열망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땅까지 오신 거리를 생각할 때 베틀레헴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동방박사들이 찾아뵙는 것이나 자기 동네에 찾아오신 주님을 중풍 병자와 동료들이 지붕을 뚫고서라도 찾아뵙는 것처럼 우리도 그 정도의 열성과 열망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뵙는 것인데 뵙는 것은 갈망입니다. 사실 뵙고 싶은 갈망 때문에 찾아가는 열성도 우리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서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불원천리는 보고 싶은 것에 비하며 천 리도 멀지 않고, 보고 싶은 갈망 때문에 천 리도 멀지 않다는 뜻이지요. 

아무튼 우리의 사랑은 두 가지입니다. 갈망과 열성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안에 어떠한 갈망도 없고 열성도 없다면 아무런 사랑도 없다는 뜻이고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있나요? 

갈망과 열성이 있나요?.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거짓과 믿음은 어둠과 빛의 관계와 같다.

 

믿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믿고 싶다면서도 거짓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방법은 이 두 길밖에는 없습니다. 곧 메시아로 만나고 라뽀니로 만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이 둘로 나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진리와 은총을 주십니다. 은총으로 만나면 메시아를 만나게 되고 진리로 만나면 라뽀니를 얻게 됩니다. 

은총은 ‘삶의 이유’를 밝혀주고 진리는 ‘삶의 방식’을 알려줍니다. 어제 ‘서바이브’란 영화에서 우울증에 삶의 의욕을 잃은 주인공이 자신을 위해 죽어가는 한 사람을 살리고 싶어 자신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 이야기 안에서 그 주인공이 만난 사람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진리로 만나는 방식을 알려줍니다.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대단한 게 나올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필립보에게 순종하여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예수님은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나타나엘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보는 것’과 ‘아는 것’, ‘사랑하는 것’, 그리고 함께 ‘머무는 것’은 거의 동의어로 쓰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 이전에 우리를 아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나타나엘처럼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을 더 큰 믿음으로 이끄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아나요? 잘 모릅니다. 잘 안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울 수 있습니다. 솔직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합니다. 

미국 드라마 ‘마인드헌터’는 실제 FBI 프로파일러인 존 E. 더글러스(John E. Douglas)를 바탕으로 FBI 요원 홀든 포드(Holden Ford)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 시리즈는 자신이 범죄 심리학에 대해 확고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믿는 다소 거만하지만 야심 찬 젊은 요원에서 범죄 정신의 깊이와 복잡성을 깨닫는 노련하고 겸손한 프로파일러에 이르기까지 홀든의 여정을 추적합니다.

처음에 홀든은 범죄자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강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사건 해결에 적용하려는 열망과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면서 그는 자신의 초기 가정에 도전하는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에 직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자기 지식이 부족했음을 솔직히 인정한 홀든은 파트너 빌 텐치, 심리학자 웬디 카와 함께 투옥된 연쇄 살인범을 인터뷰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이 인터뷰는 강렬하고 충격적이며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하여 홀든을 인간 정신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노출시킵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홀든의 관점은 극적으로 변합니다. 그는 이러한 범죄자들의 동기와 정신에 대해 실제로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겸손은 그의 결심을 약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더 많이 배우고 이 지식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적용하려는 그의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홀든의 진화하는 접근 방식이 결실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연결을 만들기 시작하고, 범죄 정신에 대해 새로 발견한 이해를 적용하여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여행은 단지 직업적인 여행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여행이기도 하며, 그의 관계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거짓말은 모든 안 좋은 것을 정당화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잎으로 자기를 가리며 자기들이 지은 죄를 자기들이 수습할 수 있다고 믿어버렸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로 죄가 용서받는다는 진리를 무용지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가죽옷은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오직 그 가죽옷만이 자기 죄를 덮어주고 주님 앞에 나설 힘을 준다는 사실을 믿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믿음을 의미 없게 합니다. 그러니 믿고 싶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존재가 됩시다. 어둠과 빛이 공존할 수 없듯, 거짓과 믿음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보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데, 이들은 모두 처음 본 낯선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조용히 혼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더 즐겁게 기차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나쁜 경험이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억지로라도 대화를 나누라는 지시를 내렸고, 실험자들은 지시에 열심히 따랐습니다. 그 결과 처음 생각과 달리 긍정적인 경험을 했다고 답변했으며, 이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즐거웠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실험은 우리 인간이 정서 예측에 미숙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실제로 자신의 어려움은 모두 인간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남 때문에 삶이 어려워졌다고 밝힐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관계 안에서 우리는 긍정의 마음과 만족스러운 결과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많은 이가 고독을 즐기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었을 때 빚어질 잠재적 혼란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혼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본인의 더 큰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가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을 말씀하신 이유, 또 이 사랑의 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긍정적 마음과 더불어 만족스러운 결과는 사랑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모범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굳이 필요 없을 텐데도 제자들을 하나둘 모아서 제자단을 형성하십니다. 
 
어제 복음에서는 요한과 안드레아 그리고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단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그 늘어나는 숫자에 우리의 이름도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말했던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와서 보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주님 안에 하나를 이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더 큰 기쁨과 행복 안에서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은 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 기쁨은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행복이란 하늘이 푸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 요슈타인 가아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거짓으로 하늘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 올릴 소중한 마음은 거짓이 아닌 진실한 마음입니다. 오고 가야 할 진실한 나눔입니다. 그래서 만남은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람들의 고유한 몫입니다. 결정적인 은총의 순간은 언제나 진실한 순간들뿐입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실의 한복판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할 뿐입니다. 안다는 것은 제대로 본다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그의 진가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진실을 나누어 주십니다. 진실을 받아 먹고 사는 신앙의 자녀들입니다. 

진실과 신앙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가두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삶으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진실한 인격입니다. 보이지 않는 참된 진실 참된 진리가 이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거짓이 없는 나타나엘은 비로소 진리를 만난 것입니다. 진실을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오늘도 진실하신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의 일을 하는 좋은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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