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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1/01 (월) 성모마리아대축일 미사

by 평화다방 202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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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어머니, 찬미받으소서. 당신은 하늘과 땅을 영원히 다스리시는 임금님을 낳으셨나이다.

하느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출산을 통하여 인류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으니 언제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로 저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게 하소서.

 

2024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민수 6,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민수 6,24) 성경말씀카드 민수기 성경구절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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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장 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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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민수기 6,22-27)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제 2독서
    (갈라티아서 4,4-7)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 오늘 복음
    (루카복음 2,16-21)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월 1일 (월) 성모마리아대축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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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하느님이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네.

 

 

루카복음
2장 16-21절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매일미사 평화방송

 

 

2024년 1월 1일 05:00
조정래 시몬 신부

 

✚ 성모 마리아 대축일 소개 00:05

✚ 미사시작 01:15

✚ 강론시작 14:43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김재덕 베드로 신부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신 성모님

 

교회는 예수님의 두 가지 본성(참하느님과 참사람)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을 통하여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합니다. 만일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신성(참하느님)이 부정되기 때문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교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어떤 선택까지 하실 수 있는지 잘 보여 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견고하며 절대로 끊을 수 없는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바로 혈연관계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가장 친밀하고 절대로 끊어 놓을 수 없는 관계, 가장 강하고 견고한 관계를 우리 모두와 맺으시기를 바라십니다. 제2독서는 이와 같은 하느님의 열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하느님께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성모님께서는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십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당신께 전하여진 하느님의 모든 말씀에 순명하시는 성모님의 겸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은 성모님께서 보여 주신 모범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오랜 새로움

 

어제 저는 저의 동기 수사님 삼우 미사를 가족과 함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제가 마침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고 올해 2024년을 맞이해야 할 날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연말연시에 우리는 버리고 갈 것과 가지고 갈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가야 할 것은 챙겨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였고, 마찬가지로 수사님에 관련해서도 안 좋은 기억이나 감정은 버리고, 좋은 기억과 감정과 유산은 간직해야 할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에게만 그렇게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올해 나는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선 작년의 무엇을 내가 가지고 살아야 할까 생각해봤는데 아예 새롭게 시작하고 살아가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는 새롭게! 

새 술은 새 부대에! 

작년에 아무리 잘 살았어도 작년이 올해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올해는 새해니 새롭게 시작하고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겠습니다. 

그런데 새로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이 나이 먹도록 이것저것 살아봤는데 안 살아본 새로운 것이 있겠습니까? 사랑 말고 우리가 살아야 할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하느님과 하느님 사랑 말고 살아야 할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코헬렛서가 얘기하듯 태양 아래 새로울 것이 없고 다 있던 것입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그러므로 새롭게 산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사랑 아닌 다른 것을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새롭게 사는 것인데, 새로운 영혼으로 새롭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오스딩 성인이 고백록에서 얘기한 바로 그 ‘오랜 새로움’입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우리가 살아야 할 것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영원까지 살아야 할 사랑, 그 하느님의 오랜 사랑이고 그것을 매일 그리고 매해 새롭게 사는 것인데 오늘 축일로 지내는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성령으로 잉태하면 됩니다. 

새로운 영혼, 새로워진 영혼은 성령의 영혼입니다. 성령으로 매일 천주를 잉태하면 새로운 영혼이고 새로워진 영혼이 됩니다. 그럼으로써 진주조개가 진주를 잉태하듯 성령의 영혼은 사랑을 잉태하여 하느님 사랑을 만들어냅니다. 

잘 아시다시피 모든 조개가 진주를 생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몸 안에 들어온 모래와 같은 이물질을 진주 핵으로 품고, 오랫동안 인고의 시간을 거친 다음 생성되는 것만 진주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몇십 년의 고통을 사랑으로 살아온 결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반드시 고통을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그러나 차츰 성령의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고통을 진주로 못 만들어내는 삶은 고통스럽기만 하고 슬픕니다. 고통이 진주가 되게 올해도 살아가야 하고 고통을 하느님 사랑으로 만드는 과정을 올해도 살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올해 살아가시라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올 한해 고통이 없게 해달라고 여러분을 축복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무슨 축복이냐고 서운하단 소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러는 중에도 올해 평화 주시기를 모세처럼 빌겠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새해 첫날 우리는 구원의 모델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심을 묵상합니다. 사실 누구나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이 세상이 인식할 수 있는 것과 결합해 태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깃불의 어머니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발전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실상 모든 빛의 원천은 태양입니다. 태양도 빛이라 불리지만, 그 태양이 전깃불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태양의 빛이나 전깃불의 빛은 다 같은 빛이라 우리가 보는 한계 내에서 전깃불의 어머니는 발전소라 해도 됩니다. 

빛은 태양이지만, 전깃불의 빛의 어머니는 발전소라 해도 됩니다. 그 발전소가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성모 마리아는 빛을 나으신 일은 없으십니다. 그러나 전기불빛은 낳으셨습니다. 그러니 그 전기불빛의 한계 내에서는 그 빛의 어머니라 불리실 수 있습니다.  

숯불을 생각해봅시다. 내가 숯불을 만들었습니다. 나무와 불을 가져다 한데 모아 숯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나는 숯을 만들지도, 불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 둘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둘을 하나로 묶어놓으니 숯불의 어머니는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성모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사람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의 어머니이십니다. 사람과 하느님을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냥 사람이며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그러면 인성과 신성이 성모님 안에서 결합하였다고 성모님의 공로는 하나도 없을까요? 나무와 불을 다룰 능력을 자녀야 숯불을 만들 수 있습니다. 태양을 잘 받아들여 전기로 전환할 줄 알아야 전기불빛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런 면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을 방해하는 것은 실상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2021년 12월 30일 「매일미사」 묵상글에 청주교구 서철 바오로 신부의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이탈리아로 유학 간 첫 학기에 유독 어려운 과목이 있었습니다. ‘기업 윤리’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언어도 문제였지만 토론 수업이라 도무지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번번이 한마디 말도 못 하고, 그저 멋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날 때쯤 교수님도 답답하셨는지 이렇게 놀리셨습니다. 

“자네는 성탄 방학이 되면 시칠리아섬의 작은 본당으로 봉사하러 갈 것이네. 가서 고해성사도 주고, 성탄 밤 미사 강론을 할 텐데, 신자들 앞에서 떠듬거리며 ‘오늘 밤은 성탄입니다’ 하고 한마디만 하면 신자들이 손뼉을 치고 난리가 날 것일세.”

신부님은 생각했습니다.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신부인 나를 다른 학생들 앞에서 놀리다니.’

신부님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영성 지도를 받는 날이었는데, 지도 신부님을 만나자마자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을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신부님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바오로, 이 일로 배운 게 있어?”

“네. 저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면 절대로 학생을 놀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또 배울 게 있어?”

신부님은 생각을 좀 하다가 “제가 이탈리아 말을 잘 못 해서 이런 일이 생겼으니 언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 또?”

“네. 이젠 없습니다.”

“그럼, 잊어버려!” 

신부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흥분하여 “아니 어떻게 잊습니까? 제가 이런 취급을 당하는 게 말이 됩니까?” 하며 씩씩거렸습니다.

영성 지도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바오로, 너 지금 기도할 수 있어?”

“아니, 지금 기도가 중요합니까? 그 교수가 저를 놀렸다니까요?”

그러자 영성 지도 신부님은 “바오로, 하느님이 중요해, 아니면 그 교수가 중요해? 지금 네 마음을 온통 그 교수의 말에 빼앗겼잖아! 하느님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너의 마음을 그 말에 빼앗겨 하느님은 안 계시잖아. 바오로, 단 1초라도 네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 아닌 다른 것에, 세상 것에 빼앗기지 마!”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신부님은 홍두깨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좋은 생각은 그리스도 생각의 반영입니다. 내가 좋은 생각을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만큼 내 안에 잉태되십니다. 나쁜 생각을 한다면 지혜이신 그분이 그만큼 내 안에서 자리를 잃습니다. 

성모님은 모든 사건을 주님 안에서 묵상하였습니다. 온 정신이 말씀으로 채워져 그분을 낳아 그리스도의 어머니, 곧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목동들의 말을 듣고 “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라고 합니다. 

그분의 생각은 온통 좋은 생각들로 가득 차서 우주보다 큰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영혼은 하느님을 받아들일 만큼 큽니다. 다만 우리가 다른 생각들로 우리 생각을 오염시키고 주님께서 들어오실 틈을 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여기 또 하나 순결한 영혼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2015년 11월 13일, 평범한 가장이었던 앙투안 레리스는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벌어진 테러 사건으로 아내 헬렌을 잃었습니다. 그는 고통 가운데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테러범들을 향해 편지를 썼는데, 페이스북에 게재된 이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 당신들은 특별한 생명을, 내 일생의 사랑을, 내 아들의 엄마를 앗아갔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분노하지 않겠다. 나는 당신들이 누군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당신들은 죽은 영혼일 뿐이다. 나는 내 분노를 당신들에게 선물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은 당신들과 똑같이 무지에 굴복하는 것일 테니. 내가 두려워하고, 같은 나라의 국문들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안전을 위해 자유를 희생하기를 바라겠지만, 당신들은 실패했다.

물론 나는 애통함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이 작은 승리는 당신들에게 양보하겠다. 하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내가 매일 우리와 함께할 것이며, 당신들은 결코 갈 수 없을 자유로운 영혼들이 있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들과 나, 우리는 두 사람뿐이지만 이 세상의 어떤 군대보다도 강하다. 더 이상 당신들에게 쏟을 시간이 없다. 낮잠에서 깨어난 아들 멜빌에게 가봐야 한다. 우리는 평소처럼 함께 놀 것이다. 그리고 이 어린아이는 평생 동안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 당신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이 아이의 분노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든 생각들은 뱀과의 대화입니다. 그 주제는 세속-육신-마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광야에 나와 단식하며 기도하는 게 제일입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만날 때도 단식 중이었고 전날부터 머릿속에는 하루 동안 먹을 유일한 것, 곧 새벽 미사 때 모시게 될 성체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씀이 잉태되고 말씀을 전하며 말씀의 어머니가 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도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좋은 관계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서 아주 오랜 시간 연구했던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1938년부터 시작되어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굳건히 진행하고 있는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입니다. 어렸을 때 겪은 문제부터 시작해서,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기까지 그들 삶의 다양한 경험을 기록했습니다. 이 연구는 최초 참가자 724명에, 그들의 후손까지 1,3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해 3세대에 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진정 행복하고 좋은 삶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밝히고 싶었던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완결되지 않은 연구이지만, 지난 85년 동안 사람들을 추적하면서 수천 개의 질문을 던지고 수백 가지를 측정해서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게 뭔지 알아냈습니다. 
 
직업적인 성취가 정답일까요? 아니면 운동? 또는 건강한 식단은 어떠합니까?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만, 지속적으로 광범위한 중요성을 증명한 한 가지 요소는 바로 ‘좋은 관계’였습니다. 가족 안에서, 직장 안에서, 이웃과의 만남 안에서 이루어지는 ‘좋은 관계’야 말로 이 연구 조사 전체를 인생에 대한 단 하나의 원칙으로 요약합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도 이 관계를 위한 것이 아닐까요? 결국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 안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만을 강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직적인 관계라 할 수 있는 하느님과의 관계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더욱더 ‘좋은 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신앙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철저히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예수님 잉태 소식도 이 믿음으로 받아들이셨으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람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요셉과 예수님과 함께 성가정을 이루십니다. 서로 불목하고 미워하는 관계라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가정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목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아기 예수님을 찬미했지요. 천사의 말을 들었다는 것이 곧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관계’ 속에서 그들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갑니다. 예전의 삶에 머물지 않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전의 삶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좋은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삶.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그 어떤 위대한 일도 열정 없이 이뤄진 것은 없다.

- 랠프 월도 에머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신앙의 여정은 성모님의 삶처럼 하느님과 함께하는 가슴 뛰는 뜨거움의 진실어린 여정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삶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가장 좋은 신앙의 모범이 되십니다. 좋으신 은총은 언제나 좋으신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듯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언제나 함께하시며 가장 가까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낳으시고 예수님과 늘 함께하신 성모님의 여정입니다. 가까이 함께 하시면서도 곰곰이 이 모든 것을 마음 깊이 새기며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 자신의 뜻을 먼저 내려놓으시는 성모님의 삶입니다. 성모님은 바로 우리모두의 어머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매순간 우리를 성모님의 삶으로 이끄십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생명을 성모님께 온전히 맡기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길 때 우리 또한 참 사람이며 참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가 됩니다. 2024년 새해의 시작은 성모님의 삶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은총 가득한 한 해이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가장 좋은 사랑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랑 앞에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쁘게 봉헌하는 것입니다. 소중한 사랑은 소중한 봉헌으로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소중한 우리들 마음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가장 좋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참 사람이 되어 오신 참 하느님을 성모님과 함께 만나는 행복한 한 해의 시작입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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