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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2/29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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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전능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눈부신 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혀 주셨으니 저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어 외아드님의 영광스러운 탄생을 저희가 한목소리로 찬미하게 하소서.

 

2023년 12월 29일 (금)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2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루카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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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2장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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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요한1서 2,3-11)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릅니다.

  • 오늘 복음
    (루카 2,22-35)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2월 29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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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그리스도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시네.

 

 

루카복음
2장 22-35절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2월 29일 (금) 05:00
서광호 베네딕도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52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중요한 것은 신앙의 눈이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시메온은,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꼭 만나게 될 것이라는 성령의 약속을 믿으며, 그때를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가게 된 시메온은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가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 온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심을 알아봅니다. 그 귀중한 존재를 자신의 두 팔에 받아 안고, 눈을 마주치며, 성령께서 약속하신 위로와 구원의 때가 다가왔음을 온몸으로 깨닫습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시메온은 ‘계시의 빛’이며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오신 분의 모습을 자기 눈에 직접 담을 수 있었던, 참으로 복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직접 뵐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약한 믿음이 더욱 굳건하여질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천 년 전 예수님을 목격한 이들 모두가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음을 떠올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요한 12,37). 

이는 눈으로 보는 것이 반드시 신앙과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비록 육의 눈이 그분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본 사람들의 증언으로 그분을 알게 되고 또 믿게 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중요한 것은 결국 ‘신앙의 눈’이 아닐까요? 이천 년 전 예수님을 목격한 이들의 생생한 증언은 성경 말씀으로 남아, 우리가 영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줍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이 말씀은 당대의 목격 증인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았음을 세상에 전하는 신앙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어둠이 있다면

 

요한의 서간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어둠에 관해 얘기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둠과 어둠의 종류에 관해 얘기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어둠 할 때 퍼뜩 떠오르는 것은 앞이 캄캄한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 희망이 전혀 없는 절망과 암울함을 말함입니다. 

두 번째 어둠은 죄의 어둠입니다. 이 어둠이 어제와 오늘 요한의 서간이 얘기하는 어둠인데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제일 처음 한 짓이 숨고 감추는 거였듯 죄짓게 되면 스스로 어둠 속에 숨기에 어두워지는 어둠입니다. 

세 번째 어둠은 미움의 어둠입니다. 미움의 어둠은 일명 지옥의 어둠입니다. 미워하면 우리의 마음은 지옥이 되지요. 

오늘 요한의 서간은 이 어둠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둠의 종류가 이렇게 다르지만, 셋 다 빛이신 하느님이 안 계신다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빛이신 하느님께서 안 계시기에 우리가 절망하는 것이고, 죄가 드러나는 것을 감추려고 빛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숨다가 어두워지는 것이며, 우리 마음 안에 미움만 있고 사랑의 하느님이 계시지 않기에 어두워지는 겁니다. 

제 생각에 하느님의 사랑은 불과 같습니다. 불에서 열과 빛이 나오듯이 하느님의 사랑에서도 우리를 따듯하게 하는 열정과 우리 앞을 비추는 빛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없어서 열정이 식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힘이 없고, 비전(Vision)이 사라져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영어의 Vision이라는 말이 그렇지 않습니까? Vision은 라틴말 본다는 말 Video 동사에서 나온 것이며, 이 말에는 본다는 뜻이 있고 특히 앞을 내다본다는 뜻이 들어 있지요. 

사실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사랑이 있을 때 뭔가 할 열망과 의욕도 있고 미래비전도 있는데 온돌이 냉골이 되듯 하느님의 사랑이 없어서 우리의 사랑이 식어버리면 우리는 미워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구들을 데우는 불과 같고,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사랑을 데우지 않으면 우리 사랑은 온돌에서 냉골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이 없어서 우리 사랑이 온돌에서 냉골로 바뀌지 않았는지 그래서 미워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고 할 수도 없는 나는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어둠이 내릴수록 별은 더 빛난다.

 

‘숀 탠’이란 작가가 쓴 『빨간 나무』란 그림책이 있습니다. 그림책 안에 있는 대부분 그림은 우리 일상에서의 우울한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안 좋은 일만 겹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아무도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습니다. 그냥 나 자신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 안에 사는 한 부속품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나는 희망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지, 난 어디쯤 와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끝은 이렇습니다.

“하루를 시작한 것처럼 그렇게 또 하루가 끝나갑니다.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방 안에 조용히 자라고 있었던 ‘빨간 단풍이 든 나무’입니다. 빨간 단풍은 내 기분을 즐겁게 해 줄 무엇입니다. 그토록 찾던 삶의 희망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그린 모든 그림 안에 그 빨간 단풍잎을 숨은그림처럼 하나씩 그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신경 써서 찾아보지 않으면 거의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소녀는 희망을 찾으려 했지만, 항상 자신 곁에 있었던 희망은 볼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책의 표지에는 온통 낙서투성이인 작은 종이배를 탄 소녀가 물 위에 뜬 빨간 단풍잎 하나를 바라보는 그림이 있습니다. 다른 것들을 보지 말고 빨간 단풍잎을 보라는 메시지입니다. 빨간 단풍잎은 우리 마음을 하느님 나라로 만들어줄 성령의 통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의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을 보리란 희망을 성령께서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의롭고 독실하며 주님 구원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이에게는 성령께서 하늘을 볼 눈을 주십니다. 어둠이 땅으로 내릴수록 하늘엔 어둠이 걷히고 별들이 반짝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의롭고 독실하지 못해 땅만 바라본다는 데 있습니다.

로마에서 공부하던 어떤 수녀님이 1년 철학과를 마치고 절망에 빠져 포기하려고 하였습니다. 석사까지 하려고 해도 앞으로 9년을 더 해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알프스 밑에 사는 반 친구에게 일주일 놀러 오라고 초대받았습니다. 수녀님은 그곳에서 에델바이스를 발견하지 못하면 들어가고 발견하면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1년 더 버텨보기로 합니다. 일주일 동안 땅만 보고 다녔는데 에델바이스는 없었습니다. 떠나기 하루 전 비가 보슬보슬 내릴 때 수녀님은 차에 짐을 싣고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수녀님, 하늘을 봐요!”

비가 내리는 알프스산맥 위로 둥그렇게 구멍이 뚫리고 엄청나게 많은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아, 에델바이스가 알프스의 별이란 뜻이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땅에 난 작은 에델바이스가 아니라 하늘의 에델바이스를 마련하고 계셨는데 눈을 위로 들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성령의 역할이 수녀님의 친구가 하는 것과 같습니다.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나의 의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올려주는 도움의 은총이 성령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는 착한 뜻이 있어야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주님의 뜻을 알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친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더는 움직일 수 없어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왜 존재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나를 만드신 분이 있다면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찾으려 한다면 성령께서 우리 눈을 그분이 계신 곳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령과 함께하는 유일한 길

 

예전에 신부들과 산책을 함께하다가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산책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한 신부가 “뱀”이라며 급박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그 말에 함께 걷던 신부 모두는 움찔했고, 그중에 동작 빠른 신부는 다급하게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뱀’이라고 말했을 때, 실제로 땅에서 뱀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신부의 장난이었습니다. 도망친 신부는 뱀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노끈을 보고서 놀라서 도망친 것이었지요. 노끈이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신부의 말에 ‘뱀’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다른 이의 말과 행동에 깜짝 놀라고 공포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 말과 행동으로 자기 생각을 부정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즉, 직접 보고 판단하면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말로 바꿀 수가 있을까요? 바꿀 수 없습니다. 스스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바꿔야지만 고통스러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주님께서 직접 활동하셔서 이 모든 상황을 벗어나 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이 역시 주님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생명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도 아닙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위대한 사람인 우리는 우리의 생각 변화로 주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따라 성전에 봉헌되십니다. 이 자리에 시메온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 복음은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루카 2,25)라고 전해줍니다. 
 
그는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불평불만만 하는 다른 유다인과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평생을 하느님의 뜻을 찾으면서 기다렸던 그는 드디어 주님의 그리스도를 직접 볼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또 그 뜻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만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주실 거라는 안일한 마음을 버려야 하며, 또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서도 안 됩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다리는 삶. 성령과 함께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좋은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은 늙어서도 항상 찬사를 듣습니다.

- 삶과 죽음에 대한 연극 중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하느님 계시의 빛과 영광은 우리를 내적여정으로 초대합니다. 성탄과 함께 우리는 내적여정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우리들 가운데 탄생하셨습니다. 성탄은 가장 소중한 축복의 시작입니다. 모두가 축복받아야 할 우리들 삶입니다. 

축복은 진심어린 감사입니다. 감사의 봉헌은 가장 아름다운 축복으로 드러납니다. 시작과 끝이 없는 봉헌의 이 여정입니다. 축복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간절한 마음의 봉헌이 너와 나 우리모두를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봉헌을 믿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삶도 기도하는 봉헌의 삶입니다. 쓰러짐도 일어남도 칼에 꿰찔리는 영혼의 아픔도 모두 봉헌입니다. 봉헌으로 우리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납니다. 

모든 것을 봉헌한 후에야 우리의 영혼은 참된 자유를 맛보게됩니다. 봉헌은 족쇄가 아닌 성장이며 축복은 마주볼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함께 서로 축복하는 성탄의 기쁨 마음의 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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