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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2/25 (월) 성탄절 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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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라 불리리라.

하느님, 저희를 하느님의 모습으로 오묘히 창조하시고 더욱 오묘히 구원하셨으니 사람이 되신 성자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2023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온라인 성탄절 낮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3년 12월 25일
성탄절 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성탄 대축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 1,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 1,14) 성경말씀카드 요한복음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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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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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야서 52,7-10)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제 2독서
    (히브리서 1,1-6)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복음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2023년 12월 25일 주님성탄대축일 성탄절 낮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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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거룩한 날이 우리에게 밝았네. 민족들아, 어서 와 주님을 경배하여라. 오늘 큰 빛이 땅 위에 내린다.

 

 

요한복음
1장 1-18절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2월 25일 (월) 05:00
김종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주님성탄대축일 소개 00:05

✚ 노비따스 음악 중고등학교 소개 01:34

✚ 미사시작 02:39

✚ 강론시작 18:3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 

‘구원자’이시고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분께서 탄생하셨다는 천사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날입니다. 주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위의 호칭들보다 심오한 예수님의 정체를 계시하며, 성자 강생의 신비를 한층 더 깊이 묵상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여기서 말하는 ‘한처음’은 세상이 창조되던 ‘한처음’(창세 1,1)을 훨씬 앞서는 시기, 곧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한처음’입니다. 

말씀이신 분께서는 그러한 ‘한처음’의 순간에 생겨나신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이미 존재하고 계셨던 분으로 드러납니다. 말씀은 하느님과 늘 함께 계셨으며, 그분도 하느님이셨습니다. 곧 아버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이신 성자 하느님이셨습니다. 

성부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시어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생명을 지니신 분으로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셨습니다. 곧 말씀은 당신을 통하여 창조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모든 은총의 원천이셨던 것입니다.

말씀이시고 하느님이시며 빛으로 정의되시는 분께서 오늘 이 세상에 몸소 내려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당신의 본모습대로 내려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시어, 곧 인간의 육을 취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사람이 되신 당신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리하셨습니다.

구유에 누워 곤히 잠든 이 아기는 이처럼 놀라운 신비로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초라한 마구간에 가려져 잘 드러나지 않는 영광이지만, 우리의 영적인 눈은 이미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게 어둠이 있다면.

 

오늘 복음은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빛으로 얘기하면서 빛과 어둠에 관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지금 어두운 것은, 빛이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빛이 이 세상에 와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빛과 어둠의 이치는 사실 간단합니다. 어둠은 빛의 반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둠은 빛의 반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빛의 반대는 없고 빛의 반대말도 없습니다. 

어둠은 빛의 반대가 아니라 밝음의 반대이고, 어둠이나 밝음은 그저 빛의 상태들일 뿐이며 빛이 없는 상태가 어둠이라면 밝음은 빛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내가 빛이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고, 빛이 이 세상에 왔는데도 나만 빛이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은 그 빛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고, 깨닫지 못하기에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요한복음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모두 빛을 비추시고, 빛에서 오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모두를 비추는 참빛이신데 그러나 선한 사람은 그 빛을 선으로 깨닫고 사랑하고 받아들여 어둠이 없지만 악한 사람은 그 빛을 악으로 깨닫고 미워하고 받아들이지 않아 빛이 없습니다. 

그러니 빛을 선으로 깨닫는 선한 사람과 같은 빛을 악으로 깨닫는 악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이는 탈렌트의 비유에서 한 탈렌트 받은 사람이 주인을 주지도 않고 거둬들이는 모진 분으로 이해한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한 탈렌트가 선도 은총도 아니고 한 탈렌트 주신 것이 사랑도 아니었으며 그러니 한 탈렌트 주신 분은 모진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빛을 비추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빛을 비추지 않는 빛은 참빛이 아닙니다. 

그러니 아무리 빛을 증언하는 세례자 요한일지라도 참빛이 아니고 선택적으로 그러니까 편애하여 빛을 주는 사람도 참빛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을 빛으로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참빛에 대한 오해가 형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몇 번 믿었다가 배신당한 사람이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하는 것처럼 빛으로 희망을 걸었던 인간들에게서 실망을 여러 차례 한 사람은 이 세상에 참빛이 왔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데도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믿지 못할 놈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참빛이 아닙니다. 

빛이, 빛이 아니라고 믿는 데는 방법이 없습니다. 선이, 선이 아니라고 믿는 데도 방법이 없습니다.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믿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믿음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확신까지 하면 더더욱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요한처럼 빛과 선과 사랑을 증언해도 그는 어둡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에게 주님 성탄을 축하 드리며 빛으로 오신 주님이 앞길을 밝혀주시고, 평화와 기쁨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뱀의 본성을 거스를 두 노를 젓고 있는가?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말씀은 누군가의 생각을 다른 생각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중개자란 뜻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말은 ‘표현’되었다는 뜻입니다. 표현되지 않는 말은 생각일 뿐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표현될 때는 생각과 분리되어 소리로 진동합니다. 이는 큰 희생입니다. 

말을 하지 않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말을 하려면 생각을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이때 상당히 위험합니다.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시당할 때는 그 말을 한 사람도 무시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기 전에 ‘율법’이 있었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습니다.” 율법은 목적지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러나 원죄의 영향으로 우리의 본성은 사랑과 반대로 흐르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배를 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율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율법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바라보기만 할 뿐 뒤로 후퇴할 뿐입니다.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갈 노가 필요합니다. 한 개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두 개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은총과 진리입니다. 은총은 보는 것이고 진리는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고 들음으로써 우리는 동물의 본성을 거슬러 창조자의 본성으로 나아갑니다. 말씀을 들음은 말씀의 전례와 같고 말씀을 봄은 성찬의 전례와 같습니다. 

윌마 루돌프의 삶은 역경을 극복한 감동적인 이야기로 어머니 블랑쉬 루돌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940년 6월 23일 테네시주 세인트 베들레헴에서 조산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22남매 중 스무 번째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윌마는 4살 때 근육 약화를 일으키고 심한 경우 마비를 일으키는 질병인 소아마비에 걸렸습니다. 이 질병으로 인해 그녀의 왼쪽 다리와 발은 약해지고 기형이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그녀가 다시는 걷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블랑쉬는 인종적,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가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간 치료를 위해 윌마를 업고 50마일 떨어진 아프리카계 미국인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집에서 그녀는 또한 윌마의 약한 다리를 하루에 네 번 마사지하는 등 물리 치료 기술을 배우고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윌마에게 신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12세가 되자 그녀는 다리 보호대를 벗어났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농구를 하고 육상 경기를 하며 빠른 속도로 주목받았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100, 200, 400미터 육상 경기에서 3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녀는 단일 올림피아드에서 이 위업을 달성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율법이라는 사랑으로 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게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반드시 은총과 진리를 요구합니다. 블랑쉬는 딸 윌마를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이것이 은총입니다. 그리고 말로도 믿음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윌마는 이 은총과 진리를 흘려버리지 않고 ‘감사’의 감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도 장애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불만이라는 지옥에서 빠져나올 두 노가 되어주기 위해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노를 잡고 젓기만 하면 완전한 감사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매일 단 5분씩이라도 양쪽 노를 저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계속 후퇴합니다. 

은총과 진리로 감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우리 숙제입니다. 이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우리의 두 노가 되어주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우리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탄생하신 주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저희 성당에서 구유를 감사 일기로 꾸민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강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기쁘고 행복한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라디오를 듣다가 고등학생 때 즐겨듣던 팝송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 노래가 너무 좋아서 카세트테이프 이 한 곡만 담아서 일주일 내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계속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명곡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이 노래의 기타 전주가 너무 멋져서 잘 치지 못하는 기타 실력이지만 계속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사랑했고 좋아했던 노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할까요? 지금도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예전만큼은 아닙니다. 
 
이렇게 세상 모든 것은 유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젊음과 열정을 나이가 찬 지금에도 가지고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 세상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까요? 그토록 좋아했던 물건을 지금도 간직하면서 애지중지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자기 몸만 보더라도 유한성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영원히 필요한 것처럼 착각하고, 영원히 간직할 것처럼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영원한 것은 오직 주님의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하느님의 뜻인 사랑 실천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한성을 가진 이 세상에 영원하신 분께서 오셨습니다. 단순히 2,000년 전에 단 한 번 함께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늘 함께 계시려고 새롭게 태어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라고 하십니다. 유한한 세상에 영원함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순간의 사랑이 아닌, 무한한 사랑을 담아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 어렵고 힘들다면서 한숨짓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유한한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무한한 하느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시기에,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한 다발의 생각만 멈추면 평화, 사랑, 기쁨이 찾아온다. 이들은 모두 무념의 상태에서 생겨난다.

- 디켄 베팅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

 

마침내 성탄입니다. 잠깐만이라도 하느님의 탄생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기도드립니다. 하늘의 맑은 사랑이 구유에 내려앉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부족한 우리들에게 아낌없이 내려놓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성탄은 가장 뜨거운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세상을 바꾸시는 아기 예수님의 이름을 뜨겁게 불러봅니다. 작은 것을 위하여 조그만한 행복에서 당신 사랑을 시작하십니다. 

삶을 묻는 우리들에게 맑은 감사로 인사하십니다. 참된 사랑을 만나면 또 다른 사랑이 탄생합니다. 참된 사랑이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법을 아기 예수님을 통해 배우는 성탄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고향은 우리들 마음 여기입니다. 하느님께서 기꺼이 우리의 가족으로 오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가족이시기에 평화이며 영광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모두의 아기가 되십니다. 덮어주고 감싸주어야 할 사랑입니다. 가장 춥고 가장 아프고 가장 외로운 이들의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우리는 만납니다.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우리들에게 기쁘게 태어나시는 하느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드립니다. 감사의 성탄이 막힌 우리 사랑의 숨구멍을 끝내 열듯 하느님 탄생을 뜨겁게 만납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감사와 기쁨의 성탄을 성모님과 성요셉 목동들과 가축들과 그리고 우리모두 함께 축하드립니다.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 우리에겐 성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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