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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2/22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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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영원한 문들아, 일어서라. 영광의 임금님 들어가신다.

하느님, 죽음에 떨어진 인간을 굽어살피시고 저희를 구원하시려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으니 저희가 구세주의 강생을 경축하며 마침내 그분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12월 22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2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자] 12월 22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네. (루카 1,46)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네 (루카 1,46) 성경말씀카드 루카복음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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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1장 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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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무엘기 상권 1,24-28)
    한나가 사무엘의 탄생을 감사드리다.

  • 오늘 복음
    (루카 1,46-56)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2월 22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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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민족들의 임금님, 교회의 모퉁잇돌이신 주님, 어서 오소서. 흙으로 빚으신 사람을 구원하소서.

 

 

루카복음
1장 46-56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46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2월 22일 (금) 05:00
심재현 치릴로 신부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7:01

 

 

 

그 외 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행복은 다른 길에 있지 않다.

 

성모님의 인사말 소리에 엘리사벳의 태 안에 있던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던 것처럼(어제 복음 참조), 엘리사벳의 칭송을 들은 성모님의 마음도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기’ 시작합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마니피캇’(성모의 노래)이라고 하는 이 아름다운 노래로 기쁨을 표현하시는 이유는 무엇보다 주님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나자렛이라는 시골에 사는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여인에게서 그토록 큰일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당신 체험을 바탕으로 고백하시고 찬송하시는 주님께서는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 통치자들, 부유한 자들’보다는 ‘비천한 이들과 굶주린 이들’에게 더 마음을 쓰시고, 오히려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심오한 뜻을 펼치십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그제 복음).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신분을 ‘종’으로 고백하십니다. 낮은 자리로 내려가 겸손한 마음으로 가장 높으신 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종’을 가장 높은 자리에 앉히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이제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으로 불리시며, 모든 세대가 그분의 행복을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어제 복음). 

행복은 다른 길에 있지 않습니다. 성모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고 주님께 순종하며 그분 말씀이 실현되리라 굳게 믿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불행의 길은 어떤 것일까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4,11).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십니까? 사람이 되신 겸손함으로 다가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곧 맞이하게 될 우리의 마음속 생각이 교만하여지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빠른 것만 추구하면 주님을 놓칠 수 있다.

 

영화를 잘 보지 않습니다. 볼 때도 있지만, 책에서 영화에 대한 소개가 나올 때 강의 자료로 쓰기 위해 영화를 볼 뿐입니다. 그러나 영화 보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영상을 보는데 눈이 쉽게 피곤해져서 ‘빨리 보기’를 눌러서 영화를 봅니다. 그리고 원하는 장면을 찾게 되면 어떻게 이 부분을 강의 때 쓸지를 떠올리면서 그 부분만 천천히 봅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봐서일까요? 영화의 내용을 잘 모르고, 또 영화가 크게 와 닿지도 않습니다. 매번 이렇게 영화를 봐서인지 영화에 정을 갖지 못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어떤 영화도 다 재미있게 봤지만, 지금은 아주 재미있다는 영화도 또 온 국민이 본 영화라고 해도 관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이렇지 않을까요? 주님 안에서 빠른 결과만을 찾고 있다면, 그래서 미사나 기도에 있어서 ‘빨리 빨리’만 외치고 있자면 주님의 그 깊은 뜻을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커다란 은총도 깨달을 수 없게 됩니다. 영화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야 감독의 의도와 배우들의 연기가 와닿는 것처럼, 주님께도 시간을 갖고 정성을 기울여야 주님의 뜻과 주님의 활동이 더 크게 와닿게 됩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너무 빠른 결과만 원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정성을 기울이는 주님과의 관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사 시간도 빨리 끝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천천히 그 의미를 찾으면서 미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 시간도 해야 할 기도만 얼른 하고 마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빠른 것만을 추구하다가 미처 주님을 놓쳐 버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의 찬미가를 부르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찬미가를 통해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친다고 하십니다. 또한 당신 팔로 권능을 펼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며,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해 감사의 찬미가를 부르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어느 순간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하느님 안에 머무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그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고, 언제나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 모범을 기억하면서, 빠른 결과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께 함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노력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어떠한 일도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알의 과일 한 송이의 꽃도 나무의 열매조차 금방 열리지 않는다. 하물며 인생의 열매를 노력하지도 않고 조급하게 기다리는 것은 잘못이다.

- 에픽테토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느님께서 선택하시는 사람들

 

오늘 복음은 ‘성모 찬송’입니다. 성모 찬송 안에는 성모님의 겸손함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이 겸손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겸손한 이라야 당신 선택에 더 감사할 수 있고 그래서 당신도 더 기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엄청난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한 운동선수가 된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Michael Ohe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마이클은 마약에 중독된 어머니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마이클의 아이큐는 80입니다. 마이클은 오갈 데가 없어서 비를 맞고 배회합니다. 이때 한 백인 상류층 가족이 그를 집으로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그의 운동신경을 알아보고는 그를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로 키울 계획을 세웁니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생활하며 커다란 화제를 일으킨 오어는 모든 대학팀이 원하는 선수가 됩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려면 공부도 어느 정도 해야 합니다. 가족은 과외 선생들을 대주며 오어의 공부도 돕습니다. 다행히 성적을 높여 대학에 들어갔고 프로팀에는 수백억을 받고 입단하여 나중엔 슈퍼볼도 우승합니다. 

왜 모든 게 부족할 게 없는 상류층 가족은 오어를 선택했을까요? 자신들이 아니면 오어가 제대로 꿈을 펼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있다면 그만큼 능력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또 그들이 아니었으면 절대 하지 못했다는 것을 오어도 알기 때문에 그 가족에 지금도 감사하며 삽니다. 

도자기를 배우겠다는 한 청년이 도자기를 잘 굽기로 유명한 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그 도자기 장인은 젊은이를 잘 맞이해 주었고 공장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좋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가 거실에 있는 유리 상자 안에 든 꽃병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았습니다. 

“저 작품은 정말 귀한 것이겠군요. 선생님께서 만드신 것입니까? 저에게 파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얼마면 되겠습니까?” 

도자기 장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젊은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나에게 얼마를 준다고 해도 저것은 팔 수 없는 물건이라네. 내가 자네와 같은 젊은 시절 하는 일은 잘되지 않고 그래서 술과 도박으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우연히 다른 도자기 공장에서 쓰고 남아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흙을 발견하였고 그것을 주어다가 저 꽃병을 만들고 구운 것일세. 나도 처음엔 저렇게 좋은 작품이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버려진 흙으로도 저 정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고, 그때부터 술과 도박을 끊고 열심히 정진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네. 내가 남이 버린 아무 쓸데 없는 흙을 가지고 저런 작품을 만들었지만, 또한 저 작품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네. 그런데 어찌 돈을 받고 팔 수 있겠나.”

버려진 흙으로 남들이 만들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 때 자기 능력이 드러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것으로 가장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자기 자신도 만족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당신 자신을 표현할 때, “집 짓는 자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라는 시편은 인용하십니다. 사실 세상에서는 가장 천대받고 가장 큰 죄인의 모습으로 돌아가셨지만, 하느님은 그 천대받는 돌로 당신 나라 건설을 위한 주춧돌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성모님께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비천한 당신 자신의 처지를 굽어보시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큰일을 하셨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 능력도 쓸모도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인간 구원을 위한 가장 귀한 도구가 되게 하신 하느님을 어떻게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피카소는 버려진 자전거의 안장과 손잡이로 ‘황소 머리’라는 작품을 만들었고 1993년에 293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훌륭한 작품을 남긴 피카소도 버려진 자전거로 만든 황소 머리를 보고 가장 기뻐할 것 같습니다. 

만약 성모 찬송처럼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으로 살고 싶다면 성모님처럼 자신을 아무 쓸모도 없는 비천한 존재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하느님은 버려진 돌을 머릿돌로 만드는 것을 즐기십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성모 찬송을 듣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라는 말은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사제가 되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사제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그런 나약함을 보시고 저를 사제로 불러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약하다는 것, 비천하다는 것, 그것은 주님께 부르심을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에 착안하여 자신이 어떤 자리를 맡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을 그 자리에 앉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자신이 없는 이를 앉힙니다. 그리고 믿어주면 그는 결국 다른 누구보다도 뛰어난 봉사자가 됩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해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는 사제로서는 기쁨이 두 배가 됩니다. 하느님도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시고 그러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구원의 은총을 받은 우리도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어제 복음은 엘리사벳의 마리아 찬미였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하느님 찬미입니다. 그런데 두 찬미의 내용도 아름답지만 찬미하는 두 분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찬미하고, 마리아는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우리도 서로 이런 식이면 좋겠습니다. 

이웃이 은총을 받았을 때 시기하거나 흠잡지 말고 칭찬하고 칭송하고, 그 칭찬과 칭송을 받은 사람은 은총을 자기 공으로 꿀꺽 삼키지 않고 은총을 주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림으로써 덕을 돌려드리는 그런 식 말입니다. 

아무튼 오늘 마리아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미의 내용은 구원의 은총에 대한 찬미입니다. 

그런데 구원의 은총에 대해 찬미하지만 먼저 자기에게 베푸신 은총을 찬미하고 이어 자기를 통해 모두에게 베푸신 은총을 찬미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미천한 자신을 구원해주심에 대해 찬미하는데, 마리아가 자신을 미천하다고 하는 뜻을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사무엘기의 한나가 미천한 자신을 구원하신 하느님께 찬미하는 것과 같이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둘 다 미천한 자신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찬미하지만, 한나는 아기를 못 낳는 처지였고 그래서 진짜 비참한 처지였던 데 비해 마리아는 전혀 그런 처지가 아니었으니 마리아가 자신을 미천하다고 한 것은 다른 의미라고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입니까? 사람들 앞에서 미천함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 앞에서 미천한 것입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은총 앞에 있는 우리는 미천하고 그 은총을 받기에 늘 죄인입니다. 우리는 종종 그 반대잖아요? 

존재로나 사랑으로나 은총으로 모든 면에서 더 크신 하느님 앞에서는 무시하고 대들고 원망하고 하느님보다 훨씬 못한 미천한 인간 앞에서는 자신이 쫄아들고 열등감을 느끼며 자기를 미천하게 생각하잖습니까? 

그러나 마리아의 미천하다는 느낌은 성사적인 것이고, 그렇기에 하느님 찬미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뿐 아니라 모두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은총으로 찬미가 확장됩니다. 

이것은 즈카르야의 찬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느님 구원의 은총을 제대로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 현상입니다. 

하느님은 한 사람만 또는 자기만 구하시는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하느님은 한 사람의 구원을 통해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도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으면 날름 삼켜버리고 입 싹 닦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나누라고 주신 은총을 확장하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구원자 하느님께서는 정말 우리를 잘 아십니다. 다함이 없으신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가시는 구원의 여정입니다. 유일한 우리 삶의 의지처이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끝없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아픔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계속 하십니다. 

우리를 끝까지 살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살피시는 하느님의 자비로 우리는 우리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느님 자녀로 살아가는 진정한 오늘의 행복입니다. 

바로 오늘이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큰일을 하시는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 그래서 복잡한 세상 일에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영원히 미칠 하느님의 자비를 믿기에 우리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기뻐 뜁니다. 더 없는 행복 더 없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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