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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12/05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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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주님이 거룩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오시리니, 그날에는 큰 빛이 비치리라.

주 하느님, 저희의 간청을 자비로이 들으시어 시련을 겪는 저희를 인자로이 도와주시고 이 세상에 오시는 성자께 힘을 얻어 다시는 옛 악습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2023년 12월 5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12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이사 11,2)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라. (이사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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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11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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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12월 5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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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

 

 

루카복음
10장 21-24절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신다.

 

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2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12월 5일 (화) 05:00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지민준 베드로 카니시오 신부

 

📌 교황님 12월 기도지향 00:22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7:51

 

 

 

의정부 용현동성당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5일 (화) 10:00
의정부 용현동성당
김유철 요한 보스코 신부

 

📌 미사시작 15:06

📌 강론시작 24:10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5일 (화) 11:00
남양성모성지 미사
이상각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 미사시작 0

📌 강론시작 45:15

 

 

 

팔로티회 실시간 미사

 

 

2023년 12월 5일 (화) 16:00
팔로티회 분당
김지학 요셉 신부

 

📌 성체조배 0:00:2

📌 미사시작 1:29:52

📌 강론시작 1:37:4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왜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이 지혜가 감추어질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 감추거나 드러내시는 ‘이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신비를 가리킵니다. 이는 하느님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이 지혜가 감추어질까요? 그들의 ‘지혜’가 하느님의 지혜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그리스 말로 ‘네피오스’), 곧 세상의 지혜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이들이 하느님의 지혜를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나는 이 백성에게 놀라운 일을, 놀랍고 기이한 일을 계속 보이리라. 그리하여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는 사라지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는 자취를 감추리라”(29,14). 

하느님의 지혜, 곧 그분께서 계획하신 놀랍고도 기이한 일은 결국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통한 아드님의 구원으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에 관하여 깊이 통찰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들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2-24).

하느님께서는 철부지들인 우리에게 당신의 심오한 지혜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 지혜를 얻게 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며, 우리가 선포하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서 그 나름으로 ‘지혜롭다는 자들’이 그런 우리를 어리석은 사람 취급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그들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다는 사실을 떠올립시다. 순간의 부끄러움 때문에 십자가를 등 뒤로 숨기는 일이야말로 정녕 어리석은 행동이지 않을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신앙의 자세

 

흥미로운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문에서 한 사람을 맞이하면서 말합니다. 
 
“자, 이제부터 당신이 살면서 행한 착한 일들을 모두 말해 보시오. 그리고 점수를 합산해 봅시다. 합산한 점수가 1,000점이 넘으면 즉시 하늘나라에 갈 것이오.” 
 
“저는 15살 때부터 매일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큰 계산기를 꺼낸 베드로는 “이것은 0.5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곧바로 “저는 묵주기도를 자주 바쳤습니다. 10만 단쯤 될 겁니다.” “이것은 0.75점입니다.” 또 말 했지요. “성찰하면서 회초리로 제 등을 수없이 매질했습니다.” “0.8점 주겠습니다.” “성인전을 읽었습니다.” “0.9점 주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자기 선행을 베드로 앞에서 고백했지만, 점수 얻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5시간 내내 말한 뒤에 얻은 점수는 고작 20점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울부짖었습니다. 
 
“아이고, 이건 정말 불가능하잖아요. 당신이 저를 하늘 나라에 집어넣어 주시지 않으면, 제힘만으로는 도저히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잖아요.” 
 
바로 그 순간 종소리가 울리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000점 받았습니다. 이제 하늘 나라에 들어가시오.” 
 
주님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 나라는 자기 공적만으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믿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철부지를 통해 창조주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찬양할 수 있는 신앙의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재주를 통해서 또 본인의 열심한 생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 별것 아닌 철부지의 모습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넓은 사랑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인 우리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 사랑의 하느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중요하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을 믿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오류로 가는 길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진실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이다.

- 루소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매일 행복해지는 간단한 비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십니다. 우리도 성령 안에서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철부지 어린이들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요? 행복의 비밀입니다. 그들에게 행복은 부모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간이란 존재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 성장한 어른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찾습니다. 그러나 철부지들처럼 온 존재를 다 해 찾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언가를 볼 수 있고 무언가를 들을 수 있으며 무언가를 깨닫고 또 무언가를 전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즐겁게 사는 비밀입니다. 

57세에 시골에 30만 평의 땅을 사서 정원을 꾸며 『타샤의 정원』이란 책도 출판한 타샤 튜더는 날마다 행복하다고 합니다. 어떤 특별한 일을 하기 때문일까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일상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 뿐입니다.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움을 듣고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정원 가꾸기는 물론이요, 그림그리기도 좋아합니다. 지금까지 100여 권이 넘는 그림 동화도 집필하였습니다. 자신이 가꾼 땅에서 자라는 꽃들을 보며 거기서 듣는 내용을 동화로 쓰고 사람들과 나눕니다. 

결국 나의 행복은 일상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그 무엇이 하느님이면 됩니다. 하느님은 진리이시고, 선이시며, 아름다움이십니다. 타샤는 아름다움을 선택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는 삶입니다. 타샤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나무나 꽃을 심으며 돌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모든 꽃이 다 좋아요. 정원 가꾸기의 좋은 점은 우울할 틈이 없다는 거예요. 정원은 나의 자랑이요 행복의 원천이죠.”

보면 듣게 되고 들으면 알게 됩니다. 이것이 순서입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어디에 묵으시는지 보려 하고 보며 듣고는 믿었습니다. 믿고는 성령으로 기뻐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조자의 사랑’을 보고 싶어 해야 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불안할 때마다 부모님의 사랑을 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은총입니다. 그 은총 속에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이것을 들었습니다. 결국 알게 되는 것은 부모의 정체입니다. 나의 부모가 나의 참 부모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기쁨 속에서 살게 됩니다.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성체를 보고 그 안에서 주님 음성을 들었으며 그래서 하느님께서 참 나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령으로 기뻤습니다. 

이런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보고 듣고 알고 싶어서 기도합니다. 기도하려면 일단 보아야 합니다. 주로 읽습니다. 듣기 위해 묵상을 합니다. 그러면 깨달음을 주시고 그 기쁨 속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묵상하는 이의 기쁨입니다. 

저의 정원은 성체가 모셔진 곳입니다. 그곳은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하느님의 정원입니다. 그곳에서는 아름다운 것만 봅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깨달은 것을 글로 써서 나눕니다. 

매일의 보고 듣고 깨닫고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삶이 행복할지, 우울할지가 결정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무엇이 자라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들어가는 게 나옵니다. 결국 무엇이 나오느냐가 우리를 즐겁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듭니다. 타샤 투더는 말합니다. 

“꽃이 행복한지 아닌지는 바라보며 알 수 있듯, 우리 역시 좋아하지 않는 곳에 살고 있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보는 것을 보라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고 하시는데 옛 예언자들은 제자들이 보고 있는 당신을 보고자 하였지만 보지 못한 것에 비해 제자들은 그들이 못 본 당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보는 것을 봤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보는지 본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는데 요즘의 나는 무엇을 보나?! 

이번 대림절을 앞두고 대림절의 실천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같이 사는 형제가 이번 대림절엔 술을 끊겠다고 한 것에 자극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도 저는 술을 줄이기는 해도 끊을 생각이 없고, 오히려 유튜브 보는 것을, 더 정확히 얘기하면 시사 토론 유튜브 보는 것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것들을 보지 않았었고, 오히려 무슨 수도자가 유튜브를 보냐며 언짢게 생각했으며, 유튜브 중독인 사람들을 일종의 맹인이라고 비판했던 사람이었지요.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봐야 할 눈으로 특정 유튜브만 보면서 복음적인 시각은 잃고 그 유튜브의 시각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유튜브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유튜브도 많은데 특정 유튜브에 세뇌되는 것이 나쁘고, 특정 유튜브도 복음과 거리가 먼 유튜브가 나쁜 것입니다. 

늘 기도하셔서 제가 존경했던 수사님,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수사님이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유일하게 보시던 뉴스마저 끊어버리고 기도만 하셨지요. 

저와 결핵환자들을 돕다가 전염된 결핵이 나이 드시자 재발하여 돌아가시게 된 것인데 약을 드시라고 해도 약을 드시면 졸려서 기도할 수 없다고 드시지 않으려고 하셨지요. 

그래서 제가 관구장의 명이라며 약을 드시게 하였지만, 어쨌거나 그 정도로 온전히 기도에 몰두코자 하셨는데, 저는 나이 먹을수록 끊어야 할 유튜브를 오히려 안 보다가 보고 있으니 제가 얼마나 한심합니까? 

이 대림절에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내가 보는 것을 점검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대림절에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내 눈이 썩은 동태 눈은 아닌지 점검하고, 얼른 성령의 눈을 지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흉내만 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진심을 나누는 감사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길입니다. 어느 때든 살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철부지들에게 깃든 축복이 사랑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됩니다. 예수님께서 철부지들을 즐거이 당신 사랑으로 반기십니다. 

기다림이 지혜가 되고 기쁨은 슬기로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 등을 기대듯 철부지들은 예수님께 등을 기댑니다. 은총의 족보는 철부지들의 족보입니다. 족쇄를 채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 성령 안에서 즐겁고 행복하길 바라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십니다. 철부지들은 희망 하나로 행복합니다. 

기다림에서 더 깊어지는 감사이며 행복입니다. 철부지들은 실패하여도 하느님을 믿습니다. 철부지들의 유일한 삶의 목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보여주십니다. 엄청난 신비는 엄청난 감사에 있습니다. 시들지 않는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삶의 새로운 모습에 감사드리는 대림 시기입니다. 

결국 행복과 감사는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오늘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께 보고 듣고 한 이 모든 것을 감사로이 봉헌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게 되는 가장 소중한 행복입니다. 드러내 보이시고 이루어내시는 철부지들의 하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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