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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2021년 5월 31일 (월)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2021년 5월 31일 (월)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매해 5월 31일에 지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친척이며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5월 31일을 축일로 정한 것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천사의 메시지를 따라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은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이러한 이웃 사랑은 위대한 두 인물이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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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모두 와서 들어라. 주님이 나에게 하신 일을 들려주리라.
제1독서
스바 3장 14-18절
스바니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게,
주님께서 한가운데에 계시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한다.
14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5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16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하리라.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17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18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나는 너에게서 불행을 치워 버려 네가 모욕을 짊어지지 않게 하리라. .
화답송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보라, 내 구원의 하느님. 나는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해 주셨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을 민족들에게 알리고, 높으신 그 이름을 선포하여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위업을 이루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이 하신 일 온 세상에 알려라. 시온 사람들아, 기뻐하며 외쳐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계신 분은 위대하시다.
복음환호송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네. 하느님은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네.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복음
루카 1장 39-56절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가자,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인사하고,
마리아는
주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
39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40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43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45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46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47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51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54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영성체송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그분 이름은 거룩하시다.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1년 5월 31일 (월) 15시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5월 31일 (월)
매일미사
신우식 토마스 신부
주님의 은총을 발견하는 것은 신앙인의 기쁨
유다 전통에서 ‘시온의 딸’은 바빌론 유배에서 귀환한 뒤에 선포한 신탁으로 다시 세워진 하느님의 백성을 일컫습니다. 이들은 유배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이며, 종말에 메시아를 맞이한 예루살렘(즈카 9,9 참조)을 의미합니다. 구원 역사 안에서 성모님께서는 메시아 예수님에 관한 구절들에서 새로운 하와로서 불순종이 아닌 순종의 신앙인으로 나옵니다. 메시아를 잉태하시고 이스라엘을 재건하시는 성모님께서는 시온의 딸의 전형이며, 세상의 어느 것보다 하느님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모범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성모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시는’(루카 1,35), 마치 구약 성경의 커룹들이 감싸고 있는 ‘계약의 궤’(탈출 25,20 참조)처럼 표현합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라고 노래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였듯이 “은총이 가득한” 행복한 여인이십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마리아보다 엘리사벳이 더 행복한 여인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 문화 안에서 엘리사벳은 늙도록 아이를 가지지 못한 여인이었기에, 창피함과 부끄러움 가운데 일생을 살아야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이 늦은 나이에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죄인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는 것이었고, 당당하게 한 여인으로 서게 하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반면에 마리아의 잉태는 축복이라기보다는 염려스럽고 걱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일이며, 걱정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벳과 그의 태 안의 세례자 요한은 기쁨 속에서 성령으로 가득 차 마리아를 칭송합니다. 이에 성모님께서는 겸손하고 온화하게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라고 노래합니다. 이렇게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자신의 삶에서 체험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떠하더라도 우리가 체험하는 많은 만남을 통하여 주님의 은총을 발견하는 것은 신앙인의 기쁨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사적인 만남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조금 유치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엇갈리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봉쇄 수녀처럼 집밖을 나오지 않고 살아가는 클라라에 대한 얘기를 듣고 프란치스코가 먼저 클라라를 찾아가 만났다는 증언이 있는데 향기는 상자에 담아도 그 향기가 퍼지는 것처럼 클라라의 성덕이 그렇게 프란치스코에까지 전달돼 프란치스코가 찾아와 만났다는 얘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프란치스코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클라라가 와 주기를 프란치스코에게 청하여 만나게 되었다는 증언인데 클라라의 사촌 오빠인 루피노가 그 다리 역할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이 있음을 의식한 때문인지 성녀 클라라의 전기 작가인 토마스 첼라노는 두 사람의 만남은 성령께서 두 사람의 움직인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축일에 이 얘기를 길게 한 것은 당연히 두 분의 만남도 성령에 의한 만남이라는 것을 얘기하기 위함이고 우리의 만남들도 이런 만남이 되어야 함을 얘기하기 위함이지요.
어제 삼위일체 축일 강론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음에 대해 얘기했지만 우리의 많은 만남이 성령에 이끌려야지 그 만남들이 성사가 됩니다.
우리의 많은 만남이 성사가 되지 못하고, 그저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계모임이나 친목회가 되거나 또는 좋아하는 것이 같은 사람끼리 동호회가 되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을 같이 험담하는 모임이 되는 것은 비록 악령에 이끌리지 않더라도 성령에 이끌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성사란 무엇입니까? 성사적인 만남이란 어떤 것입니까?
성사란 하느님이 그 일 안에 있는 것이고, 그 일을 통해서 하느님이 발생하는 것이니 성사적 만남도 그런 거지요.
오늘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만난 것은 하느님이 자기들 안에서 이루신 일들 곧 은총을 같이 확인하고 같이 기뻐하며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함이었지요.
이런 뜻에서 우리의 만남들을 돌아보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의 만남 중에 이런 성사적인 만남들은 얼마나 되고 그저 그런 만남은 어떤 만남들인지. 또 어떤 만남은 은총이 발생하는 성사적인 만남이고, 어떤 만남은 죄악이 발생하는 만남인지.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참 기쁨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세 요소
오늘은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성모님은 엘리사벳을 방문하시고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하십니다. 기쁘고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성모님은 엘리사벳을 방문함으로써 참 기쁨의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을 잉태하신 어마어마한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온 인류에게 이 행복을 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늙은 사촌 누이와 그 태중의 아기를 기쁘게 했다는 것만으로 기뻐하십니다.
이를 볼 때 참 기쁨을 위해 필요한 것이 세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줄 것이 있어야 합니다.
EBS 다큐프라임, ‘가족쇼크’에서 김용준(21세) 씨는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엄마의 전화를 계속 받지 않습니다. 엄마는 아들과 단둘이 살았는데, 아들이 호스피스 병동에 찾아오지도 않고 전화도 안 받으니 혼자 고통을 견뎌야 할 뿐입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도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방에 놓습니다. 그러며 전화를 안 받는 아들을 원망합니다. 아들은 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어머니의 전화까지 외면하는 것일까요? 김용준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락을 안 하면 싫어할 수 있겠다.’ 생각은 하지만, 전화해서 목소리 들을 때마다 진짜 현실이 눈앞에 딱, 있다는 느낌? 엄마가 저보고 살았고 저도 엄마만 보고 살았으니까. 엄청 소중하죠. 아직은 함께 할 게 많았는데! 제일 하고 싶은 건 엄마가 만들어주는 밥 먹는 거.”
김용준 씨는 아직 엄마의 사랑이 더 필요한 상태입니다. 더 받아야 하는 상태인데 이제 엄마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결국, 엄마 임종 직전에야 엄마를 볼 용기를 내어 찾아갑니다. 그러나 울기만 합니다. 엄마는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아들을 위해 머리맡에 숨겨 두었던 5만 원 지폐를 쥐여줍니다. 엄마는 주고 싶은데 줄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고, 아들은 받아야 하는 나이인데 주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무언가 주어야 하는데 아직 가진 것이 없어서 사랑하면서도 죽어가는 엄마를 볼 힘이 없는 것입니다. 주고 싶은데 줄 것이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두 번째는 내가 주는 것을 기쁘게 받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참 기쁨의 삶은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것에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당신의 능력으로 누구를 가장 기쁘게 할 수 있는지 아셨습니다. 늙은 나이에 아기를 잉태한 엘리사벳에게 가시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은총이 있더라도 그 은총을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그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의 원인이 됩니다.
레오파드 증후군이라는 병 때문에 태어나면서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 상태로 자란 이예지 양. 검은 상자 속에 갇혀 사는 예지 씨는 부모의 존재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으면 좋고 배고프면 화를 내는 동물과 같은 상태입니다. 부모는 그녀와 소통을 할 수 없어서 예지가 짜증을 내며 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고 자해를 해도 무엇을 원하는지 도저히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주고 싶어도 받을 능력이 없는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은 미어질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딸이 자신보다 먼저 죽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누구도 그녀에게 자신들처럼 대해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에게는 당신을 받아들이고 이해해 줄 능력을 지닌 엘리사벳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달려가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행복일까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그러나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사랑하면 누구나 줄 것이 있고 그 줄 것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데 ‘겸손’이 없다면 그렇습니다.
제가 예전에 사순절 동안 특강을 같은 내용으로 17번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강의를 많이 하는 것이 사순절 때 주님께 바치는 희생으로 여기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17번째 강의를 마치고 많은 감사와 박수를 받으며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커다란 공허함을 느꼈습니다.
‘이게 다인가?’
저는 저도 모르게 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 남을 기쁘게 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려면 겸손해져야 합니다. 나는 누군가를 기쁘게 할 능력이 없는데 내가 기뻐지라고 주님께서 나에게 그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기쁘게 했다면 그것만으로 기쁠 수 있어야 합니다. 김용준 씨는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어도 아직 힘이 없었습니다. 그 한 명을 기쁘게 할 힘도 받아야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 줄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전에 ‘가장 작은 학교’라고 하는 제목으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한 시골 학교인데 선생님이 한 명이고 학생도 한 명입니다. 선생님은 그 한 명에게 매우 고마워하고 아이도 선생님에게 참으로 고마워합니다. 그 한 명이 없으면 자신은 선생님일 수 없고 아이는 학생일 수 없습니다.
교실에 선생님 한 분, 학생 한 명이 수업하는 사진을 보며 ‘하느님께서 세상에 말씀을 주실 때도 이와 같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것은 ‘말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원죄 없으신 ‘성모 마리아’뿐입니다.
하느님은 얼마나 다행이셨을까요? 들어줄 성모 마리아가 없으셨다면 말씀은 아버지 입에서 나오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당신의 말씀을 받아줄 성모 마리아 한 분을 보며 기뻐하셨고,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 한 분을 보시며 기뻐하셨습니다. 더 바란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저도 유튜브를 하면서 가장 기쁜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있고 그 가진 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조회수에 신경이 쓰입니다. 교만의 병이 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내가 할 말이 있고 한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기쁠 수 있는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으려 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기쁘고 행복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것, 그다음은 내가 줄 것을 받을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이루시는 것이니 줄 것이 있고 받아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기쁘게 감사해야 할 겸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제가 매일 20시간씩 14년간 계속 일했는데도 제가 천재로 보이십니까?
어떤 사람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작품을 보니 미켈란젤로 당신은 정말로 조각의 천재입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매일 20시간씩 14년간 계속 일했는데도 제가 천재로 보이십니까?”
어떤 선천적인 천재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도 노력을 통해 다른 이의 눈에는 천재 이상의 인물로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능력과 재능을 주지 않으신 하느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탓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일까요?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려는 계속되는 노력을 통해서만이 주님과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벌써 5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리고 5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나 자신은 세상 안에서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왔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한 노력이 과연 충만했을까요? 마치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교만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서 살았던 것이 아닐까요?
성모님께서 엘리사벳 성녀를 방문하신 것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당시 이 두 분에게는 큰 걱정이 있었지요. 엘리사벳 성녀는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갖게 된 것에 대한 걱정, 성모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한 것에 대한 걱정입니다. 이러한 걱정이 있을 때, 성모님께서는 엘리사벳 성녀를 방문하셨고 이 둘은 서로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모님과 엘리사벳 성녀의 이 만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한 시절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휴대전화가 있어서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만남을 위해 성모님께서는 힘든 방문을 하셨습니다.
걱정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자기 자리만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때일수록 주님께 가까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성모님은 엘리사벳과의 만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노력을 하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길 바란다고 기도하시는 분을 봅니다(사실 자기 뜻을 이뤄달라는 기도입니다). 자신의 어떤 노력도 없으면서 말이지요. 과연 하느님께서는 어떠실까요? 노력하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탈무드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의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자기 스스로의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자기와의 싸움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야 잘 사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잘 사는 사람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아닐까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세상도 이길 수가 있지만,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면 세상과의 싸움도 이길 수가 없게 됩니다. 실제로 세상을 이긴 사람의 말을 들으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말합니다. 1953년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등정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도 기자가 묻는 소감을 “제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라는 멋진 명언을 남겼지요.
남과의 싸움에만 신경을 쓰면 힘든 싸움을 할 수밖에 없지만, 자기와의 싸움만을 신경 쓰면 손쉬운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제일 잘 아는 것은 나밖에 없으니까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세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 43)
따뜻한 사람 따뜻한 방문(訪問)이 있다. 믿음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진정한 애정이다. 믿음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믿음은 혼자서는 갈 수 없던 이 길을 걸어 갈 용기를 준다.
믿음의 여정은 믿음으로 사는 법을 서로에게서 배우는 여정이다. 삶은 신비이다. 하느님의 이끄심과 은총은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훨씬 크고 더 따뜻하다. 하느님께서 계시기에 믿음이 있다.
믿음이 있는 인생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삶이다. 삶은 믿음을 일깨우고 믿음은 삶의 관계를 풍요롭게 한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방문하고 있으며 무엇을 나누고 있는지를 묻게된다.
믿음은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게한다. 더 좋은 사람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것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하느님의 방문은 믿음과 설레임의 방문으로 이어진다. 하느님과 사람이 만들어가는 믿음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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