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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매일미사 2021년 5월 30일 (일)

by 평화다방 2021.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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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2021년 5월 30일 (일) -

 

삼위일체 대축일 2021년 5월 30일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미사를 시작하며 사제는 성호를 긋고 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고 삼위의 이름으로 인사합니다. 은총과 사랑과 친교의 원천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021년 5월 30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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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찬미받으소서.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신명 4장 32-34절, 39-40절

 

모세는 백성에게,
주님의 규정과 계명들을 잘 지키면
그분께서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고 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32 
“이제, 하느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너희가 태어나기 전의 날들에게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물어보아라. 과연 이처럼 큰일이 일어난 적이 있느냐? 이와 같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34 
아니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가 보는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온갖 시험과 표징과 기적, 전쟁과 강한 손과 뻗은 팔과 큰 공포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 가운데에서 데려오려고 애쓴 신이 있느냐? 

39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40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영원토록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의 말씀은 바르고, 그 하신 일 모두 진실하다. 주님은 정의와 공정을 좋아하시네. 그분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말씀으로 하늘을 여시고, 당신 입김으로 천상 만군 만드셨네. 그분이 말씀하시자 이루어지고, 그분이 명령하시자 생겨났네.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매일미사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Second Reading)

 

제2독서
로마 8장 14-17절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자녀는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른다고 한다.

 

형제 여러분, 

14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15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16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은 영광받으소서.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28장 16-20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이르신다.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너희가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의 영을 너희 마음에 보내셨다. 그 영이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신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영성체 후 묵상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주님의 명령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1년 5월 30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5월 30일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신우식 토마스 신부

 

삼위일체 신앙은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며 신비

 

오늘 제1독서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사랑은 바로 하느님 당신께서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오늘 제2독서가 언급하듯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로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거나 식사를 할 때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시작하며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사랑으로 하나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삼위일체 신앙은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며 신비입니다. 

사실 그 어떤 비유와 설명으로도 삼위일체 신비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의 믿음과 하느님의 계시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심오하고 놀라운 신비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교리를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통이 되지 않을 때 ‘먹통이다’ 또는 ‘불통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내적으로 소통하시듯 우리와 소통하시고, 우리는 세상에 그분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삼위일체의 교리가 아니라 삼위일체의 사랑을.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힘들고 그래서 믿기도 힘들다고 많이 얘기합니다. 저도 그랬던 적이 오래전에 그러니까 삼사십 년 전에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삼위일체 신비를 이해하고 믿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고, 삼위일체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느끼는 것이 어렵다면 어렵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 어렵지 않고, 폭포수처럼 쏟아부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과 느끼는 것이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은 알겠는데 너무 엄하고 무뚝뚝하셔서 좀처럼 사랑을 겉으로 표현하시지 않아서 그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요? 

다시 말해서 육신의 아버지처럼 하느님 아버지께서 표현을 잘 안 하시거나 못하셔서 우리가 사랑을 느끼는 것이 어려운 건가요? 

비슷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사랑을 표현하지 않거나 못하시는 분이 아니지만 하느님의 사랑 표현은 육신 아버지의 사랑처럼, 아니, 육신 아버지의 사랑보다 훨씬 더 우리가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은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시는 것으로 표현하셨는데 그 사랑이 이천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여기의 내게도 보내시는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하셨지만 시간과 공간의 존재인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 사랑을 느끼는 것이 힘든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또는 "성령의 힘으로"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요. 

성령만이 천상과 지상의 차이를 초월하게 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우리어야 한다는 점이고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는 성령을 받는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이 말은 악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에서 이탈한다는 뜻도 되지만, 악령의 인도를 받지 않더라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모르고 세상의 자녀로 산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예수가 우리의 그리스도라는 것도,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제라는 것도, 우리 신분이 종이 아니라 주님처럼 자녀라는 것도 모르고 산다는 뜻이지요. 

관건은 이 성령의 인도를 우리가 받느냐 받지 않느냐 그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삼위일체로 사랑하시는 하느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이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데 성령은 우리의 영에게 증언한다고 오늘 바오로 사도는 얘기합니다.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성령의 상대자인 우리의 영이 성령을 잘 상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이 성령을 외면하고 악령과 상대할 수도 있고, 우리의 영이 복음의 더러운 영처럼 세상에 더럽게 집착하는 육의 영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말처럼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겠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사랑을 받고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삼위일체와 영원한 생명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와 영생(영원한 생명)의 관계에 대해서 묵상해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당신께서 교회와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세례받은 사람 안에서 삼위일체의 신비가 실현되게 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실현하는 사람이고 그래야만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플라나리아’란 동물이 있습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속에서 서식하는 평형 동물입니다. 플라나리아는 뇌, 눈, 신경관, 수정란, 난소, 창자, 입, 정소, 생식소 등을 갖춘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입니다. 

그런데 플라나리아는 어느 부위를 잘라도 다시 온전한 플라나리아가 됩니다. 몸통을 다섯 부분으로 자르면 다섯 마리의 플라나리아가 되는 것입니다. 영국 한 대학교에서는 한 마리의 플라나리아를 잘라서 2만 마리까지 늘리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플라나리아는 영원히 사는 동물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플라나리아는 자신의 몸을 자손에게 이어주며 개체 수도 늘어날 뿐 아니라 누군가 일부러 멸종시키지 않으면 영원히 삽니다. 몸을 자른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고 그저 하나의 개체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도 영원히 사는 법칙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단 플라나리아는 세포마다 눈과 머리, 창자 등을 생성할 수 있는 설계도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자르더라도 다시 온전한 모습으로 재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플라나리아를 믹서기에 갈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잘게 잘리면 재생을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원형’을 회복할 능력을 잃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길이로 자르면 플라나리아는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회복합니다. 이 말은 플라나리아를 자르면 그와 비슷한 거머리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플라나리아가 된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플라나리아만 이런 능력을 지니는 것입니다. 플라나리아처럼 영원히 살려면 끊임없이 플라나리아로 재생하여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잘리지 않거나 혹은 생식하지 않으면 그 플라나리아의 생명은 거기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잘리거나 자신의 몸을 떼어 나누어주는 생식을 멈추면 그것은 영생할 수 없습니다. 나의 살과 피를 떼어 나누어주는 것, 이것을 통해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는 것, 이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릅니다.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 사랑도 없고 사랑으로 태어나지 않는 생명체도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부모의 피 흘림으로 탄생합니다.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피 흘림이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는 영생이 불가능합니다. 사랑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다 사라져도 남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생명체를 보며 적어도 두 개는 자신 안에 품고 있어야 함을 봅니다. 그 첫 번째는 정체성과 원형, 혹은 설계도, 그다음은 자기 자신을 복제하거나 자신과 같은 개체를 만들기 위해 해야 하는 생식능력, 혹은 사랑입니다. 다시 말해 플라나리아는 원형과 생식능력을 담는 하나의 그릇인 것입니다. 플라나리아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원형과 생식능력, 이 둘과 하나가 된 삼위일체의 모습을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본성적으로 영원한 분은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영원하실 수 있는 원리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삼위일체 신비를 품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의 ‘계시’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을까요?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

예수님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십니다. 만약 위 플라나리아의 예와 비교하자면(물론 하느님을 저런 동물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죄송하기는 하지만) 은총과 진리는 무엇일까요? 바로 ‘원형’과 ‘생식력’입니다. 아버지와 성령을 담으시는 그릇과 같으신 분이신 것입니다. 

자동차를 만들 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분명 ‘설계도’와 ‘피땀’이 필요합니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설계도대로 다시 재생시킬 수 있습니다. 설계도대로 누군가가 땀을 쏟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은총은 ‘피땀’, 즉 ‘사랑’의 에너지를 의미하고, 진리는 ‘설계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이 아니면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외아드님으로서 아버지에게서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원형’인 ‘진리’를 품고 계신 것이고 성령께서 주시는 ‘사랑’의 에너지를 지니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만 행동하고 말하고 듣고 사십니다. 아버지의 모습대로 되려는 의지가 있으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께는 진리이시고 원형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자녀의 탄생을 위해 피를 흘리라고 종용하십니다. 세례 때 성령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더는 당신 자신을 위해 사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탄생시키시기 위해 피를 흘리어야 하셨습니다. 

플라나리아가 플라나리아로서의 ‘원형’, 즉 ‘설계도’나 ‘진리’를 자신 안에 품고 끊임없이 그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또 자기의 살과 피를 떼어 나누어주며 자손을 낳으려고 하는 ‘사랑’을 지녔기에 영원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비록 인간이 되셨지만, 하느님처럼 영원히 살려면 하느님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 해야 하고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어 자신과 같은 자녀를 탄생시켜야 함을 보여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부모들이나 믿음을 위해 피를 흘리신 순교자들을 볼 때 그런 희생이 생명의 끝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의 모습을 살기 위해 죽는 자만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플라나리아라는 한 작은 생명체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란 바로 자신 안에 은총과 진리를 담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은총과 진리를 품고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 하고 살과 피를 내어주어 새로운 그리스도인을 탄생시키려 할 때 우리 안에 삼위일체를 실현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도 당신 삼위일체의 신비를 받아들여 영원히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영원히 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원형을 우리 안에 간직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그리스도를 닮아 하느님의 자녀를 탄생시키기 위해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살려고 하면 죽겠지만, 이렇게 죽으려고 하면 영원한 삶을 살 것입니다. 영생의 비밀은 삼위일체 사랑에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위로를 받고 그 안에서 길을 찾아보십시오.

 

작년 이맘때 저는 지독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한 달이 넘었을 시점이었지요. 이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히 어머니 잃은 슬픔을 이겨내리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장례식장에서 또 장례미사 때도 웃으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서 동창 신부들은 저를 걱정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밤에 또 새벽에 혼자 있는 시간은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저와 50년 이상을 함께 해주셨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인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좋은 곳’에 가셨을 것이라고 믿지만, 어머니와 떨어져 있는 저 자신은 참 힘들었습니다. 
 
슬픔은 사람을 고립시킵니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어 가족조차도 만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했고,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은 감정을 다치게 할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는 제가 어떤 감정 표현을 해도 다 받아주셨습니다. 저의 감정에 상대방도 흔들리는데, 주님께서는 전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큰 위안이 되었고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침묵이 얼마나 큰 은총이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내 감정을 받아주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흔들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각기 다른 위격을 가지고 있지만 한 몸을 이룬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해하기 힘든 교리입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세 위격이 하나의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묵상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일치의 모범을 보여주시면서 우리 역시 당신의 일치 안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향한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례를 주고, 모든 것을 가르치라는 사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우리는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고 사람에게서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더 큰 분이 있습니다.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위로를 받고 그 안에서 길을 찾아보십시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전혀 흔들리지 않으시면서 우리에게 힘과 위로는 물론이고 해결의 길까지 열어주실 것입니다.

 

 

나희덕 오늘의 명언

 

실수는 삶과 정신의 여백에 해당한다. 그 여백마저 없다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숨을 돌리며 살 수 있겠는가.

 

 

실수도 사랑하세요.

 

신학교에 입학하고 첫 번째 여름 방학 때였습니다. 방학을 맞이해서 지방에 사는 선배님을 찾아갔습니다. 방학하면 꼭 놀러 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지요. 먼저 선배 신부님의 본당 신부님을 만나 인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잘 왔다면서 밥 먹으러 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배님은 다른 차를 타고, 저는 신부님과 함께 신부님 자가용을 타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어른이 운전하는 차를 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당 신부님 운전하시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는 저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네 운전사니?”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뒷자리는 사장님 자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한 번도 어른이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실수한 것입니다. 
 
모르면 당연히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수 자체에 집착하고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을 하지 않아야 할 것처럼 부끄러워합니다. 
 
의연하게 사는 것은 실수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훨씬 더 살기 쉬워집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9) 

 

세례성사는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결합이다. 고유한 관계안에서 자라나는 우리들 신앙이다. 세례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드러내는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분명한 자기계시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건네신다. 

삼위일체는 구원의 역사이다. 내적인 관계를 통하여 동참하시고 참여하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 협력하시며 구원을 완성하신다. 성부의 창조와 성자의 구속과 성령의 성화는 우리를 향해 있다. 

삼위일체 관계는 상호적인 공동체의 관계이다. 공동체는 사랑을 주고받는 실천의 자리이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자유로운 분이시다. 그 어디에도 종속시킬 수 없는 분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는 일체(一體)의 신비이다. 정의롭고 공평하고 평등한 협력을 삼위일체는 우리들에게 일깨워준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은 우리들이다. 가장 좋으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이다. 참된 사랑을 회복하고 실천해야 할 우리들임을 삼위일체의 신비는 가르쳐주고 있다. 서로를 섬기는 참된 사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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