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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7/10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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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하느님, 타락한 세상을 성자의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셨으니 저희에게 파스카의 기쁨을 주시어 죄의 억압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2023년 7월 10일 (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7월 1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시편 성경 말씀 카드

당신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리니, 너는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시편 91,4)

 

당신 깃으로 너를 덮어 주시리니, 너는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시편 91,4) 시편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창세기 28,10-22ㄱ)
    야곱은 하느님의 천사들이 층계를 오르내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 오늘 복음
    (마태오 9,18-26)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7월 10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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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은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네.

 

 

마태오복음
9장 18-26절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7월 10일 (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김용원 세례자 요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22

📌 강론시작 08:15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7월 10일 (월)
서울 명동대성당
매일미사 (오전 7시)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8:20

📌 강론시작 17:35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10일 (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15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7월 10일 (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15시)
매일미사 (16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허규 베네딕토 신부

 

충분함.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와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신 이야기는 공관 복음에 늘 함께 등장합니다. 복음서마다 이야기의 길이는 다르지만,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 안에 하혈하는 부인을 고치신 이야기가 자리합니다.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형태입니다. 아마도 두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복음서에서 읽는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처럼 전해지고 그것이 그대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충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당장이 예수님께 와서 청합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이는 회당장이 자신의 딸에 대하여 ‘방금 죽었습니다.’고 말함으로써 치유 이야기가 아닌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는 손을 얹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원문에는 손이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좀 더 의미를 살려서 ‘한 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혈하는 부인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 낫습니다. 그는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병이 낫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두 이야기는 회당장과 부인의 굳은 믿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한 손으로도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그분의 옷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야기가 보여 주듯 예수님께서는 ‘충분히’ 우리를 살리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런 회사는 잘 운영될까요? 아니면 망할 것 같습니까?

 

CEO의 계획을 직원들이 믿고 따르는 회사, 부하 직원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최대한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회사, 직원들은 CEO의 계획을 잘 숙지해서 그 계획을 더 발전시키는 회사. 
 
아마 잘 운영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면 어떨까요? 직원들이 CEO의 계획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고, CEO 본인도 직원을 무시하면서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한다면, 이런 회사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 못 가서 쫄딱 망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네요. 
 
하느님의 계획과 여러분의 계획을 비교하면 어떤 계획이 나을까요? 당연히 하느님의 계획이 훌륭하므로 우리는 무조건 하느님의 계획을 잘 숙지해서 더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계획만을 내세우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은 전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께 청해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청하고 또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물 위를 걷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물속에 빠지고 맙니다. 이 상황(자기)을 보게 되면서 물속에 빠진 것입니다. 
 
세상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많은 성인성녀께서는 이를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과연 어떤가요?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회당장이 찾아와 예수님께 방금 죽은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딸의 죽음이라는 그 상황만을 보고 있었다면 아마 예수님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딸이 자고 있을 뿐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소녀의 손을 잡아 살려줍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회당장의 집을 갈 때,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는 예수님 옷자락 술에 손을 대면서 치유의 은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 역시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아닙니다. 자기 계획이 아닌,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성공도 우연이 아니고, 실패도 우연이 아니다.

- 브라이언 트레이시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세상 사람들이 바라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회당장의 딸과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인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은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습니다. 

회당장의 딸이 이미 죽어 곡을 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물러들 가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라고 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습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하혈병을 앓던 여인이나 회당장의 희망은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당하기 딱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 동행하며 세상이 비웃을 일을 희망하지 않는다면 진정 그것이 하느님과 동행하는 일일까요? 

영화 ‘킨’(2018)은 고아로 한 가정에 입양되어 자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년 엘라이가 그 주인공입니다. 엘라이는 양아버지를 돕기 위해 방과 후에 고철을 찾아 파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고철을 발견합니다. 엘라이가 그 고철을 만지자 총으로 변합니다. 그 총의 위력은 상상 이상이고 지구의 것이 아닙니다. 

이때 6년간 감옥에 있다가 지미라는 아들이 출소합니다. 지미는 갱단에게 돈을 빌렸었는데 6년 동안 6억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갱단은 그 돈을 갚지 않으면 지미의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죽습니다. 엘라이는 지미와 도망치며 지미를 돕겠다고 합니다. 아이가 무슨 힘이 있을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총이 있습니다. 희망은 능력이 주어졌음을 믿을 때 생깁니다. 그리고 희망이 없다면 능력이 주어졌음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미가 총으로 형을 구하고 있는 동안 외계인들이 도착합니다. 외계인들은 엘라이가 지구 인간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종족이기 때문에 총이 작동하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엘라이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지구상에서 자신만이 총을 다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희망은 믿음이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옆에 두고 희망하지 않는다면 믿음도 증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증언하게 됩니다. 

도끼가 있다면 나무를 찍고 싶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나무를 베고 싶어진다면 그 사람이 보지 않아도 톱을 가졌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방식도 이와 같습니다. 

저희 집은 중학교 2학년 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과 후의 차이는 매우 컸습니다. 전기로 불만 밝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밥도 지을 수 있고 빨래도 할 수 있고 TV도 볼 수 있고 컴퓨터도 살 수 있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자 바랄 것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바라고 있다면 전기가 이미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비웃을만한 것들을 바라게 됩니다. 

오상의 비오 성인은 당시 말도 안 되는 아주 큰 병원을 시골에 짓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병원이 지어졌습니다. 지금도 그 병원은 존재만으로 비오 성인이 하느님과 동행하고 있었음을 믿게 하는 표징이 됩니다. 

마더 데레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하늘 나라를 가난한 사람들로 가득 차게 하겠다고 꿈에서 베드로 성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리는 사랑의 선교회를 보며 많은 이들이 마데 데레사도 하느님과 동행했음을 믿게 됩니다. 

가장 큰 선교의 방법은 무엇일까요? 밖에 나가 주님을 믿으라고 전하고 다니는 것일까요? 물론 그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선교의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비웃을만한 것을 바라고 그것을 이뤄내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하혈병이 고쳐지는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믿게 된 것처럼,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희망할 수 있는 일을 희망하는 것이 더 큰 선교의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무한 은총을 무상으로 주시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치유를 가로채는 짓이 병원과 의사에게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기를 가로채는 짓이 기 치료사에게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옆집으로 가는 전기를 내가 몰래 끌어다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회당장 아이를 살리러 주님께서 가시는데 그 길의 중간에서 주님의 기를 가로챈 여인의 행위는 치유 가로채기이고, 이런 행위는 병원과 의사에게는 어림없고 기 치료사에게도 어림없습니다. 

한량없는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우리가 얘기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한량이 있고 힘도 한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량(限量)이란 양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고, 인간이 유한하다고 함은 이처럼 양의 한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한이란 한계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하느님은 무한하신 분 곧 한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에 한계가 없고 은총에 한계가 없으십니다. 

그러기에 여인의 행위는 죽은 소녀에게 가야 할 주님의 사랑이나 은총을 가로챈 것이 아니고, 누구나 끌어다 쓸 수 있는 무한 전기선에서 전기를 조금 끌어다 쓰는 것과 같은 겁니다. 

이런 경우 끌어다 쓰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고 현명함이며, 끌어다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음이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여인처럼 하지 못할까요? 어떤 사람이 여인처럼 현명하지 못할까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은 한량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한량없다는 것은 알지만 하느님께서 그것을 무상으로 주실 거라는 점을 믿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무한 은총을 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 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전혀 다르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죽은 것과 자고 있는 것의 차이는 전혀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고정된 관점의 틀에서 성장하는 소녀를 바라보거나 가두시지 않습니다. 소녀가 희망하는 삶을 잘 살아가길 바라시는 주님이십니다. 

의심으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비극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자녀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성장의 아픔조차 허용하지 않는 부모들의 과도한 사랑과 집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다려주는 기본이 필요합니다. 

세상 밖에 있는 행복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나누어지는 행복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신뢰가 생깁니다. 지극히 당연한 성장의 아픔 변화의 두려움을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부모님들이 대신하여 줄 수는 없습니다. 

아프고 두려워도 자식들이 주님과 함께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그래서 적절한 개입의 지혜와 주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소녀의 손을 잡아주시는 것만으로 소녀를 일으키시는 주님의 믿음입니다. 

더 멋지고 더 아름답게 성장할 것을 믿는 기도와 관점의 변화가 있는 오늘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힘겹지만 기다리고 기도하고 삶으로 살아가는 사랑의 여정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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