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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3/06/06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3.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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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외롭고 가련한 몸이옵니다. 하느님, 비참한 저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저의 죄악 낱낱이 없애 주소서.

하느님,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니 저희에게 해로운 것은 모두 물리치시고 이로운 것은 아낌없이 베풀어 주소서.

 

2023년 6월 6일 (화)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3년 6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마르코복음 성경 말씀 카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마르 12,17)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마르 12,17) 마르코복음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3년 6월 6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마르코 복음
12장 13-17절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3년 6월 6일 (화)
정용호 대건안드레아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8:14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3년 6월 6일 (화)
여상민 베드로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11:43

 

 

 

팔로티회 매일미사

홍천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6일 (화)
팔로티회 홍천
매일미사 오후 3시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 미사시작 00:01

📌 강론시작 07:43

 

분당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3년 6월 6일 (화)
팔로티회 분당
성체조배 오후 3시
매일미사 오후 4시
김지학 요셉 신부 집전

 

📌 성체조배 0:03:24

📌 미사시작 1:04:01

📌 강론시작 1:12:2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매일미사
정천 사도 요한 신부

 

무엇이 황제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꽤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으십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이 질문에는 그분을 옭아매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먼저 예수님을 찬양하는 온갖 좋은 말을 나열합니다. 특히 ‘사람을 그 신분(그리스 말로 ‘프로소폰’[얼굴, 외모])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표현으로, 어떤 이의 외모나 신분이나 위엄에 흔들리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공평을 치켜세웁니다. 그리고 곧이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는 질문을 통하여 어느 한쪽을 답하도록 예수님을 유도합니다. 

만일 황제라는 높은 신분에 겁을 먹거나 흔들리지 않는 이라면, 그에게 내는 세금이 합당하지 않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가 이스라엘의 메시아라면 그러한 멍에에서 이스라엘을 자유롭게 하는 이로서, 적어도 이방 통치자에게 내는 세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로마 제국에 맞서는 것이 되기에, 그들은 곧바로 예수님을 대역죄로 고발할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라’ 또는 ‘바치지 마라’는 식의 답을 고르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에 새겨진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게 하신 뒤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사실 이 대답은 조금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호함 덕분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놓은 덫에서 영민하게 빠져나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황제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인가?’ 

마침내 사라져 버릴 것들과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게 될 것들을 잘 분별하라는 숙제가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것’이 무엇인지 잘 식별하고, 그것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려드리고 있습니까? 나라에 내는 세금도 있지만, 하느님께 바쳐야 할 ‘세금’도 있습니다. 꾸준한 기도와 신앙생활로 그 세금이 밀리는 일이 없게 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의 겸손은 어디에 있나요?

 

세실리아 블리스데일이라는 여성이 딸 그레이스의 결혼식을 앞두고 런던의 쇼핑몰에서 77달러짜리 드레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결혼식에 입을 생각으로 사진을 딸에게 보내 의견을 물은 것이지요. 그런데 딸 그레이스와 예비 사위 카이는 사진 속 드레스 색깔에 대한 의견이 달랐습니다. 딸은 파란색-검은색 드레스라고 했고, 사위는 흰색-금색 드레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자신이 본 색이 맞다고 하니까 주변 사람에게 어떤 색깔로 보이느냐고 의견을 구했습니다. 이 색깔 논쟁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래픽 편집 회사인 어도비사에서 ‘파란색-검은색’이 맞다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선택한 ‘흰색-금색’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우리의 주관적 현실과 객관적 현실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내면의 현실은 외부 세계가 모종의 방식으로 재현된 것이며, 외부 현실의 복제품이 아니라 하나의 내부 모형일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도 거짓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색깔까지 확인했다고 해도 틀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데도 ‘나는 맞고, 너는 틀렸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겸손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직접 듣고, 직접 본 것도 틀릴 수 있는데, 자신의 판단만을 내세워서 어떻게 무조건 맞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하느님이신 주님께서도 ‘겸손’을 담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겸손은 과연 어디에 있나요?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많은 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고, 이에 대한 표징으로 각종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어도 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이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큰 죄인이라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과 함께 주민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실 이 둘은 정치적으로 절대 어울리지 않습니다. 헤로데 당원은 철저히 로마의 편이어서 주민세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고, 바리사이는 민족주의자이기에 주민세를 거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을 맞춥니다.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편이 됩니다. 즉, 주민세를 내라고 하면 하느님을 버리라는 것이라며 따질 수 있고, 주민세를 내지 말라고 하면 반로마 반란자라는 죄목을 씌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하느님께 해야 할 일이 있고, 국가 권력자에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것은 무엇일까요? 악과 타협하는 것이 아닌 철저하게 하느님의 의로움을 따르는 것입니다. 철저한 겸손으로 서로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만이 주님과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없어. 단, 다시 일어나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야.

- 영화, ‘밤비, 1942’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행복이 요지부동인 행복

 

선행한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의 고통, 사랑의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의 불행, 저는 이 문제를 오늘의 토빗기를 가지고 묵상하려고 합니다. 

토빗기는 선행한 토빗에게 고통이 또 닥치는 것으로 얘기를 전개합니다. 그것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토빗은 어찌하여 새가 똥을 누는 곳에 가서 눕고 하필이면 새 똥으로 인해 눈이 멀게 되는 겁니까? 

이것은 인간의 악행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지요. 새 똥 때문에 눈이 멀었다면 하느님께서 멀게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토빗의 선행에 하느님께서 상으로 보답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앙갚음하듯이 하느님께서는 악으로 갚아주신 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생각게 됩니다. 이것으로 토빗은 불행해졌을까요? 제 생각에 토빗이 고통과 불편을 느꼈을지언정 불행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늘 우리가 보기에는 불행한 사건을 겪었는데도 그는 아무에게도 원망하지 않고 고통에 신음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 평생 선행을 하며 살았는데 그 대가가 이거냐고 하느님께 원망을 퍼붓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사랑과 참 행복으로 선행을 한 사람에게는 고통은 있을지언정 불행은 없고 고통으로 인한 원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사는 사람은 그로 인해 고통도 받고 불행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와 똑같은 경지에 올라 있으면 고통을 겪어도 불행해하지 않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고통 때문에 불행해할 것이고 그가 무척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오늘 토빗의 아내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토빗을 원망하며 선행의 대가가 뭔지 따집니다. 

“당신의 그 자선들로 얻은 게 뭐죠? 당신의 그 선행들로 얻은 게 뭐죠? 그것으로 당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다들 알고 있어요.” 

토빗의 아내는 토빗의 경지에 아직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선행에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아직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녀는 대가가 있어야 선행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과 선행의 대가가 고통일지라도 불행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대가라면 대가이고 상급이라면 상급입니다. 

어떤 고통에도 행복이 요지부동인 행복, 선행에 악이 뒤따라도 행복이 요지부동인 행복, 사랑에 어떤 고통이 뒤따라도 사랑 충만으로 행복이 요지부동인 행복, 이것이 참사랑으로 선행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대가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우리가 어디에 묶여있는 지를 제대로 보게 됩니다. 우리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것임에도 하느님을 향하지 않고 헛된 황제의 욕망에만 묶여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아깝고 아쉬운 것들이 실은 하느님의 것임을 모른 채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에 존재하시는 생명의 하느님이십니다. 

사랑이 멈추면 소유권이 떠오릅니다. 황제의 것을 거절하지 못하는 우리들 삶입니다. 황제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황제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것이 우리를 안고 갑니다. 신앙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닌 하느님 것과의 참된 소통입니다. 

끝없이 내달리는 욕심을 멈추게 하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이끄시고 하느님을 만나게 하시는 이것이 삶의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황제의 것을 비워내고 하느님의 것을 되찾아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아름다운 마음의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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