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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12/16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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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당신이 민족들을 올바로 심판하시고, 세상의 겨레들을 이끄시니,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온갖 열매 땅에서 거두었으니,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네.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2022년 12월 16일 (금)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2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야서 56,1-3ㄴ.6-8)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

  • 오늘 복음
    (요한복음 5,33-36)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2월 16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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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언제나 저희를 은총으로 도와주시어 외아드님께서 오시기를 갈망하는 저희에게 현세와 내세에 필요한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복음
요한복음 5장 33-36절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2년 12월 16일 (금)
서광호 베네딕도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12월 16일 (금)
이길재 베드로 신부 집전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2년 12월 16일 (금)
안동억 프란치스코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어떻게, 어디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요한 5,1-9 참조). 이 때문에 예수님과 유다인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예수님을 향한 유다인들의 적대감은 커져만 갑니다. 오늘 복음은 유다인들이 벌인 논쟁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변론(5,19-47 참조)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5장 31절에서 율법에 근거한 합법적 증언 원칙을 말씀하시면서(신명 17,6; 19,15 참조) 유다인들 앞에서 당신의 신원, 곧 당신께서 누구이신지 분명히 증명하고자 하십니다. 요한 복음 5장 31-47절에서 총 네 가지 증거가 제시되는데, 오늘 복음은 그 가운데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첫 번째 증인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 앞에서 증언한 내용을 떠오르게 하십니다(요한 1,19-27 참조). 세례자 요한은 오실 분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1,6)이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그의 증언은 진리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으로 예수님 당신의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이 ‘일들’은 이미 행하신 것만 아니라 앞으로 행하셔야 하는 것들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일들’은 아버지에게서 권한을 받으시어 아버지와 완전히 일치하시는 가운데(1,17. 18 참조) 이루어졌기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이임을 증언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가르친 내용은 우리의 시선이 예수님을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예수님의 여러 행적은 우리가 그분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떻게, 어디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중매쟁이가 필요해.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당신은 사람의 증언이 필요치 않다는 주님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세례자 요한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주님을 위해서는 우리 인간의 증언이 필요치 않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일까요? 

진정 주님께는 인간의 증언이 필요치 않고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증언하거나 복음을 선포하지 않아도 될까요? 

주님의 말씀은 당신을 위해서라면 요한의 증언이 필요치 않지만 우리를 위해서는 요한의 증언이 필요하고, 우리 이웃을 위해서는 우리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말씀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요한이 그리고 우리가 증언하지 않아도 당신이 하신 일들이 당신이 누구신지 증명하기에 당신을 위해 증언해달라고 아쉬운 소리 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는 주님이 하신 일들만 보고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몰라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에게는 요한과 우리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물론 요한처럼 증언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겠지요. 

실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보고 스스로 하느님을 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 하느님을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그런 영안(靈眼) 곧 영적인 눈이 없는 사람이 있기에 영적 증언자인 영매(靈媒) 곧 영적인 중매쟁이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짝을 찾지 못하는 사람에게 중매쟁이가 필요하듯 스스로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에겐 영적 맞선을 보게 해 줄 영적 중매쟁이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적 중매쟁이가 필요하고, 우리가 영적 중매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적 중매쟁이는 요한처럼 주님을 가리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를 가리키고 자기를 향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선행이 주님을 가리켜야 하는데 자기의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이 주님을 같이 사랑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자기만 사랑하게 하거나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커져야 하고 자기는 작아져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되면 안 됩니다. 한 마디로 세례자 요한처럼 되어야 하는데 바리사이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땅에 속한 사람과 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는 일로 명확히 구분된다.

 

예수님께서 오늘 당신이 하늘에서 오신 분임을 증언하는 것은 요한뿐만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특별히 당신이 하시는 일이 당신을 증언한다고 하십니다.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요한 5,36)

당연히 하늘의 사람과 땅의 사람은 하는 일이 다릅니다. 완전히 땅에 붙어있는 것들을 생각해볼까요? 식물들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 식물들은 오로지 자신이 살려고만 합니다. 자기가 살려고 땅의 영양분을 빨아먹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벼를 키우려고 심어도 피와 같은 것들이 날아와 자랍니다. 밭에는 잡초들이 자랍니다. 땅에 속한 것들의 일은 ‘생존’뿐입니다. 

동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리생활하기는 하지만 그 목적 역시 생존입니다. 물론 관계 안에서 오는 소속감이나 행복은 어느 정도 식물이나 미생물, 모기와 같은 존재와는 차이가 납니다. 동물들은 그래서 약간은 땅에서 하늘로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높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존재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 하늘에 사시는 창조자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모기와 같습니다. 부모를 통해 자기 생존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부모는 그런 자녀를 위해 자기 살과 피를 내어주며 자녀들을 살립니다. 부모는 창조자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자는 하늘이고 하늘에 속합니다. 하느님은 완전히 하늘에 속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늘에서 오셨다고 말씀하실 때 이렇게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루카 7,22-23)

예수님은 온전히 당신 자신을 내주셔서 인간을 회복시키시고 살리십니다. 완전한 양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부모이고 그래서 하늘에 속하십니다. 
저도 스물다섯 살까지는 제가 살려고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당에 다녀도 나의 생존을 위해 다닌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교에 들어오면서는 다른 이들의 생존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물론 잘 안되었습니다. 내가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필요했던 것이 ‘믿음’이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와한 비디오’에 ‘지체 장애인 아빠가 택시 운전대를 잡는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로 온전히 걷지 못하는 아빠가 있습니다. 소아마비를 앓는 아내와 같이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장애 때문에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이 부부는 나라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말할 때, “우리 아빠는 매일 집에서 논다”라고 말하는 것을 아내를 통해 듣게 됩니다. 이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양 발을 쓸 수 없어도 다른 집처럼 일하기를 바랐습니다. 

아빠도 아이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그는 양 발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택시 운전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습니다. 일곱 번이나 낙제하였지만, 여덟 번째는 성공합니다. 그리고 택시 운전을 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하는 그 성격대로 아이들도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하는 가장이 되었습니다. 이분의 마음 안에는 ‘아빠라면 그래야 한다!’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아빠임을 잊는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창조자라는 믿음만이 나를 하늘에 속하게 합니다.

 ‘해발 1000미터 정상까지 아들 업고 등산하는 아빠’라는 비디오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빠는 “힘들다. 근데 해야 한다. 아들 대신 뛰는 거니까!”라고 말하며 아들을 업고 매일 1,000미터가 넘는 산을 오릅니다. 게다가 휠체어를 밀며 마라톤을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마라톤을 완주하고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웁니다. 자기를 위한 아빠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빠의 피로 자녀의 자아가 죽고 자녀도 아빠처럼 남을 살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른 게 없습니다. 땅에 속한 존재였다가 하늘에 속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하늘의 일, 곧 생명을 회복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일은 내가 창조자라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고 믿어야 창조자가 되고 자녀를 살리는 부모가 됩니다. 이 때문에 왜 내가 죽었고 그리스도가 되었음을 믿어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왜 나는 확진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는 보도 내용을 보면서, ‘왜 나는 확진되지 않을까?’를 자주 생각했습니다. 신부로 많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데도 확진되지 않음은 진짜로 슈퍼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늘 조심했습니다. 마스크를 반드시 썼고, 사람과의 만남도 늘 최소한으로만 했습니다. 하지만 두 달 전 어느 날, 두통이 너무 심했고 몸살 기운을 느꼈습니다. 여기에 목의 통증도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순간 ‘코로나 확진된 것이 아닐까?’ 싶어서 자가 진단키트로 검사해보니, 두 줄이 선명합니다. 확진된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의 자가 격리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사를 비롯한 모든 성지 업무는 함께 사는 신부에게 부탁했고, 평화방송도 한 주일 연기했습니다. 사무장에게 연락해서 지시사항을 전달한 뒤,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과로는 너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바빠서 제대로 쉬지 못했는데 푹 쉴 수가 있었고, 그동안 밀렸던 글쓰기, 강의 준비 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몸은 아주 불편했지만, 마음은 너무나 편안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저를 배려해주시다니…. 
 
우리 삶 안에 주님의 손길은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분이기에, 일상 삶 안에서도 철저하게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문제는 자기 마음을 주님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배척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과 같다면서 세례자 요한에 대해 증언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을 때, 사람들은 열광하며 따랐지요. 세례자 요한 안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증언이 있음을 이야기하시지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일과 말씀들은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셨음을 의심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미움과 단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박해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려면 우리 마음부터 바꿔야 합니다. 일상의 작은 상황에서도 주님의 일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만이 희망, 기쁨, 행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용기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즉,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도 없다.

- 에디 리켄베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듯 빛을 내는 등불이 우리들 곁에서 타오릅니다. 진리를 증언하는 삶은 더 큰 진리를 향해 나아갑니다. 사람은 진리를 찾고 진리는 사람을 향하듯 진리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요한의 증언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정확하게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완수하도록 맡기신 구원의 일들을 몸소 실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구원자이심 알려줍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구원의 진리를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수식어를 많은 설명어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진리는 함께 하는 영원한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잠깐의 즐거움이 아닌 우리 삶을 통째로 바꾸는 진리이십니다. 참된 등불은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자리를 비추는 등불로 살게 합니다. 진리를 부정할 순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깨어있었기에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뜨겁게 체험합니다. 진리는 깨어있는 삶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깨어있지 못하면 진리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진리를 믿고 받아들여야 진리는 우리를 비추는 등불이 됩니다. 삶다운 삶을 잃어버린 세대에 삶의 참된 진리는 삶다운 삶을 우리들에게 선사하십니다. 진리의 빛은 요한 세례자의 삶처럼 깨어있음의 빛이며 기다림의 빛입니다. 진리와 구원은 깨어있음으로 꺼지지 않는 삶의 빛이 됩니다. 오늘도 깨어있는 기쁜 날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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