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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9월 10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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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한가위 -

 

 

2022년 9월 10일 (토) 한가위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우리가 한껏 배불리 먹고,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고 합니다.

제2독서에서 요한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시는 환시를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시며,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9월 10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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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계절의 변화를 섭리하시는 하느님, 해와 비와 바람을 다스리시어 저희에게 수확의 기쁨을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께 오롯한 감사를 드리고 조상을 공경하며 가족과 이웃과 화목하여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루카 12장 15-21절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한가위 추석
두봉 레나도 주교 신부 강론

 

 

2022년 9월 10일 (토)
두봉 레나도 주교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한가위 추석
김주신 멜키올 신부 강론

 

 

2022년 9월 10일 (토)
김주신 멜키올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강수원 베드로 신부

 

부자로 사는 방법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과 사랑을 나누는 한가위에, 교회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노고를 축복하시고 손수 풍성한 결실을 내주셨음에 감사드리며(제1독서 참조), 세상에서 고생한 의인들을 그분께서 수확하여 거두시는 심판의 때를 선포합니다(제2독서 참조). 

오늘 복음은 그러한 하느님의 심판을 합당하게 준비하는 삶에 관한 가르침(루카 12,1─13,9 참조)입니다.

부자의 속마음에는 유독 ‘모으다’(17.18절)와 ‘쌓아 두다’(19절) 같은 표현들이 가득합니다. 자신이 거둔 소출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감사의 마음은커녕, 그 재산에 기대어 안심하고 즐길 생각뿐입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하느님도, 나눔을 실천할 이웃도 없습니다. 더 벌어서 계속 더 큰 곳간을 짓고 그것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어 버린 탐욕은 인간의 영혼을 좀먹는 가장 큰 유혹이며 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부자를 “어리석은 자”,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꾸짖으십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줄지 않는 보물을 쌓으라고 자주 말하면서(루카 12,33; 16,9; 18,22 참조), 그 방법으로 이웃에 대한 자선을 제시합니다. 한편 잠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주님께 꾸어 드리는 이, 그분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 주신다”(19,17). 

모을 줄만 알고 통장에 찍힌 금액에서 만족과 안정을 찾는 세속적인 부자가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믿음 그리고 이웃을 향한 나눔과 자선을 통하여 가진 것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하느님 나라의 부자로 살아갑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덕분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 

한가위 명절에 오늘 복음을 읽는 이유는 오늘 부자의 예를 통해 한해 수확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수확을 많이 한 오늘 복음의 부자는 감사할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나눌 것과 나눌 곳이 있으면 나눠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많은 수확에 자만자족하고 욕심만 부리다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수확을 많이 거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첫째로 많은 수확에 자만자족하지 말 것입니다. 

자만자족은 그 많은 수확이 자기 능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자랑하는 것이기에 이런 자만자족 안에는 그 수확에 큰 역할을 한 다른 사람이 있을 자리가 없고, 그것을 다 이루어 주신 하느님께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신 것이 아닌 셈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믿는 사람은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당연히 누구의 덕도 보지 못하고 하느님의 덕도 보지 못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고기 잡는 데 능력도 있었고 밤새도록 노력도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두운 밤을 경험한 뒤에야 그때까지 자기의 능력과 노력으로 고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교만이 깨졌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고기가 많이 잡혔을 때 자기가 지금까지 얼마나 자만하고 교만했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하느님을 얼마나 몰라봤는지, 그 죄를 깨닫고 죄인인 자기에게서 떠나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덕분에 살고, 하느님 덕분에 많은 수확을 한 것입니다. 내 주변에 협력자가 있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그들을 보내주신 덕분이고, 그들 덕분에 내가 수확을 한 것이지 나 혼자 그 모든 것을 한 것이 아닙니다. 

덕이 있는 사람이 덕을 봅니다. 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덕을 보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해주신 것이라는 것조차 보지 못합니다. 

덕을 본다는 말은 덕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서 덕을 본다는 뜻인데 덕이 있는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의 덕과 하느님의 덕도 보는 법입니다. 덕인이라야 태양이, 바람이, 공기가, 비가 다 하느님 덕분임도 볼 수 있습니다. 

덕인은 재승덕(才勝德)하지 않고 다시 말해서 재능이 덕을 앞서지 않고, 덕승재(德勝才) 곧 덕이 재능보다 앞서기에 덕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확뿐 아니라 모든 것을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당연히 배은망덕背恩忘德하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이어야겠습니다. 그런데 배은망덕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인데 덕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그리므로 덕분에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잊지 않는 덕인은 이제 자기가 입은 덕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줍니다. 자기 덕분에 다른 사람이 덕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덕분이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덕을 나눈다는 뜻이지요. 하느님께서 덕의 원천이시기에 제일 먼저 당신 덕을 나누어 주셨고, 나도 하느님 덕분에 덕을 지니게 되었기에 그 덕을 나눌 수 있는데 노랑이가 아니라 사랑의 사람이요 덕인이라면 덕을 나눌 수 있어야겠지요. 

그러므로 이제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결론 내리면 자기의 수확을 나누지 않고 자기 창고에 쌓은 부자처럼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니라 감사할 것이 많은 부자, 사랑할 사람이 많은 부자, 나눌 것이 많은 부자이겠습니다. 

한가위 명절에 여러분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보통 인사드리는데 저는 하느님 덕분에 그리고 여러분 덕분에 제가 있었고, 제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었다고 감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안수정동이란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남자가 달려드는 코끼리를 피해 도망치던 중에 우물을 만났습니다. 등나무 줄기를 붙잡고 우물 아래에 내려가자 바닥에 뱀들이 가득한 것이 아닙니까? 머리 위를 올려보니 설상가상으로 흰 쥐와 검은 쥐가 나무줄기를 갉아 먹는 중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갈등하고 있을 때, 머리 위로 무엇인가가 떨어졌습니다. 손가락을 찍어 맛을 보니 달콤한 꿀입니다. 이 남자는 죽을 위기에 처한 것도 잊고 정신없이 꿀만 받아먹었습니다. 
 
이 남자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상태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냥 꿀만 받아먹다가 의지하고 있던 나무줄기가 끊어져 우물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줄을 타고 올라가 코끼리와 싸우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꿀만 받아먹을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데 이 우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 모습을 빗대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결국 죽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겠습니까? 달콤한 꿀과 같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다가 죽겠습니까? 아니면 나의 의지와 능력을 키워나가면서 위험이 있어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기껏 돈 벌라는 것일까요? 기껏 세상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는 것일까요? 분명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후,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활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가위 미사를 봉헌합니다. 우리의 옛 조상님들은 한 해를 마무리해가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그 절정에 자리한 팔월 한가위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잘되었든 못되었든 간에,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은 조상님 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미사를 봉헌하면서 사랑을 쏟아부어 주시는 하느님께, 그리고 지금 여기 있게끔 해주신 조상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감사의 마음과 함께, 우리도 언젠가는 갈 수밖에 없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지금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즉,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것에 온 힘을 쏟는 삶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가져다주는 것에 온 힘을 쏟을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도 ‘참 좋은’ 모습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 떳떳하게 들어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기도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는 바라는 것을 상상하고, 상상하는 것을 추구하며, 추구하는 것을 창조한다.

- 조지 버나드 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루카 12,15)

 

잠시 멈춰 추석 보름달을 바라보자. 세상이 바뀌어도 생명의 고향은 항시 존재한다. 추석명절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삶의 의미는 생명의 기쁨이다. 생명의 기쁨은 모두가 하나같이 소중한 생명의 기쁨들이다. 

사람의 삶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생명 존중은 생명 중심이다. 생명이 있기에 행복과 여러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 수 있다. 다시 우리의 삶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깨닫는 시간이다. 

생명의 기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기쁨이다. 진정한 사람 정직한 사람으로 사는 기쁨이다. 고향을 고향으로 여길 줄 알며 생명을 생명으로 여길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자연이 하느님의 질서 안에서 서로 상생하는 것이다. 욕망이 빚어내는 욕망의 결과물들은 참으로 우리를 아프게한다. 고향을 찾는 추석 명절이 참으로 큰 가슴속 울림이 되는 것은 우리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쁨은 마음을 만나는 기쁨이다. 어머니의 모습을 만나고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만나는 마음의 만남이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고유한 역사가 있다. 가장 소중한 사랑의 마음을 만나는 추석명절이길 기도드린다. 

우리의 그리움을 찾고 만나는 시간이다. 사람의 생명은 그리운 마음에 달려 있다. 그리움을 잃어가는 우리들 삶이다. 마음을 되찾아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리운 이들을 그리며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의 고향 마음의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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