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7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7주일 -
2022년 7월 24일 연중 제17주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열 명만 찾을 수 있어도 그곳을 파멸시키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빚 문서를 지워 버리셨다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청하면 아버지께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본기도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루카 11장 1-13절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평화방송 매일미사
조부모와 노인의 날
류성태 안드레아 신부 강론
2022년 7월 24일 (일)
류성태 안드레아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부모와 노인의 날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7월 24일 (일)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아버지와 나누는 친밀함은 기도의 핵심이다.
신학생 시절, 성체 조배를 할 때 자주 분심이 들었던 저는 주위의 동료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한 부러움과 기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참으로 부끄러워했어야 하는 점은, 그 당시 어느 누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오늘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 내용과 함께 그 자세까지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안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이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부르실 때 사용한 이 호칭은 아들과 아버지의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를 말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이 호칭으로 하느님을 부르라 하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고 말씀하시며 성모님을 어머니로 소개하신 것처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께서 하느님과 맺고 있는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초대하십니다.
아버지와 나누는 친밀함은 기도의 핵심이며 목표입니다. ‘아버지’라는 호칭 하나만으로 ‘다른 민족 사람들의 빈말’(마태 6,7 참조)이 필요 없습니다.
아울러 ‘아버지’라는 호칭은 아버지와 이루는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자녀라는 사실도 알려 줍니다. 서로서로 형제로 대하는 것이 ‘아버지’라는 호칭의 진정성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기도가 더 단순해지고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뇌물과 선물 구분법
영화 ‘선생 김봉두’(2003)의 내용입니다. 김봉두 선생은 촌지를 밝히는 못된 선생님입니다. 아이들을 차별합니다. 그러다 봉변당합니다. 이런 사실이 공공연하게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방탕한 생활과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사정하여 아무도 가기 꺼리는 폐교 직전의 강원도 산골 학교에서 몇 년 지내기로 합니다.
도시에서 촌지를 받던 것과는 사뭇 다른 시골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다섯 아이의 부모가 차려주는 술자리도 고급 주점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담배 살 곳도 없습니다. 어떤 할아버지에게 담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지만 양담배만 찾다가 물벼락을 맞습니다.
다섯 아이 중 양소석이란 아이는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도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밥도 제대로 못 먹습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먹던 라면을 그 아이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아이들에게 급식을 주게 됩니다.
이에 아이들이 자습만 시키는 선생님에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김봉두 선생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봉투 하나씩 주며 편지와 감사의 마음을 채워오라고 합니다. 부모님과 꼭 상의해서. 그런데 그 안에 든 것은 아이들의 진심 어린 마음과 더덕과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김 선생은 산골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아이들의 장점들을 하나하나 발견하여 아이들을 다 도시로 전학시키면 학교가 폐교될 것이고 그러면 자신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찾아 발전시켜 주는 선생님에게 감동합니다. 부모들도 감사해합니다. 그런데 이런 소식을 듣고 도시에서 부잣집 아이가 이사를 옵니다. 그 부모는 선생님에게 촌지를 줍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물들어버렸는지 그 촌지가 썩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자 김봉두 선생은 자신을 짜증 나게 하는 아이들의 손바닥을 때립니다. 서울에서 이사 온 아이가 시골 아이들을 깔보며 그들 탓을 하자 싸움이 붙습니다. 서울 아이의 엄마는 이게 알아서 해 주는 것이냐며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을 탓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유 없이 선생님에게 맞았음에도 선생님 편을 들어줍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봉투에 써 왔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봅니다. 순수하게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각성합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에게 물들어갑니다. 자신들이 아끼는 것들을 선생님에게 가져다 바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소석이는 자신이 일해서 번 3만 원을 선생님 집 문에 꽂아둡니다.
김봉두 선생은 소석이를 찾아가서 종아리를 때립니다. 그리고 안아줍니다. 자신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이 타락해가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폐교 결정이 내려집니다. 눈물의 졸업식을 하고 마을 사람들은 돈을 모아 진정으로 감사의 표현을 합니다. 안 받으려고 했지만,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병환에 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도시에서 촌지를 주었던 부모나 학생들은 선생님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지만, 강원도 시골에서 있던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만이 선생님에게 조문을 옵니다. 김봉두 선생은 아버지의 영정사진 앞에서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선물입니다. 우리가 받는 선물에는 선물을 주는 이의 예언이 들어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다”라는 말이 쓰여있는 것입니다. 촌지를 주는 사람들은 “당신은 쓰레기야. 돈을 줘야 내 자녀 잘 봐줄 거 아냐?”라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선물을 받으면 정말 쓰레기가 됩니다. 이런 선물을 ‘뇌물’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뇌물을 줄 수도 있고 뇌물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김봉두 선생처럼 타락한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나를 인정해주기 위해 주는 선물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고 그저 고마워서 주는 선물이 있습니다. 이 선물은 “당신은 존귀한 사람입니다”란 믿음이 들어있고 이것을 받으면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런 존재로 믿게 하시기 위해 주시는 선물이 있는데 이것이 ‘성령’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부분은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심이고, 둘째 부분은 벗이 왔다고 빵 세 덩이를 잠자는 친구에게 귀찮게 청하는 내용이며, 세 번째 부분은 성령을 청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세 부분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인정받았습니다. 에덴동산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오히려 덜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교만해졌고, 더 육욕에 빠졌으며, 더 소유하려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그 은총을 거저 주지 않으시고 청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꾸준히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밥을 안 주면 주인을 무는 개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물리는 게 두려워서 개에게 음식을 준다면 이는 그 개를 겸손하게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더 소유욕-식욕-지배욕에 빠지게 만듭니다. 따라서 주인에게 간절히 청하기 전까지는 주인이 주면 안 됩니다. 갑과 을이 바뀌면 개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로 성령의 선물을 청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으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그러하셨듯이 청빈-정결-순명의 세 빵을 갖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이 세 개의 빵을 갖지 못하면 친구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실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꾸준히 하느님 아버지께 성령을 청해 복음삼덕을 키워야 합니다.
기도는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성령으로 삼구가 죽고 복음삼덕이 피어난 에덴동산과 같은 마음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그러려면 내 동산을 망치는 세속-육신-마귀를 죽여야 하는 데 그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의 기도를 끈질기게 바치는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끝까지 청하고, 끝까지 찾고, 끝까지 문을 두드려라.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농담조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것이 최고로 잘 사는 것 같습니다.
몇 달 전에 장염으로 고생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선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밤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를 못하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5kg 이상이 빠졌습니다.
기본이 제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본보다 특별한 것만을 청하고 있습니다. 기본은 당연히 주시는 것이고, 사랑한다면 특별한 것을 주셔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사의 순간인데도 이 기본에 감사함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에도 우리는 특별함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먼저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랑의 길을 따르는 그 기본에 충실할 때, 주님 뜻과 함께 하늘 나라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이 되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기도의 형식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도 항구하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한밤중에 잠자는 친구 집에 빵을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십니다. 이것이 기본이라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흔히 밤에 여행합니다. 도보로 여행하는데, 더운 낮에는 뜨거운 태양에 도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행하는 친구가 찾아든 시각은 늦은 밤이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보통 해 뜨기 전에 그날 먹을 빵을 굽기에 한밤중에는 빵이 떨어지기 일쑤였지요. 그래서 친구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마 문을 두드렸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손바닥으로 문을 두드리거나, 돌멩이를 집어서 문을 두드리면서 큰소리로 집주인을 불렀다고 합니다. 온 가족이 깨기에 충분합니다.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우정과 귀찮음의 갈등이 보입니다. 웬만한 우정이 아니면 귀찮음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집요하게 졸라대는 귀찮음에 화를 내지 않고 우정을 발동하여 필요한 것을 줍니다.
이처럼 끝까지 청하고, 끝까지 찾고, 끝까지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기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청하기 전에 미리 주시는 사랑이지만, 우리의 간절함이 더 빨리 하느님의 사랑을 이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어떠한 것일까요?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행하고 있었을까요? 간절한 기도를 통한 기본에 충실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우리가 이겨낸 유혹의 기억보다 더 만족스러운 기억은 없다.
- 제임스 브랜치 캐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루카 11, 9)
주님 앞에 내놓기 한참 부끄러운 우리들 기도의 삶이다. 기도는 거짓없이 노력하는 우리들 삶이다. 우리들 삶을 지켜주는 기도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신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가장 좋은 하느님 사랑을 만난다.
만남은 닮는 것이다. 예수님을 닮는 기도는 삶의 가장 아름다운 의미가 된다. 우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을 바라보고 만나는 살아있는 기도이다.
기도는 삶의 중심이다. 기도는 믿는 것을 실천하고 바라는 것을 먼저 베푸는 삶의 겸손이다. 기도는 마음의 성화이며 생활의 승화이다. 주님께서는 삶과 함께 기도를 주셨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시다. 주님께서도 노력하시듯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우리또한 기도로 참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사람과 기도는 하나이다.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년 7월 27일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2.07.27 |
---|---|
22년 7월 26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2.07.26 |
22년 7월 25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2.07.25 |
22년 7월 23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2.07.23 |
22년 7월 22일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2.07.22 |
22년 7월 21일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2.07.21 |
22년 7월 20일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0) | 2022.07.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