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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7월 23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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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

 

 

2022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의 주민들이 그들의 행실을 고치면 당신의 집에 살게 하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외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7월 23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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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의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13장 24-30절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24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심현보 루카 신부 강론

 

 

2022년 7월 23일 (토)
심현보 루카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2022년 7월 23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씨앗은 ‘저절로’ 자란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가 빠르고 강력하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럴듯한 성과는 보이지 않고 방해자들만 늘어가는 것 같은 상황에, 기대는 점점 실망으로 바뀌고 예수님을 향한 마음도 흔들렸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에게 하느님 나라는 그 영향력과 힘, 생명력을 느끼기 어려울 때도 있고 가라지와 같은 악의 존재 때문에 그 열매들이 흐릿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성장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지만 자라서 큰 나무가 됩니다 (마태 13,32 참조). 

씨앗은 ‘저절로’ 자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의 활동에 의존하거나 인간의 눈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박해와 같이 퇴보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성장합니다. 또한 누룩은 온 반죽에 파고들어 그 반죽을 부풀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마태 13,33 참조).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신앙이라는 누룩이 우리 삶의 모든 곳에 파고들고, 신앙인 한 사람이 가정과 사회에 파고들어 점차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빠르고 강력하며 큰 반향을 일으키는 하느님 나라에 주목하는 사이 작지만 소중한 성장의 표지들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 돌봄이 필요한 이를 떠올리고, 세상의 정의를 위하여 좀 더 행동하겠다는 결심을 하며, 피조물 보호를 위하여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것 등. 그 또한 하느님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라지의 비유

 

“저 사람은 왜 저런 거야?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이런 식으로 남들에 대해 못마땅함을 표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소위 ‘자뻑’이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믿거나 자신에게 반하여 푹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잘 보면 오히려 단점이 더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너는 뭐 잘하니?’

솔직히 ‘자뻑’ 보다는 ‘자학’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자존감 떨어지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자학하는 사람이 더 변화의 가능성에 가까이에 있는 사람입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이때는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옳고 남은 틀렸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더 이상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자뻑’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며 자기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학’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가라지는 성경 원문에서 ‘지자니아’라고 하는 해로운 식물로 밀과 아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밀과 가라지는 모두 커서 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그 누구도 식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따라서 종들이 가라지를 발견한다는 것은 가라지가 꽤 자랐을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양도 종들이 놀랄 만큼 많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원수가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저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리고 주인에게는 밀 이삭 하나가 아깝고 귀중하기에, 추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밀과 가라지를 가려내라고 하십니다.

우리 교회 안에 선한 사람만이 있을까요? 주님께서도 우리 공동체 안에 선한 사람만이 아닌, 악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을 뽑아내려다가 선한 사람까지 뽑혀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은 마지막 날의 하느님 심판을 연상하게 합니다. 하느님 심판 전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두고서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심판은 오로지 하느님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의 행동에 대해 끈기 있게 기다리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대신 진정으로 회개하면서 자기 자신을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선한 사람이 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절망하지 마라. 종종 열쇠 꾸러미의 마지막 열쇠가 자물쇠를 연다.

- 필립 체스터필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마태 13, 29)

 

다른 곳이 아닌 같은 곳에서 밀과 가라지가 자라난다. 애써 가꾼 밀도 드러나고 그 틈에 끼어 자라나는 가라지도 드러난다. 주님께서는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뽑아 없애는 것에 너무 익숙한 우리들 삶이다. 

우리 힘으로 다 뽑을 수도 없는 우리 내면의 가라지들이다. 가라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가라지는 가라지의 임무에 언제나 충실하다. 가라지가 있기에 밀은 더욱 겸손하다. 

밀의 기도는 서로를 잡아당기는 생명의 공존이다. 가라지의 무게가 십자가의 무게만큼 우리의 삶을 봉헌으로 이끈다. 가라지를 키운 장본인이 바로 우리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가라지를 기다려주시고 밀을 품어주시는 주님이시다. 

밀과 가라지 모두를 주님께 의탁한다. 봉헌이란 나의 가라지를 인정하고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멈출 수 없는 봉헌의 삶이다. 밀과 가라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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