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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7월 25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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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 야고보 사도 축일 -

 

 

2022년 7월 25일 (월)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는데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7월 25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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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야고보 사도가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로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게 하셨으니 그의 영광스러운 증거로 교회를 튼튼하게 하시며 하느님의 보호로 교회를 지켜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20장 20-28절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심현보 루카 신부 강론

 

 

2022년 7월 25일 (월)
심현보 루카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7월 25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인호 루카 신부

 

신앙에도 서열이 있을까요?

 

동물의 세계에서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순서로 서열이 정해집니다. 사람들의 서열은 어떠할까요? 아이들은 좋은 장난감과 게임 실력이, 학생들은 학교와 성적이, 어른들은 정치력과 경제력 그리고 외모 등이 서열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에도 서열이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부모의 영향력과 함께 미묘한 서열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이 소개됩니다. 
제자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리라 예상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높이 올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높은 사람, 첫째가 되는 다른 방법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높은 이와 첫째에 대한 뼛속 깊이 박힌 우리의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며 기념하는 야고보 성인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그는 뒷날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받고 사도로서는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첫째가 된 것입니다. 성 야고보 사도의 모범을 따라 우리도 하늘에서 받을 서열을 조금씩 높여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

 

이제 3살인 어린 딸이 어린이집에서 장래 희망에 대해 들었는지 엄마에게 “엄마!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라고 묻습니다. “글쎄, 난 엄마가 될 거야.”라고 대답하자, 아이는 곧바로 항의하듯, “엄마는 이미 엄마잖아요. 진짜 뭐가 되고 싶냐고요.”라고 다시 묻습니다. 
 
“좋아! 그러면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말하자, 아이는 “이것도 안 돼요. 엄마는 벌써 선생님이잖아요.”라고 말합니다. 
 
이 엄마는 비로소 자신이 현재만 바라보며 살고 있을 뿐 꿈이 없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엄마, 아내, 선생님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익숙한 것이 편합니다. 그러나 익숙함이 지루함을 만들어 지금을 힘차게 살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며 지금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새로움 안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열쇠를 잃었다면서 가로등 아래에서 열쇠를 찾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열쇠 찾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열쇠 잃어버린 것 맞아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아니라면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가로등 밑이 밝아서 찾아보기가 제일 좋잖아요.” 
 
편하고 쉬운 것,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만 찾는 이가 바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며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살로메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십자가 밑에 있던 부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예수님 곁에서 열성적으로 시중들었기에, 자기 아들들이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 곁에 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백성 위에 군림하고 백성에게 세도를 부리는 모습만을 생각하며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 곁에 있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도 이런 모습을 떠올리고 있어서, 이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법칙과 전혀 다른 모습을 이야기하십니다.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첫째가 되려는 이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높고 낮음을 따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이고, 여기에서 세상의 모든 불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자신을 가장 낮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나라입니다. 교만과 욕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결코 갈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를 지향하면서 과연 우리의 모습은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고 있을까요? .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힘겨운 상황에 부닥치고 모든 게 장애로 느껴질 때, 단 1분조차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느껴질 때, 그때야말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바로 그런 시점과 위치에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한다.

- 해리엇 비처 스토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 28)

 

눈 앞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의 목숨도 이와 같다. 우리의 목숨이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답이며 가장 올바른 실천이다. 영혼을 흔드는 부르심이 있다. 

목숨을 살리시는 진리가 있다. 진리를 목숨으로 받아들였던 성 야고보 사도의 값진 축일이다. 일상에서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용기를 준다. 매순간이 새로운 출발이며 시작이다. 

영원한 진리를 만나는 기쁨의 삶이다. 부르심과 응답은 유한성을 깨닫고 영원성을 얻는 고귀한 목숨의 여정이다. 새로운 세상 하느님 나라가 열린다. 목숨에는 목적이 있다.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삶이 신앙인의 올바른 삶이다. 목숨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삶이다. 성 야고보 사도는 목숨의 참된 길을 대변해 주고 있다. 목적과 목숨은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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