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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1/09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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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처음 시간이 생기기 전, 말씀은 하느님이셨네. 그 말씀이 세상의 구원자로 태어나셨네.

하느님, 성자를 통하여 온 인류에게 영원한 빛을 보여 주셨으니 하느님 백성이 구세주의 찬란한 빛을 받아 영원한 영광의 빛에 이르게 하소서.

2025년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월 9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1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요한 4,19―5,4)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 오늘 복음
    (루카 4,14-22ㄱ)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 오늘 말씀 카드
    (1요한 5,3)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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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한 4,19―5,4
오늘 제1독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을 

19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21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은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4,14-22ㄱ
오늘 복음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15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9일
임영준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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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는 신앙의 신비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밝히신 당신 공생활의 출사표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어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의 눈길이 당신께 향하고 있을 때 짧은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설명하시지 않았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가운데 사람들을 찾아 나서신 당신 사랑의 행보와 더불어 ‘지금 여기에서’ 그것이 실현되고 있음을 밝히셨습니다.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은 저마다 사정은 다를지라도 모두 감내해야 할 삶의 무게가 만만하지 않은 이들입니다. 그러기에 체념과 포기 한편에 또 그만큼의 간절함을 품고 살아왔겠지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감격과 위안을 느꼈을지 짐작이 갑니다.

한 달에 한 번 아버지가 계신 요양원에 미사를 갑니다. 그때마다 열 분 조금 넘게 미사에 오십니다. 귀가 어두운 분들이 많아 제가 목소리를 높여 경문을 읽으면 그분들도 큰 소리로 우렁차게 화답해 주십니다. 치매 어르신들이 많은데도 기도문은 참 잘 외우십니다. 신앙의 신비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또 힘을 내어 서로 사랑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 고수들의 사랑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은 성서 말씀이기에 맞는 말이겠지만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종종 봅니다 

그러므로 서간의 이 말씀이 맞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이겠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보이지 않기에 사랑하기 힘들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보이는 형제보다 사랑하기 쉽기도 합니다. 특히 사랑하고는 싶은데 눈에 형제들이 다 꼴 보기 싫은 경우 더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을 포기한 사람이 아닌 한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기에 누군가 내 사랑의 대상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도 사랑해보고 저 사람도 사랑해보고 하는데 하는 사랑마다 실패하고 그래서 사랑의 쓴맛을 너무도 많이 체험하여, 이제 인간 사랑은 진절머리가 나 포기하고 꿩 대신 닭이랄까 닭 대신 꿩이랄까 보이지만 꼴 보기 싫은 인간 대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꼴 보기 인간도 싫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사랑도 싫은 사람은 꿩 대신 닭 격으로 반려동물을 자기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지요. 그런데 하느님 사랑에서 참사랑을 배운 사랑 고수들의 사랑은 이렇습니다. 

보이는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표지이자 공현이듯 보이는 인간을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표지이자 공현으로서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라는 말씀처럼 모든 인간을 형제로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사랑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참사랑을 배운 우리는 보이는 사랑에 머물거나 보이는 사랑은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사랑에 머물지 않고, 이 사랑에서 저 사랑을 보고 저 사랑에서 이 사랑을 보는 사랑 고수들이 돼야겠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실버 성가대를 이제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선 첫 모임을 갖고 어떻게 연습할 것인지 정하려고 합니다. 1월 19일(일) 11시 주일 미사 봉헌하고 연습 날짜와 방식을 정하겠습니다. 모임 장소는 여기 밥상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사랑의 길은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주님 공현 후 주간 안에서, 주님의 현현을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지난 월요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늘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에서의 공생활의 시작은 그 “하늘나라”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주는 이사야 예언의 성취가 선포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 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루카 4,21)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루시는 하느님이심을 현현하십니다. 마치, 창조 때 하느님께서 “~(라고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다”(창세 1,9.11.15.24.30)라고 하시며 말씀을 이루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말씀을 이루시면서 하느님이심을 선포하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말씀을 이루시는 구원자로 당신을 선포하십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 말씀이 듣는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곧 ‘듣는 행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듣는 행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이 사실은, 들을 때 듣는 자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곧 말씀을 영접하는 행위요,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를 이루는 길은 명확합니다. 그것은 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 결코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서는 진리에 나아갈 수 없는 까닭입니다. 곧 진리를 이루지 않고는 진리에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길은 사랑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결코 사랑을 실행하지 않고는 사랑의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가능한 까닭은 이미 그 사랑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만 그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사도 요한은 오늘 <제1독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9-21)

그래서 우리는 잠시 후에, <예물기도>를 이렇게 바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놀라운 교환의 신비를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침으로써, 저희가 주님을 합당하게 모시게 됩니다. 그러기에, 다른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께 받은 것, 바로 그것을 실행해야 합니다. 이미 받은 말씀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이미 받은 사랑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바로 그 안에서 현현하실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4,21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주님!
제가 들은 말씀이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 말씀이 저를 찌르고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말씀을 이루소서.

굳게 닫힌 
제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굳은 심장을 녹이소서.

이기심과 자애심에 묶인 
저를 해방하소서. 

제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들은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사람들이 하는 큰 실수 중에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일입니다. 해석은 벌써 그 안에 ‘의심’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말씀을 하시는 분보다 높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시체를 해부합니다. 이것이 해석과 같습니다. 해석은 자녀가 부모의 말에 하는 행동이 아닌 부모가 자녀의 말에 대해 하는 행위입니다. 

제가 자주 쓰는 예화로, 부자가 두 아들에게 황무지 땅을 반으로 나누어 유산으로 주었습니다. 부자는 그 땅에 보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아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열심히 황무지를 팠지만, 보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고 여겨 포기하고 폐인이 되었고, 한 아들은 이렇게 된 이상 농사나 지어보자고 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는 행복의 길입니다. 그 말씀을 따르면 무조건 행복해집니다. 불행해지라고 자녀를 낳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말씀은 순종하기만 하면 행복해집니다. 만약 교만해져서 해석하려고 하면 자기 뜻대로 말씀을 조작하여 결국엔 순종하지 못하게 되고 불행에 떨어집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요? 당신께서 성취해야 하시는 ‘예언’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루마리를 펴서 읽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누가 이루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취하셨습니다. 누구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까? 아버지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헨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는 말을 엿듣습니다. 당시 유럽에 기근이 들 때 정말 아이들을 버리는 부모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헨젤과 그레텔을 데리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헨젤은 미리 준비한 흰 조약돌로 길을 표시하여 그레텔과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는 더욱 분노하며 아이들을 다시 버리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헨젤이 빵 부스러기로 길을 표시하지만, 새들이 그것을 모두 먹어버려 길을 잃고 맙니다.

길을 잃고 헤매던 헨젤과 그레텔은 과자로 만들어진 집을 발견합니다. 배고픈 아이들은 집을 먹기 시작하지만, 사실 이 집은 마녀의 집이었고, 마녀는 헨젤을 살찌워 먹기 위해 가두고, 그레텔을 하녀로 부립니다. 

아이들은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 마녀를 속이고, 그레텔은 마녀를 오븐에 밀어 넣어 탈출합니다. 아이들은 마녀의 보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이제 가족이 굶주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됩니다. 

집에 돌아오니 계모는 이미 사라졌고, 아버지는 아이들을 사랑으로 맞이하며 기뻐합니다. 

이 동화에서 아무래도 헨젤과 그레텔의 엄마의 상징은 마녀입니다. 마녀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은 하나하나 해석하여 나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해석해야 하는 말을 하는 대상은 결국 우리가 이겨야 살 수 있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동화에서는 처음에 어머니였다가 차차 계모로 바뀝니다. 

우리가 성경을 그런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절대 참 창조자를 만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해석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예언으로 받아들여 나에게서 성취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 창조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록펠러는 부자 크리스천이었지만, 수전노였습니다. 병이 들어 가난한 여자 아이의 치료비를 대 주고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라는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이때 비로소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해석하지 않고 하나의 예언으로 자기에게서 실현시켰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지겠습니다.”라고 응답하고 순종했습니다. 결과는 엄청난 물고기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해석하려고 노력하지 맙시다. 그러면 우리가 만나야 할 분을 죽여야 하는 대상이 되게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의심이 생긴다면, 그래서 돌 주머니를 차거나 빵 부스러기를 버려야 한다면, 그 엄마는 마녀처럼 불에 처넣어야 하는 상황과 같습니다. 반면 베드로처럼 말씀에 무조건 순종한다면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그분을 창조자로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방황하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만나지 못한 하느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말씀을 해석하지 말고 순종할 용기를 내어봅시다. 

말씀은 무엇이건 나에게서 성취될 예언입니다. 예언자는 예언이 성취될 때 자신을 보내신 분을 진정으로 만납니다. 성경은 해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에게 성취되도록 순종해야 할 예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1938년 하버드 외과 대학 연구팀은 하버드대 남학생들을 모집한 뒤 평생에 걸쳐 그들의 삶을 추적 관찰했습니다. 일명 ‘하버드 그랜트 연구’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구학적으로 볼 때 일반화가 가능한 결과를 도출하기에 대상 범위가 너무 좁은 것으로 판단되어, 보스턴 빈민가 젊은이들도 포함해서 평생에 걸쳐 그들의 삶을 추적했습니다. 일명 ‘글루에크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행복을 주제로 최장기간 진행된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행복한 삶의 조건은 무엇인가?’가 밝혀졌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 것입니다. 금연, 금주, 체중, 운동, 순응적 대처방식, 교육, 인간관계. 이렇게 7가지 목표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한 가지를 뽑는다면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관계’
 
행복하고 건강한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특징은 건강한 인간관계였습니다. 그래서 50세에 인간관계에서 가장 만족감을 느꼈던 사람들이 80세에 가장 건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종종 인간관계를 끊으려는 분들을 만납니다. 인간관계를 끊으면 순간적인 만족은 얻을 수 있습니다. 또 편하고 홀가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에게 가장 큰 해로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 말이 떠올려집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가셔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구원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바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맺기 위해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앞서 ‘행복한 삶의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아니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구원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를 끊어버리게 되면 누가 손해일까요? 결국 자기 손해로만 다가옵니다.
 
동반자적 사랑의 관계가 주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순간적인 만족을 위해, 또 자기 편한 것만 따지면서 그 관계를 외면하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모두 편견을 비난하지만, 아직은 모두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

- H. 스펜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시간 속에 함께 한 간절했던 말씀의 발자욱들을 봅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이란 다름 아닌 말씀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듣고 말씀이 우리 삶에 이루어질 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하나 말씀에 동참하는 사람이 너무나 적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동참하는 삶은 오늘의 시간을 말씀으로 채우는 삶입니다.

말씀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너그러운 이해와 신뢰로 이끌며 소중한 공동체를 만드는 바탕이 됩니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말씀입니다.

말씀과 멀어지면 우리 자신의 삶은 물론 공동체마저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이 됩니다.

오늘을 살게하며 오늘을 되살리는 것은 분명 말씀입니다. 신앙적인 실천을 뛰어넘으며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깨우쳐 줍니다.

말씀으로 오늘을 뜨겁게 살아가는 말씀의 오늘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말씀에 동의하고 말씀에 동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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