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삼으셨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외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를 새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하느님의 은총으로 저희가 그분의 모습을 지니게 하소서.
2025년 1월 11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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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요한 5,14-21)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오늘 복음
(요한 3,22-30)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3,27)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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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한 5,14-21
오늘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네.
요한 3,22-30
오늘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11일
김민준 빈첸시오 아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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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으로 커지셔야 하고 우리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
어느 날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이야기합니다.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요한 3,26).
그런데 요한이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29-30).
요한은 참으로 겸손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경쟁하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인류 최초의 죄는 하느님과 한 경쟁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어느 날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
하느님을 야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하와가 저항합니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뱀이 유혹합니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될까 봐] ……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하느님을 사람이 자신처럼 되지 못하도록 시기하시고 경쟁하시는 분으로 의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원조들은 마침내 하느님에 대한 의심과 경쟁심으로 타락하고 말지요.
오늘 요한은 이 모든 것을 되돌려 놓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으로 커지셔야 하고 우리 자신은 작아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멋진 신랑이시고 우리는 그분 최고의 사랑스러운 동반자, 신부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겸손과 세례
오늘 복음은 내일 주님의 세례 축일을 앞두고 주님과 세례자 요한이 한 곳에서 세례를 주고 있는 상황을 전해줍니다. 그러니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의 세례가 더 정통인지 설왕설래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지요.
그리고 두 분의 제자들 사이에는 경쟁하는 마음도 있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주님은 말할 것도 없고 세례자 요한도 사람들을 자기에게 끌어들이려는 분이 아니고, 주님께로 인도하는 분이고 그런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을 자기에게 오게 하는 분들이었으면 두 분은 경쟁하셨을 겁니다. 나란히 횟집을 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기 집에 들어오게 하려고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꾼들처럼 경쟁하였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을 우리가 아버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라고 하시고, 요한은 자기를, 그 길을 곧게 내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은 우리를 주님께로, 주님은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그분들이 베푸는 세례이고, 우리의 세례는 그 인도를 따라 주님과 아버지 하느님께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 분 사이에 경쟁은 없고 서로를 추어줍니다. 주님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이 가운데 세례자 요한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하고, 세례자 요한은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하며, 오늘 복음에서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모두 하느님을 지향하면 그분 앞에서 모두 작아지지만, 세상에서 자기의 성공을 지향하면 서로 경쟁하며 커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경쟁하고 있다면 나는 지금 그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있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그저 경쟁을 멈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고 하느님 앞에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나는 오늘 누구를 향하여 희망을 두고 있는가?
오늘 <복음>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통해서, 빛이신 예수님이 선포됩니다.
그가 자신을 증언하지 않고 예수님을 증언한 것은 그 자신을 비운 까닭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절로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상대에게로 건너가게 만듭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요한으로 하여금 그토록 자신을 비울 수 있게 하였을까요?
자신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게 하였을까요?
그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향하여 있지 않고 상대를 향하여 있었던 까닭일 것입니다. 결코 자기 자신을 향하여 있는 한은 자신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는 까닭입니다. 신랑을 향하여 있을 때라야 신랑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가 친구입니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었습니다.”(요한 3,29)
그렇습니다.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친구를 향한 까닭입니다. 친구인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할 때 우리는 비어집니다. 자신의 소리가 아니라 친구의 소리를 들으려 할 때,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게 되는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떠나와 우리를 ‘친구’(요한 15,15)라 부르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역시 그분을 ‘친구’라 부를 수 있으려면, 우리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와 그분을 향하여 나아갈 때일 것입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당신을 향하여 나아가는 바람에 자신에게서 빠져나오게 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나는 오늘 누구를 ‘향하여’ 희망을 두고 있는가? 오늘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다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신랑’과 ‘신부’의 성경적 표상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신부인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상합니다(예레미아, 에제키엘, 호세아). 그리고 초대교회는 이를 받아들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보았습니다(에페 5,21-33).
그러니 ‘신부인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차지’임을 표상합니다. 또한 <아가서>는 신랑이신 예수님과의 신자의 영혼과의 사랑을 아름답게 비유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교회의 신랑’으로 드러냅니다. 그러기에,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라는 말은 그분만이 ‘교회의 신랑’이시며, 민족들의 구원자임을 말해줍니다.
한편,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신랑의 친구’로 묘사합니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29-30)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고 신랑의 기쁨을 나누나, 결코 신부를 차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 친구들에게 ‘당신 신부인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깊은 우정과 사랑으로 말입니다. 그토록, 친구를 깊이 신뢰하고 존중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친구에 대한 그 사랑, 그 신의를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우리 또한 그러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3,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주님!
당신만이 저의 신랑입니다.
당신 마음을 듣게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시고
당신 빛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당신을 다 내어주셨듯이
제 전부를 드리오니
저를 차지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학창 시절의 사회 친구 중에는 벌써 희망 퇴직한 친구들이 꽤 됩니다.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권했고, 이제 이 회사에 자기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 퇴직하고 제2의 인생을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피하는 일자리만 있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짓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50대에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 참 속상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80이 넘는 나이임에도 서로 데려가려고 노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이 최강야구의 감독이 바로 80대의 김성근 감독님이십니다. 최강야구 단장이 직접 찾아가 “감독님, 우리 좀 살려주십시오.”라고 부탁했고, 그래서 80대에도 취업에 성공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80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80대에도 사람들이 불러줄까요? 80대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지금 자리에서 일류, 즉 그 누구도 대치할 수 없는 모습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남들 만큼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의 고유함을 찾기보다 남들 따라 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면 끝까지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르게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나를 대치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남처럼’이 아닌 ‘나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고유함은 주님 안에서 그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의 뜻에 집중할 때, 나의 고유함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받던 사랑과 존경이 이제 예수님께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인기는 점점 줄어들고, 역사 안에서 사라지는 것만 같습니다.
원조 맛집이 있는데, 그 옆에 똑같은 메뉴로 식당이 생겼습니다. 원래 원조 맛집이 더 장사가 잘될 것 같지만, 오히려 나중에 생긴 집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입니다. 원조 맛집의 주인은 어떤 마음이 들까요? 옆집이 장사 잘된다고 기뻐할까요?
세례자 요한 역시 화가 날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고유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이라는 자기 고유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 사람들이 가는 것을 보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자기 목적과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간직할 수 있으며, 주님 뜻에 따라서 자기 고유함을 완성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자연이 하는 일에는 쓸데없는 것이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추위에 떨어본 사람이 추위에 떠는 이웃들의 목소리를 듣고 따뜻이 그들에게 응답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우리가 기쁘게 계속할 수 있는 것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힘을 받기 때문입니다.
파견된 사람의 기쁨이며 파견된 사람의 의미입니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 세례자도 세례를 베푸십니다.
삶을 차지하는 사람은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으려 합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큰 삶의 기쁨입니다. 가장 큰 기쁨은 우리를 충만한 삶으로 이끕니다. 충만한 삶이란 하느님께서는 점점 커지시고 우리는 점점 작아지는 은총의 삶입니다. 참되신 하느님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참되신 하느님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참되신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 것이 삶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목소리를 서로 주고받으며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서로의 목소리에서 오늘의 복음을 듣고 만나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오늘의 복음은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의미있는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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