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5/01/08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 8.
반응형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치네.

온 인류를 비추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백성이 한결같은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저희 조상의 정신을 밝히시던 그 빛으로 저희 마음도 비추어 주소서.

2025년 1월 8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월 8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1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1요한 4,11-18)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오늘 복음
    (마르 6,45-52)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 오늘 말씀 카드
    (1요한 4,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1요한 4,11-18
오늘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신 그리스도님, 영광받으소서.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리스도님, 영광받으소서.

 

 

마르 6,45-52
오늘 복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45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월 8일
김민준 빈첸시오 아 바오로 신부

 

✚ 미사시작 00:24

✚ 강론시작 07:32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생중계 성당

 

  • 가회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가회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가회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06: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생중계 없음


  • 남양성모성지 온라인 매일미사
    남양성모성지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남양성모성지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생중계 없음 / 화 11:00 / 수 11:00 / 목 11:00 / 금 11:00 / 토 11:00


  • 원당동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원당동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원당동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1:00 / 월 10:00 / 화 19:00 / 수 10:00 / 목 19:00 / 금 10:00 / 토 10:00


  • 초당성당 온라인 매일미사
    초당성당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초당성당 생중계 미사시간
    주일 10:30 / 월 06:30 / 화 19:30 / 수 10:00 / 목 19:30 / 금 10:00 / 토 10:00


  • 팔로티회 온라인 매일미사
    팔로티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바로가기

    분당 팔로티회 : 성시간(15:00) 후 미사(16:00)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까닭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모두 흩으시고는 기도하시러 산에 가십니다. 저녁 무렵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맞바람을 만나 고생합니다. 실제로 큰바람이 불면 호수에서도 1미터가 넘는 파도가 일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유령이라 착각하고 비명을 지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하고 안심시키시며 배에 오르십니다. 

그러자 풍랑이 멈춥니다. 그렇게 빵의 기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제자들이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어둠을 헤치고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6-18)라는 확신에 찬 고백을 들려줍니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서로 사랑하자고 합니다. 울리히 샤퍼(U.Schaffer)의 시에 김종성(사도 요한) 신부님이 곡을 붙인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이라는 생활 성가를 소개합니다.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아무도 그대가 준 만큼의 자유를 내게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그대 앞에 서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 (중략) /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이 모든 것을 당신 앞에 하나 되어 노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들으며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돌아보면 어떨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갈망과 의지와 은총

오늘의 서간은 하느님 사랑의 완성과 완전한 사랑에 관해 얘기합니다. 인간적인 사랑의 완성도 논하기 어려운데 감히 하느님 사랑의 완성을 얘기하다니 솔직히 놀랍기도 하고 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 사랑 박사 요한이 아니라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 얘기는 하느님 사랑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완성된다는 말씀인데, 하느님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이니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해야 완성되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인간으로는 가능치 않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하느님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요한의 서간이 줄곧 얘기하는 것은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러기에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도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올까요? 저절로 오는 것일까요? 우리가 끌어와야 하는 것일까요? 이에 관해 오늘 서간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그렇다면 이건 무슨 얘기입니까?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와야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데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사랑할 때 온다니 말장난 아닙니까? 

비가 오면 맞아야 하고, 햇빛이 비치면 쫴야 하지요. 그런데 비가 싫고 햇빛이 싫으면 그래서 비와 햇빛을 사랑하지 않으면 맞지도 쫴지도 않겠지요. 하느님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느님 사랑을 사랑하지 못할지라도 사랑을 사랑해야 하고 그리고 현재의 사랑에 안주하지 않고 더 사랑하고 싶어 해야 합니다. 

이런 더 사랑하고 싶은 갈망과 더 사랑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에야 원수까지 사랑할 하느님의 사랑이 비로서 오고 은총으로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인간 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마중물이고, 하느님 사랑이 우리 사랑의 완성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갈망과 의지와 은총, 이 세 가지가 사랑의 성장과 완성의 근본 요소들임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 공현 후 수요일입니다. 오늘도 역시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느님이심을 현현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를 이중으로 드러내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호수’ 위를 걸으십니다. 이는 당신께서 어둠을 누르는 권능을 지니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줍니다. 홍해바다를 가르고 당신 백성을 구해내시면서, 당신께서 주 야훼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셨듯이 말입니다. 

마치, <욥기>에서 하느님을 일컬어 “바다의 물결을 밟으시는 이”(욥 9,8)라고 했듯이, 당신께서는 바다를 밟으심으로써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리하여, <요한 묵시록> 21장에서는 “새 하늘 새 땅”은 말하지만, “새 바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게 됩니다. 어둠인 바다는 이미 밟아 눌러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시는 권위 있는 행동으로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당신께서 ‘하느님’이심을 직접 선언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예수님께서는 “나다” 하시면서, 구원하는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마치, 야훼 하느님께서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하고 현현하셨듯이 말입니다. 사실, 호수를 건너신 이 이야기는 홍해를 건넌 사건을 기억하게 해 주는 동시에, ‘파스카’를 미리 보여줍니다. 

특히 공간적 배경이 이를 암시하는 바가 큽니다. 곧 5천명을 먹이신, ‘호수 건너편 외딴 곳’이 홍해를 건너온 광야를 시사해준다면, 호수 위를 걸으시어 ‘다시 건너간 곳’은 에덴의 회복을 시사해줍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게 하시는 살아계신 ‘주님’이요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교회라는 배를 타고, 풍랑이 이는 바다를 건너갑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안전합니다. 그리고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배는 그렇게 안전하고 평화롭게 정박하고 있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풍랑을 헤치고 여행하라고 만들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수도공동체라는 이 배를 타고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절로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것은 아닙니다. 배를 타고서 맞바람과 풍랑을 헤치며 항해를 해야 건네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맞바람과 풍랑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계신 분께서 우리를 무사히 건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분께서 우리가 탄 배의 ‘키잡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6,50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
비록 어둠이 짙고 
풍랑이 거세고 
배가 흔들릴지라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비록 흔들릴지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바다의 물결을 밟으시는 이”(욥 9,8), 
바로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신 까닭입니다. 

하오니, 주님! 성령의 바람을 태워
가야할 곳으로 저를 인도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믿음은 환경을 다스리는 연습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5천 명을 먹이신 후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의 배에 타서 폭풍우를 가라앉히신 내용입니다. 주님 ‘공현’대축일 다음이 나오는 이러한 복음들은 우리가 이렇게 공적으로 당신을 현시한 주님을 보게 되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처음에 폭풍우와 물 위를 걷는 존재를 보고는 제자들이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었습니다. 마르코는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환경에 지배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리 많은 사람도 배고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배부르게 만드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렇기에 그분과 함께라면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 믿음으로 능력의 주님을 뵈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충남 예산의 한 17세 처녀가 19세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안타까워하며 위로했지만, 19세의 과부에게는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거울 앞에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자르며, 이제 더 이상 동정의 말을 듣기 싫다고 결심했습니다. 자신만의 길을 찾기로 결심하고, 서울행 완행열차에 올랐습니다.

서울에서 처음엔 힘든 생활을 했고, 닥치는 대로 일하며 힘겹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부유한 가정의 가정부로 들어갔고, 성실히 일하면서 주인에게 신뢰와 인정을 받았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그녀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라고 물었고, 그녀는 공부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전했습니다. 주인은 그녀의 소원을 흔쾌히 들어주었고, 그녀는 숙명여학교 야간부에 입학했습니다.

그녀는 밤낮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최우수 학생이 되었고,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여자사범대학에서 학문을 닦았습니다. 26세에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하여 숙명여고 교사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해방 후, 숙명여자전문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한 그녀는, 나중에 숙명여자대학교를 창설하여 초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임숙재 총장은 제자들에게 항상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환경을 다스리세요.”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녀의 삶은 고난을 극복하고, 환경을 변화시켜 성공을 이룬 강한 의지의 예입니다.

임숙재 총장이 하고 싶었던 것은 공부와 교회에 다니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분이 함께 계심을 계속 믿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환경 탓하며 핑계 대는 사람은 자신과 함께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뵙지 못하게 됩니다. 능력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1996년, 목포의 작은 사업가 조호연은 회사 회식 중 나이트클럽에서 부당하게 청구된 요금을 항의하다 지역 조직폭력배 목포 오거리파에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직원들 앞에서 심하게 폭행당하고 굴욕을 겪었지만, 조호연은 오직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나이트클럽 사장을 직접 찾아가 사과를 요청했으나 또다시 폭행과 협박을 받았습니다. 굴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조직폭력배들은 그의 동생까지 공격하며 보복했습니다. 마지막 방법으로, 조호연은 전 재산을 들여 신문에 광고를 내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했습니다. 

광고는 폭력배의 만행과 공권력의 무능함을 폭로하며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강력한 조직폭력배 척결 명령을 내렸고, 목포 경찰은 대규모 수사를 통해 관련 조직원들을 체포하고 조직을 해체했습니다. 

이 작전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조직폭력배의 몰락을 이끌었습니다. 조호연의 끈질긴 용기와 결단력은 불의를 향한 저항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한 개인의 노력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조호연 씨는 대통령이 자기 편이라고 믿으니 조폭들이라는 환경에 굴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겐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조호연씨가 그렇게 약자인 자신을 보호해주는 대통령을 새롭게 만났듯이, 우리도 그분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환경도 바꿔보려 해야 무한한 능력이신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신앙생활이 너무 어렵다는 분을 종종 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냥 착하게만 살면 되는 것 아니에요?”
 
미사, 기도, 성경 읽기, 봉사활동… 등등 너무 어렵다면서 그 끝이 없는 것 같아서 포기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무슨 일이든 포기하면 그것으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모르겠어도 계속 노력할 때, 분명히 변화되는 자기를 만나게 됩니다.
 
아는 신부가 장염으로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말합니다. 뭐만 먹었다면 바로 화장실 행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물만 마셔도 화장실이 자기를 불러서 나중에는 힘이 쫙 빠져서 화장실 갈 힘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화장실에 계속 가게 되니, 물도 마시지 않고 또 음식도 먹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야 할까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이온 음료를 많이 마시고, 죽을 먹으라고 권했답니다. 먹고 싸고를 계속 반복하더라도 계속 먹고 싸는 과정에서 장에 남는 것이 생기면서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남는 것이 자기의 영양분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다 나에게 들어오지 않고 모두 빠져나가는 것만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더 큰 일 납니다.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계속 신앙생활을 하면서 빠져나가는 것도 있지만, 자기 안에 쌓이는 것도 많아집니다. 주님의 가장 큰 선물인 구원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얻는 것이 없다고, 또 누구가 미워서 하지 않겠다고 선언도 하지만, 자기 안에 쌓이고 있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베푸시고 기도로 밤을 지새우신 다음, 바람을 멈추시고 물 위를 걸으시어, 노를 젓느라 애쓰는 제자들의 배에 오르십니다. 제자들은 빵을 많게 하신 그분의 기적이 담고 있는 사랑과 권능의 신비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도 유령인 줄로 생각하며 비명을 지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탄 배에 함께 오르시어 그들의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 주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의 신비를 깨닫지 못했을 때, 쉽게 두려움과 불안 속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랑과 신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냥 저절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아니면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직접 봐야지만? 그 모두가 아닙니다. 계속된 신앙생활을 통해서만 주님의 사랑과 권능의 신비를 깨닫게 되면서, 두려움과 불안을 몰아내고 기쁘게 지금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 순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맞바람을 이겨내는 지혜가 참된 용기입니다. 맞바람 속에서도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맞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시는 주님의 뜻이십니다. 우리의 두려움이 물결을 일으킵니다. 

숨겨진 것을 내보이게 되는 우리의 시련입니다. 우리 내면을 비추어 주는 맞바람의 물결입니다. 출렁이는 물결을 통해 허약한 믿음을 만납니다. 시련 속에서도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용기입니다. 

거친 물결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해야 할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진실로 믿습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참된 용기를 가르치는 주님의 여정입니다.

 절실한 기도가 필요한 이 시간을 용기로 건너는 우리의 오늘입니다. 겁쟁이의 시간이 아닌 참된 믿음의 시간입니다. 용기와 믿음의 살아있는 오늘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