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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1/05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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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만군의 주님이 오신다. 그분께 나라와 권능과 권세가 있다.

하느님, 오늘, 별의 인도로 성자를 이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으니 믿음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 저희도 자비로이 이끄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2025년 1월 5일 주님 공현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월 5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5년 1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공현 대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60,1-6)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제 2독서
    (에페 3,2.3ㄴ.5-6)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오늘 말씀 카드
    (이사 60,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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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60,1-6
오늘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에페 3,2.3ㄴ.5-6
오늘 제2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마태 ,1-12
오늘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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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25년 1월 5일
조정래 시몬 신부

 

✚ 주님 공현 대축일 소개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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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제2의 성탄

제1독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먼저 떠오른 이는 솔로몬 임금이었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보면 솔로몬의 뛰어난 지혜와 그가 이룬 업적들로 사방에서 그를 칭송하며 선물을 들고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아무 업적도 없이 그저 태어나시기만 하였는데 동방 박사들의 방문과 경배를 받으십니다. 그분께서 와 주신 것만으로도 온 세상은 축복받았다는 뜻이겠지요.

하느님께서는 ‘은밀하게 위대하게’ 일하시면서도 당신의 존재와 움직임에 대한 단서(또는 흔적)를 세상 곳곳에 남겨 주십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았다고 하지만 별은 최종 목적지까지 이끌어 주지 않고 길 중간에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들은 오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예루살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마태 2,2) 

그리고 그곳에서 결정적인 답을 찾아 듣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2,6).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미카 예언서 5장 1절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 들려준 것이었지요. 사람의 힘과 지식만으로는 구세주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몸소 열어 보여 주신 ‘계시’의 도움이 필요하였지요.

그들이 제대로 된 목적지를 찾고 방향을 잡아 나아가는데 또다시 별이 나타나 그들을 인도합니다. 마침내 동방 박사들은 별이 멈추어 비추는 곳에서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고는 경배하고 예물을 드립니다. 

주님의 공현(에피파니아, epifania)은 이렇게 주님께서 당신을 온 세상에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 주심을 뜻합니다. 공현은 주님 성탄의 절정이며 장엄한 선포입니다. 그래서 공현을 ‘제2의 성탄’이라 부르나 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밤하늘의 잔 별이 되어

오늘 공현 대축일에 동방박사들이 빛이신 주님을 찾아와 뵙기까지 그 배경이랄까 상황은 어두움이고 그러나 하늘에 별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오늘 이사야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동방박사들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직 주님을 뵙지 못한 사람들이고, 대신 어둠에 둘러싸여 어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빛을 포기하지 않고 찾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둘러싼 어둠은 어떤 어둠입니까?

첫째는 죄와 악의 어둠입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참으로 죄와 악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암울합니다.

둘째는 고통의 어둠입니다. 먹고 사는 것도 힘들고, 인간관계도 힘들고,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닌데다 이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날 길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셋째는 알 수 없는 어둠입니다. 이 악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어둠입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니 그 길도 모르는 어둠이요,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니 여기저기 방황하는 자의 어둠입니다.

이 모든 어둠이 합쳐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둠 곧 절망의 어둠입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한동안 이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계속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세상에서 하늘로 시선을 돌리고 어둠에서 별을 보기 시작했을 겁니다.

세상에서 해법을 찾을 수 없어 하늘에서 해법을 찾으려고 한 것인데, 그렇게 하늘을 보니 비로소 하늘에 별이 떠 있는 것이 보인 것입니다.

이것이 참 희망의 진실입니다. 밤이 돼야 별이 뜨고 밤이 깊어야 새벽이 오듯 인간에 대한 희망이 절망이어야 하느님께 대한 희망이 시작됩니다.

그렇습니다. 밤 중에 어둠을 보지 않고 별을 보는 것은 이제 희망의 시작일 뿐입니다. 밤은 어두움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별도 있음을 봤을 뿐입니다.

이제 별을 비추는 더 큰 빛을 봐야 하고, 별이 인도하는 더 큰 빛으로 나아가야 하며, 더 큰 빛을 본 다음에는 이제 내가 별이 되어야 합니다.

빛에서 빛을 받는 작은 별들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혼자 자기가 빛나는 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빛으로 인도하는 별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과 나의 선행이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빛날 때 그것이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고 모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선을 가리키고 인도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말씀의 소리일 뿐이라는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 사랑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고 하느님 사랑 덕분에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나는 참 빛의 잔별일 뿐이라고 말이 아니라 행위가 말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양으로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하는 거룩한 행위로써 우리는 그분을 낳습니다.”라고 하는 프란치스코의 권고를 귀담아듣는 오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찬미 성탄! 오늘은 “제2의 성탄절”이라고도 불리는 “주님의 공현 대축일” 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목동들에게만 알려져 있고 감추어져 있었던 메시아의 탄생이 비로소 오늘 동방박사들을 통해 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를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에페 3,5)

그래서 동방교회에서는 오늘을 “거룩한 빛의 축제일”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이사 60,5)

오늘 우리는, 바로 이 벅찬 기쁨을 찾아, 동방박사와 함께 임을 찾아나서는 ‘길’을 떠나고자 합니다. ‘길’은 성경의 핵심단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길”이라고 말씀하셨고(요한 14,6), 프란치스코 교종은 친구인 ‘한 랍비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할 때, 그는 길을 떠나야 합니다. 사람은 걸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면서, 하느님을 찾으면서, 그리고 하느님께서 자기를 찾아 나서도록 허락하면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길을 떠난 이들’이요, 또 한 부류는 ‘길을 떠나지 않는 이들’입니다. ‘길을 떠난 이들’은 빛을 따라나선 동방박사들과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나온 마리아와 요셉이 있고, 멀리 하늘에서 길을 떠나온 아기 예수님이 있습니다. 한편 ‘길을 떠나지 않은 이들’에는 왕궁에 머물러 있는 이들, 수석 사제들, 율법학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둘 중,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요? 빛과 진리를 찾아 길을 떠나 여행하는 사람일인가요? 아니면, 자신의 안전과 편리에 머물러 안주하고 있는 사람인가요?

또 오늘 <복음>에는 두 명의 ‘왕’이 있습니다. 한 ‘왕’은 황포를 걸치고 화려한 왕궁에 사는 지상의 예루살렘을 통치하는 ‘헤로데 왕’이요, 또 한 ‘왕’은 포대기로 둘러싸여 무력하게 누추한 마구간에 누워있는 ‘새 이스라엘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어떤 왕을 만나려고 길을 떠나 여행을 하고 있나요? 

지상이 화려한 왕인가요? 아니면 가난하고 힘없는 아기 예수 왕인가요?

또 오늘 <복음>에는 세 번의 ‘길 떠남’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의 터전에서 예루살렘으로의 길 떠남이요, <두 번째>는 헤로데 왕궁에서 마구간으로의 길 떠남이요, <세 번째>는 마구간에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길 떠남입니다.

‘길 떠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빛’이 비추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별이 나타나 우리를 비추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그 별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자만이 그 빛을 볼 수 있으며, 그 별을 보는 자만이 그 별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을 애타게 갈망하고 고대하는 자만이, “그분의 별”(마태 2,2)을 따라 그분을 만나 경배하러 길을 떠납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떠나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비추고 계시는 그분을 향한 갈망과 목마름으로 ‘떠나와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첫 번째> 길 떠남을 위해 우리는 온갖 편리와 안주를 포기해야 했고, 위험과 위기의 십자가도 져야 했습니다. 

이 길을 오면서 때로는 사막처럼 무미건조하고 쓸쓸할 때도 있었고, 빛을 놓치고 어둠에 쌓여 길을 분별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길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반항할 때도 있었습니다. 

더러는 좌절하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했고, 그분이 계실만한 화려한 하려한 왕궁을 찾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마치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 왕궁을 기웃거렸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처럼, 별의 안내를 받아서 이스라엘까지는 왔지만, 메시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를 찾아 만나는 데에는 “꼭 필요한 한 가지”(루가 10,41)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참된 빛이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마태 2,3)를 이미 “말씀” 속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예언자 미카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 

그리하여, 마침내 동방박사들이 “말씀”을 따라 다시 <두 번째> 길을 떠났듯이, 우리도 ‘말씀을 따라’ 여행 중입니다. 잠시 착각하고 머문 허황한 왕궁인 자기를 떠나 작은 고을 베들레헴을 향하여 갑니다. 

이제 오로지 “참 빛이신 말씀”의 비추임을 따라 걷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빛”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비추는 곳을 따라 걷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빛” 이 비추는 낮은 곳, 누추한 마구간에서 “말씀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낮은 곳, 마구간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야 할 때입니다. 비로소 ‘참된 빛’이 낮게 엎드린 우리를 비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경배 드리는 일, 자신을 땅에 내려놓는 일, 낮아져 예물이 되면, 우리 안에 참 빛이 들고, 우리 안에 말씀이신 예수님이 탄생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세 번째> 길을 떠납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한 빛이신 말씀이신 아기 예수님을 품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 번째> 길을 떠남이 바로 오늘 주님의 공현이 우리에게 이끄는 “길”입니다. 

이제는 빛이 되어 걸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은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은 자신을 채우기 위해 온갖 화려함으로 꾸미고 있는 왕궁을 향해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는 찬란히 빛나는 예수님과 동행하여 빛을 비추며 가야 할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맞이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2
그분의 별

 

주님!
당신은 먼저 
저를 찾아와 
비추셨습니다.

제 마음에 
열망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사랑을 
심으셨습니다.

그 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빛이 되어 
당신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현대의 현명한 동방박사들

오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찾던 사람들일까요? 일단 ‘행복’을 찾았던 이들임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결정은 행복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던 때는 언제일까요?

친구들이 생겼을 때일 것입니다. 혼자 가는 길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가면 좋은 친구들이 생깁니다. 내 주위에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좋은 목적지로 가는 것입니다. 워런 버핏은 인생에서 성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많은 재산이 성공이 아닙니다. 돈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줄 때 그게 성공입니다. 사랑받는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인간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가 잘 형성되고 있다면 아기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폰 트랩 대령은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장군이고 아이가 일곱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내가 죽어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폰 트랩 대령은 아이들에게 제복을 입히고 호루라기로 명령합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원했지만, 아버지는 한 명의 군인 상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행복이 없습니다.

이때 가정교사로 마리아가 들어옵니다. 마리아는 고아로 자랐습니다. 마리아는 수련 수녀입니다. 워낙 노래하는 것을 좋아해서 수녀원에서 쫓겨나 폰 트랩 대령의 자녀들을 돌보는 일로 파견을 받은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칩니다.

이것은 폰 트랩 대령의 가정에서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로워지면 감당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폰 트랩 대령은 마리아를 쫓아냅니다. 그리고 귀부인 한 명과 재혼하려 합니다. 그러자 가족은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마리아는 수녀원에 다시 들어갑니다.

아이들은 한 번 느낀 자유와 행복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노래로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수녀원에 가 마리아를 찾습니다. 마리아는 다시 대령의 집에 돌아옵니다. 대령은 마리아가 없는 집에서는 행복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대령은 말합니다.

“당신이 이 집에 행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은 자녀들과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귀부인과 헤어지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마리아는 엄격한 군인인 폰 트랩을 자상한 남편이요 아내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장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집과 재산을 포기하고 마리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스트리아를 탈출합니다.

폰 트랩과 아이들은 참 행복을 찾는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저도 대학생 때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습니다. 그때 아이들은 아기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면서 많은 시간을 희생해야 했지만, 아이들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만나는 교사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성당의 모든 공동체는 이러한 동방박사들이 가는 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게 하지 않는 대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과 교만과 육욕을 봉헌하게 하는 이를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 영화 ‘친구’도 있습니다. 시골 친구들이 어떤 아이들은 조직 폭력배가 되고 어떤 아이는 공부를 잘해 유학도 다녀옵니다. 조금이라도 착해지려는 친구는 착한 친구와 사귀고,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 친구는 친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영화입니다.

사람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세속-육신-마귀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해야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함께 있다고 친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감동의 운동회’를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들은 키가 작아서 달리기를 못 하는 친구들의 손을 잡고 같이 걸어서 꼴찌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황금은 재산이고 유향은 기도이고 몰약은 육체의 절제입니다. 세속-육신-마귀를 일시에 포기하게 할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할 때만 그 동료들과 함께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자기를 포기해야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이들이 동방의 현자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님공현대축일

월요일 새벽 미사가 끝나면 미사에 온 아이들과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처음에는 미사에 오는 아이들이 복사 외에 없었지만, 이제는 꽤 많은 아이가 새벽의 어둠을 뚫고 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라면 먹는 즐거움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탁구를 하기도 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목청껏 부르기도 합니다. 또 몇몇은 숨바꼭질을 하며 놀기도 합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 친구들과 많이 놀았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더 자고 싶어도 억지로 일어나 성당에 갔습니다. 솔직히 미사 자체는 재미없었지만, 친구들과 노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이제야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었음을 깨닫습니다. 즉, 당시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제게 주어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기회는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렇게 50대를 사는 제가 어렸을 때 놀던 놀이의 순수한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영원할 것 같은 그 순간도 또 기회가 무한하다는 생각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지금 삶이 영원하리라 생각하면서 순간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그렇게 살다가는 이 모든 것이 후회로 남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인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먼 곳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들의 여행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별에 의지해서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가는 여정은 힘들기도 하지만 정말로 위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백성의 수석 사제들, 율법학자들은 어떠했습니까? 동방 박사들을 통해 메시아 탄생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곳이 유다 베들레헴인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경배하러 가지 않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편하고 쉬운 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 유향, 몰약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봉헌합니다. 그러나 헤로데 임금과 종교 지도자들은 아무것도 봉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얻을 것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주님께 무엇을 봉헌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행복한 지금이 아닌, 후회만 가득한 지금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을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 호라티우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빛과 어둠의 교차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 삶입니다. 삶의 변화는 마음과 같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을 찾아가는 뜨거운 실천이 필요합니다.

도로표지판 같은 실천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공현의 만남입니다. 만남이라는 여정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십니다.

반갑게 동방박사들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소외된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백성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길을 떠나고 고개를 넘었을 것입니다.

마음을 만나고 마음이 통하는 이 여정이 바로 공현의 여정이며 경배의 예물입니다.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는 무엇보다도 더 나은 가치로 나가는 길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더 나은 가치를 향해 먼 길을 떠났던 동방박사들의 노고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노고가 어둠을 걷고 밝음을 드러내는 진정한 빛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비춰주는 큰빛을 만나면 우리의 부족함 마저 끌어안는 사랑의 세상이 됩니다. 아기 예수님께 드리는 경배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정반대의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향하는 오늘의 예물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 줄 만남이 곧 주님 공현입니다. 주님 공현에 우리 나라가 위험한 나라가 아닌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안전한 나라가 되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공현이 우리의 아픔을 치유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기도와 실천은 실패가 아닌 하느님 탄생을 만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동방박사들은 주님 공현의 이유가 소중한 것을 지키고 소중한 것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 비겁함을 반성합니다. 작지만 빛을 내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진정한 공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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