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영은 온 세상을 채우시고 만물을 살리시며 온갖 말을 다 아시네. 알렐루야.
하느님, 오늘 이 축제의 신비로 모든 민족들과 나라에 세우신 하느님의 온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니 성령의 선물을 온 세상에 내려 주시고 복음이 처음 선포될 때 베푸신 그 큰 은혜를 이제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 주소서.
2024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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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령 강림 대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2,1-11)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제 2독서
(1코린 12,3ㄷ-7.12-13)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20,19-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20,22)
성령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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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2,1-11
오늘 제1독서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1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1코린 12,3ㄷ-7.12-13
오늘 제2독서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오소서, 성령님. 믿는 이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그들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요한 20,19-23
오늘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5월 19일
최봉원 야고보 신부
✚ 성령 강림 대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6
✚ 강론시작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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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성령을 받아라.
부활 시기 내내 봉독된 요한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에 견주어 ‘부활 사건’을 길게 서술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 죽음이 끝이 아니며 부활을 통하여 또 다른 단계의 구원 사업이 시작됨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요한 복음서의 성령 강림은 부활과 성령을 함께 연결시켜 제자들이 부활하신 분의 ‘숨’(영)을 통하여 새롭게 창조됨을 선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한 복음서는 성령 강림이 오순절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에 일어난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성령 강림이 부활의 직접적 선물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러한 새 창조의 특성이 소통과 일치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던 이들이 마치 하나의 언어를 쓰듯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는데, 이는 소통과 일치야말로 성령의 일이고, 이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교회임을 표명합니다.
제2독서는 언어뿐 아니라 각자의 은사와 직분 그리고 활동이 다르지만, 교회 구성원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의 유기체를 이룸을 선언합니다. ‘그리스도의 숨’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교회는 소통과 일치로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실체인 것입니다.
인간을 가장 피폐하게 하는 것은 오해와 불통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의 모든 모욕과 비난, 굴욕을 견디게 하는 힘은 참된 소통과 이해, 포용에서 온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의 전례 말씀들은 성령의 오심으로 이루어진 소통과 이해, 그로 말미암은 일치로 시작된 교회의 탄생을 알립니다. 그렇다면 분명해집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먼저 소통과 이해가 보장되고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 공동체에도 성령께서 내려오실까?
지금 우리 공동체에도 성령께서 내려오실까? 내려오시면 우리는 성령으로 가득 찰까?
이것이 이번 성령 강림 대축일에 저에 대해 하는 성찰이고, 제가 우리 공동체들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나는 성령께서 나에게 내려오시길 바랄까? 우리 공동체는 성령께서 내려오시길 바라는 공동체일까?
우리는 영성 생활에 관한 얘기를 많이 하고, 감히 영성 생활 공동체라고도 얘기합니다. 그런데 영성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정신(spirit)을 사는 삶, 성령(Spirit)을 사는 삶이 아닙니까?
성인들 특히 프란치스코는 영을 많이 강조했고 성령으로 살았습니다. 육의 영(spirit of the flesh)이니 주님의 영(Spirit of the Lord)이니 기도와 헌신의 영(spirit of prayer and devotion)에 관하여 얘기했고, 영이 아니면 하느님 아버지도 성체 안의 주님도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생애 중요한 순간마다 성령으로 깨달았고, 충만했고, 이끌렸습니다. 육의 영이나 심지어 악의 영에 이끌리는 우리와 그래서 달랐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육의 영 또는 더러운 영에 이끌립니다. 그래서 세상 욕망과 세상 욕심이 많고, 게라사의 더러운 영들처럼 이 세상을 더럽게 집착하여 돼지 떼 속에서라도 이 세상을 더럽게 집착합니다.
그래서 순례자와 나그네처럼 떠날 줄 알아야 하는데 훌훌 떠날 줄 모르고 더럽게 집착하고 안주합니다.
또 악의 영에 이끌려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는 정도를 넘어 파괴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요 우리의 형제인 한 존재를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일치의 정신 또는 사랑과 일치의 영은 아니 계시고, 미움과 분열과 파괴의 영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집을 나왔던 악령이 다시 돌아와 보니 집은 깨끗이 비어 있었고, 그래서 일곱 마리의 악령을 더 데려왔다는 비유와 같은 겁니다.
육의 영과 악의 영이 우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성령께서 머물 곳이 우리 안에 없기도 하지만 성령을 모셔 들이지 않았기에 육의 영과 악의 영이 설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치를 갈망해야 합니다.
육의 영과 악의 영은 증오해야 합니다. 우리의 분열을 부끄러워해야 하고,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지 말아야 하고, 잘난 체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듯 덕이 악습을 몰아내게 해야 합니다.
“사랑과 지혜가 있는 곳에 두려움도 무지도 없습니다. 인내와 겸손이 있는 곳에 분노도 동요(動搖)도 없습니다. 기쁨과 더불어 가난이 있는 곳에 탐욕도 인색도 없습니다. 고요와 묵상이 있는 곳에 걱정도 방황도 없습니다. 자기 집을 지킴에 주님의 두려움이 있는 곳에 원수가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자비와 신중함이 있는 곳에 지나침도 완고함도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핑계만 없으면 성령께서 오신다.
영화 ‘언 브로큰’은 최연소 미국 5,000미터 올림픽 대표로 뽑혔던 루이스 잠페리니의 생존에 대한 끈질긴 의지를 그린 영화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잠페리니는 미 공군 폭격수로 입대합니다. 그러나 1943년, 그의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에서 격추되어 바다에 추락합니다. 그는 동료 두 명과 함께 구명보트에서 47일간 표류하며 극한의 생존 싸움을 벌인 끝에 구조됩니다.
그런데 그들을 구조한 배는 일본군의 배였습니다. 잠페리니는 850일간 여러 포로 수용소를 전전하며 가혹한 고문과 학대를 겪습니다. 특히 새디스트로 알려진 와타나베 무츠히로라는 일본 장교에게 집중적인 고문을 당합니다. 와타나베는 잠페리니의 정신을 꺾으려 하지만, 잠페리니는 절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잠페리니는 살아남아 귀국하지만, 전쟁 중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악몽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립니다. 그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복수심에 불타 와타나베를 찾아가 복수하려고 결심합니다. 1949년 그의 아내 신시가 잠페리니를 빌리 그레이엄의 복음 전도 집회에 데려갑니다.
집회에서 빌리 그레이엄은 인간의 죄와 구원의 필요성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며, 모든 죄인이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루이스는 처음에는 설교에 반감을 품었고, 집회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루이스는 전쟁 중 구명보트에서 바다에 표류하며 하느님께 한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바다에서 구출된다면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바치겠다고 기도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레이엄의 설교를 들으며, 하느님의 은혜와 용서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루이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느님께 구원을 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깊은 내적 평화와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이 신적 체험을 통해 그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강하게 체험하였고, 그 순간 그의 인생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집회 이후, 루이스는 알코올중독을 극복하고,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는 와타나베 무츠히로를 용서하려고 했으나, 와타나베는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도, 잠페리니는 그를 마음속에서 용서하고, 자신의 내적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의 나이 80세, 잠페리니는 올림픽에서 성화 봉송을 하며 못 이룬 꿈도 이룹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주시며 가서 죄를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가 사랑입니다. 용서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이를 위해 성령을 주십니다. 그러나 ‘핑계’는 성령강림을 가로막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용서하는 권한을 주실 리 없다고 말합니다. 고해성사는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성사를 포기함으로써 그를 위한 성령강림까지 포기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능력이 없는 이에게 권한을 주지 않으십니다. 허버트 박사는 언어는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서 침팬지 님 침스키를 언어학자인 스테파니와 살게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수화를 통해 의사소통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침팬지가 사춘기가 되자 폭력성이 드러나 더는 스테파니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침팬지 무리로 돌아간 님 침스키는 무리와 섞이지 못하고 우울증을 겪습니다. 스테파니가 불쌍히 여겨 그에게 다가갔지만, 침팬지는 분노로 스테파니를 죽음 직전까지 두들겨 패고 내팽개쳤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성령의 능력을 그것을 할 수 없는 존재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핑계 대지 말고 용서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고정원 씨와 다른 유영철의 피해자들과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고정원 씨는 용서하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용서의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강림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조금씩 미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급기야 유영철을 양자로 삼습니다. 용서하라고 했다면 죽기까지 용서하려는 의지를 지녀야 합니다. 핑계 대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오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사랑으로 이끄시기에, 결국 사랑은 의지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령강림
프랑스 아르스에 위치한 작은 시골 교회 사제였던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 본당에 다니는 한 자매님이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신론자였던 남편이 얼마 전에 다리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안네 성인은 “남편은 구원받았어요.”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인, 남편이 지금 연옥에 있으니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리 난간에서 물로 떨어지는 순간에 참회했어요.”
자매님은 성인의 말씀에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지금을 더 열심히 살게 되었습니다.
비안네 성인의 말씀은 단순히 이 자매님을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회개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무한의 시간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이시기에 하느님 안에서 회개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했던 이를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언젠가 어떤 자살자의 장례 미사를 부정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 것인 생명을 스스로 끊어 버리는 큰 죄를 지었는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 측면에서는 ‘괘씸하고 못된 놈’이라고 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며 위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빨리 하느님 나라 안에서 당신과 살도록 회개의 시간을 주십니다.
그 누구도 하느님 사랑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에 감사함을, 또 그 사랑에 온 희망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멈추지 않는 사랑이기에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령 강림을 통해 그 사랑이 또 다른 모습으로 계속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사랑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세례를 통해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 이유는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르코 복음 9장에서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소년의 아버지가 “주님,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외칩니다. 이 외침은 소년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자신을 도와주실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해 사랑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그 완성을 위한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오늘의 명언
화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독이지만, 실제로는 당신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힙니다.
- 로버트 그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성령을 받아라.
하느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역경과 시련을 넘어서는 새로움이 있습니다. 교회의 시작은 성령 강림으로 시작됩니다. 교회의 시작이며 교회의 길이 되시는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기쁜 소식을 안겨주십니다.
막힌 용서와 막힌 화해를 성령께서 뚫어주십니다. 가장 좋은 사랑을 건네십니다. 내어주는 것이 십자가와 부활이라면 닫힌 것이 열리는 것이 성령 강림의 기쁨입니다.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미움에서 소통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삶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새로움의 원천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놀라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치와 기쁨을 이루시는 성령께서는 교회 구성원들을 새롭게 하십니다.
성령 강림은 고집스러운 우리를 받아주시며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생명의 숨결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새날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리고 우리 모두를 귀하게 만드십니다. 성령께 의탁하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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