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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5/22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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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024년 5월 22일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5월 22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5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야고 4,13-17)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주님께서 원하시면”하고 말해야 합니다.

  • 오늘 복음
    (마르 9,38-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오늘 말씀 카드
    (야고 4,17)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야고 4,17)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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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야고 4,13-17
오늘 제1독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주님께서 원하시면”하고 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3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14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15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16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마르 9,38-40
오늘 복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5월 22일
이한별 도미니코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6:41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미사 생중계 성당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하느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그러한 일이 제자들 안에서 일어났음을 알려 줍니다. 제자들은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았다고 하면서, 그 ‘어떤 사람’이 자기들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 보려” 하였다고 보고합니다. “우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좋은 일도 금지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우리’의 영역을 단단하게 다지고자 누군가를 배제하고 소외하는 일은 사실 빈번히 벌어진 비극이었습니다. 이 부당함을 알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참다운 교회의 모습을 되찾고자 제안된 것이 ‘시노달리타스’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교회를 모독하는 자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배제되거나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배제와 소외야말로 하루빨리 배제하고 소외하여야 할 절대 악인 것입니다.

오늘 독서 또한 고착된 이념이나 판단 기준으로 사람을 배제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열려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우리의 ‘허세와 자랑은 악한 것’입니다.

‘우리’라는 말에는 배타성이라는 금기가 은밀히 숨어 있습니다. ‘우리’를 유지하고자 견고한 철벽을 치고 그 어떤 이질적 존재도 들어오지 못하게 감시함으로써, 또 다른 소외와 변방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대와 공동체가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대신하는 권력이 될 때 교회는 결코 복음적일 수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선행 독점

오늘 복음을 묵상하는데 왜 그런지 어제 독서 야고보서와 자꾸 연결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제자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주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자 이것을 막으려고 했던 요한의 속 좁은 생각을 주님께서 고쳐주시는 내용입니다. 

어제 야고보 사도의 말은 이렇습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청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주시지 않을 것을 청하기 때문이고, 청해도 주시지 않음은 당신 뜻을 거스르는 나쁜 것을 청하기 때문이며, 당신이 주고자 하시는 좋은 것을 우리가 청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하느님의 뜻이 다를 때 일어나는 것인데 이때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하고 잘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은 당신 뜻을 절대로 꺾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고 정의로우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가 청하는 것은 많은 경우 욕심 채우기입니다. 

오늘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냅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이 원하는 것은 하느님 뜻과 상관없습니다. 요한이 원하는 것은 특권을 자기들만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처럼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이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건 같이 기뻐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이 원한 것은 결국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이 날리는 것이었으며 그래서 다른 이의 선행도 시기합니다. 

이에 대해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주님께서 자기 형제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보고 그 형제를 시기하면, 모든 선을 말씀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 자신을 시기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우리만 칭찬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만 선행을 하고 다른 이의 선행을 시기합니다. 그래서 선행과 선행의 권한도 독점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자기 선행 구역을 선포하기도 합니다. 내 구역에서는 나만 선행해야지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내가 또 다른 요한이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주님 사랑을 특별히 받았기에 그 사랑을 독점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그런 요한과 같은 내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랑하면 세상의 밝은 모습만 보게 되어서 웃는 것이 아닐까요?

한 인터넷 방송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18세 이하의 청소년 절반이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성형수술을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많은 청소년이 자기 신체 대한 불만족 그리고 여기서 오는 불안이 있음을 보여주는 설문조사였습니다. 
 
사실 성형수술로 얼굴을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웃지 않는 얼굴을 웃는 얼굴로 바꾸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물론 얼굴 뼈 수술을 하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웃고는 있는 것 같은데 부자연스러운 웃음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따라서 웃는 얼굴은 인공적인 성형이 아닌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웃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너그럽지 못하고, 어둡고 부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 분위기가 전달되어서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분위기를 보입니다. 그 상대방을 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자기입니다. 고스란히 나에게 다시 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내가 먼저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 역시 상대방의 얼굴을 통해 웃음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아주 간단한 진리인데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자기는 원래 그렇다면서 스스로 철벽을 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에는 많이 웃었습니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계속 웃었습니다. 아주 썰렁한 농담에도 폭소를 터뜨립니다. 사랑하면 세상의 밝은 모습만 보게 되어서 웃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모르면서도 당신의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을 두고,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지금으로 치면 어떤 사람일까요? 성당에 다니지는 않지만, 윤리적으로 바르게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이 성당 다니지 않는다고 무조건 반대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처럼, 주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모두가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종교를 갖고 있다고 해서 인상 쓰고 배척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이 전혀 없다는 생각으로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나의 뜻과 다르다고, 나와 함께하지 않는다고 거리를 두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가야 했습니다.

 

오늘의 명언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같은 실패를 두 번 하면 성공할 수 없다.

- 조지 버나드 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휘어진 가지가 자연의 순리에 부합하듯 순리를 따르는 모습을 봅니다. 반대와 지지 사이에 있어야 할 반성입니다.

서로를 반대하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반대들이 눈물의 십자가를 만들어내는 지를 우리는 보게되고 알게됩니다. 사랑해야 할 날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가야 할 길마저 잊어버립니다. 

소중한 복음을 꺾는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반대 때문에 더욱 깊어집니다. 주님의 반대편에 있다는 것조차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자신만이 옳다는 착각을 무너뜨리는 존중이며 복음입니다. 

반대하는 우리를 침묵으로 기다리시는 분 또한 주님이십니다. 제멋대로 판단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우리의 성찰입니다. 주님을 지지하며 옹호하고 협력하는 길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본질을 따르는 길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사랑을 향하는 사랑의 일상이며 사랑과 함께하는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의 힘은 언제나 다양하며 다채롭게 주님의 현존을 드러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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