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4월 11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4. 11.
반응형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4월 1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주간 월요일 -

 

 

2022년 4월 11일 (월) 성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아 드리는 마리아를 놔두고, 당신의 장례 날을 위하여 기름을 간직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4월 11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 매일 미사 바로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이사 42장 1-7절

 

그는 외치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악인들이 달려들어 이 몸 삼키려 해도,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다 쓰러지리라.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나를 거슬러 군대가 진을 쳐도, 내 마음 두렵지 않으리라. 나를 거슬러 전쟁이 일어나도, 그래도 나는 안심하리라.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저는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어지심을 보리라 믿나이다. 주님께 바라라. 힘내어 마음을 굳게 가져라. 주님께 바라라.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요한 12장 1-11절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거룩한 신비에 참여한 주님의 백성을 지켜 주시어 자비로이 베푸신 영원한 구원을 길이 간직하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박민웅 요셉 신부 집전

 

 

2022년 4월 11일 (월)
성주간 월요일
박민웅 요셉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div>

 

2022년 4월 11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하나의 장례처럼 여기는 상징적인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향유를 붓는 행위는 장례 의식의 일부로 여겨졌습니다(마태 26,12; 마르 14,8; 요한 12,7 참조). 고대 유다교 전통에서도 장례는 당시 유다인들과 유다교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권장되었던 선행 가운데 하나였습니다(토빗 1,17-18; 사도 9,36-37 참조). 

후대 유다교 라삐들에게 장례는 단순한 자선을 뛰어넘는 것으로서,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산 이들과 죽은 이들 모두에게 베풀 수 있는 선행으로 이해되었습니다(마태 25,35-45; 마르 15,42-47; 사도 8,2 참조).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묵상합니다.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가 향유 한 리트라, 곧 320그램 정도를 부어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립니다. 이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예언적 행위이며, 그분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선행을 상징합니다. 마리아의 이 선행은 예수님께서 늘 제자들과 ‘물리적으로 함께 계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종말론적 행위를 의미합니다(마태 26,11; 마르 14,7; 요한 12,8 참조).

그러나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유다, 예수님께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를 하나의 ‘표징’으로 확인하려고 몰려든 유다인들, 그리고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자 그분과 함께 라자로까지 죽이기로 결의하는 수석 사제들이 있습니다. 

성주간 월요일에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가운데 누구에 가깝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실망치 말고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오늘 독서의 이 말씀은 야훼의 종 곧 우리 주님께 대한 말씀이지만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는 말씀에 제 마음이 철렁하고 출렁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나의 종이 없다는 말씀으로 바뀌어 들렸기 때문입니다. 


너의 수도원에는 나의 종이 없다. 

너의 공동체에는 나의 종이 없다. 

너의 성당에는 나의 종이 없다. 

너의 집안에는 나의 종이 없다.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오늘 독서의 주님의 종과 같은 주님의 종은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주님의 종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과 같은 참 종은 아닐지라도 종이 아니라고 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엉터리 종일지라도 참 종을 보며 따르려는 지향만 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지지난주 제가 영적 보조를 맡고 있는 형제회의 입회와 서약 대상자를 위한 피정이 있었고 종신 서약 대상자들과는 면담도 했는데 대상자들 모두 프란치스코와 비교하면 너무 차이가 나 종신 서약을 해도 되는지 주저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늘 얘기하고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낫다고 얘기합니다. 즉, 나는 서약을 하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성찰치 않는 사람이요 교만한 사람이니 그것보다 낫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나같은 사람은 프란치스코를 따를 자격이 없다고 하며 포기한다면 그것도 겸손이 아니고 교만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와 같은 사람은 프란치스코 한 사람 뿐이고 수백의 프란치스칸 성인들조차도 프란치스코와 비교하면 많이 멀었지요. 

그러므로 겸손한 추종자라면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뒤따라가기로 마음먹고 조금씩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사실 마귀가 노리는 것이 있다면 <자기 실망>과 <자기 포기>일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 실망케 하고 주님의 종이기를 포기케 하는 것 말입니다. 

실망(失望)이란 말 그대로 희망(希望)을 잃는 것이요 포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여전히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포기치 말고 종의 길을 가라고 하실 겁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

 

아는 지인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 이 집을 방문한 것이라, 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집을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방 하나가 완전히 클래식 음반으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워낙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클래식 음반을 사들이는데 돈을 아끼지 않다 보니 이렇게 음반이 많아졌다고 하십니다. 
 
저는 “많은 음반이 있으니 매일 다른 음악을 들으시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의외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음반수가 너무 많아서 늘 선택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결국 다양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음악만 듣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몇 년째 자리만 지키는 음반이 대부분이라고 하십니다. 
 
선택지가 많으면 그만큼 다양한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이 수용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몇 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욕심일 따름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너무 많은 선택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 용도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라.”라고 하신 이유를 묵상합니다. 우리의 선택을 단순화시켜서 이 사랑 하나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성주간 월요일인 오늘, 사랑에만 집중하고 있는 한 여인을 봅니다. 마리아는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시체를 향유로 발라 염한 일의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성령에 이끌려 주님의 죽음을 맞이하는 예비 행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 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못마땅해하는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요한 12,5) 
 
향유의 가격 삼백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라고 할 때, 삼백일 치의 품삯에 해당하는 거금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시로 이 돈을 쓴 것입니다. 그에 반해 유다는 세속적인 관점으로 부정적인 말을 한 것이지요. 
 
실제로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깁니다. 은 1냥에 4데나리온에 해당하니, 거의 120일 치의 품삯에 판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은 30냥은 당시 노예를 팔 때 받는 가격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노예 취급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었으니, 마리아의 행동을 옳게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에만 집중하면 세상의 기준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집중하다 보면 사랑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누구나 세상을 바꾸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변하려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

- 레프 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요한 12,7)

 

소중한 마음의 기름을 간직하는 마음과 실천의 성주간이다. 사람에 대한 진심어린 예의가 필요한 마음의 시간이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간직해야 할 마음이 된다. 마음 뒤에 또한 마음이 기다리고 있다. 기꺼이 마음의 중심을 우리에게 내어주시는 마음의 주님이시다.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모든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예수님은 무의미에 갇혀있지 않으시며 마음의 향유(香油)를 깨뜨리시고 나누신다. 마음은 나눌수록 향기롭다. 유다 이스카리옷의 삼백 데나리온의 돈과 바꿀 수 없는 향기로운 마음이다. 

우리 마음을 되찾는 시간이다. 마음을 따라야 할 시간이다. 낮아지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참된 마음의 향기이다. 예수님의 향기로운 인격은 우리 인격을 살리기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신다. 삶이 향기로운 것은 깊이 깊숙이 간직한 참된 사랑의 마음을 나누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이 합쳐지는 마음의 잔치 향기로운 향기의 잔치이다. 부활을 준비하는 가장 거룩한 마음의 성주간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