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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1년 7월 21일 (수) 매일미사

by 평화다방 2021.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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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으로 초대합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

 

 

21년 7월 21일 (수)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에게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고기와 양식을 내려 주십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1년 7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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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탈출 16장 1-5절, 9-15절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엿샛날에는, 그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면, 날마다 모아들이던 것의 갑절이 될 것이다.”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주님께서 너희의 불평을 들으셨으니, 그분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하고 말하십시오.”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이 광야 쪽을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시험하며, 욕심대로 먹을 것을 달라 하였네. 하느님을 거슬러 그들은 말하였네. “하느님이신들 광야에다, 상을 차리실 수 있으랴?”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그분은 높은 구름에 명하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어, 만나를 비처럼 내려 그들에게 먹이시고, 하늘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네.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천사들의 빵을 사람이 먹었네. 주님이 양식을 넉넉히 보내셨네. 하늘에서 샛바람 일으키시고, 당신 힘으로 마파람 몰아오셨네.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그들 위에 먼지처럼 고기를, 바다의 모래처럼 날짐승을 내리셨네. 그들 진영 한가운데에, 천막 둘레에 떨어뜨리셨네. 주님은 하늘의 양식을 주셨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씨앗은 하느님의 말씀,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마태 13장 1-9절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당신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신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이 거룩한 신비의 은총으로 저희를 가득 채워 주셨으니 자비로이 도와주시어 저희가 옛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7월 21일 (수) 매일미사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7월 21일 (수) 매일미사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7월 21일 (수) 매일미사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나의 마음과 삶을 햇볕이 잘 드는 비옥한 밭으로 가꾸기.

 

“삶 속의 성경.” 오랫동안 성경을 공부하고 성서 사도직의 소임을 맡으면서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사는 표현입니다. 성경을 머리로만 배우고 익혔던  저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 가슴으로 삶으로 느끼고 다가가지 못하였습니다. 

성서 사도직 소임을 하면서 성경을 통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성경, 나와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며 나에게 말을 건네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서 또 다른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삶 속에서 성경을 읽고 하느님을 만나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태오 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하늘 나라에 대하여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철학적 사유가 담긴 단어로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어렵고 난해한 신학적 단어나, 율법에 나와 있는 개념적 지식으로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씨 뿌리는 일, 수확하는 일, 빵 만드는 일, 고기 잡는 일, 물건 파는 일 등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통해서 하늘 나라가 어떤 곳인지, 어떻게 하면 하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할 수 있는지 알려 주십니다. 

이러한 비유 말씀은 어쩌면 사람들의 언어를 통하여 하느님의 언어를 듣게 하시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삶 속에서 쉬이 지나치고, 또 잊고 살았던 하늘 나라를 찾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것을 자신의 삶에 어떻게 비추어 보고 또한 어떻게 그 깨달음대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 고민은 우리의 몫입니다. 땅을 갈아엎고 돌을 골라낸 뒤 흙을 부드럽게 하고, 가시덤불을 걷어 내어 햇볕이 잘 드는 땅으로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삶 속에서 말씀의 신비를 실현하기를, 나의 마음과 삶을 햇볕이 잘 드는 비옥한 밭으로 가꾸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불평할 시간에 기도하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오늘 탈출기는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불평을 하는 얘기이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불평을 들어주시는 얘기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들고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온 공동체를 들고일어나게한 것입니까? 

먹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고작 먹는 문제로 온 공동체가 들고일어났냐며 이스라엘 공동체가 참으로 천박하다고 폄훼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같은 인간으로서 겸허하게 자신을 성찰한다면 우리도 그렇게 고상한 척 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먹는 것 때문에 불평을 하는 것을 누가 천박하다고 깔본다면 그는 대단히 성인 경지에 오른 사람이거나 굶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그의 태도는 매우 철부지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일 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먹는 것 때문에 불만이 있고 불평도 하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크게 문제 삼기보다는 다른 것 때문에 오늘 문제 삼고 싶습니다. 

첫째는 배고픈 것 때문에 이집트가 오히려 좋았다고 하고 더 나아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점입니다. 배만 부를 수 있다면 노예도 좋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배고픈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을 배고프지 않기 위해 노예가 되겠다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는 욕망을 위해 인간의 고귀함을 포기하는 것과 비슷하게 먹고 사는 것에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불평을 하느님이 아닌 모세와 아론에게 터트리는 점입니다. 배고프니 배고프다고 아우성칠 수 있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우성과 불평이 같은 인간에게 향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 잔인할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 너무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이 잘못하거나 죄를 지어서 고통을 받게 된다면 그것에 대해 누구를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것이 아닌데도 신이 아닌 인간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잔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과녁이 잘못된 거라는 말입니다. 

제가 관구장을 할 때 미성숙한 형제들은 어떤 문제의 책임과 해결을 다 저에게 넘기는데 저도 신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모든 문제를 다 예방할 수 없고 다 해결할 수 없지요. 

반면에 성숙한 형제들은 저의 한계를 인정해줍니다. 아니, 저나 자신들의 인간 공통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성숙에서 더 나아가 신앙적으로도 성숙한 형제들은 그렇기에 같은 인간에게 화살을 돌리고 인간에게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리고 해결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인간에게 불평하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불평만 하는 것은 전향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닐뿐더러 하느님에게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하면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인간에서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리고, 불평할 시간에 기도를 함을 오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배우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빛은 어둠 속에서, 앎은 모름 속에서만 보인다.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씨는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이 진리가 우리 안에 뿌려지지만 어떤 사람들은 ‘들을 귀’가 없어서 씨가 뿌려져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비유를 깨달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마음이 무디고 눈은 감겼고 귀는 닫아버렸기에 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들을 귀’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인 금태섭 씨가 쓴 『확신의 함정』 책의 머리말 소제목은 “누구나 틀릴 수 있다.”입니다. 

법을 집행하면서 확신을 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랜 법조인 생활을 한 끝에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진리에 도달했습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그는 검사 초년 시절 자신 앞에서 한없이 울던 막 12년의 복역을 마치고 나온 서른 살의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랜저를 훔쳐서 잡힌 사람이었는데, 큰 죄도 아닌 작은 범죄를 여러 번 저질러서 결국엔 12년을 살다가 이제야 출소한 것입니다. 만약 법대로 하면 그를 다시 7년 이상은 집어넣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도 와서 사정하고 자신도 그 사람을 장발장으로 만들 수 없어 결국 그 사람은 집행유예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는 차를 상습적으로 탈취하고 그 안에 탄 사람들을 폭행하며 돈을 빼앗는 등의 중범죄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검사는 다시 범죄 기록과 그랜저를 훔친 정황을 살펴보았습니다. 분명 놓친 것이 많았습니다. 그는 검사 앞에서 연기하고 있었고 검사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누구나 틀릴 수 있다. 사건을 수사하거나 변론을 하다 보면, 분명히 내 판단이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질 때가 있다. 의뢰인이 가장 억울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나도 너무 분해서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자신의 판단이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저 사건을 처리할 때 나는 내가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는데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틀렸고, 또 틀렸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신중해집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신이 안다고 믿는 것 때문에 많은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은 ‘양자역학’이라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심지어 양자컴퓨터까지 개발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그 머리가 좋다는 아인슈타인도 양자역학이 처음 나왔을 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과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양자역학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양자역학에서 보어는 상보성 원리를 주장하며 전자는 입자로 존재할 때는 특정 위치에 존재할 수 있지만, 파동으로 존재할 때는 중첩 현상으로 명확히 어디에 존재하는지 규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니 물어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입자나 파동도 관찰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다르게 측정됩니다. 관찰자가 있다면 빛이 입자로 보이다가 관찰자가 보지 않으면 파동으로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미시세계로 갈수록 도대체 인간의 능력으로는 무언가를 확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 양자역학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물리학의 입장에서는 세상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기에 인과응보가 정확한 계산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양자역학의 세상에서는 그것으로 측정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만약 아인슈타인처럼 인간이 다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양자역학의 세계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닐스 보어는 말합니다. 

“아인슈타인 씨, 신이 무엇을 할지 당신이 결정하지 마시오.”

제가 초등학교 때 복사를 했기에 방학 때는 성당에 매일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가게 하나를 지나쳐야 했는데 그렇게 매일 성당에 출근하는 저를 보며 왜 신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신을 믿으려면 태양을 믿으라고 합니다. 자신은 태양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없으면 누구도 살 수 없으니 태양이 곧 신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태양을 만드신 분을 믿어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냥 웃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분은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르는 사람이 되었고 저는 아는 어린이였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받아들여지려면 우리는 ‘비진리’, 곧 진리가 아님을 고백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기는 만큼 진리는 내 안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복음 묵상을 할 때도 이전에는 ‘다 했던 것인데 또 뭐 새로운 묵상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볼수록 더 깊은 내용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다 안다고 규정해 놓는다면 더 깊은 진리는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영성에서는 『무지의 구름』과 같은 책이 나오는 것입니다. 무지의 구름이란 모세가 하느님을 만나 계명 판을 받기까지 40일간 구름 속에서 있었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때 주님 앞에서 모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누구보다도 몰랐기 때문에 전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나훈아 씨는 인생 막바지에 와서 ‘소크라테스’를 찾으며 인생도 사랑도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드디어 조금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른다고 고백해야 그분께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받을 귀가 열립니다. 내일도 모르고 한 시간 앞도 모릅니다. 그러니 대화할 때 결론을 내며 대화를 끊어서는 안 됩니다. 모른다고 생각할 때 귀가 열리고 대화가 흘러갑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알려주십니다. 모든 것에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겸손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의 말씀 앞에서 귀를 여는 방법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넷플릭스 창업자 마크 랜돌프의 성공지침 8가지.

 

넷플릭스 창업자 마크 랜돌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밝힌 자신의 아버지가 적어준 8가지 성공지침이 있습니다. 


1. 시키는 일보다 최소 10% 이상은 더 해라. 

2. 네가 모르는 것에 대해 사실처럼 말하지 마라. 

3.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예의를 갖춰라. 

4. 트집 잡거나 불평하지 마라. 진지하게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자세를 유지하라. 

5. 결정을 두려워하지 마라. 

6. 가능하다면 숫자로 표현하라. 

7. 마음을 열어두되 끊임없이 의심하라. 

8. 시간을 엄수하라. 
  

모두가 우리에게 와닿는 지침입니다. 사실 이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지침들이 크게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면서도 실천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한 노력을 쉽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성공을 바라는 요행만을 주님께 청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농부는 11월 초순 무렵에 단비가 내리면 먼저 밭에 밀이나 보리를 훌훌 뿌리고서 밭을 갈게 됩니다. 먼저 밭을 갈고서 이랑에 씨앗을 뿌리는 우리 농사법과는 정반대이지요. 그런데 씨앗이 길에 떨어질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4월부터 10월 사이의 건조기에 사람들이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다니다 보면 길이 날 수도 있고, 밭 가에 길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갈릴래아 평원을 빼고 이스라엘 전체가 온통 석회석투성이 돌밭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쟁기는 돌과 돌 사이를 갈아야 하니까 우리나라보다 쟁기의 날이 훨씬 좁습니다. 씨앗이 가시나무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 들판에 가득한 가시 돋친 잡초를 연상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이유를 생각하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비유였습니다. 당시는 적대자들이 반대하고 심지어 제자 중에도 반대자가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이 길가, 돌밭, 가시나무의 상황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며 씨를 뿌린다고 말이지요.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른다면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바로 여러분이 꿈꿔오던 삶을 사는 것입니다.

- 오프라 윈프리

 

 

본다.

 

병아리의 부화 직후, 병아리의 항문과 날개만 보고서 그 암수를 구별하는 사람을 ‘병아리 감별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정확도가 (6개월 이상 감별하면) 98% 이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구별하는 시간은 한 마리당 1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초보 감별사는 이를 어떻게 배우는 것일까요? 사실 별거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으라고 명령한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보다 보면 암수를 자연스럽게 구별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본다’라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주님을 봐야 주님을 알 수 있습니다. 딱 한 번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또 보고…. 계속해서 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주님을 보고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씨앗은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땅에 과감히 뿌리는 것이다.

 

"열매는 백배가 되었다."(마태 13, 8) 

열매 앞에서 겸손을 배운다. 그냥 이루어지는 열매란 없다. 열매는 여정을 필요로 한다. 열매로 새로운 세상을 우리는 보게된다. 익숙해져 있던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의 삶을 이제는 버리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움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씨앗이 죽지 않고서는 백배, 천배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씨앗은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결국 씨앗과 열매는 하나의 여정을 걸어가는 것이다. 씨앗 없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참된 기쁨이다. 

씨앗은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땅에 과감히 뿌리는 것이다. 삶이란 밭에 씨를 뿌리는 실천이 바로 살아있는 우리들 신앙이다. 그래서 신앙은 도전이며 모험이다. 확실하지 않기에 희망하고 두려워하기에 간절히 기도한다. 말씀의 씨앗은 깨달음의 열매로 결실을 맺는다. 

씨앗은 간절하기에 열매를 맺는다. 씨앗의 엄청난 신비는 우리를 좋은 땅이 되게한다. 좋은 열매를 맺게하시는 주님이시다.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씨앗이 이미 뿌려졌다. 간절함과 부서짐과 십자가의 죽음이 필요할 뿐이다. 

씨앗은 십자가의 좋은 땅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씨앗의 여정은 십자가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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