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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9/08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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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축하세.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그분이 낳으셨네.

주님, 복되신 동정녀께서 성자를 낳으시어 저희 구원이 시작되었으니 동정녀 탄생 축일을 지내는 주님의 종인 저희에게 천상 은총의 선물을 내려 주시어 길이 참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9월 8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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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미카 5,1-4ㄱ)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 오늘 복음
    (마태 1,1-16.18-23)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미카 5,1-4ㄱ
오늘 제1독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1-16.18-23
오늘 복음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9월 8일
김진호 비오 신부

 

✚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0:49

✚ 강론시작 07: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하느님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는 마리아와 요셉

오늘 복음에서 우리말로 “약혼”(마태 1,18)이라고 옮긴 낱말은 당시 유다인 사회에서 증인들 앞에서 하는 정식 혼인 전 예식을 가리킵니다. 이 예식으로 남녀는 공식 이혼 절차를 밟지 않고서는 깰 수 없는 ‘정식 부부의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두 당사자는 이미 정식 부부이기 때문에 배우자가 죽으면 홀아비나 과부라고 불리고, 상대가 간음을 하면 그 행위가 이혼 사유에 해당됨은 물론 간통죄로 다스려졌습니다.

마리아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당신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심을 알게 되자 기꺼이 자신을 내놓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자신만의 푸른 꿈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듣게 된 하느님 전갈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꿈을 포기하고 불명예를 떠안고 죽을 위험마저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에는 주님께서 첫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자신보다 주님을 더 소중히 여긴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에 깊은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마리아가간통죄로 처벌받는 것도, 공개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도 바라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그를 사랑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간음한 여인과 혼인할 수는 없기에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알림을 받자, 그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동정 잉태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느님 뜻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모두 구원하시고자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놓으신 것은 그분께서 하느님을 무척 사랑하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느님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포기하는 마리아와 요셉의 모범을 가정에서 배우셨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대로

오늘 성모 마리아의 탄생 축일에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 얘기와 예수님의 탄생 경위를 들려주고 미카 예언서는 뿌리에 대한 얘기를 줍니다.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성모님의 탄생 축일에 성모님의 탄생에 대한 얘기는 들려주지 않고, 예수님의 탄생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이상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면 성모님의 축일에 정작 성모님 탄생 얘기는 들려주지 않는 것이 성모님의 탄생에 관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성모닌 탄생 얘기 대신 예수님의 탄생 얘기를 들려준 것이기도 하지만 성모님의 탄생은 아들의 탄생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그런 거지요.  

이렇게 얘기하면 요즘 여성주의자들 중에 어떤 분은 여자가 애를 낳기 위한 존재냐고, 그것이 여자의 존재 의미일 뿐이냐고 반박할 것이고, 저도 엄마가 돼야지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전례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이 축일을 지내지도 않고, 더더욱 거창하게 축일로 지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요즘은 여성주의자들이 아니더라도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엄마가 될지, 엄마가 아니라 그저 한 여성으로서 경력 여성이 될지. 저도 선택의 권한이 여성에게 있고, 그래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보다는 한 여성으로서 멋지게 살고, 한 아이보다는 많은 이를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엄마가 되기를 선택했다면 요즘 아이를 낳고 쓰레기 통에 버리거나 낳고는 학대하는 엄마가 아니라 훌륭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진보적인 생각이고 또 마땅한 생각일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차원에서는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경우는 인간에게 그리고 마리아게 엄마의 선택권이 있지 않고 하느님께 있으며 그래서 오늘 미카서는 그 뿌리가 아주 오래 전의 옛날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엄마가 되는 것은 선택권이 마리아에게 있지 않고, 하느님에 의해 오래 전 그러니까 천지창조 이전에 정해진 거라는 얘기이고, 잘 아시듯 성모 마리아께 대한 모든 교리는 다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이에 성모님의 몫은 '예스', 곧 순종입니다. 정해진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예스'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예스'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전달을 받고 난 뒤 "Fiat mihi voluntas Tua! 당신 뜻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할 때 뿐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고, 아니,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스' 하도록 정해진 것입니다.  

당신에게서 아들 예수가 태어날 때 "예스"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태어날 때 이미 "예스"한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것이 성소이고, 선택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살겠다는 것이 성소를 사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임을 이 축일에 다시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대축일

축하합니다. 오늘은 ‘성모 탄생 대축일’입니다. 동시에, <몬떼 올리베또 성 마리아 대수도원>과 연합회의 주보성인 축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더욱 기쁜 날입니다. 이 기쁜 날, 아기 성모님과 함께 벌어진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찰찰 넘쳐나길 빕니다.

사실, “성모성탄 대축일”인 오늘로부터 10달을 거슬러 올라가면, 12월 8일은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이 됩니다. 그러니, 성모님의 탄생은 ‘원죄 없으신 잉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성모 마리아를 원죄 없는 잉태로 탄생시킴으로써 성자의 강생에 합당한 준비를 갖춘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곧 구원 역사의 중요한 국면이 시작됨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탄생은 우리 구원의 여명으로 이해됩니다. 곧 구세주께서 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리아의 탄생으로 구원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토록 ‘성자의 강생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성모님을 원죄로부터 보호받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는 비록 인간이 죄의 굴레에 있다 하더라도, 결코 하느님의 축복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죄보다 먼저 축복을 받은 존재’입니다. ‘죄보다 먼저 축복이 왔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축복받은 존재라는 이 사실을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모님의 탄생으로 준비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성모님께서는 원죄조차 없는 티 없이 아름답고 거룩한 대성전이셨습니다. 구세주, 하느님의 아들을 품으신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은 참으로 기쁨과 찬미와 감사의 날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탄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은총과 복을 주시는 분”이시오, 성모님께서는 “은총과 복을 가득히 받으신 분”(루가 1,28 참조)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 안셀모는 성모님을 “넘치는 은총으로 충만하신 분”, “복되시고도 지극히 복되신 분”이라고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과 복이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당신이 받으신 축복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로부터 축복을 받고, 창조주께서는 그들로부터 찬미를 받으신다. ~ 모든 피조물이 당신의 충만함의 흘러넘침을 입어 새싹이 트듯 되살아났다.” 

이는 성모님께서 받은 은총과 축복이 성모님으로 말미암아 온 피조물에게 흘러들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모님께서 받은 은총과 축복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아드님과 형제가 되며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루며, 그분 안에 수렴(accapatulatio)됩니다. 이토록, 우리는 ‘은총에 은총을, 축복에 축복을 입게 되었습니다.’(요한 1,16 참조). 그리하여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흔히들, “부모의 기쁨은 자녀에게 있다”고 합니다. 성모님의 기쁨도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구세주 아들을 탄생시키기 위해 원죄 없이 잉태되셨으며, 오늘 탄생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들로 말미암아 구원의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어머니의 그 은총과 축복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특별히 축복에 축복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 많은 은총에 은총을 입은 존재라는 사실을 깊이 기억하고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이 기쁜 날, 아기 성모님과 함께 벌어진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찰찰 넘쳐나길 빕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20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주님!
믿음으로 
침묵할 줄을 알게 하소서. 

행동으로 
사랑할 줄을 알게 하소서.

타인의 처지를 
자비로 헤아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희망하게 하소서.

선하신 당신의 뜻과 
당신의 의로움을 따르며, 
영으로 인도되는 
다 헤아려지지 않은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모님은 예수님 구원사업에 꼭 필요한 분이셨을까?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를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고…”

수십 명의 이름이 ‘남자가 남자를 낳는’ 방식으로 장엄하게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지루할 것 같은 족보의 마지막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갑자기 2000년의 역사를 뒤흔드는, 아주 이상하고도 혁명적인 문장을 써넣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보십시오. 족보의 법칙이 깨졌습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낳은 것이 아니라, 갑자기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선포합니다. 마태오는 지금, 이스라엘의 모든 위대한 남성 족장들처럼,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 시골 처녀 마리아가 없었더라면 구세주께서는 결코 이 땅에 오실 수 없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며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굳이 이런 계획을 세우셨을까요? 왜 말씀이 사람이 되시기 전에, 그 말씀을 받아 안을 한 여인이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을까요?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정말 꼭 필요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스승‘이 되셔야 하는데, 스승이 되려면 먼저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배우지 않고 혼자 스승이 되면 그 스승에겐 누구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배운 사람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스승이 배웠다면 나도 배울 수 있어.’라는 마음을 주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성모님께 무엇을 배우셨을까요?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속하는 법입니다. 곧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성경이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시어,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내셨다.” (루카 2,51)고 증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순종을 배워야 순종하는 법을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다.

1970년대 미국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가 있었습니다. 그는 잘생긴 외모와 명문대 법대생이라는 지성을 가졌지만, 사생아로 태어나 평생 어머니로부터 진정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는 체포된 후 심리학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타인에게 속하는 법, 즉 사랑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세상을 파괴하는 악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이란 먼저 나 자신에게서 나와 타인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것을 가르쳐 주신 첫 스승이 바로 성모 마리아입니다. 순종하는 법은 말씀과 은총, 두 가지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며 기적을 만들어낸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은 권위와 사랑의 균형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다혈질의 꼰대'였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들에게 강한 권위를 내세웠습니다. 권위는 말씀이고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 강한 권위의 바탕에는 선수들을 향한 진정한 부성애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상당한 선수를 위해 자신의 비행기 좌석을 양보하고, 선수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선수들을 '가족'이라 여기며 선수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축구협회에 요구하는 것을 감독의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선수들은 그의 사랑을 알았기에 그의 권위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표징입니다. 이는 권위와 사랑이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 마치 한 몸처럼 공존하며 서로를 강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예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첫 스승입니다. 스승과 부모는 거의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승이 있어야 제자가 성장합니다. 스승 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 없이 온전히 성장하는 자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국악인이자 배우인 오정해 씨는 만당 김소희 선생이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 비로소 진짜 소리꾼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김소희 선생은 제자에게 단순히 소리 기술만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밥상머리에서 제자의 그릇 크기를 보았고, 궂은일을 시키며 인내를 가르쳤습니다.

오정해 씨는 스승의 삶 전체를 배우고 그 인격을 닮아가면서 비로소 소리에 깊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훗날 대학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녀의 입에서는 어느새 스승 김소희 선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스승이 있었기에 제자가 있었고, 그 제자가 다시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스승 없이 저절로 완전해지셨다면, 그분은 우리의 참된 스승이 되실 수 없습니다. 나와 같은 처지를 겪어보지 않은 분을 어찌 스승으로 따를 수 있겠습니까? 스승은 나와 같은 인간적인 조건 속에서도 높은 경지에 오른 분을 말합니다. 원래부터 그런 존재에게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한 온전한 인간으로서 첫 스승이 필요하셨습니다. 스승은 자신이 직접 겪고 배운 것만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제자는 “스승님께서 하셨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시기 위해, 먼저 한 인간으로서 순종을 배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첫 스승으로, 어머니 마리아가 꼭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 스승이셨던 어머니를, 십자가 위에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요 스승으로 주셨습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러니 우리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그분을 스승으로 삼을 때,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순종하는 법을 배워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어머니이신 스승께서는 우리를 당신 아드님께로 이끌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감정은 희망입니다. 독일 속담에 “희망은 가장 마지막에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죽음 전까지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며, 희망이 없음은 죽음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라틴어 속담에도 “내가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뜻의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든 어려움에도 삶을 거뜬하게 살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희망인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대와 희망을 같은 의미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대가 무너지면 희망도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기대,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자 하는 기대, 그 기대가 깨졌을 때 희망도 없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기대와 희망은 다릅니다. 기대가 무너져도 더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충분히 품을 수가 있고, 좋은 미래가 내게 열릴 것이라는 희망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희망은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현재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싸울 수 있게 합니다. 자기 기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희망으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희망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솟아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희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소개하지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민족이 너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3)의 성취자라는 뜻입니다. 또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국(2사무 7,12-16)을 이루시는 메시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특히 천사가 요셉에게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라고 명령하지요. 예수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라는 뜻에서 온 이름으로,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희망인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철저히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고,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잉태한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오늘은 우리를 구원할 희망의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시작이 됩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 잉태부터 시작해서 전 생애에 보여 주셨던 믿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성모님의 공경하고 그분의 삶을 따르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런 좋은 모범을 보여 주신 분의 탄생일인 오늘을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축하의 마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성모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지만, 그 실수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쇼펜하우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의 탄생은 구원의 길을 여는 하느님의 섭리의 시작입니다. 마리아의 탄생이 없었다면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육화는 우리 역사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탄생의 의미를 새롭게 만나는 가슴 벅찬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도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음을 다시 믿습니다. 겸손 속에서 하느님의 위대한 역사가 드러났습니다. 

마리아의 탄생은 어둠 속에 비친 새로운 시작의 빛이었습니다. 마리아의 탄생은 그리스도를 위한 준비된 탄생이었습니다. 나를 위한 삶에서 함께 살리는 삶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충만해집니다.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여인을 통해 역사의 중심을 바꾸셨습니다. 하느님의 일이 가장 좋은 때에 우리 삶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희망과 은총, 겸손과 준비는 탄생으로 더욱 구체화됩니다.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우리 각자의 탄생도 우연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현할 은총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그 희망을 이어가는 은총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구원은 하느님의 은총이 먼저 오는 가장 좋은 선물임을 믿습니다. 

 

 

 

마태오복음 1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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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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