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뽑힌 이들을 도가니 속 금처럼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받아들이셨으니, 주님이 찾아오실 때, 하느님께 뽑힌 이들은 은총과 평화를 누리리라. 알렐루야.
하느님, 순교자들의 피가 그리스도인의 씨앗이 되게 하시니 복된 가롤로와 그 동료 순교자들의 피로 하느님의 교회를 비옥한 땅이 되게 하시고 이 땅에서 언제나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3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20,17-27)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를 다 마칩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7,1-11ㄴ)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사도 20,17-27
오늘 제1독서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를 다 마칩니다.
그 무렵
17 바오로는 밀레토스에서 에페소로 사람을 보내어 그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18 그들이 자기에게 오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19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20 그리고 유익한 것이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회중 앞에서 또 개인 집에서 여러분에게 알려 주고 가르쳤습니다.
21 나는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22 그런데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23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
24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5 이제, 내가 두루 돌아다니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여러분 가운데에서 아무도 다시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26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그 누구의 멸망에 대해서도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27 내가 하느님의 모든 뜻을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17,1-11ㄴ
오늘 복음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1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2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4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5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6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뽑으시어 저에게 주신 이 사람들에게 저는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7 이제 이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이들에게 주고, 이들은 또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제가 아버지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참으로 알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9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10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하여 제가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1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3일
도승현 베드로 신부
✚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소개 00:06
✚ 미사시작 01:23
✚ 강론시작 08:28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
오늘 독서와 복음은 자신의 사명에 관하여 중대한 여정을 앞둔 두 사람을 보여 줍니다.
“성령께 사로잡혀”(사도 20,22) 예루살렘으로 떠나면서 에페소의 원로들에게 비장한 고별사를 전하는 바오로의 등 뒤로, 당신의 “때”(요한 17,1)를 맞아 아버지께 장엄하고 애절한 기도를 드리시면서 당신께서 떠나신 뒤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아버지께 맡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 채 성령께서 일러 주시는 “투옥과 환난”(사도 20,23)을 결연히 마주하려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은 숭고해 보입니다. 그는 오직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기를]”(20,24)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평안보다는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인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대사제로서 아버지께 드리시는 기도에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셨다고 하며 아버지께 영광을 청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청하시는 영광은 바로 십자가 위의 죽음입니다.
‘때’가 되어 이제 곧 예수님께서 가실 길은 고난과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를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이 길이 바로 교회가 오늘 기리는 순교자들의 영광이요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영광입니다.
예수님과 바오로처럼 우리가 사명을 수행하면서 받는 성령의 이끄심이 꼭 평탄한 길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끄시는 그 고난의 길이 바로 하느님과 우리에게 영광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두려움 없이 사랑으로
오늘 독서와 복음의 바오로와 주님 모두 비장하십니다. 비장(悲壯)이란 말 그대로 슬프면서도 씩씩하고 굳센 것입니다. 두 분 모두 세상 하직할 때가 되었고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기에 슬픕니다.
두 분 모두 지금까지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모두 다 주고 모두 다 알려준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니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고 씩씩하고 굳셉니다. 과거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기다리고 있고, 새로운 길을 씩씩하게 가야 합니다. 하직을 고하고 헤어지는 것이 너무 섭섭하고 슬프면 새로운 길을 갈 수 없으니 부러 더 씩씩해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저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저를 돌아보게 되는데, 지금의 저를 솔직히 보면 씩씩함보다는 두려움이 더 큽니다.
멀리 있던 고통과 죽음이 나이를 먹음과 함께 그리고 가까운 분들의 고통과 죽음과 함께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통과 죽음을 사랑 없이 맞이하면 이렇게 되고 하느님 없이 맞이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 사랑이 있어야 하고 하느님이 계셔야 하는데 우리 안에 계셔야 할 사랑의 하느님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일러 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앞두고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에 도전과 자극을 받아 앞으로 닥칠 모든 것을 두려움 없이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오로 사도처럼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기를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영광의 때
오늘부터 3일 동안은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행하신 ‘고별사’에 이어지는 ‘고별기도’를 듣게 됩니다.
이 기도는 앞의 ‘고별사’의 중심 주제였던 ‘사랑’과 ‘영광’이 기도 형식으로 반복되고 있는데, 크게 세 가지 청원을 담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 자신을 위한 청원’(17,1-5)과 ‘제자들을 위한 청원’(17,6-19)과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한 청원’(17,20-26)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오늘은 ‘전반부’(1-5절)인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아들의 영광을 청하는 기도만 보고,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 포함되는 ‘뒷부분’(6-11절)은 내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
먼저, “때”를 알립니다. 가나안의 혼인잔치에서,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고 말씀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고별사’의 시작인 13장 1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한편, 사막에서 사탄이 “세상의 나라와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할 때 거부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간청하십니다. 이제 당신의 “영광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이란, <성경>에서 하느님의 존엄함과 거룩함의 광채가 현재적으로 나타나는 위업과 현현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영광의 때”는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을 통하여 결정적으로 드러날 “때”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과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그 “때”가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때”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영광”은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권한인 “영원한 생명”을 모든 이에게 사랑으로 주심으로써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곧 “홀로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 17,3)이 될 것입니다.
결국, 이 기도는 그 실현이 십자가를 통해 드러나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요, 곧 영광이 드러나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를 간청하는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서도 이루어지도록 응답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7,1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주님!
당신께서는 영광을 드러내시되,
굴욕 받음으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굴욕을
발아래에 두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어,
썩는 것을 썩지 않는 것으로
바꾸셨습니다.
하오니, 그 어떤 굴욕과 수난에서도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오로지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당신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자기 삶을 바꾸고 싶다는 분이 많습니다.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생각은 행동에 영향을 주고, 행동은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중요합니다. 이 생각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체성이 바뀌어야 나의 삶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 정체성을 가지고는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나라는 사람은 이 모양이라서 내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요? 당연히 불행으로 나아가는 행동만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때로는 거꾸로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떠올리고 이를 위한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이, 즉 나의 정체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양궁선수와 시합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양궁선수가 이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양궁선수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눈을 가리고 코끼리코 10바퀴를 돌린 다음에 화살을 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수 아닌 내가 이길 확률이 더 커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훨씬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과녁은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정체성은 목표를 분명히 알 때 확고해집니다. 그리고 목표를 바라보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막연한 목표, 세속적인 목표만을 강조해서는 정작 가장 중요한 목표를 볼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를 바라봐야 하고, 그래서 주님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우리가 되기를 주님께서는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시기에,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 17,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인 이들이 하느님 아버지께 보호받도록 청하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의 목표를 다시금 점검해야 합니다. 단순히 세속적인 목표만을 세우는 것이 아닌 또한 순간의 만족만을 위한 목표가 아닌, 후회하지 않는 목표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부정적 생각으로 가득한 정체성을 가지고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머물면서 하느님 나라라는 목표를 분명히 보는 사람이 되어야 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장벽에 부딪히거든, 그것이 절실함을 나에게 물어보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랜디 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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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하느님 뜻을 받아들임이 새로운 날이고 새로운 빛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에는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십니다.
영광은 수난 가운데 확연히 드러납니다. 영광은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관계의 완성이 일치의 참된 영광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하느님을 높이는 영광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충실한 것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순종이며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 삶에서 실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삶을 통한 영광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로 드러납니다.
이렇듯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으로 영광의 삶은 시작됩니다. 실천적인 영광입니다. 이 실천으로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와 함께하는 특별한 순간이 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하느님의 때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도록 우리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의 빛을 받아 비추는 진정한 겸손과 우리의 깊은 응답입니다.
예수님조차도 자신의 뜻이 아닌 성부의 뜻을 따르며 자신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비추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빛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은총을 통해 드러납니다. 은총을 받은 영광스러운 오늘 되십시오.
요한복음 17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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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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