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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6/01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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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주님은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알렐루야.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저희를 들어 높이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기쁨에 가득 차 감사의 제사를 바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 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6월 1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주님 승천 대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1일 주님 승천 대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1-11)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 제 2독서
    (에페 1,17-23)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24,46-5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다.

 

 

 

사도 1,1-11
오늘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다.

1 테오필로스 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습니다. 

2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6 사도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에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 

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신 다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10 예수님께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렇게 말하였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에페 1,17-23
오늘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빕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24,46-53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46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49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5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51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53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1일
황중호 베드로 신부

 

✚ 주님승천대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6

✚ 강론시작 18:0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희망의 순례자들

루카 복음사가는 사도행전 머리말에서 예수님의 파스카 사건에서 승천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 전하고,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서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의 일을 전합니다.  

사도들의 인간적인 처지에서 바라본 주님의 승천은, 주님께서 돌아가신 뒤 슬퍼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 기뻐하다가 이윽고 헤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사도들은 주님께서 자신들과 영원히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에 슬퍼하기보다 크게 기뻐합니다. 이 땅 위의 희망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희망’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승천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내내 당부하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선포는 곧 이 새로운 희망의 선포를 뜻합니다. 파스카 사건의 증인으로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사명을 받은 사도들처럼, 우리도 우리가 지닌 희망(에페 1,18 참조)의 증인이 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시련과 절망을 겪고 있는 이웃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신앙에 기초한 우리의 희망을 삶으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올해 홍보 주일 담화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요 수동적인 낙관주의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수행적인 덕”임을 강조하십니다. 

‘희망의 순례자들’인 우리가 희년을 지내는 동안 피해 갈 수 없는 시련이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희망을 잃지 않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또한 모든 이가 이 희망을 함께 나누도록 한쪽으로 치우친 언론과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않도록 다양한 홍보 매체 안에서 늘 깨어 있도록 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승천 관상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주님께서 오르신 하늘을 제자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고 천사가 나무람 조로 말합니다.  

이에 대해 ‘그럼, 쳐다봐야지 아니 쳐다보면 되겠냐?’ 하고 반문할 것이고, 또 그렇게 반문해야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도 우리도 제자라면 주님 가신 하늘을 봐야 하는데 왜 하늘을 봐야 합니까? 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것은 우리 인생의 갈 곳 곧 목적지를 잃는 것이요, 그러기에 우리 인생의 희망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송도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감사송과 바오로 서간도 일관되게 하늘을 봐야 하고 거기에 희망을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늘을 보는 사람은 희망을 보는 사람입니다. 자기만 보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그리고 자기만 보지는 않지만 본다는 것이 고작 다른 인간을 보는 사람도 희망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그 인간에게도 희망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좌우지간 하늘을 봐야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그러기에 하늘 보기 곧 승천 관상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봐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희망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 때문에도 하늘을 봐야 하지만 우리의 사랑 때문에 하늘을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머리이신 주님이 가는 곳이 지체인 우리가 가야 할 곳이요, 내 사랑이신 주님이 가는 곳이 사랑하는 우리가 가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가야 할 곳’은 주님이 가신 하늘인데 ‘있어야 할 곳’은 땅입니다. 미래에 가야 할 곳은 주님이 가신 하늘이지만 지금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땅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하늘만 보지 말고 땅도 봐야 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하늘도 보고 땅도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은 이 세상을 살아야 하고, 더 큰 이유는 아직은 우리가 이웃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대신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대신하기 위해 하늘 보기 ‘승천 관상’을 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세상과 더불어 올라가는 승천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오늘의 전례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본기도>는 ‘주님승천’을 다음과 같이 경탄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저희를 들어 높이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기쁨에 가득 차 감사의 제사를 바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또한 <감사송>도 이를 훌륭하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영광의 임금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승리자로서,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으며, 하늘과 땅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제1독서>는 베일 속에 가려진 신비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주며, <제2독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가지도록 요청하며,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의 본문은 세 장면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장면>은 성경에 기록된 부활에 대한 증언과 “복음 선포”의 사명을 밝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6-48)

<둘째 장면>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오실 ‘성령 파견 예고’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주겠다.”(루카 24,49)

<셋째 장면>은 ‘예수님의 승천 장면’과 ‘기뻐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먼저, ‘예수님의 승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루카 24,50-51)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승천’하신 것만이 아니라, ‘손을 드시어 강복’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제적 행동을 드러내줍니다. 곧 ‘손을 드는 것’은 사제들이 백성에게 강복할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레위 9,22;1티모 2,8).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는 표현은 대사제 시몬이 제사를 마치고 나서 백성에게 기쁨을 주시도록 하느님에게 간청하며, 손을 들어 이스라엘을 강복해 준 장면을 떠올려줍니다(집회 50,20-23).

‘강복’은 성경에서, 강복하는 사람의 능력과 그 사람이 가진 것이 이양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축복하셨다”는 것은 그로 인해 모든 피조물이 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음을 의미하며(창세 1,28), 이사악이 “야곱을 축복하였다”는 것은 그를 가문 전체의 수장으로 임명했다는 것을 뜻하고, 그것은 나중에 속임수였음을 알았어도 철회될 수가 없었습니다(창세 27,28-29.37).

그리고 이스라엘 왕들은 계승자에게 ‘축복함으로써 통치권을 이양’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도 지상을 떠나시는 순간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이 당신의 능력으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부활의 권능’, ‘죄의 용서의 권한’을 이양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다시 살아난 사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양되어 영광 안에 드셨으며, 성부 옆에 앉으신 우리의 주님이심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크게 기뻐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전해줍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2-53)

이렇게 해서, <루카복음> 서두에서 예수님의 탄생이 “큰 기쁨이 될 소식”(2,10)이라고 한 말이 <복음서 마지막>에서 예수님의 승천에 이르러 ‘큰 기쁨’으로 표현됩니다. 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시작된 첫 장면은(1,5,64;2,28.37) 이제 다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끝나게 됩니다(24,53). 

이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발생한 사건, 곧 죽음과 부활과 승천, 예수님의 모든 활동과 삶 전체가 하느님의 섭리와 능력에 근거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당신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사업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승천’은 세상에서 이탈하는 승천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올라가는 승천인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기도>에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저희를 들어 높이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기쁨에 가득 차 감사의 제사를 바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4,51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주님!
하늘을 열고 내려오셨듯이,
땅을 열고 오르소서. 

하늘의 축복을 가져오셨듯이,
땅을 강복 하소서. 

제 마음을 여시어,
제 속에 하늘을 펼치소서. 

지금 서 있는
바로 여기가 거룩한 땅이요, 
땅에서 열린 하늘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승천이 사랑인 이유: 희망과 믿음의 중개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녀들을 떠나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아픕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승천의 이유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떠남이 곧 자신들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승천이 사랑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양들을 앞장서 주님께로 가는 목자와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양들을 성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그들 옆에만 있다면 그들은 너무 의지만 하려고 해서 성장하지 못합니다.  

어떤 부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중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돈 버느라 바빠서 아들 하나 있는 것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였습니다. 아들은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망나니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재산을 물려주어야만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 손으로 한 달만 일해서 월급을 가져오면 재산을 물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제안합니다.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아들은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돈을 좀 달라고 하여 이것이 자신이 번 돈이라며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돈을 벽난로에 집어 던졌습니다. 아들은 황당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벌어오너라.” 하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또 한 달 동안 놀다가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그 돈을 벽난로 불에 던졌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하다가 아들은 ‘그래, 아버지는 다 아시는구나. 돈 한 번 벌어보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손발이 부르트고 온몸이 매를 맞은 듯 아픈 것을 참으며 자신이 직접 번 돈을 아버지에게 가져다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벽난로에 집어 던졌습니다. 아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돈을 꺼내기 위해 불 속에 손을 집어넣었고 타들어 가는 돈을 끄집어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고생했다. 아들아. 내 모든 돈은 다 너의 것이다.”라며 아들은 인정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자기 재산을 맡길 정도로 성장시키려면 그의 곁에서 그를 도와주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재산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과 돈을 벌 능력이 있다는 믿음은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멀리 있어야 합니다. 코끼리 새끼가 걷기 싫다고 누워버렸을 때 코끼리는 그 새끼를 기다려줄까요? 그러면 잘못된 버릇이 들어 어른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코끼리 부모는 새끼를 지나쳐 갑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줍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가시며 당신 제자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러 가신다고 하십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골반이 골절되어 병원에만 계셔야 했을 때 이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재활 과정을 힘겨워하셨습니다. 저희는 어머니에게 희망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이 ‘집’입니다. 본래 살던 집은 빌라 4층이고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이젠 나으셔도 사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본당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모으신 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꿈꾸던 집을 마련해 드렸고 병원에서 가끔 모셔 와 보여드리고 주무시게 해 드렸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렇게 하기 싫어하던 재활을 스스로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이 희망을 주시기 위해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오를 수 있도록 목적지에서 기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은 예수님과 교회 사이에서 포도주, 곧 성령을 중재하십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둥지에서 떨어뜨리지만, 땅에 닿기 전에 날개로 받쳐줍니다. 희망이 있어도 부모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거기서 끝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의 집과 앞으로 다닐 성당에 머물면서 저를 도와주는 이들을 어머니께 보냅니다. 그들은 성령님을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믿음을 줍니다.  

농부가 아무리 맛있는 사과가 있어도 왕비를 통하지 않으면 임금에게 바로 봉헌할 수 없습니다. 왕비는 그 중재의 역할을 함으로써 왕의 은총이 농부에게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농부는 왕비를 통해 임금에 대한 믿음을 회복합니다. 예수님도 당신이 아버지께 가시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희망과 믿음의 중개자가 되시기 위해 하늘로 오르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셨다.

헬멧을 쓰고 있는 자전거 운전자와 헬멧을 쓰지 않은 자전거 운전자 중에 누가 도로에서 더 속도를 내서 빨리 달릴까요? 결과는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이 훨씬 빨리 달렸습니다. 헬멧만큼 무게가 덜 나가고, 헬멧을 쓰는 구속감에서 벗어나 있기에 헬멧 쓰지 않은 사람이 빠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과는 반대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헬멧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리라는 안정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안전하다는 생각에 더 속도를 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전지전능하신 주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 보호를 받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 당연히 이 세상을 힘차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주님 뜻에 맞게 살려는 노력보다, 자기 뜻만을 내세우면서 그래도 주님께 보호받고 있다면서 자신만만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호 아래 있음은 교만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호 아래서 겸손의 삶,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과 자기 욕심에 머물러 있다면 더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순간을 마귀가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보호에 있기에 당연히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저히 주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사랑과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보호 아래에서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 하늘에 오르심을 기뻐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날입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에페 1,20)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통해 감사의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신다는 것은 우리 역시 그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영광을 누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제1독서를 보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오르시고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들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합니다.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역시 그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 뜻에 맞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늘 나라의 영광을 꿈꿉니다. 그런데 단순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주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이 세상에서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영광을 얻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비장의 무기는 아직 손안에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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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유월의 가슴 벅찬 첫날입니다. 모든 것은 새로운 시작일 뿐입니다. 성장의 출발점은 언제나 사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성장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삶은 성장의 여정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장의 길 위에 있습니다. 목적지는 바로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승천은 사랑입니다. 땅이 있기에 하늘이 있습니다. 내려옴이 있기에 올라감이 있습니다.

승천은 우리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가는 신앙의 순례자들입니다. 순례자들의 행복은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성장하는 행복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우리를 위한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 승천입니다. 낮아지심이 승천이고 자기비움이 진정한 승천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승천의 삶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우리 모두를 사랑의 성숙으로 초대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서 뜨겁게 체험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이게 하소서.

 

 

 

사도행전 1장 11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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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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