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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6/02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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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되리라. 알렐루야.

주님, 성령의 힘을 저희에게 주시어 주님의 뜻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거룩한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6월 2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2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사도 19,1-8
오늘 제1독서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1.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2.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4.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5.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6.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7.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8.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요한 16,29-33
오늘 복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29. 그러자 제자들이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2일
강언덕 베네딕토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6:4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성령의 협력자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담은 책으로, 그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활동 또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힘 곧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알리는 활동을 담은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늦게 부름받은 바오로 사도의 활동이 사도행전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요. 

오늘 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그들이 성령을 받는 과정을 전하며 성령의 역할과 믿음의 성장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줍니다. 바오로 사도와 제자들의 대화는, 회개의 표시인 요한의 세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성령 안에 머무는 삶으로 이끄는 그리스도의 세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성령으로 축성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세례받는 우리를 성부와 성자께서 당신 안에서 결합하시는 그 친교와 거룩함과 생명에 참여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세례성사의 이 참뜻을 알지 못한다면, 요한의 세례만 받은 에페소의 제자들처럼 세례를 한갓 종교적 관행으로만 여기고 우리 안에 오신 성령의 현존을 알아보지 못하며 그 능력의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하느님의 겸손’이라고 부르실 만큼 성부와 성자 뒤에 숨어 계신 성령께서는 신앙인의 일상에서 대체로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고 활동하십니다. 신령한 언어 같은 성령의 특별한 선물을 받지 않더라도, 성령께서는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우리 안에서 속삭이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도행전의 바오로 사도처럼 성령의 협력자로 부름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신적 기능성에 나를 열고

오늘 사도행전에서 에페소 신자들은 성령을 받았냐는 바오로의 물음에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성령 강림 대축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우리이니 우리도 성령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아닌가?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한 사람은 아닌가? 이런 성찰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령이 있다는 말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마라!’라고 하며 일소에 부치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사실 신자들 가운데 심지어 성직자 가운데도 천사나 악마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거나 체험이 없기에 그런 얘기는 아예 입 밖에 내지 않으려는 사람이 적지 아니 있는데 성령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월적 감수성이랄까 영적 감수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영적인 존재는 종종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뛰어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성과 경험으로 압니다. 예를 들어 호랑이를 경험한 사람은 이성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아도 압니다.  

그런데 호랑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경험한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그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호랑이가 진짜 있는지 이성적으로 판단을 할 것이고, 경험했다는 사람을 신뢰하면 그 사람의 말도 믿을 겁니다.  

옛날에 개똥 철학자인 군대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진주에 있는 저를 서울서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외계인이 있는지 먼저 개신교 목사가 된 군대 친구를 찾아가 물었는데 그 개신교 목사는 성서에 그런 얘기가 없으니 없다는 답을 듣고는 천주교 신부는 뭐라고 답하는지 듣고 싶어서 진주라 천 리 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을 하고는 그러나 하느님은 어떤 존재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시니 있을 수 있다고 답을 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이성적으로 신적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을 그저 상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초월적 또는 영적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작은 머리와 경험에 하느님을 가둘 수는 없는 것이고, 나의 작은 머리와 경험을 가지고 초월적 존재가 있다 또는 없다 단언할 수 없지요. 그러나 내 작은 방의 작은 창을 열 듯이 내 작은 머리와 경험을 하느님께 열면 초월 세계와 존재가 우리 안에 들어옵니다.  

그러니 성령 강림 대축일을 코앞에 둔 우리, 신적 가능성에 나의 작은 머리와 경험을 열고서 하느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빌며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분이 주신 평화로 우리도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그동안 부활시기 내내, 우리는 예수님의 고별담화인 요한복음 13장 후반부부터 14장, 15장, 16장의 다락방에서의 유언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마지막 장면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약해질 때가 올 것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요한 16,32)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의혹에 휩싸이고 혼동에 빠질 것입니다.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은 “약하고 더듬거리고 무지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강함은 우리의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님의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지탱합니다.”(루돌프 스테르텐브링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33)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남겨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화’란, 그 어떤 곤란과 슬픔 속에서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평화’란 단순히 갈등이나 시련이나 고통이 사라진 상태, 분열이나 전쟁이 없는 상태, 혹은 그 어떤 낙담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요한 16,3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그것은 ‘당신이 주시는 평화’를 말씀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만드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 어떤 좋은 환경이나 자기만족에서 얻어지는 평화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 안에서’ 얻게 되는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데서나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는 ‘마음의 평화’가 아닙니다. 오로지, ‘그분 안에서’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고자 ‘당신 안에’ 마련한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사실, ‘당신이 주시는 평화’는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님의 믿음이 주는 평화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이제 ‘그분이 주신 평화’로, 우리도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6,33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주님!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옳고도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죄마저 뒤집어쓰고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지는 무능이 이기는 
전능임을 알게 하소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사랑이 이기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미국 사회학자 찰츠 호튼 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또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 거라고 믿는 그 사람이다.” 
 
정체성은 이렇게 형성됩니다. 다른 사람의 나에 관한 생각을 믿으면서 자기 정체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나에 관한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정체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명연이는 공부보다는 장사나 사업을 해야 해.”
 
이 말씀이 학창 시절 계속 제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신부의 길은 제게 전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을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고 했고, 또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이렇게 신부로 기쁘게 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오랫동안 나를 봐왔던 아버지의 말씀이라면서 그냥 받아들였다면, 지금 세속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의 모습을 불가능한 일로만 여겼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또 그런 말을 받아들이고 믿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렇게 행동해야 합니다. 사랑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삶 안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때로는 좌절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먼저 세상을 이기셨기에 용기를 내어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평화를 얻게 됩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우리의 등대가 되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세상의 말과 행동에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에, 주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 미소, 악수, 격려의 말, 친절한 인사, 도움의 손길… 이 모든 것이 사랑을 향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다(헨리 나우웬).

 

빠다킹 신부의 11번째 책,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신청은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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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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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2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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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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