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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5/25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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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 소리 올리며 이 일을 알리고 전하여라. 땅끝까지 퍼뜨려라. 주님이 당신 백성을 구원하셨다. 알렐루야.

전능하신 하느님, 이 기쁜 날, 저희가 정성된 마음으로 축제를 지내며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을 드리오니 지금 거행하는 이 신비를 언제나 삶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5월 25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5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6주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5월 25일 부활 제6주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5,1-2.22-29)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기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제 2독서
    (묵시 21,10-14.22-23)
    천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4,23ㄴ-29)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사도 15,1-2.22-29
오늘 제1독서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기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22 그때에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묵시 21,10-14.22-23
오늘 제2독서

천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10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22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요한 14,23ㄴ-29
오늘 복음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5월 25일
양주열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15:4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살아 있는 성전

세례 받을 준비를 하는 예비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교육할 때, 성체를 영하고 감실 앞을 지날 때 감실을 향하여 인사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영성체를 통하여 주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체를 모신 신자 저마다가 살아 있는 이동식 감실인 셈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 또한 이 점을 잘 알려 줍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온전히 바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모든 것보다 더 사랑하고, 우리가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먼저 생각하며, 또한 그분을 본받아 우리가 가진 것들을 나누는 생활을 할 때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찾아오시어 함께하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려 주시고 그분의 계명을 따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이로써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지상에 머무르시며 활동하시는 살아 있는 감실, 살아 있는 성전이 됩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오늘 독서 말씀도 이러한 점을 보여 줍니다. 저마다 마음속에 하느님과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사랑이 살아 있다면, 그래서 그분의 진리와 사랑이 우리를 이끄는 등불이라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살아 있는 성전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령의 인격적인 평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다음 주가 승천 대축일이니 오늘 부활 제6주일은 그 직전 주일이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부탁도 하시고 약속도 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하시는 것이지만 실은 교회에 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부탁하시는데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 말씀을 지킬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뜻이 되겠습니까? 누가 훔쳐 가거나 뺏어가지 못하게 지키는 그런 것입니까?  

그렇지요. 그런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에서 누가 뺏어가지 못하도록 마음에 잘 간직하는 뜻도 있지요.  

우리가 부모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부모의 말을 늘 마음에 간직하며 살고, 때때로 그리고 필요한 경우 그 말씀을 꺼내 기억도 하곤 하듯 주님 말씀도 늘 마음에 간직하고 때때로 중요한 때 꺼내 쓸 것입니다.  

또 주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그 말씀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함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며 부탁하신 것 곧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명이란 사랑하라는 계명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부탁만 하시지 않고, 약속도 하십니다.  

가장 중요하고도 고마운 약속은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입니다. 당신이 지금 떠나시지만 우리 곧 삼위일체 하느님이 함께하실 것이라는, 당신 한 분 대신에 세분이 함께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승천 후 성령을 보내심을 미리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당신 말씀을 모두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보호자 곧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이 약속은 보잘것없는 우리의 기억 능력을 보완해주시고 완전케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기억 능력은 한계가 있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사랑만큼 우리는 기억하고 추억도 하겠지만 우리의 사랑도 성령만큼 강력하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성령께서는 오늘 사도행전의 초기 교회처럼 위기의 때에 함께하시며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게 해주십니다.  

초기 교회의 위기란 유대교 관습인 할례로 인해 갈등이 발생한 교회가 진정한 그리스도교로 발전하느냐 도로 유대교가 되느냐 그 갈림길에 있었던 것인데 이때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께서 교회와 함께하셨고 그래서 사도들은 첫 공의회라 할 수 있는 회의 후 이렇게 결정을 내려보냅니다.  

“성령과 우리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교회는 깨지지 않았고 그리스도교로 날로 발전하였으며 교회 밖은 엄청난 태풍이 불고 있어도 교회 안은 평화로울 수 있었지요.  

이것이 세상의 평화와 달리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보호자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평화입니다.  
 
성령의 보호 안에 있으면 우리는 환난의 한가운데 있어도 평화로울 수 있고 마음이 산란해지거나 겁을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환난 한가운데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 마음 한가운데 성령께서 계시면 우리는 평화로울 수 있는데 이런 평화를 성령의 평화라고 합니다. 성령의 이런 인격적인 평화를 살기로 마음먹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오늘 <말씀전례>는 부활을 보증해주고 드러내주는 성령에 관한 말씀이 도드라집니다.  

<제1독서>에서는 초대교회에서 당면한 문제를 사도들이 성령 안에서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곧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라고 말합니다. 

<제2독서>에서 요한은 성령께 사로잡히어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게 됩니다. 곧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었습니다.”(묵시 21,10)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님의 고별담화 안에 있는 ‘성령에 대한 파견 예고’ 장면 중의 일부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이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실행할 수 없다는 말씀이요,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실행하지 못함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까닭임을 밝혀줍니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조금만 지키고 실행하고 있다면, 우리가 당신을 조금만 사랑하고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당신을 사랑하는 이에게서 당신이 드러나고, 당신의 현존이 체험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당신 이름으로 보내실 아버지의 선물인 성령으로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히십니다.  

“협조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이는 성령께서 예수님의 구원행업을 설명하고 완성하시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는 새로운 것을 가르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곧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시는 분이십니다. 이토록, 성부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곧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새로운 현존관계’를 유지하십니다. 

결국, 오직 성령께서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완성하십니다. 그러니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고 하신 예수님의 선물 역시 성령께서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요한 14,28) 

‘갔다가 돌아온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가고 오심’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임을 드러내줍니다. 곧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요, 십자가의 현양은 끝이 아니라 성부께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이별은 재회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기뻐해야 할 그 무엇이요, 희망의 예시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모형제를 떠나보내는 일도 이와 같이 기뻐해야 할 일이 되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장례식은 이별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헤어져 있다가 만나는 시간이요, 동시에 또다시 만나기 위한 출발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기쁨과 희망의 시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 희망과 믿음을 간직하면, 당장의 그 어떤 슬픔과 고통도 아버지 안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요한 14,28)라고 말씀은 우리를 의아하게 합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10,30)라는 당신의 말씀과 모순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완전히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고,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께 의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시성에 있어 아버지와 하나셨지만, 동시에 인성에 있어서는 더 위대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돌아가시는 것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래의 영광으로 돌아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일이 일어날 때 우리가 믿게 하려고”(요한 14,29 참고)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사랑과 배려를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크나 큰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드러내주는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4,27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주님!
평화를 위해 
가시관을 쓰게 하소서.

창에 찔리신 당신 가슴으로 
세상을 품게 하소서. 

누르고 빼앗고 장악하고 
차지해서가 아니라

내어주고 비워져서 
평화로워지게 하소서. 

잔잔한 호수처럼 
마음이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음에 
평화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평화롭기를 바라기보다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이 성령으로만 자비로워질 수 있는 이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에 관해 예고하십니다. 성령 강림에 관한 예언입니다. 성령께서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란 말씀대로 ‘진리를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십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기억하게 하여 얻어지는 감정이 ‘평화와 기쁨’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진리를 모를 때 불안하고 우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얻어 교회에 전해 주며 평화를 주십니다. 성체를 영하는 데 평화의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평화를 얻어야 할까요? 죄 없는 이들에게까지 무자비했던 바이킹 같은 경우에서 알 수 있듯 평화가 없으면 사람이 나빠지고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평화롭지 못한 환경입니다. 악한 사람은 모기와 같기에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으로 평화를 찾아야 합니다.  

영화 ‘기억의 밤’(2017)을 통해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알고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인공 진석은 형 유석과 함께 이사한 집에서 살며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형 유석이 갑자기 납치된 후 19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돌아온 형은 이전과 전혀 다른, 낯선 모습을 보이며 진석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에 진석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게 됩니다. 

진석은 의문을 품고 형의 행동을 몰래 추적하며 진실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끔찍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형이라고 믿었던 유석은 사실 형제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조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석이 기억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는 사실 살인 사건의 가해자였다는 충격적인 진실입니다. 사고로 그 기억을 잃었던 것이고 자신이 죽인 이의 아들이 유석이었던 것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진석이 결국 경찰서로 스스로 찾아가는 순간입니다. 그는 혼란과 두려움, 죄책감 속에서 경찰서의 거울 앞에 섭니다. 진석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왜 그토록 두려워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거울 앞에 선 진석의 모습은 참된 진리를 비추는 성령의 은총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진석은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이 불안했던 이유는 진실을 잊고 죄를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입니다. 

그 순간 진석은 공포에서 해방되어 오히려 진리를 인정하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 장면은 마치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성령의 빛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찾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진석을 사주했던 것은 유석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내를 죽여 보험금을 타내려 했던 것입니다. 진석은 끝까지 유석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사주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께 붙어있으라고 하신 이유는 그래야 진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님과 더 붙어있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성체에서 밝혀지는 진실인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인 성체의 거울을 통해 나의 본모습과 하느님의 본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마음의 평화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착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평화로 지금까지 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이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진리의 성령을 주시는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제가 어머니를 의심하며 불안해할 때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붙어있어야 했습니다. 붙어있다가 보니 단팥빵과 흰우유를 먹을 때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닌 그저 이분이 키워주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순종하게 되고 악한 길로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분께 더 붙어있으려 하면 더 붙어있으려 할수록 주님은 성령의 거울을 통해 우리에게 더 큰 평화를 내려주십니다. 그러면 그 진리로 얻는 평화가 우리를 더 자비롭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어떤 실험 결과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실험 대상을 두 그룹으로 나눠 최근에 경험한 일을 적게 하고 만족감을 수치로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최근에 ‘무언가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를 적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룹에는 최근에 ‘남에게 어떤 것을 베풀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를 적게 했습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어떤 그룹의 기쁨이 더 높았을까요? 
 
여러분도 예상하셨겠지만, 두 번째 그룹의 기쁨이 훨씬 컸습니다. 이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이 더 크게 기쁘고 오래 기억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로써 자기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삶에 활력을 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두 번째 그룹보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하려고 합니다. 즉, 베푸는 것보다 받는 것에 집중하고, 이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남을 돕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요? 사실 남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멀리 가지 않고 성당 안에서도 얼마나 많이 만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성당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분들을 정말로 많이 봅니다. 지금 곤란한 일을 겪는 분에게 다가가 친절하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분도 있습니다. 흩어져 있는 질서 있게 의자를 정리해 주시는 분도 있지요. 남들 다 멀리하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 역시 남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십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남을 도우며 사랑을 실천하는 분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하시는 분은 단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남을 돕는 일을 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일할 사람이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고, 이 사랑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화를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행복하길 바라는 우리가 아닌가요? 그렇다면 사랑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베푸고 나누고 또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활력과 더불어 커다란 기쁨과 활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은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 목적지에 닿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앤드류 매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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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5월의 모든 시간을 봉헌합니다. 구원의 완성은 순종과 겸손으로 이루어집니다. 언제나 길의 끝에는 아버지 하느님이 계십니다. 떠남은 끝이 아니라 단절이 아니라 완성의 또 다른 여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기십니다. 맡겨드릴 때마다 만나는 하느님의 현존이며 믿음의 기쁨입니다. 내어맡김은 포기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삶 속에서 신앙을 살아낼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신앙공동체는 젊은이들에게 공감과 동행의 공간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형식보다는 관계 중심의 공동체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젊은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십니다. 정답을 먼저 알려주시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과 함께 고민하는 동행자가 되십니다.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한 교회의 참여와 실천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더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다가가는 청소년 주일 되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가 사는 삶과 사회 속에서 뜨겁게 살아있음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 구원을 향한 우리 모두의 신앙임을 믿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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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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